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사진보기
▲ '공직자윤리법 위반'에 '국회 위증죄'까지?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20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는 한국인 중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다음으로 국제외교 무대에서 저명한 인물이다. 두 사람은 특히 유엔에서 함께 활동했다. 한승수 후보자가 제56차 유엔총회 의장 시절에 반기문 총장은 의장 비서실장으로 근무했다.

1960년대 후반 영국 요크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케임브리지대에서 강의한 이후 70년대부터 쌓은 그의 국제무대 경력은 그의 국제적인 입지를 보여준다.

그는 베네수엘라 정부 초청 재정자문관(70~71년)을 시작으로 해서 세계은행 경제자문(71~86년), UNESCAP 경제자문(71~85년), 요르단국 재정고문관(74~76년), 대한민국 국회 UR협상대표단 단장(90~92년), 주미 한국대사(93~94년), 한·영미래포럼 회장(97년~), 한․영협회 회장(98~2004), 제56차 유엔총회 의장(2001~2002), 평창 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위원장(2005~), 유엔 기후변화협상 특사(2007~) 등으로 활동했다.

한승수 유엔총회 의장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이명박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다'는 그가 이번에 자원외교의 적임자로 꼽힌 것도 요르단국 재정고문관을 하면서 쌓은 '중동 인맥' 등이 고려된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유엔총회 의장으로 국제외교 무대에서 쌓은 인맥을 중시한 것으로 보인다.

2001년 김대중 정부 당시 인사에 관여한 한 고위 인사는 김 대통령과 별다른 인연도 없고 민국당 당적을 가진 그를 외교통상부장관으로 임명한 배경에는 ▲자민련·민국당과의 '3당 정책연대' ▲대미외교 강화 ▲소외지역(강원) 배려 등이 고려되었다고 밝혔다.

그의 발탁 배경이 무엇이었건, 김대중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01. 3~02. 2)에 발탁된 덕분에 그해에 제56차 유엔총회 의장(01. 9~02. 9)을 지냈다(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반영된 것이지만 반기문 장관도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부장관에 기용된 이후 유엔 사무총장에 피선되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유엔총회 의장에 취임하기로 한 날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불과 4마일 떨어진 세계무역센터 빌딩을 대상으로 한 전대미문의 9·11 테러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그는 그 다음 날 의장에 취임해 그해 12월까지 유엔본부에 머물면서 유엔 차원의 범국가 간 테러예방책을 수립하는 데 전념했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유엔총회 역사상 의장이 없던 날이 딱 하루 있는데 그게 바로 9월 11일부터 그 다음날 오후 3시까지죠. 이건 유엔 역사에는 기록될만한 사건이었죠. 하지만 제가 취임한 후로도 계속 유엔본부가 피격 대상이라고 해서 활동을 제대로 못했어요. 유엔본부 앞에는 차량을 못 다니게 해서 실제로 차를 타고 오갈 수 있는 사람은 저와 사무총장밖에 없었어요.

그후로 12월까지 제가 유엔의 위기관리를 하지 않으면 안됐어요. 계획된 회의들을 다 연기할 수밖에 없어서 아주 힘들기도 했지만, 어려운 때에 한국 외교관들이 맡아서 위기관리를 잘 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분양권 '미등기 전매' 건에 "유엔총회 의장 할 때여서 (바빠서) 누락했다"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의 외교관이 어려운 시기에 UN총회 의장을 맡아서 위기관리를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을지 모르지만, 국내에서는 장관과 UN총회 의장직의 겸임으로 외교통상부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비판과 함께 둘 중 하나를 사임하라는 요구가 제기되었다.

특히 당시 한국은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인해 어떤 돌발사태가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이 때문에 외교부장관이 UN총회 의장직 수행을 위해 한 달 이상 자리를 비우는 것에 대한 비판도 컸다.

바로 이런 기억 때문인지, 한 후보자는 문제가 된 서울 서초구 서초동 현대슈퍼빌아파트(216㎡) 분양권을 미등기 전매해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한 사실이 인사청문과정에 드러나게 되자 엉겁결에 "유엔총회 의장을 할 때여서 (바빠서) 누락했다"고 둘러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거짓 해명이었다.

큰사진보기
▲ '미등기 전매' 빠진 재산신고목록 한승수 국무총리후보자의 공직후보자 재산신고사항 공개목록에는 그의 배우자가 '미등기 전매'한 문제의 서초동 현대슈퍼빌아파트 분양권에 대한 매매 기록이 없어 부동산 투기를 은닉하기 위한 고의 누락 의혹을 받는다.
ⓒ 김당	관련사진보기

한 후보자의 이런 해명이 '그럴 듯하게' 들리려면, 상황이 발생한 순서가 이렇게 되었어야 한다.

① 국회의원 한승수는 외교통상부장관 재임 중 문제의 슈퍼빌아파트 분양권을 구입했다 ② 그런데 그후 유엔총회 의장으로 취임한 데다 전대미문의 9·11테러까지 터져 뉴욕에 체류하느라 경황이 없었다
③ 그래서 그는 공직자로서 재산변동신고를 못했다.

