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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부터 경남, 제주, 전북, 서울 지역으로 이어지는 소위 ‘간첩단 사건’에 대한 수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본적 생존권을 보장 받고자 하는 시민들의 요구가 '간첩 활동'으로 둔갑됐고, 이를 빙자해 국가정보원은 진보적 단체와 활동가에 대한 공개적인 압수수색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원들은 연속기고 <또다시, 국가보안법의 그림자>를 통해 최근의 공안탄압사건의 본질에 관해 들여다 보고자 합니다.[기자말]
모든 법률은 헌법의 틀 안에서 만들어지고 작동돼야 한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헌법을 정점으로 한 법체계의 위계질서와 민주주의 체제라는 이상형 안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형법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작동했던 특별형법 국가보안법은 그 자체가 하나의 체제로, 사상과 이념, 가치를 국가가 독점한 체제로 만들었다. 국가보안법은 헌법 위의 악법이다.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헌법 위의 악법 2> (삼인 출판)

[사례①] '통일콘서트' vs. '종북콘서트'
 
2014년 12월 9일 신은미 작가와 황선씨가 대구동성아트홀에서 열린 북한어린이돕기 평화콘서트 사전 기자회견에서 콘서트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2014년 12월 9일 신은미 작가와 황선씨가 대구동성아트홀에서 열린 북한어린이돕기 평화콘서트 사전 기자회견에서 콘서트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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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됐던 사안의 당사자인 황선 전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는 재미동포인 신은미 작가와 함께 2014년 11월 각자의 북한 방문 경험을 공유하는 '통일콘서트'를 열었다. 토크쇼를 시작하자마자 언론은 앞다퉈 황 전 대표와 신 작가를 종북인사로 지목하고, 그 근거로 사생활을 함부로 거론하기도 했다. 또 그 콘서트에서 '북한이 지상낙원'이라는 말이 나왔다면서 허위사실까지 유포했다.

여론의 종북몰이가 이어지자, 한 고교생이 사제 폭탄을 만들어 행사장에 투척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때맞춰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소위 종북콘서트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우려스러운 수준에 달하고 있다"면서 피해자인 그에게 책임을 돌렸다.

2015년 2월 황 전 대표는 국가보안법 제7조 1항과 5항 위반으로 '통일콘서트'를 시작한 지 3개월만에 전격 구속 기소됐다. 7년여만인 2021년 6월, 그는 무죄확정판결을 받았지만 5개월이나 구속돼 있었던 시간은 회복할 길이 없다. 3개월여의 수사과정에서 매일 수십 건씩 나오는 왜곡 보도에 그는 온 나라에 '종북인사'로 낙인찍혔지만, 무죄 확정 소식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여전히 황 전 대표는 자신의 힘으로는 헤쳐나오기 어려운 '사회적 배제'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다.

피해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함께 콘서트에 참여한 신은미 작가 역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뒤 강제출국 당했다. 2013년 상반기 우수문학 도서로까지 지정된 신 작가의 북한기행문은, 이 사건 후 지정이 취소됐다. 헌법재판소가 2021년 9월 30일 '2015헌바349' 결정으로 신 작가에 대한 위헌적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해줬으나, 한동안 입국이 금지됐다.

신 작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한 영화 감독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등재돼 고발과 사찰을 당했고, 작품활동에 대한 지원도 전면 중단됐다. 이에 대해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았으나, 방해당한 창작의 시간은 되살릴 수 없었다. 

[사례②] 동료 사업 도왔을 뿐이었는데

코스닥 상장사 CEO가 꿈이었던 40대 가장이 2018년 8월 전격 체포됐다. 단 한 번의 조사도 없이 체포된 그에게 적용된 죄명은 '국가보안법위반 편의제공, 금품수수, 회합통신'이었다. 대학생 때 학생신문 기자를 했던 것 이외에 특별한 사회활동도 없고, 자신의 사업과 더불어 동료의 사업을 도와주고 있었을 뿐인 그에게 긴급체포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본인은 북한 사람을 만난 일도, 이메일을 주고  받은 적이 없다고 얘기했지만 소용없이 그는 무시무시한 죄명으로 구속됐다.

