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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주살이 4년차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에 거셌던 제주 러시 현상은 다소 진정된 듯하다. 그러나 아직도 제주 이주를 꿈꾸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제주 1년 살이 혹은 1달 살이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이 글은 동아일보 기자와 세종대 초빙교수를 지내고 은퇴한 후 제주로 이주한 한 개인의 일기이자 제주에서의 생활을 소재로 한 수필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제주도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제주의 자연환경,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한국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할 제주사회를 이해하는 데 유익한 읽을거리가 되길 기대한다.[기자말]
제주로 이주해 살고 있으니 육지에서 지인들이 오거나 내가 속한 모임에서 단체여행을 오게 되면 자연스럽게 가이드 역할을 하게 된다. 처음엔 어디를 보여주어야 하나 스케줄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유명 관광지를 가자니 이미 한두 차례 가본 사람도 있고, 운동 삼아 걷기 좋은 장소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맛집 위주로 다니길 원하는 사람도 있다.

몇 차례 안내하다 보니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겼다. 입장료 내고 들어가는 유명 관광지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제외한다. 되도록 내가 가본 장소를 택하는 게 좋다. 나와 또래가 비슷한 사람들은 평소 내가 운동 삼아 다니던 숲길이나 오름에 가면 무난하다. 여기에 이시돌 목장처럼 내가 보여주고 싶은 곳을 한두 군데씩 끼워 넣는다.

이런 몇 가지 원칙에 따라 지인들과 함께 알뜨르 비행장에 갔다가 안내판에 다크 투어리즘 루트가 표시된 것을 보았다. 읽어보니 바로 내가 평소 즐겨 안내하던 곳들이었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다크 투어리즘을 실천하고 있었던 셈이다.

다크 투어리즘이란 전쟁이나 테러, 학살, 재난 등 비극적인 역사 현장을 직접 찾아가 보고 듣고 느끼는 여행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 새로운 여행 추세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한다.

제주도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오늘 육지로 돌아간 팀도 그랬다.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에 도착한 첫날, 공항 부근에서 점심을 먹은 뒤 오후 일정을 동쪽 지역으로 잡았다. 다랑쉬오름과 용눈이오름을 갔다가 제주시로 오는 길에 봉개동 제주 4·3 평화공원을 들르는 동선을 짰다.

다랑쉬오름으로 가는 도중 비가 내려 순서를 급히 변경해 가까운 4·3평화공원부터 찾았다. 우산을 쓰고 위령탑과 위령제단, 추념 광장을 둘러봤다. 특히 1만 4천여 명의 희생자 이름과 성별, 나이, 사망일시와 장소가 새겨진 각명비를 돌아보면서 모두 충격을 받은 듯했다. 모두가 숙연한 표정이다.
 
1만4천여 명의 희생자 이름과 나이 사망장소,일시가 새겨져 있다.
▲ 4.3 희생자 각명비 1만4천여 명의 희생자 이름과 나이 사망장소,일시가 새겨져 있다.
ⓒ 황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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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평화기념관으로 들어가 상설전시관을 한 바퀴 돌았다. 4·3의 발발, 전개, 결과, 진상규명 운동까지 관련 사진과 설명, 시청각 자료를 동원해 관람객들이 이해하기 쉽게 한 점이 돋보였다. 이 전시관은 갈 때마다 느끼지만 제주 4·3뿐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전반적으로 잘 정리해주고 있다. 지인들도 이구동성으로 우리 현대사를 너무 모른 채 살아왔다고 토로하며, 역사 공부 많이 했다고 좋아한다.

4·3평화공원의 마지막 코스는 기념관 1층의 카페다. 여기서 휴식을 취하면서 자연스럽게 4·3을 화제로 올렸다. 마침 카페 한쪽에 4·3 관련 책자들이 진열돼 있었다. <순이삼촌>을 비롯해 4·3을 주제로 한 다양한 책들을 볼 수 있었는데, 판매도 하고 있어 몇몇은 읽어보겠다며 책을 샀다.

