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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무슨 ‘비법’이 있어서가 아니다. 특별한 ‘한 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무조건 맞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엄마의 레시피는 나에게 오로지 하나뿐인 레시피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일흔 살 밥상을 차려드린다는 마음으로 엄마의 음식과 음식 이야기를 기록한다. [기자말]
내가 어릴 적, 우리 집 식탁에는 조기매운탕이 가끔씩 올라왔다. 매운탕에는 고사리가 있었던 적도 있었고, 없었던 적도 있었다. 나는 무슨 까닭인지, 고사리조기매운탕이 찬바람 불 때 먹었던 음식으로 기억했는데, 엄마에게 다시 여쭤보니 봄 음식이라 하였다. 음식의 가장 중요한 재료가 되는 조기와 고사리가 봄철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봄철에 조기는 산란을 하고, 고사리는 음지에서 피어난다. 봄이면 고사리를 따러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엄마가 살던 시골에서는 동네 할머니들이 고사리를 '구순이'라고도 했단다. 아홉 번 따 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집 식탁에는 고사리 음식들이 자주 등장했는데, 그것은 고사리를 무척 좋아하는 아빠의 식성 때문이었다. 엄마는 결혼 전까지 고사리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만들어본 적은 더구나 없었을 터였다.
 
산촌 출신과 어촌 출신의 만남. 고사리와 조기는 어쩜 궁합이 그리 잘 맞을까?
▲ 고사리조기매운탕  산촌 출신과 어촌 출신의 만남. 고사리와 조기는 어쩜 궁합이 그리 잘 맞을까?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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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덕분에 고사리를 알게 된 엄마

결혼 후, 시댁 제삿날에 간 엄마는 제사상에 올라와 있던 고사리나물을 맛있게 먹는 아빠를 보고, 고사리 음식을 즐겨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요리책도 없고 요리 프로그램 같은 것도 마땅치 않던 시절이라 엄마는 혼자 요리조리 궁리해서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어린 시절, 우리 집안의 식탁 메뉴는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보다는 아빠가 좋아하시는 음식, 자식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집들이 그러지 않을까 싶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은 그 중에 어쩌다 한두 개 끼어 있는 수준이었다. 지난 시절, 우리 집 식탁의 왕좌는 누가 뭐라 해도 아빠였다.

몇 년 전 아빠가 큰 수술을 하시고 건강이 많이 안 좋았을 때 엄마는 지극정성으로 음식을 해가며 간호를 하셨다. 독한 약 때문에 입맛이 떨어져 밥 한 숟갈 넘기지 못하는 아빠를 보며 엄마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음식을 만들고, 필요하다면 여기저기서 공수해 와서라도 식탁을 차리셨다.

엄마가 정성껏 준비해간 음식을 잘 드시지 못하면, 엄마는 속상해서 아빠에게 일부러라도 먹어야지 왜 안 먹냐며 화를 내시고, 아빠는 아빠대로 내가 일부러 안 먹는 거냐며 역정을 내셨다. 그렇게 두 분은 병실에서까지 티격태격하셨다.
 
물이 오른 부드럽고 연한 봄 생고사리. 먹고 남은 생고사리는 햇볕에 바짝 말린 뒤 냉동실에 보관하면 다음에 생고사리처럼 연하고 부드럽게 맛볼 수 있다.
 물이 오른 부드럽고 연한 봄 생고사리. 먹고 남은 생고사리는 햇볕에 바짝 말린 뒤 냉동실에 보관하면 다음에 생고사리처럼 연하고 부드럽게 맛볼 수 있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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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하게 알이 밴 봄 조기. 칠산 앞바다(고군산군도에서 영광군 앞바다까지의 해역, 우리나라 3대 조기 어장 중의 하나)에서 잡아들인 조기를 제일로 친다.
 통통하게 알이 밴 봄 조기. 칠산 앞바다(고군산군도에서 영광군 앞바다까지의 해역, 우리나라 3대 조기 어장 중의 하나)에서 잡아들인 조기를 제일로 친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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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엄마는 한 살 차이다. 두 분은 대학 시절 캠퍼스 커플이었고 연애결혼을 하셨는데, 연애 시절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결혼 후에는 (내가 기억하는 시절부터) 늘 티격태격하셨다. 나와 언니는 어떻게 두 분이 연애라는 걸 하고 결혼을 했는지 미스터리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젊은 시절에는 자식들 교육방식이나 생활 습관을 가지고 갈등을 빚었고, 사소하게는 텔레비전 채널이나 좋아하는 연예인을 두고도 사소한 입씨름을 벌이셨다. 이를 테면 아빠는 이만기를, 엄마는 이준희를 응원했고, 아빠는 조용필을, 엄마는 조영남을 좋아하는 식이었다. 두 분 사이에서는 교집합이라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있다면 아마 자식 정도가 아니었을까.

