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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대로 제 버릇 남 못 주는 것일까?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에 '홍위병'을 풀었던 <조선일보>가 이번에도 시민단체 사냥에 나섰다. 조선일보가 총대를 메고 나서고, 중앙·동아가 한통속으로 엄호하는 모양새까지 똑 닮았다.

더욱 교묘해진 시민단체 공격

조중동의 이번 시민단체 공격은 2000년 당시와 비교했을 때 더욱 교묘해졌다는 것이 특징이다. 2000년 당시 조중동의 시민단체 공격은 지난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을 맡았던 소설가 이문열 씨가 조선일보에 이른바 '홍위병론'을 게재한 것을 전후로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총선연대 낙천낙선운동이 DJ정부와의 교감 아래 진행되고 있다는 식의 조중동 왜곡보도는 아무런 객관적 정황이나 증거도 대지 못한 선전선동에 불과했다. 그리고 당시 낙선운동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던 국민들로부터 외면 당했다.

그러나 이번 조선일보의 총선연대 공격은 정부의 시민단체 지원과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이라는 엄연한 두 개의 몰가치적 사실을 마치 모종의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막연한 선동에 불과했던 2000년과는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정부의 예산지원, 411억원 등의 사실과 정보를 '정부와 총선연대의 정치적 유착'이라는 논조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근거나 되는양 활용하고 있다.

물론 조중동은 '시민단체 예산 지원=시민단체의 정부여당 편향'의 논리를 전개하는 데 방해가 되는 '자유총연맹 등 보수우익단체에 대한 정부의 예산지원'과 같은 또 다른 엄연한 사실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조선일보의 최근 '시민단체 죽이기'는 그 기법에서 훨씬 다채로워 지고 있다는 평이다. 지난 7월 말에는 '짝퉁 시민단체들'이란 칼럼을 통해 구체적 정황이나 증거, 문제가 된 단체명을 적시하지도 않은 채 '카더라' 식 글을 통해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의 도덕성을 난도질했다.

정부의 시민단체 예산지원을 문제 삼은 연장선에서 2일에는 이라크 파병철회 투쟁에 대한 진보진영의 내부 논쟁에서 발생한 좌파 논객의 시민단체 비판을 그대로 인용하는 방식으로 시민단체를 공격하고 나섰다. 평소 진보진영의 조중동 비판에 귀를 막고 있던 조선일보가 자사 지면에 인용하기조차 꺼려하는 진보진영의 인터넷 언론사까지 뒤적이며 시민단체 비판을 찾아내는 데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시민단체 죽이기를 작정한 이들 조중동에게 오늘날 민주국가치고 시민단체를 지원하지 않은 정부가 있는지, 다른 나라 정부의 시민단체 지원은 어떤 방식, 어느 규모인지를 스스로 보도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난센스에 가까울 것이다.

독일, 시민단체 지원에 5조원 넘게 사용

지난해 4월 출범한 국무총리 산하 시민사회발전위원회의 전문위원들은 유럽 각국의 시민단체 발전 상황을 살피기 위해 유럽 각국을 살폈다.

지난 8월 30일로 1기 시민사회발전위원회 전문위원을 사임한 이동희 한신대 연구교수는 "BMZ(독일국제협력부) 국장에게 확인한 결과 독일 정부는 시민단체에 국민총소득의 0.27%를 지원하고 있다"면서 "유럽의회는 각국 정부의 시민단체 지원 권고안을 GNP 대비 0.3%로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3년 기준 독일 국민총소득은 1조8760억 달러다. 이것의 0.27%는 50억6520만 달러이고, 1달러=1100원 기준 원화로 환산하면 5조5717억원에 이른다. 정부가 한 해에 5조원을 넘는 예산을 시민단체에 지원하고 있다는 얘기다.

네덜란드의 경우는 비율이 더 높아서 GNP 대비 0.8%의 재정을 시민단체에 지원한다. 이동희 교수는 "영국 정부의 경우 시민단체에 대한 각종 세제 및 재정 지원이 중앙 정부 예산의 0.7% 정도"라고 밝혔다.

