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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귀질환인 '스터지웨버 증후군'을 앓고 있는 은총이의 모습.
ⓒ 오마이뉴스 김대홍

"가끔씩 밖에 나가면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호통을 쳐요. 애를 어찌 봤냐면서요. 화상을 입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럴 땐 참 서럽기도 하고 화도 나고 그래요."

'스터지웨버 증후군(몸 일부나 전체에 붉은 반점이 생기는 병)'을 앓고 있는 은총(4)이 아버지 박지훈(32)씨는 아들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자 종종 겪는 일상 속 오해 이야기부터 꺼낸다. 쌓인 게 많았는지 한숨을 내쉬다가 잠시 뒤 가볍게 웃는다.

은총이는 태어날 때(2003년 10월 3일 생)부터 남과 달랐다. 득남의 기쁨으로 잔뜩 설레는 아버지에게 의사는 "가까운 병원으로 옮기라"는 말을 꺼냈다.

태어나자마자 "길어야 1년" 진단받은 아기

갓난아기 얼굴은 피범벅된 것 같은 모양이었지만, 아버지는 '피를 덜 닦아내서 그런가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인근 소아과에 갔을 때,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몸 속 혈관이 터진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 뒤 다시 전북 익산의 원광대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어머니 김윤영씨가 아기를 본 것은 출산 후 3일째. 아버지가 아기 얼굴에 대한 사실을 숨겼기 때문이다. 아기를 본 어머니는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렸다.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6개월에서 길어야 1년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다행히 얼굴 외에는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문제는 100일째 터졌다. '아기가 이상하다'는 연락이 집에서 왔다. 은총이의 왼쪽 발과 손에 심한 경련이 일어난 것.

오른쪽 뇌가 이상했다. 보름 동안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병명도 모르는 채 아이가 죽어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행사장까지 예약해 놓고 이미 초대장까지 돌린 상태였지만, 결국 이날 100일 잔치는 열리지 못했다.

박지훈씨는 이 때 무척 답답했단다. 어떤 처방을 해야 할지, 어떤 치료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병원에서 관련 약을 다 먹였는데도 경기는 잡히지 않았다. 심할 땐 한 번 일어난 경기가 2~3시간씩 갔다. 아버지는 아이에 대해 아무런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알리기 시작했다. 관련 사이트를 찾기 시작하고, 직접 카페를 개설했다. 사람들과 정보를 나누다 보면 언젠가 아이 병명을 알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었다. 그렇게 지훈이가 '스터지웨버 증후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확히 말하면 크리펠 트레노우네이 웨버 증후군, 오타모반 증후군이란 희귀질환 두 개를 더 앓고 있다.

은총이는 2005년 서울 상계백병원에서 뇌수술을 받았다. '식물인간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하지 않은 유일한 병원이었다. 한 달 동안 뇌출혈 수술 2회, 절제 수술 1회 등 총 3회의 수술이 실시됐다. 수술비 입원비 포함 약 2천만 원이 들어갔다. 은총이는 그 뒤 녹내장 수술 등 네 차례 수술을 더 받았다.

지난 5년... 신용불량자된 아빠, 아이 옆에 붙어사는 엄마

의료보호, 의료보험... 차이가 뭐지?

어디서는 의료보호라고 하고, 어디서는 의료보험이라고 한다. 차이가 무엇일까?

의료보험은 국민건강보험법(이전 의료보험법)에 따라 집행되는 제도다. 직장과 지역 의료보험으로 구분되며, 월급의 경우 강제 징수된다. 즉 본인 부담금이 있다.

이에 반해 의료보호는 빈민구제가 목적으로 본인 부담금(급여의 경우)이 없다.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로 지정된 자(이전의 생활보호대상자자)들이 진료를 받았을 때 국가가 전액 또는 일부 의료비를 지원한다.

1종과 2종으로 구분하며, 1종은 진료비와 약값 전액을 지원받고 2종은 병원에서 진료할 때 총진료비의 20%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재정이 부족하면 보험료를 인상하는 의료보험 환자와 달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전액 부담하는 게 의료보호의 가장 큰 특징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는 재정 부담을 이유로 의료보호 1종 환자가 외래이용시 본인부담금을 내는 새 의료급여대책을 내놓는 등 의료보호 제도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1년을 넘기지 못한다던 은총이는 이제 다섯 살이 됐다. 하지만 박지훈씨는 현재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서다.

언젠가부터 의료보호 혜택을 받기 시작했지만, 정확히 100%는 아니다. 비급여(환자 부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지훈씨는 대략 30~50% 정도를 자비 부담했다고 기억한다. 현재 치료받고 있는 병원에서도 급여(국가 부담) 치료는 재활 치료·작업 치료 등 두 개뿐이다. 언어·미술 등 나머지 치료는 모두 비급여다.

치료비 외 비용도 적지 않게 들어간다. 지훈씨의 집은 군산. 1주일에 한 번씩 서울에 올라오는 데 드는 경비가 만만찮다.

신용불량자가 된 뒤 박씨는 막일과 운전일 등을 하면서 생활을 하고 있다. 단기직 일만 하고 있는 그가 그나마 치료비를 댈 수 있는 이유는 주위 도움 덕분이다. 현재 한 교회와 희귀질환 환아 후원모임인 '여울돌'의 지원을 받고 있다.

