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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뭅니다. 우리에게는 아마도 그 어느 해보다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한 해가 될 듯합니다. 이루고자 한 것보다 이루지 못한 것이, 갖고자 한 것보다 놓친 것이, 그리고 만남보다 헤어짐이 더 길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음이 미처 마치지 못한 숙제를 제출해야 하는 기분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년같으면 어수선한 연말 분위기에 휩쓸려 한 해를 마무리 해야 한다는 부담을 덜어보련만 고즈넉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한 연말 분위기에 저마다 짊어진 삶의 무게가 유독 더 무겁게 느껴질 듯합니다. 이렇게 무겁게 한 해를 보내는 우리, 공광규 시인의 시를 주리 작가가 그림으로 엮은 <흰 눈>을 보며 달래볼까요?
 
 흰눈
 흰눈
ⓒ 바우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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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내내 내리는 눈

'겨울에 다 내리지 못한 눈은' 

공광규 시인의 시 <흰 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 어느 해보다도 사람들의 아쉬움이 진하게 전해지는 한 해였어서 그런지 저 첫 시구에 마음이 멈춥니다. 겨울에 미처 다 내리지 못한 눈이 올 한 해 하고자 했던 바를 다 해내지 못한 우리들의 마음같았습니다. 
 
 흰눈
 흰눈
ⓒ 바우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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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는 그런 아쉬움을 다르게 받습니다. 
 
매화나무 가지에 앉고
그래도 남은 눈은
벚나무 가지에 앉는다. 

거기에 다 못앉으면 
조팝나무 가지에 앉고 
그래도 남은 눈은 이팝나무 가지에 앉는다. 

거기에 다 못앉으면
쥐똥나무 울타리나 
산딸나무 가지에 앉고 
거기에 다 못앉으면 
아까시나무 가지에 앉다가
그래도 남은 눈은 찔레나무 가시에 앉는다. 

겨울에 미처 다 내리지 못한 눈이 하얀 꽃이 되어 일년 내내 온 세상에 내려 앉습니다. 시구로 읽으면 후루룩 한번에 쭈욱 읽어내려갈 터이지만 주리 작가가 정성들여 그린 매화나무, 벚나무, 조팝나무들과 함께 한 장 한 장 읽어가다 보면 미처 내리지 못한 눈이 우리 마음에 다시 내리는 듯합니다. 

2020년이 이제 끝이다. 그런데 내가 미처 다하지 못한 것이 많구나 하며 막막했던 마음이 책 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눈꽃들에 시선을 빼앗기다 보면 우리에게 다시 새로운 한 해로 펼쳐진 시간이 보입니다. 
 
 흰눈
 흰눈
ⓒ 바우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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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실 알아요. 2020년 12월 31일과 2021년 1월 1일 사이에는 그저 우리가 지금껏 살아왔듯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시작되는 동일한 시간의 흐름만이 있다는 것을. 그 흐르는 시간들을 우리가 칸을 막고 구획을 세워 편의적으로 해와 달을 만들었다는 것을요.

그런데 그 우리의 편의가 어느덧 우리 자신을 가둬버리고 있었다는 것을 <흰 눈>을 보며 새삼 깨닫게 됩니다. 겨울의 눈꽃이 봄의, 그리고 한여름의 꽃눈이 되어 흩날리듯 시간은 그저 그렇게 흘러갑니다. 

심리학은 초창기에는 병리적인 심리적 문제에 주된 관심을 기울였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겪는 마음의 불편함을 다스리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긍정의 심리학'입니다. 

긍정 심리학의 학자 중 한 명인 앨버트 앨리스는 이른바 'ABC이론'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좌절과 역경(adversity)'을 겪게 되는 원인을 좌절과 그 자체가 아니라  belisf, 좌절과 역경에 대한 자아 신념과 마음 상태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즉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서로 다른 결과(consequence)를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비관론자'와 '낙관주의자'처럼 같은 일을 겪는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해석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고 앨버트는 주장합니다. 결과를 달리할 수 있는 건 결국 '마음'인 것지요. 겨울에 다 내리지 못한 흰 눈을 일년 내내 피어나는 흰 꽃으로 받아내는 공광규 시인의 <흰 눈>은 그 자체로 앨버트 이론의 '정수'와도 같습니다. 좌절과 역격을 극복해내기 위해 삶에 대한 긍정적 자세를 요구한 이론에 대한 시적인 승화입니다.  