박원순 변호사가 2001년에 쓴 <일본시민사회기행>을 보면 시민단체 지원에 관한 한 일본은 우리와 비교해 천국에 가깝다. 일본의 국제협력단체의 재정 현황을 보면, 238개 단체의 1998년도 총수입이 236억3000만엔인데, 이중에서 정부보조금과 위탁금이 10.4%다. 일본 우정성의 국제볼런티어저금의 배분을 받은 단체만 전체 45%에 달한다.

NPO(비영리조직)센터 역할을 하는 가나가와 현민센터에 관한 박 변호사의 묘사를 보자.

"요코하마역에서 300m밖에 안 떨어져 있는 거대한 건물 전체가 통째로 시민들의 활동 공간이었다. 전용면적 총 3540㎡, 이것이 모두 시민들의 사회 활동을 지원하고 시민단체들의 편의를 제공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거대한 정보자료는 말할 것도 없고, 회의 공간, 컴퓨터 작업 공간,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공무원들의 서비스 시스템이 철저하게 갖춰져 있었다."

일본은 또한 각종 기금을 활용해 시민단체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도요타자동차에서 출연한 도요타파운데이션의 사무국장은 시민단체 지원에 관해 묻자 "2001년에는 시민단체, 전문가들의 연구 활동에만 1500만엔을 사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박 변호사는 "일본의 큰 시민단체들은 대부분 기업의 자금을 받아 위탁사업을 운영하거나 지원을 받는 것이 일상적"이라며 "허구헌 날 정부와 기업과 싸우기만 하는 우리들로서는 정부와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는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라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정부의 재정지원과 시민단체의 독립성 사이의 연관 문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지만, 최소한 오늘날 민주국가라 부르는 나라에서 정부의 시민단체 지원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 정부의 시민단체 지원 수준은?

조선일보가 보도했듯이 지난해 정부가 시민단체에 지원한 금액은 411억원이다. 411억원은 2003년 정부 일반회계예산 115조1300억 원 대비 0.036% 비율이다. 좀 더 높게 잡아도 대략 0.05% 내외로 알려져 있고, 시민사회발전위원회는 지금 이 비율을 0.1%로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부에 의한 예산지원만 수조원 단위에 이르는 유럽각국과 비교하면 우리의 시민단체 지원은 '비참한 수준'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선진 유럽이 아니라 세계 각국과 비교해서도 한국 정부의 시민단체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동희 박사는 "세계 각국 22개 국가 시민단체 예산에서 정부지원 비율이 평균 40%임에 반해 우리 나라 시민단체의 정부 예산 의존도는 20% 안팎"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비참한 수준에 있는 시민단체 지원이 그나마 시작된 것이 바로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의 김영삼 정부 때다. 그리고 참여정부에 이르러 시민사회발전위원회가 국무총리실 산하에 구성돼, 이제 겨우 정부의 시민단체 지원에 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시민단체가 요구하는 정부의 지원은 참으로 소박한 것이지만, 내부 관계자의 얘기를 들어 보면 이마저도 제대로 이뤄질지 불투명하다. 시민단체 요구사항에는 현행 기부금품모집법 상의 기부금품 모집 허가제를 신고제로 바꾸고, 홍보비·인건비 등 기부금품 모집에 들어가는 모집비용의 비율을 현행 2%에서 선진국처럼 20%로 올려달라는 것이 있다. 또한 각종 프로젝트 비용에서 교통비, 자료 수집비 등 인적 경비를 전체 프로젝트 비용의 5% 내에서 인정해 달라는 것도 있다. 일본의 NPO센터와 같은 성격의 NGO센터 건립 논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의 개선 약속을 받아낸 것은 미미한 수준이다. 정부는 기부금품 모집에서 현행 허가제를 신고제로 고치는 것이 어렵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으며, NGO센터 설립도 어렵다는 전언이다.

