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는 스포츠 현상을 비평하고, 대안 담론을 생산하는 모임입니다. 토론 불모지의 한국 스포츠 풍토에서 다양한 가치와 합리적 비판이 경쟁하는 공론장 구실을 지향합니다.[편집자말]
운동장
 운동장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요약] "학교 체육활동 중 빚어지는 학생 부상과 이로 인한 학부모의 소송, 과도한 압박에 처한 교사들의 어려움은 양가적 가치가 충돌하는 '딜레마 상황'이다. 아이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학부모)과 더 큰 위험에 맞서 싸우도록 교육(교사)하는 입장은 '안전한 위험'이라는 형용모순에 처했다. 이해가 다른 양자가 '선한 의지'로 화해할 수 없다면, 매뉴얼에 의한 규격화, 서식화된 학생지도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서구 일부 사회처럼 학기 시작 전에 '체육활동 위험 감수' 확약서를 받거나, 교사의 부담을 대폭 줄이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지원체계에 투자하는 것은 대안으로 제시된다. 학교 권력관계에서 업무 하중을 떠안고, 홀로 책임져야 하는 한국 (체육)교사들의 상황을 개선하는 것도 근본적인 과제다."

안전 이슈는 언젠가는 등장할 사안

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는 두번째 이슈인 '학교 체육활동 위험 감수의 경계'를 놓고 장익영 한국체대 교수, 탁민혁 영국 러퍼브러대 교수, 오태규 서울대 일본연구소 객원연구원(전 한겨레 스포츠부장), 차민철 서울 월곡초 교사, 김완태 전 창원 엘지 단장이 참여한 온라인 줌 토론을 벌였다. 한겨레신문 김창금 기자의 사회로 진행됐다. 

사회자(김창금) : 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 두번째 토론회를 하면서 세계 체육대학 평가 1위의 영국 러퍼브러대 탁민혁 교수의 참여에 감사드린다. 또 특별 게스트 초청에 응해주신 서울 월곡초의 차민철 교사(박사)께도 고맙다는 말씀 전한다. 

 학교 체육활동에서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 이슈를 제기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게 외국의 사례다. 비용과 편익 계산은 경제학에서도 일반적으로 이뤄지듯이, 무조건 위험(비용)을 회피하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는 아니다. 장익영 교수는 뉴질랜드에서 현재 연구활동 중이고, 두 아들은 뉴질랜드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뉴질랜드에서 체육활동 중 일어난 학생 부상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지 듣고싶다.
 
장익영 교수
 장익영 교수
ⓒ 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

관련사진보기

 
학기초 체육활동 서약서에 위험 감수 여부 서명

장익영 교수: 큰 아이가 2010년 뉴질랜드 초등학교에 다닐 때다. 학기 초에 '학교에서 아이들 사진을 찍는 데 동의하느냐' 여부를 묻는 통지서가 왔다. 학교에서 활동하는 사진을 찍는 일이 있는데, 부모가 원하지 않으면 표시를 해달라는 얘기였다. 2010년께 이미 학생 초상권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했던 것 같다. 처음엔 사진찍는게 무슨 문제인가 싶어 놀랐는데, 그 뒤에는 나도 학생들 가르치면서 사진 찍어도 괜찮은지 물어보게 된다.

 뉴질랜드에서는 체육활동도 마찬가지다. 학기 시작하면 학교에서 서약서를 보내온다. 학교의 체육대회 출전이나 학내 활동, 동아리 대회 등에 학부모가 학생의 '위험 감수' 여부에 대한 서명을 요구한다. 만약 동의하지 않으면 학생은 외부 대회나 학내 체육활동 등에 나설 수 없다. 학생과 교사의 책임 범위를 서식으로, 매뉴얼로 정해 놓았기 때문에, 신체활동을 하다가 학생이 부상을 당하더라도 한국처럼 교사가 학부모한테 소송을 당할 일이 없다.

사회자: 선생님들의 체육교육과 학교의 행정·지원 체계가 확실히 분리돼 있군요.

장익영: 학기 시작하면 써야 할 서류가 많은데, 학부모의 동의를 받아 행정실에 보내줘야 하는 것들이다. 이렇게 책임을 명확하게 하는 것을 보면 이전에 사건·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리스크를 줄이려는 것 같다. 비단 한국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실기 시간 사건·사고로 고소나 고발이 이뤄지고, 교사들이 부담을 느끼면서 덜 위험하고 소극적인 형태로 교육이 이미 이뤄졌던 것 같다. 

체육은 아이들이 전인적 성장을 위한 기초다. 그 교과과정을 만드는 국가가 교과과정을 만들어내면서 어떻게 할지, 무엇을 할지도 좀더 명료하게 해야 할 시점이다.

