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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부터 경남, 제주, 전북, 서울 지역으로 이어지는 소위 ‘간첩단 사건’에 대한 수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본적 생존권을 보장 받고자 하는 시민들의 요구가 '간첩 활동'으로 둔갑됐고, 이를 빙자해 국가정보원은 진보적 단체와 활동가에 대한 공개적인 압수수색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원들은 '연속기고 <또다시, 국가보안법의 그림자>'를 통해 최근의 공안탄압사건의 본질에 관해 들여다 보고자 합니다.[기자말]
국정원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지난 1월 18일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사무총국 한 간부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압수수색을 시도하고 있다.
 국정원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지난 1월 18일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사무총국 한 간부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압수수색을 시도하고 있다.
ⓒ 사진제공 노동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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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과 경찰, 그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

지난 2022년 11월 9일 창원의 진보단체 활동가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2023년 1월 18일 민주노총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그리고 지금까지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노조 및 진보단체 활동가들에 대한 전방위적 압수수색 및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근본적인 문제는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이 지금까지도 폐지되지 않은 데 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와 수사기관이 국가보안법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구태 역시 큰 문제다.

국정원과 경찰은 수 년간 조사해왔다는 이번 사건들을 굳이 지금까지 묵혀뒀다가 '한 번에 묶어서' '하필이면 지금' 터뜨리고 있다. 수사를 하는 것이야 수사기관의 권한이고 기소는 검사의 권한이라지만, 이러한 '우연 아닌 우연'을 마주하자니 권위정부 시절 정권의 위기마다 구원투수가 돼줬던 공안몰이와 북풍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국가보안법 사건들은 화물연대 파업 등에 대한 강경대응으로 지지율을 올린 현 정부가 노동개혁 추진에 반대하는 민주노총을 부패·기득권집단으로 규정하고 공세를 지속해온 맥락과 결코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게다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경찰 이양, 헌법재판소에서 심리 중인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과 제5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등 공안기관의 생명연장과 직결된 중대한 이슈들도 눈 앞에 두고 있는 지금이기에, 무차별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국정원과 경찰의 동기가 더 의심될 수밖에 없다.

국정원과 경찰의 심각한 인권 침해

최근 민주노총 및 진보단체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의 수사 및 압수과정에서는 일련의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다.

(1) 수사관할 이송

창원 지역의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피의자들은 경남에 주소지를 두고 가족과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지난해 수사기관이 최초 제시한 범죄혐의사실에 따르면 이들의 '범죄지' 역시 대부분 경남이었다. 따라서 지난해인 2022년 실제 피의자들에 대한 수사는 경남에서 진행됐고, 피의자들의 압수수색 영장 청구와 발부도 각각 창원지검과 창원지법에서 이뤄졌다. 따라서 피의자들도 자신의 방어권 행사를 위해 경남지방변호사회에 등록되어 있는 변호사들을 선임했다.

그런데 2023년 1월경 수사기관은 갑자기 피의자들에 대한 수사 관할을 창원지검과 경남경찰청에서 서울중앙지검과 서울 소재 국정원본부로 이송했다. 이에 피의자들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구치소에 구금됐다. 피의자들과 변호인들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을 상대로 수사관할 이송 위헌확인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헌법재판소는 '기본권 제한의 문제라고 볼 수 없다'며 각하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형사소송법 제4조 제1항은 "토지관할은 범죄지, 피고인의 주소, 거소 또는 현재지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창원 지역의 피의자들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로 느닷없이 압송됐다.

서울과 창원과의 물리적 거리를 감안한다면 이들이 가족들에 대한 접견을 물론 이 사건을 지금까지 담당해온 변호인을 접견하는 것에도 심각한 어려움이 따르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따라서 이러한 수사관할 이송은 피의자들에게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줄 뿐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변호인조력권 및 방어권을 현실적으로 심각하게 침해할 수밖에 없다.

피의자 대책위는 수사기관이 지금까지 수사해오던 관할을 별다른 이유 없이 바꾼 이유에 대해 "종북몰이의 정치적 효과를 증폭시키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 언론과의 접근성이 좋고, 더 큰 여론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서울 지역으로 수사 관할을 이송한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는데, 그 합리적 의심이 사실이 아니길 바랄뿐이다.

