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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에는 학들이 둥지를 틀고 많이 살았다고 해요. 그래서 이름도 '학소대'라고 한답니다.
▲ 군위 학소대 지난날에는 학들이 둥지를 틀고 많이 살았다고 해요. 그래서 이름도 '학소대'라고 한답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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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수삼거리를 지나 압곡사를 찾아가던 길목은 매우 아름다웠어요. 왼쪽으로 군위군과 의성군을 거쳐 상주시까지 따라간다는 낙동강 물줄기 위천이 흐르고, 그 곁으로 깎아지른 바위절벽이 매우 멋스러워요. 아직 햇볕은 뜨겁지만 푸른빛 감도는 물빛과 드문드문 단풍이 드는 나무가 어우러져 가을 냄새가 묻어나고 있답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따라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가는 우리도 또 다른 풍경이 아닐까요? 얼마쯤 가다 보니, 병풍처럼 넓게 깎아지른 절벽이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학소대’랍니다. 지난날 이 바위에 학들이 둥지를 틀고 많이 살았다고 해요. 우리도 저 멀리 소나무 위에 멋스런 모습으로 앉아 있는 하얀 학 한 마리를 봤는데, 아마 지금은 옛날처럼 그리 많지는 않은 듯해요.

이 멋진 모습을 구경하던 바로 그 곁에 있는 ‘삼국유사 유적지 인각사’라는 팻말을 따라 들어갔어요. 인각사는 일연스님이 다섯 해(1284~1289) 동안 계시면서 <삼국유사>를 쓰셨고, 여기에서 돌아가셨다고 해요. 또 지난해(2006)가 일연스님이 나신 지 꼭 800해가 되는 때라고 합니다.

크고 작은 절집을 두루 다녀 봤지만 대부분 높은 산골짜기 안에 깊숙이 숨어 있는(?) 절이 많았는데 찻길 바로 곁에 있는 곳이 처음이고, 또 이곳이 참으로 훌륭한 얘깃거리가 있는 절집이라는 게 조금 놀랍기도 했어요.

인각사 왼쪽으로 군위군과 의성군을 거쳐 상주시까지 따라간다는 낙동강 물줄기 위천이 흐르고, 그 곁으로 깎아지른 바위절벽이 매우 멋스러워요.
▲ 인각사와 학소대 인각사 왼쪽으로 군위군과 의성군을 거쳐 상주시까지 따라간다는 낙동강 물줄기 위천이 흐르고, 그 곁으로 깎아지른 바위절벽이 매우 멋스러워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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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참에 <삼국유사> 제대로 한 번 읽어보자."

‘아하! 여기가 바로 <삼국유사>를 쓰신 일연스님이 계셨던 곳이구나!’

새삼 놀랍고 설레는 마음으로 절 안마당에 들어서니, 왠지 늘 산 속에서만 보던 고즈넉한 절집 풍경과는 사뭇 달랐어요. 그 대신에 ‘삼국유사 특별전’이란 제목을 내걸고 전시회를 하는 게 더욱 눈길을 끌었어요. 가장 먼저 들어가 천천히 돌아봤어요.

일연선사가 살아온 이야기를 따로 적어놓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하였고, 단군신화부터 혁거세왕, 탈해왕, 동해 용의 일곱 아들 가운데 하나인 처용이야기…. 우리가 학교 다닐 때에 교과서로 배우기도 했던 이야기를 하나하나 따로 갈무리하여 전시를 하고 있었어요. 또 <삼국유사> 복사본을 엮은 것과 그동안 여러 차례 새롭게 엮어낸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기도 했지요.

'삼국유사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곳이에요. 그 앞의 큰 빗돌은 고은 시인이 일연스님을 노래한 싯돌(일연찬가)이랍니다.
 '삼국유사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곳이에요. 그 앞의 큰 빗돌은 고은 시인이 일연스님을 노래한 싯돌(일연찬가)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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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특별전’에서는 일연스님이 쓰신 <삼국유사>를 소개하고 우리가 어렸을 때 교과서에서 배운 이야기들도 잘 갈무리해놓았어요.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 자세하게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더군요. 한 번쯤 다시 이 책을 읽어봐도 좋겠지요?
 ‘삼국유사 특별전’에서는 일연스님이 쓰신 <삼국유사>를 소개하고 우리가 어렸을 때 교과서에서 배운 이야기들도 잘 갈무리해놓았어요.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 자세하게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더군요. 한 번쯤 다시 이 책을 읽어봐도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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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여기 있는 얘기들은 우리가 한번쯤은 다 들어본 거네?”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틀림없이 아는 이야기인데, 자세하게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네. 허 참!”
“그렇지? 나도 그런 생각했는데…. 난 어렸을 때 아버지가 갖고 있던 <삼국유사>가 있었는데, 그땐 너무 어려워서 몇 장 넘기다가 그만뒀거든.”
“우리 이참에 <삼국유사> 한 권 사서 제대로 한 번 읽어보자. 하다못해 <하룻밤에 읽는 ◯◯◯>이런 거라도 말이야.”
“그러자고요. 진짜 보급판이라도 한 권 사서 읽어봅시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면 바로 <삼국유사> 한 권을 사기로 했답니다.