'어쩜 저렇게 성격도 취미도 식성도 다른 두 분이 만났을까…….' 나는 두 분이 만난 섭리가 참으로 신기했다. 성장기 시절에는 두 분의 말다툼이 지긋지긋했으나, 언제부터인가 '저 나이에도 입씨름을 하시다니 여전히 기력이 좋으신가 보다'라며 퍽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하게 됐다.

상극이기에 오히려 잘 맞는 조기와 고사리
 
고사리 위에 얌전히 몸을 뉘인 조기들. 빨간 망토를 두르고 이제 서로 어우러질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고사리 위에 얌전히 몸을 뉘인 조기들. 빨간 망토를 두르고 이제 서로 어우러질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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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와 조기는 궁합이 잘 맞는 식재료다. 하나는 육지 출신, 또 하나는 바다 출신. 출신부터 다른 두 식재료가 어떻게 궁합이 맞는지 신기하고, 또 그것을 알아내어 한 그릇에 넣고 보글보글 끓여내었던 옛 사람들의 지혜도 신통하기만 하다.

자료를 찾아보니 <동의보감>에서는 조기는 성질이 부드럽고 따뜻하고, 고사리는 차가워서 열을 내리는데 좋다고 적혀 있다. 둘이 만나면 음양조화를 이뤄서 좋은 약이 된다는 것. 서로 상극이기 때문에 오히려 잘 맞는다는 얘기가 역설적으로 들린다. 그런데 왜 사람의 일은 그렇지 못할까.

조기와 고사리는 서로 상극임에도 조화로움을 유지하건만, 사람의 일이란 그리 간단치 않다. 엄마와 아빠는 서로 많이 다른 사람들이다. 약 50년을 살아오셨지만 여전히 다른 부분이 많고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아마 자식인 내가 모르는 많은 것들을, 두 분은 포기하고 양보하면서 반백년을 살아오셨으리라. 내가 두 분의 깊고도 오묘한 사이를 다 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내가 보기에 두 분은 지금도 애쓰시는 것 같다. 최고의 맛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아름다운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다.

어느 때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 똑 떨어지는 레시피 같은 것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람과는 어느 정도만 간을 맞추면 된다든지, 이 사람과의 사이에는 무슨 양념을 더 넣으면 되겠다든지, 저 사람과는 더 이상 있어 봐야 깊은 맛이 나올 리 없으니 공을 그만 들여도 된다라든지... 이렇게 콕 집에서 알려주는 관계 레시피. 하지만 그런 게 있을 리도 없거니와 현실에 적용하기도 쉽지 않을 터.

두 분은 내후년이면 금혼식을 맞이한다. 사이가 아주 나쁜 부부라고도 할 수 없고, 천생연분이랄 수도 없는 두 사람은 서로의 '간'을 두고 아직도 '연구 중'이다. 두 분도 결혼생활은 이번 생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렇게 명료하게 똑 떨어지는 고사리조기매운탕 레시피라도 있으니, 가끔 만들어 먹으면서 젊은 시절의 엄마와 아빠의 좋았던 시절을 한번 떠올려 보려 한다.
 
봄철 대표 식재료. 조기와 고사리
 봄철 대표 식재료. 조기와 고사리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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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환 여사의 고사리조기매운탕 레시피
(조기 5마리 기준)

준비물: 생고사리, 조기, 무, 파, 양파, 청고추, 홍고추, 해물육수, 양념(고춧가루, 진간장, 조선간장, 고추장, 생강, 마늘 등)

1. 멸치, 다시마, 건새우, 명태 대가리 등을 베이스로 한 해물육수를 미리 만들어놓는다.육수에 무를 썰어넣고 끓인다.

2. 양념장을 만든다.(양조간장 2스푼, 집간장 1스푼, 육수, 1스푼, 고춧가루 약간, 고주장 2스푼, 된장 1스푼. 청주, 마늘, 생강)
(※엄마는 채썬 생강을 소주에 자박자박할 정도로 적셔놓고, 그 소줏물을 청주 대신 사용하신다.)

4. 조기를 손질한다. 조기의 등지느러미는 너무 바짝 자르지 않도록 한다. 너무 바짝 자르면 조기 맛이 안 난다. 마지막엔 소금물로 헹군다. 쌀 뜬물이나 우유로 씻으면 비린내가 안 난다고 하지만, 엄마의 경험에 의하면 소금물로 헹구는 편이 더 효과적이다.

5. 육수에 넣고 끓인 무는 너무 무르기 전에 꺼내어서 먹기 좋게 잘라놓는다. 잘라놓은 무는 고춧가루로 버무려놓는다. 그냥 놓아두면 쓴 맛이 난다.

6. 잘 손질한 생고사리는 양념장을 넣고 잘 버무린다.

7. 냄비에 무를 깔고 그위에 고사리를 잘 편다. 그 위에 조기를 놓고 양념장을 일부 얹는다. 마지막으로 조기가 살짝 잠길 때까지 육수를 부은 뒤 끓인다.

8. 어느 정도 끓었다 싶으면 풋고추, 파, 양파 등을 넣고 끓이다가 남은 양념장을 넣고 계속 끓인다.

태그:#암마요리탐구생활, #고사리조기매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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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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