실제로는 9·11테러가 터진 '그 바쁜 와중에도' 아파트 분양권을 산 것

그런데 현실에서 벌어진 실제 상황은 그 반대였다. 아파트 분양권을 산 뒤에 9·11테러가 터진 것이 아니라, 9·11테러가 터진 '그 바쁜 와중에도' 아파트 분양권을 산 것이다. 실제로 벌어진 일의 순서는 이랬다.

① 국회의원 한승수는 외교부장관 재임중인 2001년 9월 11일 유엔총회 의장으로 취임하기로 돼 있었다
② 그런데 당일 전대미문의 9·11테러가 터져 그해 12월까지 뉴욕에 체류하느라 경황이 없었다
③ 그런데도 유엔총회 의장의 부인인 홍소자씨는 그렇게 경황이 없는 가운데서도 10월에 서울에서 문제의 슈퍼빌아파트 분양권을 6억650만원에 구입했다
④ 홍씨는 2003년 6월 그 분양권을 7억9150만원에 '미등기 전매'(시세차익은 1억8천만원)했다.

사실이 이런 데도 한승수 후보자는 그 분양권을 살 때는 물론 팔 때도 재산변동내역을 신고하지 않아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했다. 또한 그는 이번에 국무총리 후보자가 되어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자료(재산목록)에도 '미등기 전매' 사실을 숨겼으나, 지난 21일 청문회에서 과세 근거를 묻는 서갑원 의원의 추궁에 엉겁결에 튀어나온 것이다.

서갑원 : 후보자님의 배우자께서 본 위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배우자께서 2003년 3월에 4600만원의 양도소득세를 납부하셨습니다. 어떤 자산에 대해서 양도소득세가 부과되었고 또 납부했는지 자료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혹시 알고 계십니까?
한승수 : 체크를 해 봐야겠는데요.
서갑원 : 그러시면……
한승수 : 예, 2003년이…… 죄송합니다. 서초동 현대아파트 수퍼빌, 그것을 3년에 매도한 사실이 있습니다. 2001년에 구입을 했다가….
서갑원 : 서초동 수퍼빌이요?
한승수 : 예, 서초동 현대수퍼빌.
서갑원 : 서초동 현대수퍼빌은 2001년도에 소유를 하셨으면 재산신고서류에 신고를 하셔야 되는데 재산신고서류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그런….
한승수 : 이게 어떻게….

유엔총회 의장 시절 구입, 1년8개월만에 1억8천500만원 시세차익

큰사진보기
▲  한승수 총리후보가 강남구 논현동 집을 개·보수하기 위해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6개월간 전세로 살았다지만 서초동 현대슈퍼빌 입주를 불과 두 달 앞둔 2003년 10월 분양권을 급히 처분하고 반포동 장원빌라트에 새 집을 사 분양권 구입과 처분에 대한 미등기 전매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오후에는 다시 "부동산 투기 사실을 감추기 위해 미등기 전매 사실을 일부러 누락한 것 아니냐"는 서 의원의 추궁이 계속되었다.

서갑원 : 얼마에 구입해서 얼마에 팔았는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한승수 : 제가 그때 사실은 유엔총회 의장을 할 때고 해서 이게 누락이 된 것은 순전히 그런 이유 때문에 누락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마는, 차이가 하여튼 1억 3000만 원인가….
서갑원 : 1억7000 정도 납니다.
한승수 : 아닙니다. 1억7000 정도의….
서갑원 : 저희가 세무사한테 양도소득세를 가지고 역추적을 했더니 1억7000 정도 차이가 났다고 그럽니다.
한승수 : 예, 1억7000 정도의 차익이 있었습니다.

한 후보자가 서 의원에게 추가로 제출한 과세 자료에 따르면, 한 후보자의 배우자가 신고한 시세차익은 정확히 1억8500만원이다. 부인 홍소자씨는 남편이 유엔총회 의장을 맡은 지 한 달만인 2001년 10월에 문제의 슈퍼빌아파트 분양권을 6억650만원에 구입해 2003년 6월에 7억9150만원에 팔아 1년8개월만에 1억8500만원을 벌었다. 가만히 앉아서 1년에 1억원을 번 셈이다.

'공직자윤리법 위반' 엉겁결 실토에 '국회 위증죄'까지 추가 범죄

서 의원은 다시 부인이 분양권을 사는 데 들어간 6억원의 출처를 물었다. 한 후보자의 93년 최초 재산등록 이후 부인 홍소자씨의 예금변동 내역에는 그런 거금의 입출금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후보자는 다시 '유엔총회 의장' 핑계를 대면서 '세금은 냈다'고 동문서답을 했다.

서갑원 : 그러면 최초에 문제 제기가 됐던 게 신고서류에 슈퍼빌의 양도소득세가 기재돼 있는데 이 물권은 없기 때문에, 무엇을 팔아서 이 양도소득세를 납부했습니까? 그게 없었거든. 무엇을 판, 그 물권이 없었거든요.
한승수 : 글쎄, 그래서 그것이 당시에 제가 유엔총회 의장을 할 때고 해서 세금은 냈으면서도 당시 국회에 제출한 재산공개목록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 불찰이라고 생각이 되고….

결국, 국무총리 후보자인 그는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공직자윤리법 위반' 사실을 엉겁결에 실토한 데 이어, 이를 둘러대다 보니 '국회에서의 위증죄'라는 추가 범죄까지 저지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