사회자: 김완태 단장님도 엘지 주재원으로 외국 생활을 많이 했는데요.
 
김완태 전 엘지 단장
 김완태 전 엘지 단장
ⓒ 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

관련사진보기

 
김완태 전 엘지 단장: 영국과 캐나다에서 30년 가까이 주재원 생활을 하면서 학교와 부모의 책임과 역할 등을 많이 봤고, 프로 농구팀에서의 경험을 봐도 대동소이한 측면이 있다. 특히 학교나 프로 스포츠에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시하고 지나간 것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달라졌다.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안전재단의 경우 대회 이벤트와 경기시설 관련해서 가이드라인을 주고 있는데, 학교에서도 책임과 역할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것 같다. 완벽한 것은 아니더라도 사전에 알림으로써 사후 선수나 학부모와 이해 충돌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체육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가치, 철학 바뀌어야

오태규 연구원: 학교체육을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가치나 인식, 철학의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즉 우리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경계나 범위에 관한 일이다. 1960년생인데,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축구하다가 팔이 부러져도, 선생님께 두들겨 맞아도 전혀 문제가 안 됐다.(웃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지만, 학습 과정에서 사소한 상처나 부상에 대해서 교사가 명백하게 잘못이 없다면 학생이 자기 책임으로 감내할 수 있는 경계나 기준이 마련돼야 할 것 같다. 

 2007년부터 학교안전공제회가 운영되고 있지만, 학내 활동 중 입은 학생 피해에 대해 보상한다고만 돼 있다. 실제 사고가 터지면 행정·지원조직에서 시스템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소송 등을 감당하고, 모두 떠맡아야 한다. 교육청에서 이런 부분을 관리할 주체를 명문화하고, 법률지원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이 동의하는 가치의 확립이 필요하다.

사회자: 초등학교 현장에서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상황은 어떤가요?
 
차민철 교사
 차민철 교사
ⓒ 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

관련사진보기

 
위험 회피 체육수업과 대처 능력 감소의 악순환

차민철 월곡초 교사: 20년간 초등학교에서 담임을 맡으면서 여러 과목을 가르치고, 전공인 체육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아이들과 생활하고 있다. 어떤 기준이나 공감대라는 사회철학적인 질문과 연결되는 것 같다. 

사실 예전에는 체육활동 중 부상이 큰 문제가 안 됐다. 자기가 치료했다. 그런데 참여자가 결정하는 일반 스포츠와 달리, 초등체육은 의무교육이다. 아이들이 모두 참여해야 하고, 운동을 잘 못 하는 학생도 함께 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책임성이 크기 때문에 차라리 안 가르치느니만 못한 일도 벌어진다. 선생님들끼리 "사고가 날 활동은 하지 말자"는 농담도 한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위험에 대처하는 경험이 많이 필요한데, 무난히 소화할 수 있는 운동만 하고 도전할 기회가 적어지니 학년이 올라갈수록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 그러다 보니 안전사고는 더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체육에서 부상은 당연히 발생한다. 또 제도권의 의무교육이기도 하다. 초등 선생님들은 그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한다. 표준적인 가이드라인이 있어서 선생님은 책무를 다하고, 그 외에는 개인이 책임을 지는 쪽으로 제도가 개선됐으면 좋겠다.
 
탁민혁 교수
 탁민혁 교수
ⓒ 스로츠저널리즘연구회

관련사진보기

 
탁민혁 교수 : 체육활동에서 위험 회피의 사례는 영국에도 있다. 예전에 축구와 수영에서 성폭력이 크게 문제가 됐는데, 일종의 모럴 패닉(moral panic) 때문에 특히 수영에서 '노 터치' 접근을 택하는 코치들이 생겨났다. 혹시라도 오해를 받을까 소극적 코칭을 하게 되는 것이다. 불과 10~20년이 안 돼 한국의 코치들에게서도 "무서워서 가르치지 못하겠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렇게 극단적 형태의 반응이 나타나는 것은 첫째, 조직에서 보호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가르치는 사람들의 태만도 작용할 수 있다. 더 할 수 있는 조치가 있을 수 있더라도 변화가 가져오는 불편함 때문에 거부하는 사례도 있을 것이다.
 
체육 시간
 체육 시간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사회자: 체육교사나 코치가 부담감을 느끼고 무탈한 교육만 하면 결국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가 피해를 보는 악순환이 이뤄진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극장에서 앞사람이 일어나고, 모두가 서서 영화를 본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겠죠. 안전과 위험의 경계, 합리적으로 해소할 대안이 있을까요?

