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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는 현실을 긍정하면서 자신의 꿈을 펼쳐 나가는 건강한 청소년의 표상이다.
▲ <완득이> 스틸 모음 완득이는 현실을 긍정하면서 자신의 꿈을 펼쳐 나가는 건강한 청소년의 표상이다.
ⓒ 김동수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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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극단 김동수 컴퍼니의 연극 <완득이>는 로열티를 지불하는 해외 화제작도, 스타 배우를 기용해서 주목을 끄는 작품도 아니다. 관객의 관심을 끌 만한 요소가 있다면 원작이 2007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화제작이라는 정도. 그러나 무대로 옮긴 베스트셀러라고 모두 인기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막장 드라마의 음과 양

원작 김려령의 <완득이>는 명랑한 성장 소설이다. 이 청소년 소설의 밝은 분위기가 퍼뜩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면 그 옆에 살며시 '막장 드라마'를 갖다 놓고 보기만 하면 된다. 대개 이런 통속극들은 이야기 속에 갈등을 위한 갈등을 즐겨 우겨 넣는다. 보고 나면 시청자들의 심사는 편치 않지만 다음 회를 또 기대하게 만드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플롯은 배배 꼬였지만 내용이야 간단하다. 맹목적인 소유욕과 구분이 안 되는 연애와 결혼에의 병적인 집착이 낳는 성인 남녀의 감정 난투극이다. 사사건건 사건을 만들어대는 주인공들은 죄다 감정 과잉에 빠져 우행을 반복하는 '딱한' 성인 남녀들이다.

청소년 정서에 야동 음란물만 해로운 게 아니다. 낮밤 안 가리고 공중파 방송을 타는 막장드라마도 그 못지않게 외설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이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사람 사귐의 소박한 단순성과 투명성을 잃어버린 채, 팍팍한 다툼살이(생존경쟁)로 원한이 깊어지는 서민들 마음 속의 숨기고 싶은 편린들이 언뜻언뜻 내비쳐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지.

주인공 <완득이> 캐릭터의 진정한 매력은?

전에는 캬바레 춤꾼, 그러나 지금은 지하철에서 단속원 눈치를 보며 고탄력 스타킹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도정복씨의 인생은 탄성 제로다. 그렇게 먹고 살려고 노력했건만 사는 집은 어쩌자고 산으로만 기어 올라가 달동네다. 누가 이 민초에게 못 사느냐고, 왜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느냐고 돌을 던질 수 있으랴. 거기다 '난쟁이'라는 태생적 한계. 바로 이 저주받은 사내의 아들이 완득이다.

이만큼 나쁜 환경이라면 대개 청소년들은 음지를 향하기 쉽다. 이런 예상을 툭 깨고 나온 캐릭터가 완득이다. 한국은 가난하다고 알려져도 유치원 다닐 적부터 왕따를 당하는 계급사회다. 완득이의 매력은 더러 아버지에게 불만을 토로하며 반항할 때도 있지만, 마음 바탕에 현실에 대한 원한 감정이 없다는 점이다. 같은 반에서 성적 톱을 달리는 윤하가 공부도 못하고 지지리 가난한 완득이에게 끌리는 까닭은 뭘까. 그것은 이 얼굴 까무잡잡한 혼혈 청소년의 건강한 낙천주의에 대한 호감이 아닐까.

원작의 테마에 깊이를 부여한 각색과 대본
   
문화평론가 정순영은 원작의 각색을 통해 '패배를 긍정할 줄 아는 용기'란 주제를 이끌어냈다. 이를 바탕으로 연극인 이상훈은 공연이 관객과 사회의 거울임을 재확인할 수 있는 대본을 만들어냈다. 오늘날 남한에서 늘어가는 다문화 가정,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한국민의 오만한 편견, 삼류 입시학원으로 전락한 공교육, 여자 친구를 모델 삼아 그린 음란 만화를 공개하는 청소년의 변태성, 그리고 신체의 차이를 결함이라고 비난하며 깔깔대는 잔인함. 자칫 객석에 버거울 수도 있는 우리네 모습이 이상훈 풍의 통렬하고 감칠맛 나는 대사에 힘입어 부담 없이 관객들에게 스며든다.

<완득이>는 관객들은 말할 것도 없이 배우들이 스스로 즐길 수 있는 무대다.
▲ 완득이에 출연하는 배우들 <완득이>는 관객들은 말할 것도 없이 배우들이 스스로 즐길 수 있는 무대다.
ⓒ 김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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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통한 연출

연극 마케팅의 일환이나 무대 분위기를 띄우려는 의도인 줄 안다. 종종 일부 극단에선 관객과의 소통을 억지 춘향 식으로 요구할 때가 있다. 관객에게 뭔가 강요되면 객석은 비어간다. 앞으로 관객에 대한 박수 요청은 연극인의 무능력을 자인하는 짓으로 비난받을지도 모른다. 좋은 연극인은 정치꾼이나 호객꾼과 달라야 한다.

김동수 연출은 술술 읽히는 원작의 속도감을 무대 위에 펼쳐 보이는 데 성공했다. 사건 전개의 정교한 완급 조절이 텅 빈 무대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솔직담백한 서민들이 아픔을 웃음으로 보듬고 좌충우돌하며 왁자하게 사는 정경이 '사이와 암전'을 최소화한 연출 덕택에 무대는 출렁출렁하다.

첫사랑에 빠진 킥복서 완득이는 첫 시합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 완득이<포스터> 첫사랑에 빠진 킥복서 완득이는 첫 시합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 김동수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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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원작 속 에피소드를 무대 위에 나열하고 배치할 때의 전략은 연출이 예상한 전체 객석의 반응과 맞아 떨어질 때 최고 성능을 발휘한다. 관객은 무대를 관조하는 대신 마음을 열고 반응하면서 무대와 공명하게 된다. 배우들 신명이 더 뻗친다.

연극 <완득이>는 극 후반부로 가면 무대와 객석 사이의 경계가 스물스물 지워지는가 싶더니 흥쾌한 마당극으로 막을 내린다. 이때 마당극이라 함은 물론 공연 형식이란 조건을 떠나서 관객과 기통한 모든 연극을 가리키는 말이다. 관객과 듬뿍 기가 통한 무대, 그것이 활력만점 청춘일기 <완득이>다.

덧붙이는 글 | 공연일자 : ~5월31일까지
장소 : 대학로 김동수 컴퍼니



태그:#완득이 , #김동수 , #김려령, #정순영,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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