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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면서 기분전환 할 수 있는 서울 산책로를 소개합니다. 3년에 걸친 발품 끝에 덜 알려진 장소를 전 국민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강남구 대모산 동남부에 형성된 세곡동과 율현동 일대는 아기자기하게 조성된 공원만 13곳에 이르는 지역이다. 2010년에 그린벨트가 해제되면서 조용했던 전원주택단지가 아파트 숲으로 개발되어가고 있다. 이중 율현공원은 동네 주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제법 규모가 큰 녹지공간이고 2023년에는 돌산체육공원이 개원을 앞두고 있다.

이번 산책코스는 대모산 자락을 타고 숲길로 이어지는 공원길을 걷는 루트다. 탄허기념불교박물관을 둘러보고 세곡공원으로 내려와 돌산체육공원을 거쳐 율현공원까지 이어지는 산책길로서 초행자를 위해 지도를 그려본다면 아래 그림과 같다.
 
대모산 탄허박물관에서 세곡공원 거쳐 율현공원까지 산책 코스.
▲ 세곡동 일대 산책길. 대모산 탄허박물관에서 세곡공원 거쳐 율현공원까지 산책 코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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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의 출발은 수서역 6번 출구로 나와 곧바로 대모산으로 올라도 되지만 세곡동 방향으로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2정거장 지나 쟁골마을에서 하차하는 것을 추천한다. 조금만 걷다보면 탄허기념박물관이 나오며 볕 좋은 날이면 유리창 사이로 들어오는 빛살이 따스하기 그지없다. 박물관 내외부에 각종 연등이 불을 밝히고 있으므로 들여다보는 재미가 삼삼하다.

인재 양성에 힘쓰며 불경 한글화에 매진하다

천도교 신자인 율재(栗齋) 김홍규(金洪奎)는 항일 독립운동 자금을 상해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에게 전달하는 일을 맡았다.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인쇄하여 옥고를 치뤘으나 86년이 흐른 2005년이 되어서야 건국포장을 추서받는다.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큰 병을 얻은 그였지만 한약 제조 사업으로 일군 거금을 김구 선생에게 전달하며 한민족을 위해 공헌한다.

둘째 아들 김금택(金金鐸)의 재능을 알아보고 당시 기호학파 16대 종가인 이극종(李克宗) 선생의 데릴사위로 보내어 한학을 통달케한다. 구도자의 길을 가고자 했던 젊은날의 탄허(呑虛) 김금택은 오대산 상원사 방한암(方漢岩) 선사의 명성을 전해듣고 서신 왕래를 통해 불교와 첫 인연을 맺는다.
 
▲ 대모산 자락 타고 탄허박물관 품은 세곡동 둘러보시죠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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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방한암 스님은 근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승려로 보조국사 지눌의 선사상을 계승한 인물로 추앙받고있다. 탄허는 17세에 결혼하여 자식을 둔 상태였으나 방한암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22세에 출가한다. 상원사에서 15년 동안 수행정진하며 여러 승려들에게 불경을 강의하는 한편 번역에 힘을 쏟는다.

43세 때 월정사 조실로 추대되어 오대산 수도원을 설치하고 불교와 사회전반에 걸쳐 인재를 양성하는데 매진한다. 아울러 조계종 초대 중앙역경원 원장을 지내면서 팔만대장경의 한글화 작업에 몰두한다. 그의 나이 55세에 이르러서는 신화엄경합론(新華嚴經合論)의 10년에 걸친 한글 번역을 마친다.

원전 화엄경 80권은 무려 11조 글자에 이르는 방대한 양으로써 원고지로는 6만 여 장이나 되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쉼 없는 정진으로 다수의 경전을 번역하여 간행하였으며 1982년 70세로 입적한다. 이듬해 국민훈장이 추서되었고 2010년에는 탄허기념불교박물관이 자곡동에 세워진다.
 
눈요깃거리 풍부한 각종 연등이 내외부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 탄허기념불교박물관 눈요깃거리 풍부한 각종 연등이 내외부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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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 연등이 박물관 내외부 자리하고 있다.
▲ 연등. 형형색색 연등이 박물관 내외부 자리하고 있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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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 스님의 노장철학 강의는 오늘날까지도 세인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과거 중학교 교과서에 '몇 어찌' 수필로 등장하는 양주동 박사와 함석헌 선생도 스님의 장자 강의 수강생이었다. 한문이라면 스스로를 무불통지라 여겼던 양주동은 탄허 스님의 강의를 듣고 오체투지로 절을 했다고 한다. 다음은 한겨레 '오대산 탄허선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자칭 국보로 거칠 것이 없던 양주동은 탄허보다 10년 연상으로 오대산에 와서 탄허에게 절을 받았다. 그러나 일주일 뒤 장자 강의가 끝난 뒤엔 오체투지로 탄허에게 절을 했다. 동국대로 돌아온 양주동은 강의 시간에 "장자가 다시 돌아와 제 책을 설해도 오대산 탄허를 당하지 못할 것" 이라고 했다. - 조현 기자, 한겨레(2005)

찾는 이가 적어 호젓한 산책길

박물관을 나와 대모산 자락을 타고 올라보자. 완만한 경사를 따라 녹음이 짙어간다. 이쪽 방면은 찾는 이가 적어 지난 겨울의 낙엽이 아직까지도 수북히 쌓여 있어 바스락거리며 산책객을 유혹한다. 중간쯤에 이르러 이정표를 따라 숲자락근린공원으로 하산하면 세곡공원을 거쳐 돌산체육공원 너머로 율현공원까지 갈 수 있다.
 
선사시대 유물이 출토되고 있는 지역.
▲ 은곡마을. 선사시대 유물이 출토되고 있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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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즈막한 능선길을 조금만 걷다보면 몇 그루의 커다란 소나무가 길게 가지를 내린 은곡마을 경작지가 나온다. 완만한 구릉지를 따라 선사 시대 무덤군이 산재하고 있는 곳이다. 디지털강남문화대전에 수록된 정보를 보면 현재에도 뗀석기를 포함한 토기와 기와편 등의 유물이 수습되고 있다.

돌산체육공원으로 이어지는 아늑한 분위기의 전원주택단지는 아파트 숲에서는 느낄 수 없는 푸근함이 있다. 2023년 개장을 앞두고 공사가 진행중이라 메타세콰이어가 식재되고 있으며 축구장과 테니스 및 각종 편의시설이 세워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순환산책로를 잘 정비하면 문정동과 수서동, 세곡동 주민들이 산책하기 좋은 장소가 될 것이라 여겨진다.
 
탄천과 맞닿아 있는 율현공원의 홍수방지 제방길.
▲ 율현공원. 탄천과 맞닿아 있는 율현공원의 홍수방지 제방길.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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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 밀집한 시골길을 넘어가면 율현공원으로 이어진다. 탄천이 휘돌아가는 천변을 마주하며 조성된 연못에는 시원한 물분수가 뿜어져 나오며 한가운데에 세워진 로즈 가든에서는 오뉴월이면 장미꽃이 한껏 자태를 뽐낸다. 아직까지는 서울의 외곽지역이라 찾는 이가 적기에 호젓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탄천을 가로지르는 숯내교를 건너면 송파구 문정동과 위례동으로 이어진다.

태그:#탄허기념박물관, #세곡동, #양주동, #대모산, #율재 김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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