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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구 누비는 3인 "능력론"-"인물론"-"견제론"
ⓒ 박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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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뭔 날이여? 인물께나 하는 사람들이 잘 봐달라고 인사하고 가네."

21일 정오 무렵 서울 중구 신당3동의 남산타운 제3경로당.

이곳 노인들에 대한 무료급식이 있던 날 중구에 출마하는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 자유선진당의 간판스타들이 30분 간격으로 찾아와 인사를 올리자 한 노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 말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양자 대결로 치러지는 서울의 타 선거구와 달리 중구는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박성범 의원의 부인 신은경(전 KBS 앵커)씨가 자유선진당 후보로 출마하면서 3파전 구도를 형성했다.

한나라당에서는 '얼짱' 대변인으로 잘 알려진 나경원 의원이, 민주당에서는 TV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주가를 높였던 정범구 전 의원이 각각 전략 공천되면서 중구를 순식간에 '얼짱들의 대결장'으로 만들었다.

중구는 야당의 명문가 정일형·정대철 부자가 13번 당선된 민주당의 텃밭이었지만, 한나라당 박성범 의원이 96년과 2004년 선거에 승리하며 여야의 접전지로 바뀐 곳이다.

지난 대선에서는 한나라당이 53.3%(이명박) 대 26.1%(정동영)로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고 한나라당이 공천 후유증을 앓고 있어 승부를 점칠 수 없게 됐다.

3자 구도가 확정된 첫날(19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나경원 35.9%, 신은경 17.7%, 정범구 17.1%로 한나라당이 일단 승기를 잡았다.

[한나라당] 나경원 "4년 의정활동으로 능력·실력 검증 받았다"

4.9총선에서 중구에 출마하는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이 21일 오전 중구 약수노인복지회관을 찾아 어른신들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악수를 하고 있다.
 4.9총선에서 중구에 출마하는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이 21일 오전 중구 약수노인복지회관을 찾아 어른신들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악수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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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후보는 2005년 1~12월 원내 대변인, 2006년 4~5월 서울시장 후보 대변인과 당 대변인(7월~2008년 3월)을 지내며 한나라당의 '얼굴' 역할을 톡톡히 해낸 인물.

경로당을 찾은 나 후보도 "제가 한나라당 대변인이었는데, TV에서 많이 보셨죠?"라며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등 '미디어 프리미엄'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한 할머니가 "나한테는 악수하자는 얘기도 안 하네"라고 서운함을 내비치자 그는 "정말 정말 중요한 분일 것 같아 제일 마지막에 하려고 했다"며 할머니를 와락 끌어안는 '임기응변'을 보여주기도 했다.

고엽제전우회 중구지회장을 맡고 있는 하태환씨는 "박성범 의원이 선거철이 아니라도 월례모임에 꼬박꼬박 인사를 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박 의원은 한나라당을 떠나고 이제 나경원 후보가 한나라당을 대표하는 인물이니 한나라당을 지지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4.9총선에서 중구에 출마하는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이 21일 오전 중구 약수동을 찾아 지역 주민들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4.9총선에서 중구에 출마하는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이 21일 오전 중구 약수동을 찾아 지역 주민들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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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우려와 달리 박 의원의 기존 조직들을 대부분 흡수해 조직을 풀가동할 수 있는 것도 나 후보가 든든하게 여기는 대목이다. 바삐 걸음을 옮기는 나 대변인에게 몇 마디 물어봤다.

- 다른 사람을 대변하다가 스스로를 대변하게 됐는데...
"저를 홍보하는 것이 아직 쑥스러운 면이 있다. 중구에서 초등학교·중학교를 다 마칠 정도로 인연이 깊다."

- 인물이 출중한 사람들이 중구에 많이 출마해서 외부에서는 '이미지 선거'로 보기도 한다.
"4년의 의정활동으로 능력과 실력을 충분히 검증받았다. 정범구·신은경 후보도 훌륭한 사람들이지만, 유권자들은 누가 중구를 발전시킬 수 있느냐, 결국 능력과 실력으로 평가하실 것이다."

