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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음색의 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엄밀히 말해, '레-파-라-레-파-라-레'(마지막 레 음은 한 옥타브 올라간 형태) 음이 빠르게 반복되고, 그 음도 적지 않게 컸던 벨 소리. 하지만 분명, 내가 하룻밤을 보낸 이 방에는, 벨이 없었다. 그럼 내가 환청을 들은 것일까?

한편, 방은 너무나도 후텁지근하여 일어나는 순간(평상시 일어날 때 추워하며 일어났던 것과 달리) 약간의 땀이 날 정도였다. 밤에 잘 때 에어컨을 켜놓고 잠을 잤는데, 무슨 일인지 에어컨은 꺼져 있었다. 과연 이게 무슨 일일까?

힘이 쭉 빠져 잠시 멍하게 있던 나는 벨 소리의 정체를 곧 파악한다. JR의 열차도착 안내음이었다. 내가 묵은 숙소는 지상 선로로 운영되는 JR센 신이마미야역의 바로 뒤편이었고, 난카이센 신이마미야역과도 붙어 있었다. 열차 도착 안내음에 잠에서 깬 것이었다.

에어컨의 경우 숙소의 냉난방 시설 가동과 관련돼 있었다. 중앙관리방식으로 특정 시간대에만 가동되며, 각 방에서의 조절은 중앙에서 냉·난방시설을 가동했을 때 부수적으로 이를 수용할지 말지 여부 정도만 조절 가능했던 것이다.

토요일 아침의 평온한 지하철

여행은 항상 '낯선 것에 익숙해지기'의 연속이 아닌가 싶다. 특히 사전 지식이 많이 부족하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해외의 경우, 그 '낯선 것'은 주위에 존재하는 다수의 사물·사람·현상 등에도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본다.

사소한 일이지만, 첫 밤을 보내고 일어날 때부터, '낯선 환경에 따른 물음표'는 시작됐다. 오늘은 과연 어떤 물음표가 펼쳐질까? 오늘의 일정은 다카라츠카, 고베, 우메다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많이 기대되고 설렜다.

우리의 여행은 9일(금)부터 13일(수)까지 이뤄졌다. 이튿날인 오늘은 '토요일'인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주5일 근무제가 일찍 정착된 일본답게, 토요일 아침의 오사카는 매우 조용했다. 이는 거리 곳곳도 지하철 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보다 주5일 근무제가 일찍 정착된 일본답게, 토요일 아침의 오사카는 매우 조용했다. 이는, 거리 곳곳도 지하철 내도, 마찬가지였다.
▲ 토요일 아침의 오사카 전철 우리나라보다 주5일 근무제가 일찍 정착된 일본답게, 토요일 아침의 오사카는 매우 조용했다. 이는, 거리 곳곳도 지하철 내도, 마찬가지였다.
ⓒ 이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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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난바 일대의 온갖 철도(주 : 난바에는 JR, 난카이, 킨테츠, 시영지하철 등이 다니며 각각 역사(驛舍)가 다름) 중 중심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난카이난바역조차 사람이 꽤 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카라츠카를 갈 생각인 우리가 우메다까지 곧장 가는 시영지하철 대신 난카이센을 탄 것은 아침을 '규동'으로 해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전국적인 체인 규동전문점인 '요시노바'가 난카이센을 내리면 바로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아끼기 위한 의도로, 체인 규동전문점 정도는 '아는 곳을 가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번 경우는 맛 혹은 특색 등과 상관없이 사전에 알고 있던 역 인근 규동집 중, 우리의 동선에 있는 곳이기에 방문한 것이다.)

전형적인 서민음식 '규동'

일본에서, 한국의 '덮밥'에 해당하는 규동. 현재 일본 외에도 북경, 상해, 홍콩, 시드니, 뉴욕, LA 등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요시노야(吉野家)와 마츠야(松屋)가 일본 전국적으로 널리 퍼진 1만여 개의 체인 규동전문점을 토대로 경쟁 중이다. 두 체인점 외에도 스키야 등 다양한 규동전문점이 널리 퍼져있으며, 규동전문점 수는 한국의 '김밥천국', '김밥나라' 만큼이나 많아서 집계 자체가 힘들다.

2007년 8월 현재의 가격표로서, 일본이라는 것을 감안할 경우,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 눈에 띈다.
▲ 요시노야 규동 가격표 2007년 8월 현재의 가격표로서, 일본이라는 것을 감안할 경우,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 눈에 띈다.
ⓒ 이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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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알아보니, 요시노야의 경우 몇 년 전에 한국에도 '강남역점'과 '종로2가점'으로 진출하여 두 군데에서 5천원 정도의 가격으로 규동을 판매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음식가격이 5천원이면 점심에 '괜찮은 일품요리'를 먹을 수 있기에 이 같은 현실에서 손님이 매우 적어 철수한 전력이 있다고 한다. 참고로 현재 중국에는 북경에 40여 개 요시노야 체인점이 있으며, 전체적으로 60여 개 요시노야 체인점이 있다.)

