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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녕만의 사진산문집 <대통령이 뭐길래> 표지.
<대통령이 뭐길래>. 월간 <사진예술> 발행인이자 상명대 사진학과 겸임교수로 활동중인 사진작가 김녕만이 펴낸 사진산문집 제목이다. 이 책에는 '일 욕심' 많은 김 교수가 <동아일보> 사진기자로 재직중 6년간이나 청와대 출입기자(94∼99년)를 하면서 렌즈에 잡은 6명의 당시 전·현직 대통령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헌정을 이끈 전직 대통령은 모두 8명이다. 이 책은 이 가운데 이승만(1∼3대)·박정희(5∼9대) 대통령 2명을 제외하고는 김영삼(14대)·김대중(15대) 대통령을 청와대 안에서 취재했고, 윤보선(4대)·최규하(10대)·전두환(11∼12대)·노태우(13대) 대통령을 청와대 밖에서 취재한 보기 드문 기록이다.

더욱이 청와대 사진기자라는 직분은 공식 행사에서 늘 대통령 경호원만큼이나 근접해서 대통령을 밀착 마크하기 때문에 '펜 기자'와는 또다른 관점으로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을 포착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와 같은 펜 기자에게도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준다.

대통령 앞에서 가장 긴장하지 않는 인사는? "김수환 추기경"
반면 가장 긴장하는 인사는? "군인"


산신령도 대통령 앞에서는 꼼짝 못한다? 조순 서울시장 당선자를 접견하는 김영삼 대통령(95년 6월30일).
ⓒ 김녕만
이를테면 대통령은 재임중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청와대 안에서도 만나고 밖에서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대통령 앞에만 서면 머리를 숙이고 움츠려든다. 김 교수는 대통령과의 접견을 앞둔 사람들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청와대에 들어오면 모두들 긴장하게 마련이다. 까다로운 절차를 통과하다보면 들어오면서부터 얼기 시작하는 데다가, 내부에 들어오면 높은 천장과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조용한 분위기가 점점 사람을 주눅들게 만든다. 그렇게 마른침을 삼키며 하릴없이 기다리다가 대통령을 만나면 자연히 위축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사진기자가 보기에 대통령 앞에서 가장 긴장하지 않는 인사는 누구일까. 단연 김수환 추기경이 가장 여유 있는 내방객으로 꼽힌다.

김수환 추기경은 어찌나 여유가 넘치는지 원로와의 만남에 초청되어 김영삼 대통령을 기다리다가 대통령 의자를 가리키며 "내가 저 자리에 앉으면 안 되겠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당황한 비서가 "왜 그러시냐"고 묻자, 추기경의 답변은 단순했다. "내가 사진 찍으면 얼굴 이쪽이 잘 안나와서 말이요." 비서는 결국 자리를 바꿀 수는 없어 기자들이 반대쪽에서 사진 찍는 것으로 해결책을 제시해 '사태'를 마무리지었다.

김 교수는 "'내 얼굴의 이쪽이 사진에 잘나온다'는 추기경의 말에서 어린 아이 같은 순수함을 느꼈다"고 회고한다. 그는 "반면에 대통령 앞에서 가장 긴장한 사람은 군인인 것 같다"면서 그 까닭을 "추기경이 모시는 사람은 하느님이지만 장군의 통수권자는 대통령이니까"라고 해석한다. 하기는 수십 개의 '하나회' 별을 단칼에 자르고선 "깜짝 놀랐제?"라고 천연덕스럽게 웃는 김영삼 대통령의 모습에서 과연 아연실색하지 않은 장성들이 어디 있을까 싶다.

'각하'와 '대통령님' 사이

여유만만 김 추기경 김영삼 대통령과 김수환 추기경의 오찬(94년 11월2일). 김수환 추기경은 보기 드물게 대통령 앞에서도 '여유'가 돋보이는 종교 지도자이다.
ⓒ 김녕만
초대 이승만 대통령 시절부터 으레 지당한 것으로 통용되던 대통령에 대한 '각하'라는 호칭을 쓰지 못하도록 한 것도 청와대 앞길을 개방하고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왕조시대나 볼 수 있던 대통령 앞에서의 조아림과 호칭의 관행은 문민정부 들어서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모두들 대통령 앞에만 가면 머리를 숙이고 몸둘 바를 몰라했다.