- 신은경 후보로 인해 3파전 구도가 돼서 당선이 쉽지 않을 수 있다.
"물론 그런 분석도 가능하다. 양자구도보다는 어렵겠지만 최선을 다하겠다. 중구민들의 현명한 선택을 믿는다."

나 후보는 경로당 방문을 마친 후 남산타워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들러 "곧 입주할 사람이니 잘 부탁한다"며 직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뒤 바삐 걸음을 옮겼다.

[자유선진당] 박성범 의원 "이젠 내가 아내 신은경 내조하게 됐다"

4.9총선에서 중구에 출마하는 자유선진당 신은경 전 KBS 앵커가 21일 오전 중구 약수동을 남편 박성범 의원과 함께 찾아 지역주민들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4.9총선에서 중구에 출마하는 자유선진당 신은경 전 KBS 앵커가 21일 오전 중구 약수동을 남편 박성범 의원과 함께 찾아 지역주민들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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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TV에서 자주 본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음을 쉽사리 주지 않는 것이 유권자들의 미묘한 속성.

나 후보가 다녀간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박 의원의 부인 신은경 자유선진당 후보가 경로당을 찾았다.

80년대 뉴스앵커로 이름을 날렸던 신 후보이지만, 92년 9월 방송을 그만둔 후로는 '정치인 박성범의 부인'으로 미디어에서 다소 멀어진 인물이다.

그러나 신 후보가 경로당에 모습을 드러내자 분위기가 확 피어올랐다. "어서 와라", "왜 이제야 왔냐?"며 살갑게 대하는 할머니들의 태도에 신 후보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남편 박 의원이 "그 동안 이 사람이 날 내조했지만, 앞으로는 제가 내조를 하게 됐다"고 지지를 호소하자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거리는 사람도 많았다.

신 후보는 "(유권자들이) 전혀 낯설지 않다. 항상 뵙던 분들이기 때문에 '후보로 나왔다'고 말씀 안 드려도 될 정도"라고 자랑했다.

신 후보의 최대 약점은 남편 박 의원이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알선수재 혐의로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것. 박 의원이 직접 출마하지 않은 것을 놓고 '비리 심판론'을 비켜가기 위한 제스처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신 후보는 "당내 경쟁세력이 만든 음모"라고 항변했다.

"당에서 기본적인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진정인의 말만 듣고 소속 의원을 성급하게 검찰에 고발한 사건이었다. 수사 이틀이 지난 다음에 공천 헌금 줬다고 거짓 주장을 한 사람이 구속돼서 징역 1년을 살았는데, 검찰이나 법원은 정당 고발 사건을 무혐의 처리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엉뚱하게도 벌금형을 물렸다. 법을 알고 상식 있는 분이라면 이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사건인지 다 안다."

4.9총선에서 중구에 출마하는 자유선진당 신은경 전 KBS 앵커가 21일 오전 중구 약수동을 찾아 지역주민들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4.9총선에서 중구에 출마하는 자유선진당 신은경 전 KBS 앵커가 21일 오전 중구 약수동을 찾아 지역주민들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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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후보가 당세를 업고 1위로 치고나간 상황에서 나 후보를 적극 견제하는 데도 신 후보는 주저함이 없었다.

자유선진당 대변인을 겸하게 된 신 후보는 이날 라디오 방송에서는 "써주는 것 가지고 예쁜 얼굴로 앵무새처럼 말하는 대변인은 되고 싶지 않다"며 대변인 출신 나 후보를 겨냥했고, 나 후보의 학창시절 중구 인연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나 후보가 계성초등학교 다녔다는데, 그 학교는 나 후보가 어린 시절에만 해도 이 지역 사람들은 다닐 수 없는 '귀족학교'였다. 좋은 동네에 살면서 좋은 학교 다니려고 중구로 등하교한 것뿐이다. 남편이 국회의원 된 후 중구가 얼마나 많이 발전했는데 30년 만에 다시 돌아와서 본 중구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인 많아서 가슴 아프다니? 기가 막히는 소리다."

