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는 스포츠 현상을 비평하고, 대안 담론을 생산하는 모임입니다. 토론 불모지의 한국 스포츠 풍토에서 다양한 가치와 합리적 비판이 경쟁하는 공론장 구실을 지향합니다.[기자말]
선수에게 최고의 영광은 상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틀론(αθλον·athlon)은 상을 뜻하는 말이고, 여기서 선수(athlete)라는 말이 나왔으니 상(경쟁) 없는 선수는 어원적으로 상상하기 힘들다.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에서는 한 챕터가 운동 경기와 우승자 시상에 맞춰져 있다. 트로이 패망으로 망명 백성들을 이끌게 된 아이네이스는 고된 이탈리아 항해 중 아버지 앙키세스의 장례를 치른 뒤 노젓기, 달리기, 권투, 활쏘기 등 각종 운동 경기로 축제를 연다. 가장 뛰어난 선수는 무구나 청동솥 등을 상으로 받는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23장에서도 절친 파트로클로스를 잃은 아킬레우스가 장례식 운동 경기를 열고 경품을 거는 장면이 나온다. 경쟁과 시상이 스포츠의 본질적인 구성 요소임을 알 수 있다.

그리스의 스포츠 이야기 사례는 민주주의 제도와도 관련이 있다. 페르시아 등 아시아나 이집트의 전제적 통치체제와 달리 다도해로 이뤄진, 그래서 분할과 분리 가능성이 큰 그리스의 지정학적 특성은 민주주의를 가능케 한 요소의 하나로 거론되는데, 스포츠 영역에서 이런 민주주의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는 것이다.

철학자 서동욱의 말이다. "경쟁 자체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평등을 가치로 삼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전제군주의 나라엔 군주의 명령과 신민의 복종만이 있지, 자기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경쟁의 장이 없다. 이런 점에서 정당한 경쟁은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만하다."(생활의 사상)

스포츠 경쟁은 룰 속에서 이뤄지고, 룰을 지키는 한 경쟁의 결과는 정당성을 지닌다. 착한 경쟁, 선의의 경쟁, 정정당당한 승부, 페어플레이 등의 바탕에는 평등의 원리가 있으니, 경쟁과 평등이 반드시 상충하는 것도 아니다.

천덕꾸러기가 된 순위 경쟁

3000년 전 그리스 시대의 예화는 지난 몇 년간 한국의 학교 체육 현장에서 이뤄진 '탈 경쟁주의'와 대조된다. 엘리트 스포츠뿐 아니라 일반 학생들이 참여하는 학교스포츠클럽 대회(축전)와 학교 운동회에서조차 경쟁은 '문제아 취급'을 받게 됐다. 경쟁이 불러온 부작용 때문인데, '경쟁, 너 나쁜 놈'이라는 딱지가 '착한 경쟁'마저 죽여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일단 전국소년체전에서는 2018년부터 시·도별 메달 집계를 하지 않고 있다. 국가가 학원을 전진기지로 삼아 아이들을 가혹한 훈련으로 내몰며 '스포츠 용사'로 키우는 체계는 사회 구성원을 특정 목적을 위해 대상화한다는 점에서 시대적인 한계에 봉착했고, 교육적으로도 정당하지 못하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조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엘리트 체육이 아닌 동호회의 일반 학생이 참가하는 학교스포츠클럽 전국대회에서 순위를 매기지 않는 것은 어떤가. 예를 들어 경기도는 2017년 이후 지난 5년간 교육감배 학교스포츠클럽 대회를 열지 않았다. 전국대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도 대회 격인 교육감배를 거쳐야 하는데, 교육감배가 아예 열리지 않아 시 대회만 치르고 끝낸 학생들의 실망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전국 학교스포츠클럽 대회 운영 또한 우승팀을 가리지 않았고, 16강 리그전 일부 경기를 치른 뒤 대회를 마감하는 식이었다.

학교 운동회에서도 순위 경쟁은 천덕꾸러기가 됐다. 한 어머니의 자녀 학교 운동회 참관기를 보자.
 
초등학교 운동회의 첫째 종목은 개인 달리기였어요. 뛰기 직전 '빵'하는 소리를 기다리며 심장이 두근두근하던 그때가 생각나요. 얼마나 조마조마했던지 말입니다. (아들아) 넌 어땠을까? 손등의 도장도, 상 딱 찍힌 공책도 없는 2022년 초등학교 운동회 현장. 그때 우리는 그랬었지 하며 엄마들과 얘기하며 즐겁게 구경했답니다.(한겨레신문)
  
부산 해운대구 신재초등학교 실내체육관에서 학생들이 줄넘기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2023.1.30
 부산 해운대구 신재초등학교 실내체육관에서 학생들이 줄넘기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2023.1.30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이런 학교 체육 문화는 일차적으로 2000년대 중반 본격 도입된 일반 학생의 학교스포츠클럽 전국대회에서조차 경쟁 과열로 내부에서 비판과 개선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시작됐다. 외부적으로는 '올림픽 톱10'으로 상징되는 엘리트 스포츠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과거와 달리 '성적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하다'는 식으로 바뀌면서 경쟁이 부정시된 측면도 있다.
  
교육부나 문체부의 정책 영향 아래 엘리트 체육이 아닌 학교스포츠클럽은 경쟁을 지양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경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대립항인 '무경쟁'의 길을 택한 것은 쉬운 방법이었다. 문제는 경쟁 자체가 아니라 경쟁의 과정에서 빚어진 파행인데, 경쟁을 없애는 방식으로 나간 것은 극단화한 처방이라 볼 수 있다.