김광일 비서실장 때의 일이다. 청와대 출입기자 중에 한 사람이 김 실장에게 "대통령이 말씀을 하시면 '아니 되옵니다'라고 말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김 실장은 웃으며 "솔직히 '아니 되옵니다'라고는 못하고 '그러하오나'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오랜 세월 함께 야당 국회의원을 지내며 정치역정을 함께 해온 동료 정치인이 이럴진대 다른 사람들이 어떨지 이해가 간다.

권위주의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각하라는 호칭을 쓰지 말라는 대통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달리 이를 대신해 부를 말이 없었기 때문인지, 김영삼 대통령의 비서관들은 그냥 "각하"로 불렀고 YS 또한 특별히 제재하지도 않았다. 또 최근 YS가 사는 상도동에 신년 하례를 다녀온 유인태 정무수석에 따르면 여전히 그 동네는 지금도 YS를 "각하"라고 부르고 있다.

각하라는 호칭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김대중 대통령 들어서부터이다. 김대중 정부는 '각하'라는 호칭 대신 '대통령님'이라는 호칭을 대안으로 제시해 그때부터 각하라는 호칭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는 권력자로부터의 '대안 없는 철폐' 지시는 곧 '철폐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음을 시사한다.

공무원들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DJ의 자리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의 '공무원과의 대화'(99년 6월28일). 홀로 앉은 대통령과 공무원들의 자리 사이가 멀기만 하다.
ⓒ 김녕만
대통령이 되기 전과 되고 난 후의 의전과 경호의 차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대통령은 헌법상 국가를 보위하고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영속성과 헌법을 수호하는 책임을 지며, 외국에 대해서는 국가를 대표하는 막중한 자리이므로 이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여전히 대통령이 되기 전처럼 국민들과 가까운 거리에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대통령이 된 뒤에도 '국민과의 대화'나 '공무원과의 대화' 같은 거리감을 좁히는 장치를 마련하곤 한다.

국민의 정부를 표방한 김대중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무원과의 대화' 시간을 마련했다. 그러나 김녕만의 사진에서 보듯, 무대 위에 마련된 대통령의 자리는 이런 취지와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대화'를 하겠다는 자리인데, 대통령과 가장 가까워야 할 공무원의 거리가 이렇게 멀어서는 '국민에게 다가가는 대통령'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가 없었다.

물론 대통령 후보 시절에는 주위에서 말려도 후보 스스로 국민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87년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보통 사람 노태우'를 표방한 노태우 후보는 사진기자들에게 건강을 과시하는 차원에서 헬스센터에서 운동하는 장면은 물론 사우나에서 벌거벗은 모습까지 '노컷'으로 공개하는 파격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사진을 공개할 수는 없었지만.

바로 지척 80년 서울의 봄에 전북 정읍을 방문한 DJ(80년 5월 11일).
ⓒ 김녕만
80년 서울의 봄에 전북 정읍을 방문한 '김대중 선생'의 사진에서처럼 국민과 함께 하는 정치인의 모습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부터 무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대중과 가깝게 호흡하다가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에 고립되어 점차 국민들과 거리가 생기기 시작한다. 김녕만의 대조적인 두 사진은 "대통령과 사진기자의 거리는 결국 대통령과 국민과의 거리다"는 것을 웅변한다.

노 대통령에게 30분 동안 한 마디도 못하게 한 조용기 목사

만델라 남아공화국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사진기자들이 한번 더 포즈를 취해줄 것을 부탁하자 "지구상에서 대통령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사진기자들 뿐"이라고 조크를 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진기자 말고도 대통령을 꼼짝 못하게 하는 사람은 아마 종교 지도자일 것이다.