원래 계획은 다랑쉬오름을 거쳐 용눈이오름으로 가는 길에 다랑쉬굴을 보여주려 했으나 비가 오는 바람에 생략해야 했다. 4·3 당시 학살의 광풍을 피해 다랑쉬굴로 숨어들었던 다랑쉬 마을 사람들이 끝내 나오지 못하고 죽어야 했던 안타까운 현장이다. 답사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둘째 날은 서귀포와 성산에서 보내고, 마지막 3일째는 대정읍 지역으로 향했다. 이곳이야말로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 대상 지역이다. 우선 송악산 아래 해안절벽 진지동굴부터 둘러봤다. 일제의 가미카제(神風) 자살특공대처럼 어뢰정을 타고 적의 군함에 충돌해 자폭하는 일본 해군의 자살특공대 기지다.

일제는 제주도 곳곳에 구축한 전쟁 시설물에 대한 미군 함정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자폭용 목제 고속정 부대인 신요오(震洋) 특공대와 인간어뢰인 카이텐(回天) 특공대를 1945년에 편성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성산일출봉과 함덕 서우봉 해안, 서귀포 황우치 해변과 모슬포 송악산 해안 등 곳곳을 파헤치고 뚫었다.

카이텐 특공대는 조정장치와 스크루를 단 어뢰를 조종사가 직접 몰고 적함을 들이받아 자폭하는 공격 부대다. 이 어뢰를 숨겨 놓기 위해 판 진지동굴이 송악산 해안에서 17개소가 발견됐다고 한다. 해안 진지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고는 모두가 혀를 내두른다. 텅 빈 동굴을 보니 단단한 암석을 뚫기 위해 동원됐을 당시 제주도 민초들이 떠오른다. 얼마나 고생했을까.
 
알뜨르 일대의 일제 전쟁시설과 섯알오름 학살터를 사진과 함께 설명해준다.
▲ 다크 투어리즘 안내판  알뜨르 일대의 일제 전쟁시설과 섯알오름 학살터를 사진과 함께 설명해준다.
ⓒ 황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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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송악산 둘레길로 이동했다. 송악산 둘레길은 그 자체로 뛰어난 관광명소다. 둘레길 초입 언덕길을 올라가다 보면 작은 식당이 나온다. 형제섬이 바로 눈앞에 보이고 멀리 가파도 마라도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이 집에서 바닷바람을 쐬며 막걸리 한잔을 걸치는 맛이 각별했다.

이 절경의 둘레길에서도 동굴 진지를 볼 수 있다. 1943∼1945년 사이에 일제가 송악산 일대에 판 크고 작은 동굴진지가 60여 군데나 된다는 것이다. 일제가 송악산을, 아니 제주도 전체를 요새화 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송악산 둘레길을 다 돌면 다시 주차장이 나오고 여기서 차를 타고 몇 분만 이동하면 알뜨르 비행장이다.

알뜨르는 '마을 아래에 있는 넓은 들'이란 뜻으로, 밭농사를 짓던 농지 겸 목초지였다. 일제는 1926년부터 중국과 일본의 중간 거점인 제주도 알뜨르 지역에 대대적인 건설공사를 한끝에 20만 평 규모의 비행장을 완공했다. 이어서 오무라 해군 항공기지를 알뜨르 비행장으로 옮기고 규모를 40만 평으로 확장했다.

비행장 건설공사에 제주도민을 강제로 동원한 것은 물론이다. 종전될 때까지 비행장 관련 면적은 80만 평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외에도 정뜨르 비행장(현 제주공항)도 일제가 전쟁용으로 만들었다.

대륙 침략을 위한 전초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알뜨르 비행장은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700㎞ 떨어진 중국 남경을 폭격하는 발진 기지가 됐다.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게 바로 전투기를 숨겨 놓던 격납고다. 그리고 실제와 똑같이 만든 '제로센(零戰)' 전투기가 격납고 안에 전시돼 있다.
 
