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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시각 10월 29일 프랑스 니스성당 참수 테러로 3명이 사망했다.
 현지시각 10월 29일 프랑스 니스성당 참수 테러로 3명이 사망했다. 프랑스 당국은 이 사건을 "이슬람의 테러 공격"으로 규정하고 관련 병력을 대규모로 늘렸다.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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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테러가 연달아 발생해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10월 16일에는 중학교 역사교사 사무엘 파티가 이슬람 신도에게 참수 당했고, 29일에는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가톨릭인들이 이슬람인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31일에는 정체불명 인물의 총격으로 그리스정교회 주교가 중상을 당해 이슬람인들 쪽으로 시선이 집중됐다.

2015년 1월 7일 이슬람(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이 프랑스 풍자신문 <샤를리 에브도> 본사에서 총기를 난사해 12명을 죽이고 10명을 부상시킨 사건도 아직 생생히 기억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테러들이 연이어 발생해 세계를 경악시켰다.

이슬람인들에 의한 이 같은 테러를 방지하려면, 현장의 테러리스트는 물론이고 또 다른 '두 공범'도 잡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두 공범으로 인해 테러 가담자들이 계속 배출되고 있으므로, 두 공범을 체포하지 않으면 이런 일이 앞으로도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다.

두 공범

두 공범의 등장은 20세기 들어 유럽 내 이슬람 인구가 급증한 것과 관련이 있다. 2016년에 <미션 인사이트> 제7집에 실린 채희석 한불상호문화원 대표의 논문 '유럽 이슬람의 전망'은 "1950년대 유럽연합 28개국에 80만 명 정도에 불과했던 무슬림 인구가 오늘날 2000만 명 선을 넘어설 정도로 급증"했다며 "비유럽 출신 이민자 중 최소한 50% 이상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한다. 인용문 속의 '유럽연합'은 유럽공동체 정도의 의미다.

유럽 전체가 아닌 서유럽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위 논문에 따르면 1900년에는 서유럽 이슬람 인구가 5만2600명 정도로 추정됐다. 그랬던 것이 80만을 넘어 2000만을 돌파하게 된 것이다. 이 현상은 유럽의 식민지배 및 그 이후 유럽의 산업정책과 관련이 있다.

금년 3월에 <통합유럽연구> 제11권 제1집에 실린 김재희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의 논문 '아랍 시사만평에 나타난 유럽 내 이슬라모포비아 현상'에 아래와 같은 대목이 있다. 유로메나(Euro-MENA)는 유럽과 중동(Middle East)과 북아프리카(North Africa)의 통칭이다. 아래 인용문은 이슬람인들이 유럽 내에서 비유럽인으로서는 가장 큰 그룹을 형성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유럽 내 무슬림 수가 최대 인구를 형성하게 된 이유 역시 식민지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알제리·모로코·튀니지 등에서 무슬림들이 대거 유럽으로 이주의 물결을 이루었다.
 
위와 같은 식민지 시절의 상호 교류 경험뿐 아니라 유럽의 노동력 수요도 이슬람인들을 유인하는 요인이 됐다.
 
프랑스의 경우, 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내 노동력이 부족하고 전쟁 이후 재건을 목적으로 다수의 북아프리카 무슬림들이 프랑스로 이주하게 되었다. (위 논문)
 
20세기 전반에는 이슬람인에 대한 유럽인들의 거부감이 크지 않았다. 이는 기독교인들의 종교적 관용 때문이 아니었다. 유럽의 전성기였던 그 시절에 유럽인들은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그런 자신감이 이방인들에 대한 호의를 지탱해준 원동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973년과 1978년의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슬람권 산유국들의 석유 무기화 정책으로 인한 오일쇼크 때문에 유럽 경제가 타격을 받으면서 이슬람인에 대한 시선이 바뀌었다. 이슬람 인구가 많은 프랑스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졌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프랑스 경제가 침체기에 이르자,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내 이민자 수용정책을 변경하여 1974년 이후 가족 재결합을 위한 이민 이외에는 일체의 이민을 제한함으로써 불법 체류자가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위 논문)
 
유럽의 경기침체로 인해 이슬람 이민자들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고 이민자들의 법적 지위가 열악해지는 이런 상황을 이용해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는 집단들이 있었다. 극우정당들이 바로 그것이다.

혐오에 편승한 극우정당

이들은 유럽 경제의 악화 원인을 유럽 산업의 경쟁력에서 찾지 않고 이슬람 이민들에게서 찾았다. 이들은 경기침체로 인한 사회적 불만을 이슬람인들 쪽으로 돌리고 이슬람 공포증(이슬라모포비아)를 조장하는 방식으로 대중적 지지를 획득했다. 이것이 지금까지도 유럽 극우정당의 생존 비결이 되고 있다.