그러나 나 대변인은 신 후보 측의 공세에 대해 "그 당시 강남에 살지도 않았고, 중구보다 (생활 환경이) 안 좋은 동네에 살았다"며 "선거는 자기 실력으로 깨끗하게 싸워야지, 네거티브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사실상 선대본부장 역할을 하게 된 박성범 의원은 "공천 받으면 서울시 최다득표 당선도 자신 있다고 했는데, 한나라당은 '당 대표가 아끼는 여인'을 이곳으로 내보냈다"고 비꼬았다. 박 의원은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나경원 대 신은경의 인물 대결로 갈 수밖에 없다. 전국적인 관심을 받는 게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 이철진씨는 "박 의원이 지역에서 일을 많이 했고, 신은경씨도 항상 같이 움직였기 때문에 낯설지가 않다. 일을 했던 분이 계속 하는 게 맞지 않냐"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 뒤늦게 뛰어든 정범구, 정대철 조직 무리 없이 인수

4.9총선에서 중구에 출마하는 통합민주당 정범구 전 의원이 21일 오전 중구 신당동을 찾아 환경미화원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악수를 하고 있다.
 4.9총선에서 중구에 출마하는 통합민주당 정범구 전 의원이 21일 오전 중구 신당동을 찾아 환경미화원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악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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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가 '여인천하'로 흘러가는 상황에서 민주당은 정범구 전 의원을 '필승 카드'로 내놓았다.

후보로 확정된 첫날 여론조사에서 17.1% 지지율이 나왔지만, 이 지역에 처음 뿌리를 내리는 사람으로서는 나쁘지 않다는 게 정범구 캠프의 내부 분석이다.

호남과 충청 출신 인사가 중구 유권자의 2/3 가량을 점유하는 상황에서 정 후보가 충청(충북 음성) 출신이라는 것도 득표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정 후보가 중구에 출사표를 던지기 전에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정대철 고문과의 관계 설정. 정 고문의 아들 호준씨가 2004년에 이어 재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정 후보가 전략공천된 것에 대해 정 고문이 크게 반발했다는 후문.

정 후보는 20일 정 고문을 만난 데 이어 21일 오전 호준씨의 선거사무소를 방문해 당 조직을 무리 없이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정 후보가 "아침에 지역구를 둘러보니 전통적 지지자들 사이에서 '정범구가 나오면 정호준은 어떻게 되는 거냐'는 의견들이 많더라. 당이 어려운 만큼 대승적으로 도와달라"고 요청하자 호준씨도 "정 후보가 중구에 소프트랜딩(연착륙)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돕겠다. 최대한 사람을 많이 만나도록 하라"고 화답했다.

4.9총선에서 중구에 출마하는 통합민주당 정범구 전 의원이 21일 오전 중구 신당동을 찾아 지역 주민들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4.9총선에서 중구에 출마하는 통합민주당 정범구 전 의원이 21일 오전 중구 신당동을 찾아 지역 주민들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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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지역 당직자는 "한나라당 지지세력이 이렇게 둘로 나뉜 곳이 서울에 없다. 우리가 반드시 이길 수밖에 없는 구도"라고 말했는데, '3자 필승론'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17대 총선에서 박성범 후보가 45.9%를 얻어 당선됐는데, 통합민주당에서는 열린우리당(30.0%)과 구 민주당(17.9%)의 표 분산을 최대 패인으로 꼽고 있다. 전통적인 당 조직이 분열되지 않았다면 한나라당이 당선될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민주당 조직이 통합되고 한나라당 조직이 분열됐기 때문에 4년 전 패배의 설욕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나경원·신은경 양 후보 측 관계자들도 "중구의 30%는 반(反)한나라당 표가 고정적으로 나오는 지역", "신은경이든 나경원이든 한 쪽이 20% 이상 득표하면 정범구가 어부지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서도 후보단일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각에서는 "정 후보가 창조한국당에 몸 담았다가 민주당 후보로 나선 것이 '철새' 행각 아니냐"고 비판하는 의견도 있지만, 민주당 관계자는 "창조한국당 전력이 유권자들에게 큰 흠으로 비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 후보는 "8년 만에 치르는 선거지만, 중구에서 고등학교(성동고) 3년 다닌 인연이 있다"며 "한나라당의 권력독점을 막아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며 필승을 다짐했다.


태그:#격전지, #나경원, #신은경, #정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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