정치인과 종교인의 공통점은 둘 다 말로 먹고사는 직업인이라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특히 개신교 목사들 앞에서는 '장로 대통령'(YS)도 '말발'이 안서는 경우가 잦았다. 말 잘하기로 호가 난 노무현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다음은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가 들려준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대통령 접견에 관한 에피소드이다.

"우리 노 대통령도 말로는 둘째가라면 서운할 분인데, 그런 노 대통령을 30분 동안 한마디도 못하게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간 분은 조용기 목사가 처음이었다. <국민일보> 창간 기념인터뷰 전에 잠깐 대통령께 인사나 드리겠다고 해서 한두 마디 덕담이나 나누고 가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30분동안 접견하면서 대통령은 딱 두 마디를 했을 뿐이다.

처음에 조 목사가 '기도해도 되겠습니까'라고 했을 때 '예'라고 한 것과, 설교와 기도가 모두 끝났을 때 '아멘'이라고 한 것이 전부였다. 조 목사가 가시고 나니 대통령도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을 당한 듯 눈만 꿈벅꿈벅 하더라."


▲ 지난 6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팔순잔치에 참석해 축사를 하는 강원룡 목사.
ⓒ 오마이뉴스 김당
강원룡(86) 목사는 같은 8순 노인인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여전히 큰소리 치는 사실상 '유일한 원로'이기도 하다. 김대중-이희호 부부에게는 '중매쟁이'라는 각별한 인연이 있기도 하지만, 국민의 정부에서 '통일고문'을 지낸 강 목사는 지난 6일 열린 DJ 팔순잔치에 가서도 "김대중 대통령이 신장병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을 알지만 나는 당뇨병을 35년째 앓아왔다"면서 "김 대통령은 나보다 6년이나 (나이가) 아래다"고 노익장을 과시했다.

강 목사는 이어 "나는 나이가 들어 2000년 이후 모든 공직을 사퇴했지만 평화포럼을 만들어 남북문제 하나만은 관여하고 있다"고 근황을 소개하고, "김 대통령은 너무 조심성이 많다"면서 "남북관계의 문을 연 사람으로서 국내정치는 개입하지 않더라도 90회 생일에는 평화통일이 이뤄지도록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해야 한다"고 질책과 주문을 아끼지 않았다.

도올 김용옥 "노 대통령 잘못 뽑았다는 생각은 말도 안되는 소리"

사진기자와 종교 지도자 다음으로 대통령에게 자기 하고싶은 대로 말을 하는 사람은 교수직에 미련이 없는 철학자 도올 김용옥 중앙대 석좌교수가 아닐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도올은 지난 5일 밤 첫 방영된 MBC TV의 <도올특강-우리는 누구인가> 프로그램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는 일부 대중의 생각은 잘못됐다"고 거침없이 발언해 정초부터 '철학자의 정치개입'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 교수는 이날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강조하고 역사의 패러다임 변화를 언급하는 대목에서 특유의 '반말 화법'으로 "여기 있는 분들, 반 이상이 아마 노 대통령을 뽑으셨을 거예요, 그죠? 그러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 잘못 뽑았다' 생각하고 있어? 말도 안되는 소리예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그것은 어떻게 됐든지 간에, 우리가 생각하는 대통령상에서 벗어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새로운 역사를 구현해 나가고 있고 그러한 역사에 의해서 지금 민주제도가 정착되고 있다"면서 "지금 정치적으로는 여러 혼돈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결코 역사의 후퇴가 아니라 근원적인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 거요"라고 주장했다.

도올은 지난해 11월 <문화일보> 기자로서 노무현 대통령을 인터뷰한 인연이 있다. 작금의 현실은 혼돈이 아니라 근원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도올의 논리는 '창조적 와해'나 '창조적 파괴'를 거쳐야 제대로 된 신당을 세울 수 있다거나 새로운 정치판을 짤 수 있다는 노 대통령의 개혁논리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노 대통령의 행보에서 '탈권위'를 통한 패러다임 변화의 징후를 읽어낸 원조는 강원룡 목사이다. 문희상 비서실장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강 목사는 "참여정부 1년을 지나면서 가장 큰 변화는 탈권위이다"면서 "우리 민족의 5천년 역사를 통틀어서 왕정을 거쳐 50년 헌정사를 가졌지만, 그런 점에서 조선 왕조 이후 노무현 대통령 이전까지의 대통령을 모두 뭉뚱그려 '대한민국 제1대 대통령'이고 노 대통령은 제2대 대통령이다"고 말한 바 있다.