이러한 규동전문점의 경우 최소 330엔에서 최대 630엔 정도(부가메뉴 제외, 금일기준 한화 3300원~6400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과 365일 24시간 언제나 여는 운영시간으로 인해 주로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귀가하는 학생, 새벽에 일찍 집을 나서는 샐러리맨, 밤새 일하고 새벽녘에 아침식사를 하는 노동자, 아침 먹기 힘든 관광객 등이 주요 손님이다.

실제 토요일 아침에 규동 아침식사를 위해 난카이 난바역 인근 요시노바에 갔을 때에는 한눈에 봐도 야간에 고되게 일하다 일을 겨우 마치고 뒤늦게 식사하는 듯한 분이 규동과 미소시루(된장국, 주 : 마츠야의 경우 미소시루가 무료로 나오나 요시노야는 미소시루를 돈을 주고 사 먹는 형태이다. 당연히 요시노야가 약간 더 저렴하나 큰 차이는 없다)를 먹고 있었다. 옆에는 맥주로 추정되는 술 한 병도 보였다.

토요일 아침에 촬영한 사진이다. 오른쪽 사진의 경우, 옷을 벗어재낀 채 런닝셔츠만 입은 한 일본인이, 규동과 미소시루 그리고 맥주로 추정되는 술로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 요시노야 외부 및 규동을 먹는 일본인 토요일 아침에 촬영한 사진이다. 오른쪽 사진의 경우, 옷을 벗어재낀 채 런닝셔츠만 입은 한 일본인이, 규동과 미소시루 그리고 맥주로 추정되는 술로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 이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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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 마지막 날인 금요일과 휴일인 토요일 사이의 야간에 일한 후 허름한 복장으로 규동집에 찾아와 뒤늦은 아침식사를 할 정도라면 힘들게 사는 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내가 갔던 요시노바는 난카이난바역에서도 후면부에 위치한 작고 허름한 곳이었다. 내가 잠시 착각했을 수도 있지만, '부자 나라인 일본에도 서민은 있는 것이다' 정도의 생각을 하며 식사를 했다.

소박한 규동(牛丼) 한 그릇

유럽 여행 시에는 바게트빵으로 버티고 일본 여행 시에는 삼각김밥으로 버티며 저렴한 여행을 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두 끼 먹는 상황에서 아침을 먹는 방법'으로는, 큰 무리가 없다고 본다. 실제 나 또한 해외를 다니며 몇 번은 그러한 방식으로 식사를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점심 혹은 저녁 식사이며 매일 반복된다면 '무리가 따르는 선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비싼 비용을 들여 어렵게 온 여행인만큼 그 나라의 특색있는 음식을 접해보며, 그 나라의 문화와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상을 더 가까이 느껴보는 것이 비싼 돈 주고 온 여행에서 더욱 다양한 분야의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여행객의 입장에서의 규동'은 '매일 먹을 음식'은 결코 못 된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이야기에 있어 '맛이 없다'와 같은 주관적인 문제는 부차적 요인이다. 다양한 음식이 있는 상황에서 '싼 음식만 찾고자' 먹는 규동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인 '미각 충족'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행 중의 체력 소모에 대응하는 것 또한 어렵고.

그러나 한 끼 정도는 규동을 먹어보는 경험을 가질 것을 추천한다. 비록 '규동'이 한국의 '덮밥'과 큰 차이는 없다 할지라도, 일본인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규동을 먹는지, 여행객으로서 직접 먹으며 지켜보는 것도 여행의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왼쪽) 내가 주문한 가장 기본적인 규동, 보통 크기, 330엔 / (오른쪽) 동옥이가 주문한 규동정식, 보통 크기, 480엔
▲ 요시노야 규동 (왼쪽) 내가 주문한 가장 기본적인 규동, 보통 크기, 330엔 / (오른쪽) 동옥이가 주문한 규동정식, 보통 크기, 48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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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문한 규동은 밥 위에 소스와 적당량의 쇠고기만 덩그러니 얹어진 기본 사이즈의 메뉴 중 하나였다. 모든 규동은 미니(소), 나미(보통), 오오모리(곱빼기), 토쿠모리(곱빼기보다 큰 양을 의미)로 구분하여 주문이 가능한데, 아침 시간이라 크게 배고프지는 않았던 데다 규동 식사에 많은 돈을 쓰기 싫었다. 점심을 좀 더 많이 먹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일전에 몇 차례 규동을 먹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 주문한 규동에 대해 기대가 컸다. 이전 단락에서 잠깐 언급한 '(고된 일을 마치고 온 것으로 추정되는 분으로서) 너무 맛있게 규동을 먹는 노동자'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 더더욱 그런 생각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결국 주문한 규동이 왔다. 체인 규동전문점의 규동답게 규동의 맛은 예상했던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일본 규동을 처음 먹는 친구들이 '먹을 만하다'는 말을 하고, 비록 쇠고기를 잘 먹을지라도 편식 성향이 없지 않은 나 또한 거부감없이 먹을 정도였으니, 한국인 입맛에 크게 어긋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일본에 넘어와 첫 밥이라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태그:#일본, #오사카, #난카이, #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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