체육활동의 안전과 위험의 합당한 경계 

탁민혁: 체육활동의 안전을 꾀할 때 그 경계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는 범위가 매우 넓다.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기획단계에서부터 챙겨야 할 부분이 많다. 

 하지만 학교 운영진 상층부터 체육부장 교사까지 참여해 업무 계획을 수립하고, 어디까지 신경 쓰고, 얼마만큼 하고, 그것을 실제로 집행했다면, 그 안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서는 책임을 면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책임행동을 다 하지 못했다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 경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예민하다. 학교폭력의 문제를 '사법 외주화'라는 말처럼 외부의 힘을 빌려 해결하는 방식도 바람직하지 않다. 교육 수요자들은 코치나 스포츠 단체, 학교가 가진 권력을 사법체계로 빼앗아 평형을 이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교육특성이나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환경에 해를 가하는 극단적인 형태이며 부작용도 크다.
 
오태규 연구원
 오태규 연구원
ⓒ 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

관련사진보기

 
오태규: 학기가 시작될 때 교육부나 교육청, 학교가 적어도 '우리는 신체활동에 대해 이러 이러한 방침이다'라는 내용을 분명하게 학부모나 학생에게 전달해야 한다. 개별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을 통지하고, 장 교수님 말씀처럼 위험도 큰 활동에 대해서는 참가 동의 여부 확약서 등을 제출하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책임 안전사고에 대한 인식이다. 학교나 교사의 관리부실이 분명하고, 교사의 개인적 감정이 들어간 교육활동이라면 문제다. 하지만 일반 교육과정에서 생긴 문제는, '교사 개인이 아니라 학교나 국가의 제도를 통해 해결하겠다'라는 가이드라인만 줘도 선생님들이 교육활동을 하면서 어깨가 훨씬 가벼울 것 같다.

김완태: 우리 사회가 좀 더 유연해져야 할 것 같다. 자기 권한을 움켜쥐려는 사람이나 단체가 많다. 좀 더 열린 관점에서 바라보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김창금 기자
 김창금 기자
ⓒ 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

관련사진보기

 
사회자 : 학교 체육활동을 두고 벌어지는 학부모 소송과 교사의 압박감 등 교육현장의 상황을 진단하고 나라 간 비교와 대안 제시 등을 통해 해법을 모색해봤다. 사회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경계나 기준점의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문제에 해법이 있듯이, 안전 이슈를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정리하는 말씀을 부탁한다.

교육부 학교 신체활동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 제시해야

장익영: 체육활동 과정에서 안전 이슈는 언젠가는 등장할 사안이었다. 과거에는 다쳐도 수업의 하나로 치부했고, 맞아도 당연한 것으로 넘어갔다. 그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교사에 소송하는 것은 긍정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안전에 둔감할 수도 없다. 늦게나마 이런 문제가 제기되고, 해법을 모색하는 토론이 이뤄진 것만 해도 우리사회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압축 근대화를 이룬 한국 사회에서는 갑질 문화가 문제가 되고 있다. 또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매뉴얼 부재에 대한 비판이 많이 나왔다. 학부모는 자식이 다치는 것을 걱정하고, 학교는 아이들이 안 다치면서 운동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다. 교육부는 아이들이 위험에 도전하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체육시간 신체활동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나 책임한계를 정해야 한다.

탁민혁: 우리는 가치가 충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소송의 위험이 늘어가는 것도 세계적인 추세인 것 같다. 하지만 나라마다 맥락은 다르다. 코로나19 판데믹 때 유럽과 한국 사회의 대응방식이 달랐다고 하는데, 영국에 살면서 나도 그런 부분을 느꼈다.

여기서는 학생이 교사에게, 아니면 은행이나 호텔 카운터에서 손님이 직원에게 불만을 제기할 때 불손한 언행이 나오면 그 자리에서 차단한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고객이라는 이유로 다 받아들이고 설명하는 것 같다.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도를 넘어선 상황에서는 교사나 창구 직원이 아니라 더 큰 권위자나 교육청 등이 나서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개인 교사가 민원에 대해 모든 서비스를 하도록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   

차민철: 좋은 말씀에 너무 감사하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현장 교사의 입장에서는 위험이 따르더라도 신체활동을 금지할 수는 없다. 사회에 나가서도 위험 상황은 많고, 학교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대비하고 있다. 개인도 삶에 꼭 필요한 능력을 키우는 교육과정이라 여기고 책임을 부담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좋겠다.

태그:#학교, #체육
댓글

한국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는 스포츠 현상을 비평하고, 대안 담론을 생산하는 모임입니다. 토론 불모지의 한국 스포츠 풍토에서 다양한 가치와 합리적 비판이 경쟁하는 공론장 구실을 지향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