대웅전 곁에 따로 마련한 듯 보이는 터 위에 보각국사탑과 문정희 시인이 쓴 시에 나오는 돌부처가 있어요.
▲ 보각국사탑(보물428호) 대웅전 곁에 따로 마련한 듯 보이는 터 위에 보각국사탑과 문정희 시인이 쓴 시에 나오는 돌부처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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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스님이 하신 일을 잘 갈무리해놓은 ‘삼국유사 특별전’을 구경하고 이젠 절집을 찬찬히 둘러봅니다. 때마침 확성기에서 스님이 염불을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조용한 절집에서 목탁소리와 함께 듣는 스님 목소리가 어찌 그리 정겹게 들리는지….

‘팔월 한가위 중추가절에 서울시 양천구 … 김 아무개… 를….’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충 이런 말을 하는 듯했어요. 아마 한가위를 맞아 이 절에 이름을 걸어놓은 이들이 편안하기를 바라는 소원인가 봐요.

대웅전 곁에 따로 마련한 듯 보이는 터 위에 보각국사탑(보물428호)과 돌부처가 있어요. 가까이 가서 보니, 꽤 오랜 세월이 흐른 탓도 있겠지만 이런저런 어려움을 많이 겪은 듯 몹시 모나고 뭉그러져 있어 매우 안타까웠어요.

642년(신라 선덕왕 11)에 처음 의상대사(또는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말도 있으나 어느 것도 정확한 기록은 없다고 함)가 세웠다는 이 인각사(사적374호)가 신라·고려·조선시대,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을 견디었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을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어요.

뭉그러진 코, 어찌 오랜 세월만 탓하랴!

조선시대 초기에 이름난 문장가였던 유호인(1445~1494)이 인각사에 와서 지은 시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기도 했는데, 그 가운데 이런 글이 있어요.

지금은 병 속의 새
찾을 곳 없고
낙조 속에 비바람에 씻긴
비석만 남아있네


이 글을 미루어 볼 때, 고려 때 왕명을 받들어 일연스님이 머물 절로 지어졌다는 이 인각사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는지 알 수 있다고 해요.

이밖에 내 눈길을 끈 게 하나 있는데, 다름이 아니라 요사채 벽에다가 붙여놓은 신문조각이었어요. 몇 해 앞서 인각사에 찾아왔던 문정희 시인이 쓴 시였는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돌부처를 보면서 느낀 걸 썼어요. 나중에 이 시 한 편이 불교문학상과 정지용문학상을 받기도 했대요. 잠깐 소개해볼게요.

돌아가는 길 (시 / 문정희)
뭉그러진 코, 어찌 세월만 탓하랴! 안쓰럽긴 해도 깊고 거룩한 부처의 감옥을 벗어나 있는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돌부처로 바라보는 시인의 눈빛은 더욱 따뜻하다.
▲ 인각사 석조여래좌상 뭉그러진 코, 어찌 세월만 탓하랴! 안쓰럽긴 해도 깊고 거룩한 부처의 감옥을 벗어나 있는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돌부처로 바라보는 시인의 눈빛은 더욱 따뜻하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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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서지 마라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어느 인연의 시간이
눈과 코를 새긴 후
여기는 천 년 인각사 뜨락
부처의 감옥은 깊고 성스러웠다
다시 한 송이 돌로 돌아가는
자연 앞에
시간은 아무
데도 없다
부질없이 두 손 모으지 마라
완성이라는 말도
다만 저 멀리 비켜서거라

- 문정희 시집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민음사)


내가 처음 이 돌부처를 보며 느꼈던 안쓰러움이 이 시 한 편에 그대로 담겨 있어요. 더 나아가 깊고 거룩한 부처의 감옥을 벗어나 있는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돌부처를 마치 아름다운 꽃인 듯, 한 송이 돌로 나타낸 시를 읽으면서 가슴이 뭉클했어요.

깨어진 보각국사비와 미륵당석불좌상

일연스님이 나신지 800해가 되던 지난 2006년에 새롭게 '보각국사비'를 세웠답니다.
▲ 보각국사비 일연스님이 나신지 800해가 되던 지난 2006년에 새롭게 '보각국사비'를 세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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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스님이 나신 지 800해가 되던 2006년에 ‘보각국사 일연선사비’를 새롭게 만들어 세웠답니다. 본디 비에 새겨 있던 글을 그대로 옮겨서 다시 세웠는데, 앞서 있던 ‘보각국사비’는 깨지고 뭉그러진 채로 인각사 뒤뜰에 따로 두었어요. 지난 세월 동안 모진 어려움을 겪은 것도 서러운데 나무 창살에 갇혀 있어 보는 이가 더욱 안타까워요.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오랫동안 지킬 수 없을 테니 창살을 탓할 수야 없겠지요.

