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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선, 김주명, 유용범(왼쪽부터). 조폭 보스를 맡은 김주명의 능청스런 연기가 볼 만하다
▲ 조폭 삼인 진영선, 김주명, 유용범(왼쪽부터). 조폭 보스를 맡은 김주명의 능청스런 연기가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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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에 갔다 온 조폭, 왜 맞을까?

"너 어제 방송에 나왔더라."
"예, 제가요?"
"그래 임마, 니가 왜 촛불 집회엔 나가니, 깡패가 뭣 때문에 거기 나가?"

이러면서 강북 일대를 사시미 하나로 평정했다는 조폭 두목(김주명/최동엽)이 부하의 머리통을 연타한다. 도대체 그 신참 조폭은 왜 촛불집회에 간 것일까?

촛불시민과 연대하려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염두에 아니 두는 조폭조차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은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저녁마다 거리에 나와 검역주권을 외쳤던 시민들과 연대해서 명박산성을 쌓아놓고 소통을 거부한 정권에 항의하다가 물대포에 얻어터지는 장면이 찍히게 된 것인가.

극단 대학로극장의 <청산리에서 광화문까지>는 관객의 허를 찌르면서 폭소를 자아내는, 요즘 대학로에서 보기 힘든 창작 풍자극이다. 그런 점에서는 봉준호 감독을 일약 톱스타로 만든 <살인의 추억 2003>의 원작인 <날 보러 와요(김광림 작 1996년 초연)>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랄 수 있다.

시체매매 해서 번 돈으로 친일파를 청산한다?

왼쪽부터 배우 배수백, 배상돈, 이용규 씨
▲ 엽기 삼형제 왼쪽부터 배우 배수백, 배상돈, 이용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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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매매로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삼형제의 꿈은 이 땅에서 친일파를 완전 소탕하는 일이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청산리 전투에서 김좌진 장군과 더불어 전투에 참가한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거둬들인 시체를 관동 마루타 부대에 팔아넘기고 받은 돈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전설'을 믿고 있으며 그런 가업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다.

근래 음경이나 유방 확대 수술이 유행하면서 시체에서 얻는 근육과 살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는 터에 사회안전망이 확충되면서 '눈 먼' 시체를 얻는 게 갈수록 어려워진다. 결국 친일파 청산 사업에 브레이크가 걸릴 위험에 처한 이들은 조폭의 살인까지 청부받는다.

미션 임파서블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온 이들 삼형제 중 시체 조달을 맡은 둘째가 죽일 놈에게 독약 대신 감기약을 먹이고,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여자를 납치해 오면서 삼형제의 친일소탕 작전에 이상이 생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개상은 생명의 위협 앞에서 배신을 때린다. 살인 대상이던 쌍도끼는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봉승호, 박효주, 김장동(왼쪽부터)
▲ 쌍도끼, 그의 전 애인, 그리고 시체브로커 봉승호, 박효주, 김장동(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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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의 1940년 작 <위대한 독재자>의 히틀러처럼 편집적 태도는 코미디나 풍자물에서 흔히 등장하는 소재다. <청산리에서 광화문까지>의 연출가 이우천이 형상화한 이 삼형제의 어리석은 집착은 아버지의 대의와 그 뜻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의 반성 없는 계승이다. 자기 성찰을 동반하지 않은 신념은 필연적으로 무자비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법이다. 

어떤 목적을 추구할 때 요구되는 다양한 수단에 대한 성찰을 무시할 수 없는, 다양한 가치 추구가 촘촘하게 네트워크을 이루고 있는 시대다. 이런 흐름 속에서 자기 신념에 눈 먼 자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분열을 조장하게 되고 통합을 해친다. 악화되면 사회는 결국 모리배들의 싸움판으로 전락한다.

"저는 이 연극을 통해서 잘못된 확신이나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사회를 진두 지휘할 때의 폐해를 말하고 싶었어요. 저는 정말 알고 싶습니다, 잘못된 신념으로 인해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대체 누군지…"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한 사람을 겨냥하고 있는 듯한 작가의 연출 의도가 제대로 구현됐는지 그 판단은 애오라지 관객의 몫이다.

"언론의 왜곡은 비극적이고 엽기적인 결과를 낳게 됩니다"
▲ 이우천 연출가 "언론의 왜곡은 비극적이고 엽기적인 결과를 낳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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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청산리에서 광화문까지>는 오는 9월28일까지 대학로 예술정원 소극장에서 상연된다.



태그:#극단 대학로극장, #청산리에서 광화문까지, #이우천, #사회풍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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