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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대학가와 거리에서 많이 불렸던 노래가 동숭동 대학로의 한 호프집에서 흘러나왔다. 좌석에서 모두 일어난 사람들의 우렁찬 합창은 연단에 앉은 가수의 어설픈 기타 연주와 간간이 엇나가는 박자를 자연스럽게 감췄다.

▲ 노무현 후보가 대학로에 열린 문화예술인과의 간담회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장흥배
아마추어 가수는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그는 21일 7시 대학로 한 호프집에서 열린 '문화예술인과의 간담회'에서 어렸을 때 잠시 배운 기억을 살려 기타를 잡았다. 노 후보는 "80년대 노래를 얼추 다 아는데, 노래를 배우지 않았다면 평범한 변호사나 판사의 길을 걸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녁 7시 정각에 호프집에 들어선 노 후보는 원로 문화예술인들과의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테이블을 돌며 100여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와 덕담을 나눴다. 영화배우 문성근씨도 노 후보와 동행하며 각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을 소개했다.

이어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소속 조영신씨의 사회로 포크가수 손병휘씨의 힘찬 노래와, 국악인 최정원씨의 사랑가 공연이 참석자들의 열띤 호응 속에 진행됐다. 스카이TV에서 '노래가 있는 풍경'을 기획하는 손씨는 "10년 전 거리에서 시위하는 심정으로 이 노래를 한다"면서 '오늘 하루'란 노래를 불렀다.

다음은 이날 참석한 예술인들이 자신의 작품을 노 후보에게 증정하는 차례. 사진작가 김영수씨는 서해교전 당시 연평도 부근에서 우연히 찍은 사진을 준비했다. 흐린 날씨의 바다에서 해가 막 떠오를 때 한 마리 새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담은 사진은 한반도의 평화를 주문하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박재동 화백은 국민경선 당시 노 후보가 승리한 모습을 그린 캐리커처를 선물했다. 양볼이 불룩 튀어나온 노 후보의 캐리커처에 대해 박 화백이 "승리한 얼굴이 예쁘지는 않다"고 말하자 노 후보는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박 화백은 "앞으로 신나고 재밌고 뜨겁게 사느냐, 아니면 김빠져 재미없게 사느냐 갈림길에 서 있다"는 말로 이번 대선에서의 현명한 선택을 '캐리커처식' 화법으로 강조했다.

▲ 박재동 화백이 노 후보에게 국민경선 당시 그린 노 후보의 캐리커처를 선물하고 있다.
ⓒ 장흥배
사회자는 마지막 행사로 노 후보에게 문화예술인의 융숭한 환대에 대한 화답을 요구했다. 마이크를 잡은 노 후보는 "어릴 때 한참 연습했는데 까맣게 잊어버렸다"면서 "이 행사를 위해 오늘 하루 열심히 준비했는데 잘 되려는지 모르겠다"고 기타를 들었다.

고성을 처리할 때 난처함을 의식해 처음부터 옥타브를 낮춰 잡은 노 후보는 상록수 1절을 '그런대로' 소화했고, 2절과 3절은 참석자들과 같이 불렀다. 노래를 마친 노 후보는 "88년 선거때 유권자에게 내가 아무리 옳다고 해도 잘 안 됐다"면서 "당시 이희재 선생님이 공짜로 만화를 그려줬는데 그 만화를 보고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 때 말로는 안 돼도 만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노 후보의 말에 참석자들은 박수와 환호로 앵콜을 요청했다.

노 후보는 "내가 하고 싶은 노래는 따로 있는데, (보좌진들이) 과격하게 보일까봐 자꾸 말린다" 하면서도, 끝내 보좌진의 만류를 물리쳤다.

"사람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나의 어깨동무 자유로울 때♬…."

100여 문화예술인들과 노 후보는 이 '과격한' 노래를 완창했다. 노 후보가 자리를 뜬 뒤 한 참석자는 "표를 위한 전략도 없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재능에 대한 노 후보의 부러움만큼은 진실한 것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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