보각국사 일연스님(1206~1289)이 죽자 왕명으로 스님의 삶을 기록하여 세운 고려시대 돌비인데 이름난 문장가인 민지가 글을 지었고 왕희지 글씨를 본떠서 만들었다고 해요. 그 때문에 지난날 중국 사신들이 와서 ‘탁본’을 떠가기도 했고 높은 사람들은 비문을 탁본해서 모으는 게 취미였다고 하니 이 빗돌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을까 훤히 알겠어요.

뒷날 임진왜란 때에는 왜군이 불을 질러 빗돌을 녹이고 물을 뿌려서 탁본을 해가기도 했어요. 또 빗돌에서 마음에 드는 글씨를 떼어내어 갈아 마시면 과거에 급제한다고 믿었던 옛 선비들 때문에 더욱 몸살을 앓았다고도 해요. 이래저래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보각국사비’는 많이 부서지고 닳아서 보각국사의 빗돌이었다는 것만 겨우 알아볼 만큼 흔적만 남아 있어서 몹시 안타까웠어요.

일연스님의 삶을 적어놓아 기념하는 빗돌인데 오랜 세월 동안 모진 어려움을 겪으면서 많이 모나고 깨져 있어 몹시 안타깝고 안쓰러웠답니다. 더구나 나무창살에 갇혀 있는 모습이 어찌나….
▲ 보각국사비(보물428호) 일연스님의 삶을 적어놓아 기념하는 빗돌인데 오랜 세월 동안 모진 어려움을 겪으면서 많이 모나고 깨져 있어 몹시 안타깝고 안쓰러웠답니다. 더구나 나무창살에 갇혀 있는 모습이 어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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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과 무릎은 깨어져 잘려나가고 몸통뿐인데다가 이마와 코, 목은 새로 덧입힌 시멘트 자국으로 참으로 보기 흉한 모습을 하고 앉아 있어요. 통일신라시대 불상이라고 하는데….
▲ 미륵당석불좌상 팔과 무릎은 깨어져 잘려나가고 몸통뿐인데다가 이마와 코, 목은 새로 덧입힌 시멘트 자국으로 참으로 보기 흉한 모습을 하고 앉아 있어요. 통일신라시대 불상이라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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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건 ‘보각국사비’ 뿐이 아니었어요. 절 곁에 따로 마련한 미륵당에는 돌부처가 하나 앉아 있는데, 이건 더욱 안쓰러워요.

팔과 무릎은 깨어져 잘려나가고 몸통뿐인데다가 이마와 코, 목은 새로 덧입힌 시멘트 자국으로 참으로 보기 흉한 모습을 하고 앉아 있어요. 통일신라시대 불상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얼마나 모진 일들을 겪었기에 무릎도 없이 목에 깁스(?)까지 하고 앉았을꼬? 하고 생각하니 퍽 안타깝더군요.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쓰시고 여기에서 삶을 마쳤다는 역사 깊은 인각사를 둘러보고 나올 때 마음이 몹시 무거웠어요. 지난날을 되돌아볼 때 이렇게 훌륭하고 매우 아름다운 값어치가 있는 인각사! 오랜 세월을 견디며 그나마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는 걸 고맙게 여겨야 할런지….

조용한 절집에서 목탁소리와 함께 듣는 스님 목소리가 어찌 그리 정겹게 들리는지….
▲ 인각사 대웅전 조용한 절집에서 목탁소리와 함께 듣는 스님 목소리가 어찌 그리 정겹게 들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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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을 한지 꽤 오래 된 듯 보이는 작은 전각에 흰 수염난 산신 할아버지가 굽어보고 있다.
▲ 산령각 단청을 한지 꽤 오래 된 듯 보이는 작은 전각에 흰 수염난 산신 할아버지가 굽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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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에서 나와 요사채로 가시는 할머니 보살님.
▲ 인각사 대웅전에서 나와 요사채로 가시는 할머니 보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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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이 소중한 것들을 잘 가꾸고 지켜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인각사에서는 해마다 ‘삼국유사문화축제’를 펼치고 있는데 음악회·백일장·삼국유사 학습세미나를 열어 일연스님을 기리며 삼국유사를 널리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하니 퍽 다행스러운 일이라 여겨집니다. 부디 내내 잘 가꾸고 잘 지키어낸 소중한 문화를 우리 후손들한테도 잘 물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태그:#인각사, #삼국유사, #일연스님, #보각국사비,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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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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