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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해> 이 제목을 이렇게 바꿔부르고 싶다. <지금 사랑해?>
 <지금 사랑해> 이 제목을 이렇게 바꿔부르고 싶다. <지금 사랑해?>
ⓒ 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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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시 가즈후미의 작품 <지금 사랑해>. 제목만 보고서는 아주 달콤하고 톡톡 튀는 사랑이야기인 줄 알았다. 순정만화와 같은 예쁘장한 표지도 한 몫했다. 쿨하고 산뜻하고 아기자기한 연애소설을 또 하나 읽겠구나 싶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 그리고는 기분좋게 한방 먹었다.

이 책에는 시라이시 가즈후미의 중단편 소설 세 작품이 실려있다. <만약 진실을 안다해도 그는> <다윈의 법칙> <20년후의 나에게>. 중단편의 분량이긴 하지만 세 작품 모두 무게감이 있다. 읽고나면 마음한쪽이 묵지근하다. 어쩌면 조금 건조하고 딱딱할지도 모르겠다. 젊은이들의 상큼발랄한 연애소설이 아니라 중년, 이혼녀 등 삶의 무게를 짊어진 그들의 이야기니까.

묵지근한 울림을 주는 중단편 세편 

<다윈의 법칙>은 사람에게 스킨십과 애정의 관계에 대해 묻고있는 소설이다. 작품속 '치카'는 30대 중반의 미혼여성. 그녀의 애인은 유부남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아빠의 불륜상대를 찾아갔던 경험이 있다. 그 일을 계기로 아빠는 불륜생활을 청산하지만 얼마안가 암에 걸려 죽고 만다. 치카는 어른이 된뒤 생각한다. 결국 아빠를 죽게 만든 것이 자신이었다고. 아빠에게 사랑과 따뜻한 스킨십을 해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병에 걸리지 않았을 거라고. 결국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은 병이 아니라 고독과 쓸쓸함이라고 작가는 치카의 입을 통해서 이야기한다.

<20년 후의 나에게>는 쓸쓸한 한 여성 '미사키'이 등장한다.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을 한 그녀는 혼자 맨션에서 살아간다. 물론 그녀에게는 직장이 있긴 하지만 집과 직장을 오가는 삶 외에는 특별한 낙이 없다. 몸이 힘들 때는 안마사에게 부탁해서 마사지를 받고 그렇지 않으면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보면서 혼자 식사를 한다. 정말 무미건조하고 삭막한 삶이다.

그런 그녀에게 직장 후배 '안자이'는 철딱서니없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여겨질 뿐이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그의 숨은 인간적인 매력을 알게 된 미사키는 사람을 보는 눈, 세상을 보는 눈을 다시 얻게 된다.

<만약 진실은 안다해도 그는>은 남녀의 애정과 비밀에 대한 함수관계를 묻고있는 작품이다. 일본소설을 읽을 때 그 정서에 공감하다가도 가끔씩은 이해할 수 없는 정서적 한계를 느끼곤하는데 이 작품이 그랬다.

작품속 주인공 '나'는 문예잡지의 편집장이다. 고아였던 '나'는 원로대작가 '사토미'를 친아버지처럼 여기며 살아왔다. 지금의 아내도 그로부터 소개받아서 결혼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토미'가 죽은 후 자신의 부인을 통해 그녀와 사토미와의 비밀스러운 과거를 듣게된다. 더구나 자신이 그렇게 예뻐하던 아들이 사토미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이 사토미의 복수였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된다. 사실 '나'는 결혼 전, 사토미의 부인 '카렌'과 은밀한 관계였다. 사토미는 그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 죽는 순간 '네 아들은 사실 내 아들이었어'라는 말로 복수의 어퍼컷을 날린 것이다.

결국 '나'는 그 복수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나'는 아무일 없었던 듯, 아무것도 모르는 듯 그 가정을 유지하기로 한다. 그의 부인을 용서해서도 아니다. 이해해서도 아니다.  그 역시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지극히 일본적인 소설

서로 다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 묵인하며 지내는 그들의 '가면' 정서는 지극히 일본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이런 소설이 나올 수 없다. 우리의 정서와 맞지않기 때문이다. '나'가 한국소설속 인물이었다면 그는 부인과 당장 이혼하든지 아니면 그의 부인이 먼저 친자식이 아님을 사실을 밝혀서 무슨 수를 쓰든지 했을 것이다. 몇십 년이나 상대의 불륜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색하지 않은 채 마음 한 편에 칼을 갈고 있는 일본인의 정서, 쉽사리 이해할 수 있겠는가? 

세 편에는 모두 공통적으로 '불륜'이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의 입으로 '불륜'을 고백한다. 용서해달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그 사실은 상대에게 더욱 큰 참담함을 안겨준다. 그러나 그들은 상대의 불륜을 알았다고 해서 세상이 끝난 것처럼 야단을 떠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 상태로 견딘다. 그것이야말로 상대에 대한 가장 잔인한 복수인 것이다. '치카'의 어머니도 그랬고, '나'도 그럴 것이다.

시라이시 가즈후미는 우리나라에 잘 안 알려진 작가다. 1958년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문예춘추> <문학계>등 잡지와 기획출판부에서 근무하다가 2003년 퇴사한 후 집필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2003년이면 그의 나이 45살 때이다. 창작활동에 정년이란 없는 법일까. 50을 넘은 나이에도 젊은 여성의 심리를 참 섬세하게 묘사해놓았다. 우리에게 소개된 그의 또다른 작품으로는 <얼마만큼의 애정(다산초당)>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지금 사랑해/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노재명 옮김/ 다산초당/ 2009



지금 사랑해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노재명 옮김, 다산책방(2009)


태그:#시라이시 가즈후미, #일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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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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