박종률 한국스포츠교육학회 회장은 "스포츠에서 경쟁은 본질적인 요소다. 특히 스포츠의 경쟁은 최선의 노력, 페어플레이, 배려, 존중 등 여러 도덕적 가치조차 직관적으로 배울 수 있게 해 준다. 학교스포츠클럽이 질적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교육 측면에서 경쟁의 가치를 다시 봐야 한다"고 말한다.(한겨레신문)

'대회'라는 명칭 대신 '축제'로

결과의 평등은 윤리적 차원에서도 허점이 있다.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평등사회의 주요 원리로 '차등의 원칙'을 제시하면서, '무지의 베일' 속에서 결정된 공동체의 위치 속에서 "가장 열악한 처지의 사람에게 가장 큰 이득을 줄 수 있어야" 하고, "기회는 공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차이와 합리적 선택을 전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 당국의 주도 아래 2018년을 전후해 전국학교스포츠클럽 대회의 명칭은 '축전'으로 바뀌었다. 영어로 컴피티션(Competition) 대신 페스티벌(Festival)로 쓰는 것은 경쟁적 요소를 억제하면서, 참여하는 학생들이 서로 어울리는 장을 만들겠다는 의지다.

최근 개정된 (초중고) 체육 교육과정의 성격이나 목표도 경쟁 개념이 빠지면서 명료함이 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다. 2007년 체육 교육과정에서는 5개의 영역(건강, 도전, 경쟁, 표현, 여가(안전))이 핵심 가치로 제시됐지만,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활동적이고 창의적인 삶, 건강하고 주도적인 삶, 신체활동 문화를 향유하며 사회 속에서 바람직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신체활동 역량을 기르는 것"으로 서술돼 있다.

세부적으로 △움직임 관련 지식을 이해하고, 움직임의 목적과 환경에 적합하게 움직임 기술을 수행하며, 움직임 수행에 필요한 가치와 태도를 실천하고 △건강 관련 지식을 이해하고, 생애 전반에 걸쳐 건강을 증진 및 관리하며, 건강의 증진과 관리에 필요한 가치와 태도를 실천하고 △신체활동의 고유한 문화 특성을 이해하고, 신체활동 문화를 일상생활에서 누리며, 다양한 문화 양식에 내재한 가치와 태도를 실천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핵심 단어인 움직임, 기술, 수행, 건강 등이 추상적이어서 중언부언한다는 느낌을 준다. 가치와 태도, 문화, 양식, 생애 등의 표현이 연결되는 방식도 깔끔하지 않은데, "신체활동의 고유한 문화 특성을 이해하고"라는 대목을 해석하기는 쉽지 않다.

이전의 교육과정 목표가 △건강 활동의 가치 △도전 활동의 가치 △경쟁 활동의 가치 △표현 활동의 가치 △여가 활동의 가치 등을 이해·실천·수행한다고 규정한 것과 비교하면 의미가 뚜렷하게 전달되지 않고 있다.

초등 1~2학년의 저학년 시기가 평생 지니게 될 '운동 감각'을 익힐 적기라는 것을 강조하는 기초움직임기술(Fundamental Movement Skills) 등 구체적인 표현을 담거나, 경쟁·도전 등 이전 교육과정의 개념들을 살렸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새롭게 받아들여지는 경쟁의 가치

학교체육에서 경쟁을 '악'으로 볼 필요는 없다. 스포츠를 떠나서도 경쟁은 인간이 생명체로 살아가는 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상대방을 살리면서 하는 착한 경쟁이냐, 상대방을 죽이려고 하는 나쁜 경쟁이냐의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스포츠는 룰 안에서 상대방을 살리면서 나도 사는 고유한 쾌감을 매 순간 느낄 수 있도록 고안된 제도로 볼 수 있다.

2023년 올해 가을부터는 전국학교스포츠클럽 축전에서는 16강 리그전도 풀로 소화하고, 8강과 4강을 거쳐 1~3등을 가린다고 한다. 경기도에서는 이미 도 대회가 열리고 있고, 코로나19로 인한 동면기에서 벗어나 아이들은 그라운드 위에서 마음껏 끼를 발산하고 있다고 도 장학사는 전한다. 전국학교스포츠클럽 축전에서 개별 종목에서 이뤄질 경쟁(컴페티션)이 참가자들의 열정을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무르익을 축제 한마당의 분위기가 기대된다.

한 초등학교 교사도 올해 운동회에서는 순위에 얽매이지는 않지만, 달리기 등 종목별 1~3등한테는 도장을 찍어 주어서 열심히 달린 아이들이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포츠의 본질인 경쟁의 가치가 변증법적 부정을 거쳐 새롭게 받아들여지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아틀론이다. 상은 모두에게 줄 수 없어 상이다. 그 상을 목표로 아이들이 룰 속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게 어른들의 몫이다. 아틀론을 향한 아이들의 꿈을 빼앗지 말아야 한다.

- <"선의의 경쟁? 한국에서만 쓰는 말 아닌가">(https://omn.kr/25y45) 이 기사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앨런 거트만, <근대 스포츠의 본질-제례의식에서 기록추구로>, 송형석, 나남, 2008
서동욱, <생활의 사상>, 민음사, 2022
존 롤스, 황경식 옮김, <정의론>, 이학사, 2020
베르길리우스, 천병희 옮김, <아이네이스>, 숲, 2020
김창금, ‘경쟁 없는 학교스포츠클럽, 경쟁 없어서 좋은 걸까?’,<한겨레신문>, 2022


태그:#학교 체육, #경쟁
댓글2

한국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는 스포츠 현상을 비평하고, 대안 담론을 생산하는 모임입니다. 토론 불모지의 한국 스포츠 풍토에서 다양한 가치와 합리적 비판이 경쟁하는 공론장 구실을 지향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