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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주봉으로 오르는 도봉계곡에는 크고 작은 9개의 암자가 행렬을 이루고 있다. 시원하고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다가 작은 소를 이루고 다시 청아한 물소리를 내며 암반 속으로 파고 들었다가 바위 틈으로 용솟음치며 계류를 만든다. 점점 불어나는 물은 주택가를 지나 중랑천으로 합류하고 이는 다시 한강 물줄기를 이룬다.

이번 산책 코스는 도봉계곡을 따라 자리한 9개의 가람을 모두 둘러보고 회귀하는 루트다. 워킹 경로를 지도에 표시하면 아래 그림과 같다. 1호선 도봉산역에서 출발하여 광륜사를 거쳐 천축사에 들렀다가 천진사로 내려와 도봉사를 구경하는 노선이다. 이 산책길에서 가장 빼어난 경치를 보여주는 곳은 천축사와 마당바위이며 도봉사에서는 연리지를 살피면서 병풍처럼 서 있는 산 봉우리를 감상할 수 있어 근사하다.
 
가장 풍광이 뛰어난 천축사와 마당바위에서는 매년 해맞이 행사가 열린다.
▲ 도봉천 계곡 따라 진행하는 산책길. 가장 풍광이 뛰어난 천축사와 마당바위에서는 매년 해맞이 행사가 열린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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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의 시작은 도봉산역 1번 출구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길을 따라 진행한다. 음식점과 등산용품을 파는 길을 따라 오르면 계곡을 가로지르는 통일교 우측으로 광륜사에 다다른다. 사찰 앞에 서울시 보호수 10-5호로 지정된 느티나무가 산책객을 반기고 있다. 수령이 250년 정도에 이르는 노거수로서 높이는 20m, 둘레는 약 4m에 다다른다.

옛 이름은 만장사이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절터에 신정왕후(神貞王后) 조씨가 아비인 조만영을 생각하며 지었다고 전한다. 조대비라고도 불리웠던 신정왕후는 순조(純祖)의 장남인 효명세자(孝明世子)와 혼인하여 헌종(憲宗)을 낳는다. 안동 김씨를 견제하고자 했던 순조는 처가인 풍양 조씨 일파를 대거 기용하며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긴다.
 
▲ 도봉천 계곡 따라 원없이 암자 구경합니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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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의 젊은 나이에 국정을 맡아 개혁정치를 추진하던 효명세자가 돌연 별세하고 순조 마저 3년 뒤 서거하자 헌종이 왕위에 오른다. 세도 정치를 타파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던 헌종은 후사 없이 21세의 젊은 나이로 갑작스레 승하한다. 뒤를 이은 철종마저 혈육을 남기지 못하고 운명하자 신원왕후가 흥선군 이하응의 차남을 양자로 들이니 그가 바로 고종이다.

53살 나이의 도봉산장

광륜사를 나와 도봉서원터 방향으로 길을 나선다. 서원교 앞 이정표에서 천축사 방향으로 30분 정도 오르면 도봉산장(도봉대피소)이 나온다. 자그마한 돌집에 흥미가 생겨 구글링을 해보니 MBN <특종세상>에 소개된 53살 나이의 산장이다. 1970년대 정부에서 전국에 만든 35개 산장 중 하나이며 이제는 수도권에서 민간인이 거주하며 등산객을 맞이하는 유일한 장소라고 한다.
 
50년간 도봉산장을 지키고 있다.
▲ 산장지기 조순옥 할머니. 50년간 도봉산장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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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관리하는 이가 없었기에 폐가 수준이었으나 故 유용서씨가 관리자를 자처하며 이곳에 터를 잡았다. 산중 생활을 반대하던 아내 조순옥씨가 어렵게 합류하면서 조난 당한 등산객과 부상당한 이들을 구해냈다. 유용서씨가 1993년에 별세한 뒤에는 84세의 조순옥 할머니가 지금껏 산장지기를 하고 있다. 켜켜이 쌓인 세월 속에 풍로를 닮은 38년 된 커피 그라인더가 그윽한 향기를 갈아낸다.

샹그릴라 들머리 같은 천축사 입구

도봉산장에서 조금만 더 발품을 팔면 천축사가 나온다. 계곡 옆으로 난 소로를 따라 올라 모퉁이를 돌면 족히 100여기나 되는 허리 높이의 청동불상이 속세를 굽어보고 있다. 다시 한 구비 돌아 오르면 S자 곡선을 그리며 천축사로 들어가는 입구가 시야에 들어오며 그 뒤로 선인봉이 우뚝 솟아있다. 1937년 개봉한 영화 <잃어버린 지평선>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다.

