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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형
 최일형
ⓒ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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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가 클로버들에게
눈알을 달아 주었다

그러자 서로서로
처음 뵙겠습니다
- 최일형 디카시 <눈알>
 

디카시 온라인 운동이 처음 시작된 다음 카페 디카시마니아(https://cafe.daum.net/dicapoetry)에 발표된 최일형 마니아의 디카시 <눈알>이다. 디카시도 예술의 세계이기 때문에 과학적 진실을 넘어 시적 진실을 드러낸다고 하겠다.

과학적으로는 위의 시적 언술은 전혀 사리에 맞지가 않다. 밤비가 클로버 잎에게 눈알을 달아 주었다는 설정이 작위적이다. 그러나 클로버에 맺힌 물방울을 환유적 상상력으로 눈알이라고 명명한 것이 바로 시적 언술이다.

클로버는 생전 처음 눈알을 달고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다. 처음 보는 것이니까 첫 인사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독자들은 무엇을 읽을 수 있는 것일까. 단순히 기발한 상상력에 박수만 보내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클로버 잎들은 실상으로 늘 함께 해왔지만 그동안 눈알을 달기 전에는 함께 있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눈알을 달고서야 첫 인사를 한 것이다. 눈알은 응시의 표상이다. 성서의 말씀처럼 어떤 경우에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기도 한다.

이 디카시의 응시는 물리적 시야를 넘어서는 것이다. 타자에 대한 관심으로서의 응시이다. 관심이 없다는 것은 속된 말로 당달봉사에 다름 아니다. 눈알을 단다고 다 보는 것은 아니다.

이 디카시는 나와 너의 관계를 응시의 관계로, 서로의 관심이 필요함을 환기한다. 아파트에서 독거 노인이 고독사를 해도 눈알을 달지 않는 클로버 잎처럼처럼 이웃의 그 누구도 알지를 못한다. 아니 눈을 달고 있어도 관심이 없어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 디카시는 오늘의 비정한 사회 현실을 콘텍스트로 거르고 있기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덧붙이는 글 |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하여 찍은 영상과 함께 문자를 한 덩어리의 시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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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으며, 베트남 빈롱 소재 구룡대학교 외국인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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