카리스마를 가진 독립운동가(이승만)와 군인(박정희·전두환·노태우)으로 이어진 '제왕적 대통령'에 이어 민주투사 출신의 김영삼·김대중 대통령까지도 군부독재와 싸우는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권위주의적 카리스마가 몸에 밴 제1대 대통령으로 분류할 수 있고, 스스로 권위와 검찰 권력 같은 '무장'을 해제한 노 대통령이야말로 '대한민국 제2대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검찰 독립의 전주곡 지난 3월 9일 `전국 검사들과 대화`를 마친 뒤 노무현 대통령과 강금실 장관이 평검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탈권위 패러다임 읽은 강원룡 목사 "노 대통령은 제2대 대통령"

문희상 실장에 따르면, 이와 같은 분류법은 결코 '신용비어천가'가 아니다. 오히려 이 말은 노무현 정부의 무능함을 질타한 끝에 나온 말이라는 것이다. 즉 "노무현 정부는 그런 역사적 소임이 있으므로 더 잘해야 한다"면서 "노무현 정부가 무능하게 보이면 '제2대 대통령'이라는 의미가 퇴색한다"고 질책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를 기준으로 그 이전과 이후를 '왕정'과 '민주정'으로 이분하는 데는 동의하지 않은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표방한 김영삼·김대중 대통령까지도 군부독재와 싸우는 과정에서 몸에 밴 권위주의를 부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군부독재와의 투쟁에서 생존과 승리를 위한 필수조건이었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 초 검찰을 향해 주문했던 이 말은 지금도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물론 김대중 정부에서도 이른바 '사직동팀'의 해체와 청와대 파견 검사의 복귀 같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실질적인 조처들이 취해졌다. 또 DJ가 재임중 두 아들이 검찰에 의해 구속되는 아픔을 겪은 것은 노 대통령이 오랜 동지이자 측근 참모들이 검찰에 구속되는 것을 감수한 것과 비견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제야 비로소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조심스레 믿는 눈치이다. 그 까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한 역대 대통령의 발언의 진정성을 그 어떤 조직보다는 정치권력에 민감한 검찰 조직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탓도 크다. 문민정부 시절 검찰총장을 지낸 한 인사의 말대로 "대통령이 별 뜻 없이 한 얘기에도 검찰이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게 지금까지의 현실"이고, 또 대통령이 '바람 풍'이라고 해도 '바담 풍'으로 지레 잘못 해석한 측면도 있다.

결국 검찰이 모든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 첩경인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과 다른 점은 대통령이 되자마자 '전국 검사와의 대화'를 통해 젊은 검사들에게 '권력의 밑천'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것은 탈권위로 '무장'한 젊은 대통령의 미덕이자 '제2대 대통령'의 가능성을 엿보이게 하는 대목이다.

지난해 12월 22일 노 대통령이 합천 해인사로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을 찾아뵙고 서울외곽순환도로 사패산 터널 백지화 공약을 지키지 못한 점을 솔직히 사과하고 불교계의 도움을 청한 것도 새로운 사고를 가진 젊은 대통령의 미덕이자 '제2대 대통령'의 가능성을 엿보이게 하는 대목이다. "터널 하나 뚫는 데도 대통령이 종교 지도자에게 가서 머리를 조아려야 하나"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알게 모르게 '제왕적 대통령'의 권위에 익숙한 탓이기도 하다.

물론 그조차도 '상징조작'을 염두에 둔 '정치인 노무현'의 계산된 행보일 가능성을 100%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분명히 카리스마에 의존하지 않는 젊은 대통령의 특권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 지난 12월22일 노무현 대통령이 합천 해인사를 방문해 사패산 터널과 관련해 법전 종정에게 정부의 어려운 사정을 털어놓고 불교계의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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