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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8개 시ㆍ도 경찰직장협의회장단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안전부 자문위원회의 경찰국 신설 권고안에 대해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훼손하는 행위이다”며 “일련의 행위를 당장 멈추라”고 촉구했다.
 전국 18개 시ㆍ도 경찰직장협의회장단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안전부 자문위원회의 경찰국 신설 권고안에 대해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훼손하는 행위이다”며 “일련의 행위를 당장 멈추라”고 촉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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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경찰청이 발표한 치안감 인사가 2시간 만에 번복된 사태를 두고 책임 공방이 일어났지만, 지금은 경찰 측에 불리한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23일 윤석열 대통령은 지방경찰청장급 인사 발표가 번복된 이 사안을 '국기 문란'으로 규정했다. 경찰청을 겨냥한 발언이 대통령실에서 나왔기 때문에 경찰이 수세 국면으로 몰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런 흐름이 계속 이어지다 보면, 경찰에 대한 정권 혹은 중앙정부의 통제가 한층 강화되는 쪽으로 이번 사안이 귀결되기 쉽다. 경찰에 대한 정권 차원의 통제책 마련에 주력하는 윤석열 정부의 의중이 관철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

경찰청이 독립한 1991년에도 그렇고, 경찰과 검찰의 수사권이 조정되는 지금도 그렇고, 이 사안을 대하는 중앙정부의 태도에는 중대한 문제점이 있다.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경찰이 강해지는 게 아니라 정권 혹은 중앙정부가 약해지는 것이라는 점이다. 1991년 당시의 노태우 정부와 지금의 윤석열 정부는 이를 중시하지 않거나 외면하고 있다.

경찰청 독립의 계기가 된 1987년 6월항쟁 당시, 국민들은 전두환 정권뿐 아니라 경찰에도 맞섰다. 그 전에도 그렇고 그 후에도 그렇고, 독재나 노동자 탄압에 맞서 거리로 몰려나간 시민들이 일차적으로 맞닥트린 상대는 경찰 혹은 전경이었다.

시위 현장에서 국민에게 폭력을 가한 것은 바로 그들이었다. 그래서 경찰에 대해 적대감을 갖기 쉬운데도 당시 국민은 경찰 독립을 지지했다. 그 결과물이 1991년 8월 1일 경찰청 독립이다.

경찰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으면서도 경찰 독립을 지지한 것은, 국민들이 바라는 핵심이 경찰권 강화가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였을지라도, 국민들이 실제로 바란 것은 중앙정부의 약화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중앙의 국가권력이 비대해지면 국민들의 인권은 물론이고 일상도 억압받게 된다는 보편적 공감대가 국민들의 경찰 지지라는 아이러니한 현상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국민들은 정권 혹은 중앙정부와 경찰을 떼어놓고자 경찰 독립을 지지했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신여권인 민주정의당(민정당), 구여권인 신민주공화당, 야권 주류인 통일민주당의 1990년 3당 합당으로 생겨난 민주자유당(민자당) 정권은 그 같은 국민적 열망을 외면했다. 국민들과 일선 경찰들의 여론에 떠밀려 경찰청을 독립시키면서도, 국민 차원이 아닌 정권 차원의 경찰 통제에만 급급했다. 경찰이 정권으로부터 떨어져나가 정권이 약화될 가능성을 일차적으로 우려했다.

민자당 정권이 경찰력이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게 아니라 경찰에 대한 정권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점은, 경찰청 설치 직전에 있었던 전투경찰(전경) 폐지 논의에서도 나타난다. 국민들이 전경제도 폐지를 요구하는데도 민자당은 이를 놓지 않으려 했다. 전경 진압부대를 앞세워 정권을 사수하는 데 익숙했던 관성이 그들을 완고하게 만들었다.

1991년 5월 4일자 <조선일보> 기사 '전경 운용 개선키로'에 설명됐듯이, 민자당의 입장은 '제도 개선은 가능하지만, 폐지는 불가하다'였다. 국민들의 시위 문화가 폭력적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기사에 따르면 김윤환 민자당 사무총장은 "화염병·폭력 시위가 난무하는 마당에 전경대 설치법의 전면 재검토나 사복체포조의 전면 해체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이와 더불어 그가 내놓은 또 다른 발언이 있었다. 5월 3일 발행된 <한겨레> "'전경 동원이 군대 나서는 것보다 낫다' 김윤환 총장"에 소개된 "대간첩작전이 전경 본연의 임무이지만, 군대가 나오는 것보다는 낫다'는 발언이 그것이다.

