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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평이 채 안되는 좁은 공간이다.
▲ 두 달간 살았던 내 고시원 방 두 평이 채 안되는 좁은 공간이다.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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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똑바로 누우면 팔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160㎝가 채 되지 않는 내 키에도 침대에는 남는 공간이 없었다. 오른쪽 팔이 저리면 왼쪽으로 바싹 붙어서 오른 팔을 펴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왼쪽 팔을 펴기 위해 오른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이를 반복 하며 누워 있자니 나보다 키가 큰 사람들은 어떻게 잠을 자는지가 궁금해졌다.

인기척이 없는 조용한 방안에 웅크리고 있으면 귀가 밝아지는 것 같았다. 방 안에선 무얼 하는지 모르겠는데, 복도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선명했다. 딸깍 하고 문을 여는 소리, 쿵쿵쿵 걸어들어오는 소리, 가끔은 전화를 받는 소리도 들렸다. 그저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긴 하구나' 정도의 존재감이었다.

'식당에는 공짜 밥이 준비되어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밥과 계란과 김치가 전부였다. 일주일에 3일은 식당에 비치되어 있는 음식들을 먹었다. 김치는 풋내가 나서 먹을 수가 없었다. 김치도 없이 계란 프라이와 고추장에 밥을 비벼서 그렇게 먹었다.

내 방 번호는 111호, 팔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좁은 침대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한 지난 4월, 나는 처음 두 달을 고시원에서 살았다. 서울에 아는 사람도 없고, 당장 방을 구하기도 막막했던 터라 임시 거처로 고시원을 선택했다. 직접 가볼 수도 없는 노릇이여서 부산에서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했다.

서대문구 아현동에 위치한 33만원짜리 방은 화장실과 부엌을 공동으로 사용해야 했다. 두 평도 되지 않는 작은 공간. 내 방 번호는 '111호'였다.

맨 처음 방을 배정받고 그 번호를 보고 있으니 외로워졌다. 1이 세 개나 있는데도 등을 돌리고 뚝뚝 떨어져서 누워있는 것 같았다. 같이 있어도 함께 하지 못하는 쓸쓸한 숫자라고 생각했다.

혼자 조용한 방에 앉아 있을 때면 할 것이 없었다. 방이 좁아서 TV도 빼버린 나는 괜히 마음이 울적해져서 김승옥의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을 떠올렸다.

소설 속에서 나오는 이름 없는 세 명의 인물은 결국 칸칸이 나뉜 여관방에 각자 들어가서 옆 사람이 죽어가는 걸 방치한다. 그 때의 여관이 꼭 고시원 같다. 부엌에서 나는 냄새는 모두가 공유했지만 누구하나 음식을 나눠먹는 사람은 없었다. 

고시원에 진짜 '고시생'은 없다

폭이 좁은 고시원의 복도
▲ 고시원 복도(자료사진) 폭이 좁은 고시원의 복도
ⓒ 이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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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게 없어서 고시원을 관찰했다. 그리곤 고시원 사람들은 모두가 하이에나 같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출근을 하는 아침이 되면 동물적 감각은 최고조에 올랐다. 화장실이 두 개 밖에 없는 터라 씻는 것은 전쟁이었다.

한 사람이 씻는 동안 정해진 암묵적 다음 타자는 문 뒤에 붙어 서서 앞사람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딸깍' 하며 화장실에서 한 사람이 나오면, 연달아 '딸깍' 하는 소리가 들리며 다음 사람이 재빨리 그 자리를 차지했다.

나는 별로 예민한 성격도 아닌데도 화장실에 갈 때나 밖으로 나갈 때 그 동물적인 감각을 사용했다. 소심하게 밖에서 인기척이 나거나, 주인이 청소를 하고 있는 시간에는 화장실에 가기도 꺼려졌다.

한 달에 33만원이라고 하면 결코 싸다고 할 수는 없는 가격이었다. 더 싼 방도 더 비싼 방도 있었지만 난 이 즈음에서 타협을 했다. 하지만 방 값만 내면 보증금도 관리비도 없고 은근히 많이 나가는 쌀값도 아낄 수 있었다.

직접 마주치는 일은 적었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추리해본 결과 내가 살았던 고시원에는 진짜 고시생은 없어 보였다. '공부하는 학생'들은 한 달에 45만원이 훌쩍 넘는 비싼 고시원으로 가고 그 빈 자리는 집 없는 사람들이 차지한 것 처럼 보였다.

열심히 살았을 그 사람들에게 일어난 참사

지난 20일 고시원에 불을 지르고 화재현장을 탈출해 나오는 사람들에게 흉기를 마구 휘둘러 6명의 여성이 숨진 가운데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D고시원 사건현장에서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던 재중동포 여성이 취재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난 20일 고시원에 불을 지르고 화재현장을 탈출해 나오는 사람들에게 흉기를 마구 휘둘러 6명의 여성이 숨진 가운데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D고시원 사건현장에서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던 재중동포 여성이 취재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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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정도 있으니까 견딜 수 없이 슬퍼졌다. 점점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떠들썩하게 밥을 차려먹고 마음껏 소리지를 수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알게 되었다.

높은 빌딩 숲을 조금만 벗어나면 보이는 좁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고시원들. 지금은 고시원에서 나와 방을 구해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지만, 지나가다가 덜컥 그 좁은 창문과 눈을 마주치면 괜히 서글퍼졌다.

어제(20일) 뉴스에서 한 남자가 고시원에 불을 지르고 6명의 사람을 살해했다는 끔찍한 뉴스를 봤다. 피의자는 자신의 방에 불을 지르고 연기를 피해 뛰쳐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둘렀다고 한다.

폭이 채 1m도 되지 않는 그 좁은 복도에서 정신없이 뛰쳐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고시원에 살던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이 있을 거라 믿으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을 뿐인데, 왜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 모르겠다.

나와 비슷한 꿈을 꾸었을 고시원의 '고시생 아닌 사람들'은 그렇게 비뚤어진 한 사람에 의해 죽어갔다.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D고시원 사건현장에서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던 재중동포 여성이 이불과 짐을 챙겨들고 나오고 있다.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D고시원 사건현장에서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던 재중동포 여성이 이불과 짐을 챙겨들고 나오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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