지금 은총이는 성남의 한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1주일에 약 800분 정도 된다. 치료를 받을 땐 어머니가 항상 은총이 곁에 있다. 옆에서 거들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다행히 치료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전엔 아픔을 몰랐지만 지금은 다르다. 꼬집고 있으면 '아프다'고 표현을 한다. 한쪽 손발이 거의 마비된 상태였지만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많이 좋아졌다. 양말을 신을 때 한 쪽 발을 올릴 줄도 안다. 어머니의 말이다.

"기도하자고 하면 전엔 왼손을 못 올렸어요. 그런데 지금은 오른손 위에 왼손을 포개요. 물론 힘들죠. 하지만 이게 얼마나 큰 변화인데요."

은총이를 보며 인사를 했다. 오른손을 들어 흔든다. 은총이식 인사다. 하지만 웅얼거리는 소리가 없다. 말을 하지 못한단다. 게다가 오른쪽 눈은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앞으로 실명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은총이를 잠시 쳐다보고 있었더니, 지훈씨가 "그래도 이만하면 다행이죠. 1년밖에 못 산다고 했잖아요"라며 "자신보다 더한 환자도 많다"고 말했다.

안면장애 치료는 '미용'? 치료법 알고도 손 못 써

▲ 어머니가 "뽀뽀"라고 말하자 은총이가 입을 맞추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대홍
은총이가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지훈씨는 점점 큰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사람들 시선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은총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쑥덕거림이 느껴진다. 그럴 땐 은총이는 유모차 뚜껑을 내린다. 비록 말을 못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얼굴 반점을 없애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다행히 있다. 레이저 치료를 하면 어느 정도 수준까지 반점을 없앨 수 있다. 문제는 비용이다. 한 쪽 눈 주위 반점을 치료하는 데 드는 비용이 대략 200만 원 가량. 레이저 치료를 두 달 간격으로 10여차 례 정도 받아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은총이는 전신에 붉은 반점이 퍼져 있기 때문에 비용 계산을 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의료보호 혜택을 받기가 상당히 힘들다. 안면장애 등급을 받으려면 안면 부위의 60% 이상이 변형됐거나 코의 3분의 2가 없어야 한다. 안면성형의 경우 기능성과 미용으로 나눠지는데, 대부분 미용으로 분류된다.

어렵게 의료보호 혜택 대상이 되더라도 병원에서 거부하기도 한다. 대전에 있던 한 스터지웨버 증후군 환자는 200만원 중 195만원을 돌려받았지만 그 뒤 그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해 결국 서울까지 출장 진료를 받고 있다.

그가 이민을 가지 않는 이유

지훈씨는 대뜸 "이민가는 사람들 마음이 이해가 간다"는 말을 꺼냈다. 이어 "외국 어디서 희귀질환처럼 중증 질환을 무료로 치료해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솔깃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는 이민가는 방법보다는 정부 정책을 바꾸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렇게 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는 지난해 여울돌 박봉진 대표와 함께 1500km 도보를 했다. 희귀난치성 질환을 알리기 위한 캠페인성 행사였다. 올해는 마라톤을 할 계획이다. 모두 희귀질환 특별법 제정을 요청하기 위한 행사들이다.

"제가 운동을 정말 못해요. 박봉진 대표가 마라톤을 제안했는데, 벌써부터 걱정이에요.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지…. 요즘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몸을 만들고 있어요. 꼭 완주해야죠. 이렇게 알리다 보면 조금씩 관심이 커지겠죠?"

우리 아이 한명 후원받는다고 끝나지 않는다
박지훈 씨와 나눈 나머지 이야기들

- 안면장애가 있다면 얼굴을 공개하기를 꺼린다. 그런데 박지훈씨는 은총이의 얼굴을 공개하는 데 상당히 적극적이다.
"숨어있으면 언제까지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스터지웨버 증후군 환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나서지 않으려 한다. 게다가 레이저 치료 받아서 어느 정도 상태가 좋아지면 연락을 뚝 끊는다. 이래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 후원을 요청하는 것보다는 실태를 알리는 데 더욱 적극적이다.
"희귀질환자들은 사실 뚜렷한 약이 없다. 평생 치료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정책을 바꾸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 인식도 중요하다. 사람들 인심을 잃으면 우리가 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후원에 목매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또한 내가 후원받는 것만큼 다른 환자가 혜택 못 받을 수가 있다. 그런 점에서 들어온 후원금 중에서 3분의 2를 다시 사회에 환원한 박지훈군 어머니 사례가 귀감이 된다."

- 지난해 말 희귀질환을 알리기 위해 1500㎞ 도보를 하기도 했는데.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러기 위해선 사람들의 지원이 필요했다. 사람들에게 희귀질환 실태를 알리고, 정책을 바꿀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울돌(희귀난치성 질환자 후원 모임) 박봉진 대표와 희귀질환 특별보호법 마련을 위한 서명 운동을 벌였다. 1만7000명 정도가 참여했다. 올해 한 차례 더 서명을 받을 것이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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