"정부의 시민단체 지원은 당연한 일"
[인터뷰]이동희 한신대 교수(전 시민사회발전위원회 전문위원)

- 규모가 너무 커서 믿기지 않아서 묻는데, 독일의 시민단체 지원 비율 0.27%가 GNP(국민총소득) 대비가 맞나?
"맞다. BMZ국장으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다. 독일은 0.27%이고, 네덜란드는 0.8%다. 영국의 경우 정부예산 기준으로 0.7%인데, 예를 들면 척추장애인 지원단체에는 단체 예산의 80%를 지원한다. 그렇게 해서 한 해 시민단체에 지원하는 예산이 8800만파운드라고 했다. 한가지 추가할 것은 영국은 직접 예산지원 이외에 세제 혜택도 잘 돼 있다."

- 22개국 국가의 시민단체 예산을 집계한 결과 정부 재정지원에 대한 예산 의존도가 평균 40%로 나왔는데, 이들 국가는 잘 사는 나라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다. 독일, 미국, 프랑스 같은 잘 사는 나라도 있지만 멕시코, 페루, 아르헨티나 등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들도 골고루 들어 있다. 우리의 경우 전체 시민단체 통계를 잡지는 않았지만 유의미만 표본을 산출해 집계한 결과 정부 재정 의존도가 20% 수준인 것으로 조사된 것으로 안다. 세계 평균과 비교해서도 우리 정부의 시민단체 재정지원 수준은 낮은 편이다."

- 유럽의 경우 시민단체 재정지원에 특별한 원칙이 있는가?
"정치 활동하는 단체에는 재정지원을 안한다는 원칙이 있다. 즉 공익적 활동을 하는 단체의 공익 프로젝트에 한해 재정지원을 한다는 의미다. 영국의 경우 대변형 운동조직인 그린피스에 대해서는 재정지원을 하지 않고 있는데, 블레어 정부가 대변형 운동이라 하더라도 공익성이 인정되는 활동일 경우 세제나 재정지원을 해야 하는 방향으로 관련법을 개정하려 시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미국의 경우 정치헌금에 대해서는 세제혜택을 주고 있지 않은데, 이는 정치헌금이 공익적 활동이 아니라 정치적 활동으로 보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는 정치헌금에 대해서는 세금혜택을 주고, 시민단체의 공익적 활동에 대한 세제혜택은 거의 없는 편이다."

- 그렇다면 낙천낙선운동과 같은 경우는 재정지원이 가능한가?
"이번에 조중동에서 문제삼는 부분이 그것인데, 예를 들어 민언련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은 공익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이지 낙천낙선운동에 대한 재정지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조중동의 논리는 문제가 있다. 해병전우회의 친목모임 활동에는 재정지원이 필요 없지만, 교통정리같은 공익적 활동에는 지원이 바람직한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결론적으로 낙천낙선운동과 같은 정치적 운동은 정부의 예산지원을 받지 않는 것이 맞지만, 현재 조중동에서 문제삼는 정부의 예산지원은 낙천낙선운동이 아니라 해당 단체의 공익적 활동에 대한 것이므로 이 부분을 문제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 시민단체의 재정운영에 관해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시민단체의 재정에서 정부 의존도를 낮춰야 되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렇게 해서 독립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부가 시민단체의 공익적 활동에 대한 재정지원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란 인식도 필요하다. 의식적인 측면에서 우리도 선진국처럼 기부 문화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우리의 경우 불우이웃돕기같은 기부에는 익숙한데, 공익적 활동을 하는 시민단체에 대한 기부문화는 너무 야박한 상황이다.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정부의 세제혜택, 시민단체 지원에 관한 제도 개선 등이 필요하다. 또한 유럽을 보니 공공 프로젝트 선정과 재정지원 비용에 대한 투명하고 엄격한 관리가 특징이었다. 우리도 이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 장흥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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