현재 알뜨르 일대에는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일제 격납고가 19개 소에 달한다.
▲ 알뜨르 비행장에 산재한 격납고 현재 알뜨르 일대에는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일제 격납고가 19개 소에 달한다.
ⓒ 임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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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격납고가 알뜨르 비행장 곳곳에 만들어져 전투기 출격에 활용됐는데, 현재 남아 있는 격납고가 19개소나 된다. 격납고와 전투기 모형을 살펴보던 일행은 제주도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다는 반응들이다.

이날은 시간이 부족해 생략했지만 알뜨르 비행장 관제탑과 지하벙커도 남아 있다. 관제탑은 골조만 덩그러니 드러나 있고, 지하벙커는 비행대 지휘소나 통신시설로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입구가 개방돼 있어 손쉽게 지하공간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
 
알뜨르 비행장의 지하벙커는 비행대 지휘소나 통신시설로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위쪽은 지하벙커 바깥. 사진 아래쪽은 지하벙커 내부
 알뜨르 비행장의 지하벙커는 비행대 지휘소나 통신시설로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위쪽은 지하벙커 바깥. 사진 아래쪽은 지하벙커 내부
ⓒ 황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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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대정읍 상모리 6개 마을 주민들의 농지를 일제가 헐값에 강제 수용해 건설한 알뜨르 비행장 부지는 지역주민들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국방부 소유로 남아 있다. 제주도는 이 땅을 넘겨받아 평화대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알뜨르 비행장까지 왔으면 반드시 보고 가야 할 곳이 섯알오름의 일제 고사포 진지와 6·25 발발 후 자행된 예비검속자 학살 터다. 이곳에서 3.5㎞ 떨어진 백조일손지지까지 답사하면 일단 대정읍 일대의 '다크 투어'가 마무리된다(관련기사: 13화 나 여기서 죽었다'...죽은 자가 던진 검정 고무신 http://omn.kr/1ukd9).

섯알오름 학살 터를 둘러보고 나면 너나 할 것 없이 이 반문명의 극치를 보여주는 학살 만행에 치를 떨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유령처럼 배회하는 빨갱이로 낙인찍기가 얼마나 사악한 짓인가를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평화의 가치 확산하는 거점으로

송악산·알뜨르 지역은 단지 제주도만의 역사유적지 성격을 넘어 국제적인 전쟁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와 일본·중국·미국 등이 전쟁의 당사자, 가해자, 피해자로 엮인 셈이다. 이 지역이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고 평화의 가치를 확산하는 국제적 거점으로 자리매김하면 좋을 것 같다.
 
일제의 대표적 전쟁시설인 알뜨르 비행장에 세워져 평화를 기원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 평화의 소녀·비둘기상 일제의 대표적 전쟁시설인 알뜨르 비행장에 세워져 평화를 기원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 임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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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평화공원과 송악산 그리고 알뜨르·섯알오름은 제주도 다크 투어리즘의 필수코스라 할 수 있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둘러볼 곳은 도처에 흔하다. 제주도 거의 모든 지역에 일제가 파헤친 진지동굴이 흉터처럼 남아 있고, 4·3 관련 유적지 또한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공항으로 가는 일행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 여러 생각이 뇌리를 스쳐 간다. 이 아름다운 화산섬 제주도에 이렇게도 비극적인 역사 현장이 많다니, 오죽하면 다크 투어리즘이란 말까지 등장하게 되었을까.

그래도 이 아픈 역사를 잊지 않으려고 현장을 찾아 분노하고, 탄식하고, 깨우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다행스럽다고나 할까. 지금 이 시각에도 제주도의 곳곳에서 '어두운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20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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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의 언론계 생활과 7년의 대학 초빙교수 생활을 끝내고 2018년 봄 제주로 이주했다. 애월읍의 한 생태마을에 거주하면서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 그리고 제주현대사의 아픔에 깊은 관심과 연대의식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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