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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주살이 4년차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에 거셌던 제주 러시 현상은 다소 진정된 듯하다. 그러나 아직도 제주 이주를 꿈꾸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제주 1년 살이 혹은 1달 살이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이 글은 동아일보 기자와 세종대 초빙교수를 지내고 은퇴한 후 제주로 이주한 한 개인의 일기이자 제주에서의 생활을 소재로 한 수필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제주도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제주의 자연환경,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한국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할 제주사회를 이해하는 데 유익한 읽을거리가 되길 기대한다.[기자말]
생태적 삶을 추구하는 24가구가 모여 사는 곳으로 집들은 모두 목조주택 혹은 흙집이다.
▲ 이랑 마을 풍경 생태적 삶을 추구하는 24가구가 모여 사는 곳으로 집들은 모두 목조주택 혹은 흙집이다.
ⓒ 황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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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7일 드디어 제주로 이사했다. 제주시 애월읍 소길리 이랑 마을이 내가 살아갈 새 터전이다. 2015년 12월 집 건축이 완공되었으니, 2년 3개월여 만에 온전한 제주 생활이 시작된 셈이다. 그동안 주로 주말을 이용해 서울에서 왔다 갔다 한 까닭인지 새 집과 주변 환경이 낯설지만은 않다. 이미 주민등록도 이곳으로 옮겨 놓았으니 명실상부한 제주 사람이 된 느낌이다.

이랑 마을은 전국 각지에서 24가구가 모여 조성한 생태 마을이다. 자연 친화적인 생활을 하자는 취지에 찬동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집은 흙이나 나무 등 자연에서 나는 소재로만 짓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흙집 3채와 목조주택들이 들어섰다. 마을 안 길은 비포장이다. 집집마다 텃밭에 채소류 등 작물을 재배하지만 제초제나 농약은 사용하지 않는다. 집과 집 사이에 높은 담도 없다. 낮은 돌담으로 경계 표시를 하는 정도다.

마을은 해발 300m의 중산간 지역으로, 집이 들어서기 전에는 울창한 숲이었다. 자연 친화적으로 살겠다고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곳에 사람들이 와서 집을 짓고 사는 행위 자체가 자연을 훼손하는 셈이다.

최근 수년간 제주 이주 열풍이 불고 있어 제주도의 곳곳이 건축 현장이다. 맹렬한 속도로 천혜의 제주 자연이 파괴되고 있다. 이제는 무작정 개발을 하기보다는 환경보전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인구 유입 정책이 절실한 시점인 것 같다.

제주살이 유행에 편승해 혹은 부동산 개발이익을 기대하고 무작정 몰려들기보다는 제주의 진면목을 이해하고 이곳에서 의미 있는 생활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주거지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이미 제주에 이주한 사람으로서 어쩌면 이기적인 심보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150평 정도의 땅에 25평 규모의 집과 잔디밭, 꽃과 나무들 그리고 작은 텃밭이 있다.
▲ 필자가 살고 있는 목조주택 150평 정도의 땅에 25평 규모의 집과 잔디밭, 꽃과 나무들 그리고 작은 텃밭이 있다.
ⓒ 황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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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육지 사람들이 이처럼 제주로 몰려오고 있는 것일까. 나는 왜 왔으며,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 곳에서 어떤 생활을 할 것인가. 제주로 오기로 마음먹고 이곳에 드나든 지 3년여가 지났지만, 아직도 이런 물음 앞에 준비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적당히 둘러댄다.

지금껏 도시 생활만 했으니 이제는 전원생활을 하고 싶어서, 제주의 자연환경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서, 이런 곳에서 살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런 식으로 대답을 한다. 사실 맞는 말이다. 무슨 거창한 철학이나 계획이 있어 오겠는가.

굳이 그럴듯한 이유를 대자면 '새로운 삶'에 대한 동경 정도가 아닐까. 부와 권력과 인맥과 욕망, 소비의 도시 서울에서 나의 인생을 끝내고 싶지 않다는. 그러려면 공간적으로 뚝 떨어진 곳이라야 하고, 자연과 이웃한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새롭게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할 것 같았다. 그곳이 나에겐 제주였던 것이다.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적지 않게 버리고 왔다. 미처 읽지도 못하면서 끌어안고 있던 책을 절반쯤은 버렸다. 옷가지도 두터운 옷들은 버렸다. 겨울에도 따뜻한 곳이고, 체면 차려 입어야 할 일도 없을 것이니 양복이며 외투도 과감하게 줄였다. 아내와 밀고 당기며 주방 살림살이도 줄이고 또 줄였다.

대신 바다낚시 장비 일습을 구입해 가져왔다. 바다에서 낚시 해본 경험도 없는데 과욕을 부리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일단 도전해볼 심산이다. 은퇴 생활을 대비해 몇 년 전부터 시작한 서예 공부를 위한 도구들도 이삿짐 대열에 합류했다.

당장 내일부터는 제주에서의 생활계획표를 짜볼 생각이다. 정기적으로 올레길을 걷고, 한라산도 자주 오르고, 멋진 오름들을 찾아다니고, 정원을 아름답게 꾸밀 일도 해야겠고, 버리지 않고 가져온 책들도 원 없이 읽고 싶다. 이렇게 제주 생활이 시작됐다. (2018.3)
 
마을 주민들이 직접 지은 동그란 형태의 흙집으로 주민 공동자산이다.
▲ 마을 게스트 하우스 마을 주민들이 직접 지은 동그란 형태의 흙집으로 주민 공동자산이다.
ⓒ 황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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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의 언론계 생활과 7년의 대학 초빙교수 생활을 끝내고 2018년 봄 제주로 이주했다. 애월읍의 한 생태마을에 거주하면서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 그리고 제주현대사의 아픔에 깊은 관심과 연대의식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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