원작은 제임스 힐턴(James Hilton)의 동명 소설 <로스트 호라이즌>(Lost Horizon)이며 시대적 배경은 아마도 신해혁명으로 추정된다. 궐기한 중공을 피해 다섯명의 영국인이 비행기로 탈출을 하던 중 티베트 고원에 불시착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일군의 무리에게 구조되어 티베트의 이상향 샹그릴라로 들어가는데...
 
선인봉 바로 아래에 자리한 천축사.
▲ 천축사. 선인봉 바로 아래에 자리한 천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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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8년 태조 이성계는 왕위를 차남인 정종에게 물려주고 함흥으로 떠난다. 왕자의 난을 일으킨 훗날의 태종 이방원이 동생들을 살해하자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43화(고라니 뛰노는 대모산 헌릉 인릉)에서 살펴봤다. 함흥에서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는 중에 천축사에서 100일 기도를 하고 절을 중수케 하였으며 이후로도 몇 차례 불사를 통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경내 위쪽으로 돌아가 산신각에 오르면 붉은 연등 사이로 도봉구와 노원구, 수락산 일부를 굽어볼 수 있다. 대웅전 뒤편 옥천석굴은 천축사의 옛 이름인 옥천암의 유래가 된 셈이다. 이성계가 이곳에서 기도를 하였다고 전하며 석조약사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경내에서 오른쪽 소로길을 타고 가면 무문관이 나오며 현재는 템플스테이 체험을 하는 곳으로 운용되고 있다. 
 
천축사와 함께 매년 해맞이 행사가 열리는 장소.
▲ 마당바위에서 바라보는 경치. 천축사와 함께 매년 해맞이 행사가 열리는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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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축사 바로 위쪽에 마당바위가 있으니 이번 산책길에서 가장 풍광이 좋은 지점이다. 도봉탐방지원센터에서 이곳까지는 대략 2시간 정도가 소요되며 경관이 근사하여 매년 해맞이 행사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서로의 결을 부둥켜안은 연리지

마당바위에서 내려와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 방향으로 진행하면 승락사(성도원)에 다다른다. 연혁을 보니 신정왕후를 모셨던 김상궁과 당시 천축사 주지였던 김능성이 고종황제의 재가를 받아 조대비의 위패를 모시고자 창건되었다. 1920년에는 재단법인을 설립하고 불교 양로원으로 운영하며 한국전쟁으로 갈 곳 없는 노인들을 받아들였다고 전한다. 현재는기도 도량으로서의 역할만 하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서 삼거리교를 건너면 작은 암자인 성불사를 거쳐 천진사를 둘러볼 수 있으며 직진하면 구봉사를 지나 금강암으로 내려갈 수 있다. 먼저 성불사는 1968년 현대건설 일가의 도움을 받아 극락전을 세웠다. 천진사는 단군을 모시는 작은 사찰로서 몇 차례의 중창을 거쳐 소박한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자리한다. 가장 위쪽인 천불전에 올라 가람을 굽어보면 우측으로 상당히 큰 단군상이 한 눈에 들어온다.
 
두 그루의 나무가 부둥켜 안고 커간다.
▲ 도봉사 연리지. 두 그루의 나무가 부둥켜 안고 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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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사에는 커다란 금불상이 서 있으며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오르면 범종각이 나온다. 금강암은 비구니 사찰로서 아담하면서도 정갈한 느낌을 선사한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계속 걸음을 내딛다가 서원교 앞에서 우측으로 빠지면 숲길을 지나서 도봉사가 지척이다. 대웅전 앞의 뿌리탑은 부처의 진신사리 3과를 머금고 있으며 그 옆으로 단풍나무 연리지가 서로의 결을 부둥켜 안고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이어지는 능원사의 전각은 화려한 단청 기반에 금칠로 꾸며져 있어 멀리서 보더라도 시선을 잡아끄는 가람이다. 먼지 한 톨 없어 위화감이 들 정도의 말끔하게 깔린 바닥돌을 따라 들어서면 다른 사찰과는 달리 대웅전 대신 용화전 현판이 걸린 법당을 마주할 수 있다.

태그:#도봉산, #천축사, #마당바위, #도봉산장, #광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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