2020년 우리가 다하지 못한 시간은 이제 2021년이라는 새로운 한 해로 열려질 것입니다. 그 시간을 한 해 내내 매화나무로 부터 시작하여 벚나무, 조팝나무, 이팝나무, 쥐똥나무, 산딸나무, 아까시 나무에 내리는 눈꽃으로 만들 것인지, 미처 다 내리지 못한 흰 눈에 대한 미련으로 남길 것인지는 이제 우리의 몫입니다. 다하지 못한 '미션 임파서블'이 아니라, 이제부터 한 해 내내 해내야 할 '파서블한 미션', 그에 우리 앞에 펼쳐진 새로운 시간의 숙제가 아닐까요. 
 
앉다가
앉다가 
더 앉을 곳이 없는 눈은
할머니가 꽃나무 가지인 줄 알고 
성긴 머리 위에 가만가만 앉는다.

그렇게 미처 다하지 못한 삶의 미션을 열중하여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할머니 머리 위에 가만가만 내린 눈처럼 세월이 나에게 옵니다. 머리에 앉은 눈이 서러운가요. 그런데 주리 작가의 그림 속 할머니는 그리 서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하얀 머리의 할머니는 홀로 사시는 듯하지만 계절마다 찾아오는 나무의 눈꽃들을 반기며 미소를 지으십니다.

<흰 눈> 속 찾아온 눈꽃들을 반기며 살아낸 할머니의 모습은 시모나 치라올로의 <할머니 주름살이 좋아요>의 할머니 같습니다. 할머니의 주름살을 찾아낸 손녀에게 그 주름살이 만들어진 시간 동안 켜켜이 쌓인 추억과 사랑을 이야기해 주시는 할머니처럼 말이죠. 그런데 왜 하필 흰 눈이었을까요? 

며칠 전에 눈이 왔습니다. 안 그래도 짧은 해가 어둑하니 곧 뭐라도 쏟아질 것 같아 서둘러 산책을 나선 길에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비라면 그런 느낌은 아니었겠지요. 난무하는 눈발 속에 제대로 눈조차 뜰 수 없었지만 '눈의 세례'를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이 내려 쌓이면 차를 몰고 다니시는 분들은 미끄러워질 길 때문에 내리는 눈에 대한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서지요. 그럼에도 하얀 눈이 나풀나풀 내려오는 걸 보면 우선은 마음이 어떤가요? 금방이라도 무엇인가 쏟아져 내릴 듯이 꾸물꾸물대던 하늘에서 눈이 나리기 시작하면 맘 속의 어떤 끈이 툭 풀리는 거 같지 않던가요?

그리고 그 눈으로 하얗게 '도포'된 세상은 1분 후에 도로 사정을 걱정할지언정 잠시 잠깐이나마 눈만 보면 뛰어나가 반겼던 순수했던 동심의 시절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건 아마도 그 '흰' 색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것을 하얀 색으로 덮어버리는 그 '맹목적인 순수'의 지향이 우리로 하여금 잠시 세속의 삶을 잊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공광규 시인이 굳이 겨울에 미처 내리지 못한 흰 눈을 이야기한 건, 그저 다하지 못한 삶의 미션을 다하자만이 아니라, 어떻게 다할 것인지에 대한 '지향'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봅니다. 

겨울에 미처 내리지 못한 눈이 다음 해 내내 눈꽃이 되어 날리기를 바라는 마음은 눈으로 뒤덮힌 세상을 마주했을 때 우리가 느끼는 바로 그 '정화'된 삶을 향한 소망이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올 한 해 우리가 이루고자 했으나 미처 이루지 못했던 삶의 순수한 목표를 다시 한번 살피고 그것들이 꽃이 되어 피어나도록 노력해 보자는 '결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내 머리에 흰 눈이 피어가는 그 시간이 부끄럽지 않도록 말이죠.

한 해가 저뭅니다. <흰 눈>의 책장을 덮고 바라보는 한 해의 끝자락, 아쉬움 대신 2021년 내내 세상을 하얗게 덮어줄 흰 꽃들에 벌써 마음이 설렙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실립니다.


흰 눈

공광규 (지은이), 주리 (그림), 바우솔(2016)


태그:#흰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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