지난 5월 <한국치안행정논집> 제17권 제2호에 실린 윤민우·김은영 교수의 논문 '유럽 지역의 최근 극우극단주의적 동향과 사회정치적 요인들'은 이슬람 공포증을 악용한 극우정당들의 약진을 설명하면서 "유럽 지역에서 최근 극우극단주의 증대는 독일·프랑스·벨기에·이탈리아·폴란드·체코·헝가리·스웨덴 등 거의 모든 유럽 국가들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현상은 동유럽에서 훨씬 잘 나타나고 있다. 시리아 사태 등으로 고향을 떠나는 이슬람인들이 동유럽을 거쳐 서유럽으로 이동하다 보니, 이들을 먼저 맞이하게 되는 동유럽에서 이슬람 공포증이 더 크게 확산되고 이에 편승해 극우정당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유럽 어느 나라에서 극우정당이 정권을 잡았다거나 총선에서 약진했다는 뉴스를 듣게 되면, 그곳에서 이슬람 인구가 급증했거나 이슬람 공포증이 확산되고 있다고 판단해도 별로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유럽 극우정당들은 이슬람 공포증에 편승해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런 극우정당들의 약진은 이슬람인에 대한 테러를 조장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이슬람인이 가한 테러는 전 세계로 신속히 보도되지만, 이슬람인이 당한 테러는 그렇지 않다. 이슬람인이 가해자인 테러보다도 이슬람인이 피해자인 테러가 실상은 훨씬 많이 빈발하고 있다.

일례로, 2016년 한 해 동안 프랑스에서 발생한 이슬람인 혐오 사건은 121건, 이슬람 시설에 대한 테러 사건은 19건이었다. 독일에서는 이슬람인이 공격을 당한 사건이 908건, 이슬람 회당인 모스크가 공격을 받은 사건이 100건, 이슬람 난민과 난민 구호 활동가가 공격을 받은 사건이 각각 1906건 및 132건이었다. 영국·노르웨이·스웨덴·스페인·네덜란드·벨기에·덴마크·오스트리아 등의 사례까지 열거하면, 이 글이 너무 길어지게 된다.
  
한때 이슬람인들을 유인했던 유럽인들이 이제 와서 이들을 박해하는 이 현상이 이슬람인들의 보복 테러를 낳는 원인이 되고 있다. 서두에서 말한 '두 공범' 중 하나는 유럽인들의 박해다.

이것은 '두 공범' 중 하나다. 또 하나의 공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해받는 땅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비극
 
 10월 2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자치령인 요르단강 서안 도시 라말라에서 반(反)프랑스 시위대가 프랑스 국기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사진을 불태우고 있다. 이슬람권 국가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에 대한 풍자를 표현의 자유로 옹호하자 프랑스 제품 불매 운동을 촉구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10월 2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자치령인 요르단강 서안 도시 라말라에서 반(反)프랑스 시위대가 프랑스 국기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사진을 불태우고 있다. 이슬람권 국가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에 대한 풍자를 표현의 자유로 옹호하자 프랑스 제품 불매 운동을 촉구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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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인에 대한 박해가 증가하고 보복 테러가 발생하는 것은 이슬람인들이 유럽으로 끊임없이 이동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환대해주지도 않고 '약속의 땅'도 아닌 그곳을 향해 이슬람인들이 일종의 민족이동을 하는 현상이 이슬람과 유럽의 문명 충돌 혹은 쌍방 테러를 낳고 있다.

자신들을 박해할 준비가 돼 있는 땅을 향해 이슬람인들이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들의 고향이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시리아·팔레스타인·예맨·이라크·리비아 같은 이슬람권에서 들려오는 무력 충돌 소식을 우리는 점점 더 자주 듣고 있다.

'메나' 지역은 21세기 들어 더욱 더 혼란스러워졌다. 이는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정치 불안정을 어느 정도라도 잠재워줄 리더십 혹은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에 대한 미국·러시아 등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원인이라 할 수 있다.

흔히 1990년대를 탈냉전 시대라고 하지만, 1990년대 이전의 세계 모든 지역이 냉전 지대였던 것은 아니다. 세계 대부분 지역이 냉전에 갇혀 있었던 시절에도 메나는 사실상 '열전'의 시대를 경험했다. 탈냉전 이후에도 이 지역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는 이 지역 혼란을 관리할 역량이 미국과 소련(러시아)에서도 나오지 않고 이 지역 국가들에서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리더십 혹은 시스템 문제로 인해 중동에서 끊임없이 전화(戰火)가 불타고 이로 인해 난민들이 지속적으로 유출됐다. 이것이 유럽에서 두 문명의 충돌과 상호 테러를 낳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장에서 테러를 실행한 이슬람인뿐 아니라, 유럽인의 박해와 중동·북아프리카의 리더십 혹은 시스템 부재도 '두 공범'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공범이 '체포'되지 않으면, 이번 테러 같은 사태들이 잊을 만하면 한번씩 우리를 경악과 충격으로 몰아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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