(2) 강제인치

제주 지역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의 피의자들은 2023년 2월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 및 구속됐다. 그런데 위 피의자들은 진술거부권을 행사할 것임을 밝히고 실제로도 진술거부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은 계속적으로 피의자들을 강제 인치하고 조사를 진행했다.

본디 법률상 인치란 신체의 자유를 구속한 자를 강제로 특정장소에 연행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형사소송법 제69조는 "본법에서 구속이라 함은 구인과 구금을 포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해 구속된 피의자들은 구치소에 구금 및 수사를 위한 구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치'도 어디까지나 헌법과 법률이 보호하는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헌법 제12조 제2항은 진술거부권을 기본권으로 보호하고 있고 형사소송법 제283조의2, 제244조의3 또한 진술거부권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의 유불리를 떠나 그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그런데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사를 명백히 밝히고 실제로도 진술을 거부하는 피의자를 반복적으로 인치해 진술조사를 계속한다면 그것은 현실적으로 '진술강요'가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미 신체가 구속돼 심리적으로 위축될 대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속 피의자라면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반복된 인치에 피의자는 '무엇가를 말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수사기관의 반복적 강제인치는 헌법이 보호하는 진술거부권을 형해화하는 것이라 할 것이며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이다.

(3) 피의사실 공표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민주노총 및 진보단체 활동가들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관련 수사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수사기관의 위법행위 중 하나는 바로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다.

형법 제126조는 검찰, 경찰 그밖에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 등이 공소제기 전에 피의사실을 공표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국가정보원직원법 제17조는 직무상 비밀을 누설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법상 피의사실공표죄는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에 근거한 것으로, 수사 중이거나 입증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공표함으로써 부당한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함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 수사기관은 피의사실 공표를 통해 수사하기 부담스러운 권력자를 조사할 때는 여론을 등에 업어 정치적 부담을 줄이려는 데 사용하고, 정권과 적대되는 세력의 경우에는 부정적 이미지를 덮어 씌어 재판에 앞서 대중들에게 '마녀의 낙인'을 찍는 데 사용한다.

그런데 70년 분단체제의 대한민국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피의사실은 일반적인 범죄 피의사실과는 그 의미와 무게감에서 엄청난 차이를 갖는다. 분단체제는 기본적으로 한 세상에서 함께 공존할 수 없는 '적과 아'를 상정한다. 그렇기에 '적을 이롭게' 하는 존재 역시 '적'이며, 그러한 적은 이 세상에 함께 공존할 수 없다.

그리고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 만든 법이 바로 국가보안법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피의사실의 공표는 단순한 범죄사실의 공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종교공동체 내에서의 '이단의 낙인'과 같은 힘을 가진다. 또한 피의자가 속한 공동체 내에서의 모든 인간관계의 단절 혹은 '사회적 죽음'을 의미한다.

국민의 신뢰와 권위를 갖는 국가기관이 이러한 피의사실을 노출시키는 것은 중대한 범죄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수사기관이 이를 매우 의도적으로 이용하고 있고 보수언론에서는 이미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나 횡행하던 '간첩 조직도'까지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지경이니 최근 국정원과 경찰의 피의사실 공표범죄의 심각성은 말할 것도 없다고 할 것이다. 국정원과 경찰은 국민들이 준 권력을 이용하여 입증되지 않은 피의사실로 사회적 살인 및 정식 재판 전에 소위 여론재판을 하는 만행을 중단해야 한다.

글을 마무리하며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은 정치적 목적으로 오래전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졌어야 할 국가보안법을 무리하게 적용하려다 보니 발생하고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각고의 노력으로 일궈낸 인권적 원칙이 침해되고 기본권을 보호하는 절차들까지 붕괴돼선 안 된다. 국정원 및 경찰은 국민의 국가기관으로서 더 이상 국민의 소중한 기본권 및 인권 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헌법과 법률을 준수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임대환 변호사는 법무법인 향법 소속의 변호사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가보안법 폐지 TF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공안탄압, #국가보안법, #국가정보원,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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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연구조사, 변론, 여론형성 및 연대활동 등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1988년에 결성된 변호사들의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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