그런데 정각 그가 기소될 때 국가보안법 위반 회합통신죄는 죄명에서 없어졌다. 너무나 명백하게 그는 북한 사람들과 만나거나 통신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쉽게 밝혀질 명백한 사안이었지만 검사는 그에 대한 공소를 취소하지 않았고, 그는 기소된 나머지 죄에 대해서도 그는 2022년 1월 1심에서 전부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1심 재판이 계속되는 3년 6개월동안 그는 자신이 꿈을 갖고 진행하던 사업에 복귀할 수 없었다. 결국 지방으로 이사까지 하게 됐다. 검사는 아무 증거가 없다는 1심 판결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항소를 했고 현재 항소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5년동안 아무도 그에게 사과하거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헌법재판소의 정의로운 위헌 선고가 필요하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022년 9월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제2조 1항과 제7조 1·3·5항의 위헌 여부 심리 공개변론 시작에 맞춰 대심판정에 앉아 대기하고 있다.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이미 일곱차례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는 헌재가 공개변론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022년 9월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제2조 1항과 제7조 1·3·5항의 위헌 여부 심리 공개변론 시작에 맞춰 대심판정에 앉아 대기하고 있다.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이미 일곱차례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는 헌재가 공개변론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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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9월 헌정사상 최초로 헌법재판소에서 국가보안법 일부 조문의 위헌성을 다투는 공개변론이 열렸다. 법무부는 시종일관 '기소도 엄격하게, 법원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어서 남용의 위험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사례들처럼 국가보안법은 '존재' 자체가 위헌적이다. 

국가보안법은 '처음부터' 말과 생각을 처벌하기 위한 법이다. 형법도 없던 시절,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졌던 구 형법이 여전히 적용되고 있었음에도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던 이유는 오직 형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평화적' 단체 구성이나 가입, 말과 생각을 처벌하기 위해서였다.

현재에도 다른 법률로 처벌할 수 없는 것의 핵심은 국가보안법 7조 찬양·고무, 이적표현물 소지 등이다. 명백·현존한 위험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표현'이나 '생각'을 처벌할 수 있는 게 국가보안법이다. 법 자체가 이렇다 보니 똑같은 얘기를 해도 그것이 처벌되는 행위인지 아닌지 국민들은 알 수가 없다. "북한에 휴대폰 사용인구가 많아지고 있다"는 말을 똑같이 하더라도 '누가' 말하는지에 따라 처벌도 가능한 것이 국가보안법이다. 전문 법관조차도 처벌 여부에 대한 해석이 불일치할 정도이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그 문언도 불명확한 국가보안법은 위헌이다.

무엇보다 국가보안법에 대한 위헌 선언 없이는 인권침해 피해자의 실효성 있는 피해 회복이 불가능하다. 위 두 사례에서 보듯이 그들은 현실의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무차별적인 혐오와 모욕에 대해서,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삶의 궤도를 완전히 바꿔야 했던 것에 대해선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전히 '종북'인사로 낙인찍혀 각종 차별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고, 계기가 있을 때마다 언론에 오르내리며, 의견을 밝힐 때마다 고발과 수사의 위험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믿는 신화 때문이다. 

이런 위헌적 법률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책무를 다하길 바란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의 문제는 기본권과 헌법위배 여부이기 때문에 다른 기관이 해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행히 우리는 기본권의 최후 보루인 헌법재판소에게 공개적으로 깊이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 누군가를 감옥에 보내고, 누군가의 말을 막고, 누군가의 생각을 해부하는 국가보안법 제7조가 과연 이 시대의 보편적 도덕률인지.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문화적으로도 영향력 있는 나라가 되고, 실질적인 민주화를 이뤄냈다. 그리고 법치주의 역시 놀라울 정도로 성숙했으며, 과거에는 상상 밖의 일이었던 새로운 과제들이 해결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도 국가보안법 제7조를 통해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인지.

부디 늦지 않게 헌법재판소가 바로 지금,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위헌 선언을 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2022년 9월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국가보안법(2조 1항과 7조 1항, 3항, 5항 등) 위헌심판 공개변론이 있기 전,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소속 단체 회원들이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2년 9월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국가보안법(2조 1항과 7조 1항, 3항, 5항 등) 위헌심판 공개변론이 있기 전,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소속 단체 회원들이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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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하주희 변호사는 국가보안법 제7조 위헌소송 대리인단에 참여하고 있다. 이 글은 2022. 9.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국가보안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사건(2017헌가27)의 공개변론 최후진술을 정리 수정한 것이다.


태그:#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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