표면상으로는 폭력적 시위문화에 맞서려면 전경이 필요하다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속뜻은 '정권 안보를 위해서는 군대도 동원할 수 있지만, 군대보다는 경찰을 동원하는 편이 파장을 덜 낳는다'였다. 전경제도에 대한 이 같은 집착은 민자당 정권의 경찰 통제 작업의 의도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짐작케 할 만하다.

불순한 의도로 경찰 통제망을 구축했기 때문에 민자당 정권은 이러저러한 비판들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무부장관을 통해 경찰을 통제할 목적으로 지휘감독규칙까지 만들었다가 역풍이 확산되자 "검토를 위해 만들어본 시안에 불과하다"며 발을 빼야 했다. 또 지금의 '행정안전부 경찰국'와 다를 바 없는 '내무부 경찰국 또는 치안국'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가 역시 반발을 자초했다.

경찰을 자기편에 묶어두는 데 주력하는 태도는 일선 경찰관들을 갑갑하게 만들었다. 민주화 열기에 힘입어 경찰조직이 독립하게 된 상황에서까지 자신들을 옥죄는 정권의 태도에 대해 일선 경찰관들도 불만을 터트렸다.

경찰청 발족 2일 전에 발행된 7월 30일자 <한겨레> "일선 경찰들의 목소리 '지휘·감독 받는 처지 여전' 회의적"에 따르면, 서울 청량리경찰서 형사계 경찰관은 "경찰위원회가 발족돼 주요 사항을 의결하게 됐으니, 예산 확보 등을 통해 근무 조건은 어느 정도 개선되리라 본다"면서도 이렇 게 우려를 표시했다.

"외청으로 독립했다 하더라도 치안은 내무부에, 작전은 군에, 경호 경비는 청와대 경호실에, 수사는 검찰에 묶여 지휘·감독을 받아야 하는 처지는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경찰청이 독립된 뒤에도 청와대·내무부·검찰·군대에 의한 경찰 통제망이 여전히 촘촘하다는 점을 지적한 발언이다. 경찰에 대한 견제 장치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군인 출신 대통령이 집권하던 당시만 해도 청와대와 내무부·검찰·군대의 밀착이 공고했으므로 촘촘한 통제망을 갑갑해 하는 정서도 생겨날 만했다고 볼 수 있다.

분리되는 권력은 시민사회와 지방으로 흘러야

민자당 정권이 경찰 통제에 지나치게 급급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점이 있다. 종래 관행에 따라 '내무부를 통한 경찰 통제'를 답습하면서도 이 시스템에 담긴 모순을 제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사실이 그것이다.

내무부는 치안이 아니라 지방행정을 담당하는 곳이다. 경찰청 독립 3주 전인 1991년 7월 8일부터 시행된 정부조직법 개정안 제31조는 "내무부장관은 지방행정·선거·국민투표 및 민방위에 관한 사무를 장리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를 감독한다"고 규정했다.

경찰청은 지방행정을 담당하는 곳이 아니라 치안을 담당하는 중앙 관청이다. 경찰청을 합리적으로 견제하고자 했다면, 경찰 조직과 유기적 조화를 이루는 중앙 부서를 상급 기관으로 지정하거나 그런 기관을 새로 만들어야 했는데도, 민자당 정권은 경찰청을 장악하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아무 데나' 경찰청을 소속시키는 기존 관행을 그대로 답습했다.

이에 대한 불만이 경찰관들 사이에서도 터져나왔다. 1991년 7월 5일자 <경향신문> "'내 손 안에' 경찰청 '벗어나고파'"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내무부와 경찰청의 경우 이 같은 유기성이 없고 업무상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게 경찰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이 관계자는 더욱이 내무부는 지방행정관청이고 경찰청은 국가행정기관인데 국가기관이 지방행정관청의 지휘·통제를 받는 것은 비논리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내무부가 무슨 근거로 경찰의 상급 기관이 되느냐는 의문이 존재했다는 것은 내무부의 지휘통제를 수긍하지 못하는 정서가 경찰 내부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합리적 방법으로 경찰을 통제하고자 했다면 이런 모순이나 의문에 호응하기 위한 노력을 보였어야 했는데도, 민자당 정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경찰을 장악하는 데만 치중했기 때문에, 그런 데까지 주의를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권의 경찰 통제 시도가 1991년은 물론이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제가 되는 것은, 정권의 태도가 이 사안의 본질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경찰이 너무 강해져서도 안 되지만, 국민들이 경찰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경찰을 정권 및 중앙정부와 떼어놓음으로써 국가권력을 합리적으로 배분하기 위해서다. 이로 인해 중앙에서 분리되는 권력은 시민사회와 지방으로 흘러가야 한다. 이런 시대정서를 외면하고 경찰을 중앙정부에 묶어두려 하기 때문에 1991년뿐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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