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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육신의 위패를 모신 서산서원의 충의사
 생육신의 위패를 모신 서산서원의 충의사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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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효온(南孝溫, 1454~1492)은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했던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성종 12년 단종의 어머니인 문종왕비의 릉을 격에 맞도록 정비해야 한다고 주창했다가 미치광이 소리를 들었다. 성삼문ㆍ박팽년 등 사육신의 전기인 『육신전』을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썼다가 화를 당하였다.

그가 죽은 뒤인 연산군 10년의 갑자사화 때 김종직의 제자였던데다 단종 어머니의 릉인 소릉의 복위를 상소했던 일이 탈이 되어 부관참시되고 아들까지 죽임을 당했다.

성종(成宗) 때에 나라가 편치 못하니 윗사람이 지극한 다스림을 아랫사람에게 요구하였다. 포부가 비상한 자는 마땅히 까치처럼 뛰면서 일어날 때였다. 그런데 효온은 먼저 명호(名號)를 바르게 하고자 하여 소(疏)를 올려 항론하였다. 그의 뜻은 대체로 우리 임금이 성명(聖明)하니 반드시 나의 말을 받아들이리라 믿었던 것이었다. 까닭에 그 포부를 다해서 아뢰었다. 국시(國是)를 정해서 인심을 통일하기를 기대하면서 다스림을 바라는 임금의 뜻에 답했던 것이다. 그러나 소장이 들어갔건만 임금은 감히 시행하지 못하였다. 효온은 이미 할 수 없음을 알고는,  

"선비가 임금에게 쓰이기를 구함은, 이에 그 도를 시행코자 함이다. 그런데 도를 시행하지 못하면서 한갓 영리만 탐낸다면 선비가 아니다."

하였다. 이에 뜻을 결단하고 과거에 나아가지 않았다.
  
여섯 거북 머리 모양의 비좌 위에 세운 서산서원 생육신 사적비
 여섯 거북 머리 모양의 비좌 위에 세운 서산서원 생육신 사적비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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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이 말한 즉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해서 영화롭게 하고, 그 몸이 마치도록 녹은 말하지 않아서 처음말을 실천하였다. 이것인 즉 지사(志士)와 개부(介夫)가 강개한 마음으로 부귀도 마땅찮게 여기는 뜻이었다. 어찌 그 이록을 차지하며 명망만 훔치는 자와 같이 말하겠는가. 까닭에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고 이에 할 수가 없었던 것이라 하는 것이다. 비록 그러나 나는 효온의 뜻을 애석히 여기는 바 그 슬기는 어둡고 그 도량은 좁았다.

항소하던 해에 효온의 나이는 겨우 스무 살이었다. 그 수양한 바가 과연 다 성취했는지는 모르거니와, 한갓 마음속에 격동된 것으로서 반드시 시행하기를 임금에게 기대하면서 그 시기가 적당한 지 여부는 알지 못했다. 한갓 그 임금이 함께 일할 만한 줄만 알고, 그 말한 것이 갑자기 모두 시행되기 어려운 줄은 알지 못하고 교분이 옅은 사람 앞에서 심각하게 말하였다. 말한 것이 이미 날카로웠는데, 책망된 것도 너무 깊었다. 마침내 그 말이 채용되지 않게 되자, 할 수 없이 세상에 스스로 내쳤으니 그 실언했음이 심하였다. 나이 젊고 도량도 좁은 자는 예전에도 이미 그러했으니 탄식됨을 견디겠는가.

그렇지 않고 가령 효온이 조용하게 수양하고 도(道)로써 출신해서 신하와 임금이 도가 같으면 서로 친신(親信)하는 정도를 요량하면서 세월을 보낼 것이다. 심각하지 않은 일부터 시험삼아 먼저 없애고, 정희왕후(貞熹王后, 세조의 비)가 빈천(賓天)하고 세조 때 옛 신하가 다 없어질 때를 기다려서 비로소 이 논의를 내었더라면 강정왕(康靖王, 성종의 시호)도 그의 말을 채용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온 나라와 더불어 경시(更始)했을 것이니, 어찌 신하와 임금이 아울러 영화롭고, 간책(簡册)에 광채가 있지 않았겠는가. 계책이 이렇게 나오지 않고 한갓 속하게만 하려 하다가 마침내 실언한 허물에 빠져서 곤궁한 몸으로 마쳤다. 이것은 가생(賈生, 중국 한나라 재상)이 눈물 흘리며 통곡하다가 스스로 죽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슬픈지고. (주석 1)


주석
1> 이 장은 원문은 『성소부부고』, 이익성 편역, 앞의 책, 재인용, 발췌.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허균, #허균평전, #자유인_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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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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