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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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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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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규제 완화와 자율성 강화.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방향의 핵심 화두다. 기획재정부의 '한눈에 보는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 주요 내용'의 앞머리에도 "민간·기업·시장 중심 경제 운용으로 경제 활력 제고, 저성장 극복 기틀을 마련하겠다"라고 써놨다. 17일 윤 대통령은 '기업을 뛰게 해 시장 메커니즘이 역동적으로 돌아가는 게 중산층과 서민에게 도움이 된다'는 낙수효과까지 언급했다.

윤 정부는 지금의 경제위기 원인 중 하나를 민간기업의 투자 부진에서 찾고 있다. 그래서 "기업 투자 확대·일자리 창출" "기업 투자 및 일자리 창출에 대한 세제·금융 인센티브 보강"에 중점을 두고 있다.

국가가 반드시 신경쓰지 않으면 안 될 '일자리 창출'을 '기업 투자' 바로 뒤에 배치했다. 기업 투자 결과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사고방식을 읽을 수 있다. '국가 역할'보다 '기업 역할'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의 경제관이 그대로 드러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이 있었던 지난 5월 하순, 재벌 대기업들은 대규모 투자 계획을 앞다퉈 발표했다. 이 기간에 집중적으로 쏟아져나온 보수언론 사설들의 핵심 메시지는 '기업들의 투자 의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직 공표에 불과한 투자계획 발표를 명분으로 재벌기업들과 일부 언론들은 신자유주의적 기업 우선주의를 더 크게 강화하려는 모양새다. 지난 16일 발표된 경제정책방향도 대기업과 보수언론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선 이번 경제정책방향이 이명방 정부의 경제저책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작금의 경제상황에 대한 잘못된 진단에 기초해 있다는 점이다.

'기업'에 찍힌 방점

코로나 팬데믹과 미·중·러 패권경쟁 하의 세계 경제에서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된 것은 기업보다는 서민과 노동자다. 지금 상황은 양극화와 부익부 빈익빈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기업투자 부진을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진단했다. 원인 분석이 잘못돼 대책도 '기업'에 방점 찍혔다.

지금 상황에서는 경제적 약자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방향으로 국가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기업을 더욱 배려하고 국가 역할을 축소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기업에서 발생하는 이윤이 노동자와 사회에 공평하게 스며드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지 않기에 기업을 과도하게 배려하는 정책이 국민 전체에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의문이다.

정부가 기업을 규제하는 것은 경제적 강자와 약자의 균형을 맞춰주기 위해서다. 지금처럼 약자들이 한층 더 불리해진 상황에서 기업 규제를 대폭 완화하게 되면, 운동장은 강자 쪽으로 더욱 더 기울 수밖에 없다. 이번에 윤 정부가 내놓은 경제정책방향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아래쪽으로 대중과 중소 상공인들을 몰아넣는 격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부적절한 진단과 해법이 나오게 된 것은 윤석열 정권을 지탱하는 핵심 기반인 기득권층의 압력이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청년 시절부터 축적해온 관념의 영향도 있어 보인다.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 그 배경

윤 대통령은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적극 추천하고 있다. 지난해 7월 19일자 <매일경제> 인터뷰에서는, 경제학자인 아버지 윤기중 교수로부터 이 책을 추천받고 감명 깊게 읽었으며 무려 27년간이나 이 책을 끼고 살았다고 소개했다. 청년 시절부터 이 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청년 윤석열은 <선택할 자유>를 감명 깊게 읽었지만, 책의 저자가 어떤 이유에서 기업 자율성을 강조했는지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듯하다. 저자의 성장 환경이 <선택할 자유>에 녹아 들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1912년 뉴욕에서 출생한 프리드먼은 동학혁명과 청일전쟁이 발생한 1894년에 헝가리령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 2세였다. 프리드먼은 미국 사회의 유대인 박해 속에서 성장했다. 그가 자라날 당시 미국에서는 '유대인과 개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붙은 식당도 많고, 유대인에게 문호를 걸어잠그는 대학과 기업도 많았다.

이런 속에서 16세 때인 1928년에 아버지를 잃은 프리드먼은 주경야독을 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1929년에 대공황까지 발생해 그의 시련은 이중삼중으로 겹쳐졌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학업과 생업을 병행한 끝에 1946년 34세 나이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러트거스대학에 다닐 때 장학금을 받은 적은 있지만 그 시기에도 생활비를 버느라 동분서주했으니, 박사학위를 받을 당시 그가 느낀 감회가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 같은 인생 경험이 프리드먼에게 심어준 것은 '공짜 점심은 없다'는 교훈이다. 더불어, '국가권력은 믿을 수 없다'는 교훈이다. 그가 성장한 미국은 유대인이 경제력을 잡기 전까지는 유대인에게 매우 혹독했다. 그런 속에서 유대인 프리드먼이 살아남는 길은 국가의 공공적 성격을 믿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 신뢰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밀턴 프리드먼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영향을 미치고, 국가의 공공성을 신뢰하기보다는 기업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그의 경제철학을 낳았다. <선택할 자유>가 이런 배경에서 등장했다는 점을 충분히 감안했다면, 그 책을 30년 가까이 끼고 살아온 윤 대통령이 2022년 대한민국 경제에 그 책을 적용할 가능성은 낮아졌을 것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부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부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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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윤석열'은 프리드먼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학계 위상이 높아지는 것을 목격하며 성장했다. 1966년 한일 국교정상화 뒤에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선발돼 유학을 다녀오고 1968년부터 연세대에 근무한 윤기중 교수는 아들이 17세 때인 1977년에 한국통계학회장이 되고 아들이 30세 때인 1990년에 한국경제학회장이 됐다.

프리드먼을 좋아하는 윤기중 교수는 지금 관점에서는 진보적이라고 보기 힘들지만, 1970년대나 1980년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가 주로 활동한 시기인 박정희 정권 때는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신뢰를 기초로 한국 경제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독재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경제가 작동했다.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와 외형상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 시스템이 독재정권에 의해 작동됐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기업의 자율성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당시 상황에서는 신선하게 비칠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선택할 자유'가 봉쇄됐던 그 시절에는 프리드먼의 사상이 그런 느낌을 주기 쉬웠다.

박정희가 사라지고 전두환 정권 하에서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는 속에서, '청년 윤석열'은 프리드먼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학계에서 주목을 받는 모습을 보며 성장했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프리드먼에게 애착을 가질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프리드먼의 사상이 싹트게 된 20세기 전반의 미국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에서 프리드먼 사상이 진보적으로 비쳤던 역사적 맥락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두 시기와 맥락이 크게 다른 2022년 대한민국을 상대로 그 책을 꺼내들지는 않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16일 발표한 경제정책방향은 프리드먼이 성장할 당시의 유대인들과, 박정희 치하의 한국 기업들로부터는 분명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코로나와 세계패권경쟁으로 고통받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그저 낡은 사상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는 지지층인 기득권층의 압력에 따른 것이지만, 프리드먼에 대한 윤 대통령의 개인적 애착에도 일정 정도 기인하는 이번 경제정책방향은 지금의 경제위기에 대한 잘못된 진단에 기초한 것임은 물론이고 프리드먼에 대한 '오해'에도 어느 정도는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태그:#윤석열 정부 경제정책방향, #윤석열 경제정책, #신자유주의, #밀턴 프리드먼, #선택할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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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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