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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목사 겸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범투본) 총괄대표가 4일 오후 서울 교보빌딩 앞에서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 주최로 열린 '문재인 정부 퇴진 국민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지난 1월 4일 오후 서울 교보빌딩 앞에서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 주최로 열린 "문재인 정부 퇴진 국민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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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분리됐다. 작년 1월 한기총 대표회장이 된 전광훈 목사는 올 1월 30일 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일부 대의원들에게 총회소집 통지를 보내지 않고 반대파인 비상대책위원회 측의 총회 입장을 저지한 일로 인해 민사소송에 휘말리게 됐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전광훈의 직무 집행을 정지시키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이로 인해 대표회장 직함을 유지하되 직무 집행은 할 수 없었던 그가 8월 21일 지인인 이은재 목사를 통해 거취 문제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이은재TV한국교회방송'을 통해 공개한 육성 녹음파일에서 전광훈은 "불미스럽게도 외부 불순분자들의 강력한 테러로 고난을 당하고 있다"며 "현재 상태로는 제가 대표회장직을 감당하기엔 힘들기 때문에 사퇴하도록 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작년부터 극우의 대명사처럼 된 전광훈이 한기총과 분리된 이번 사안은 한국 극우 정치에 영향을 미칠 만한 일이다. 이로 인해 적어도 당분간은 극우세력이 기독교 내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기가 힘들게 됐다.

극우세력이 한국 정치에 미친 영향력

그동안 극우세력이 한국 정치에 미친 파급력은 심대하다. 해방 뒤에는 친일청산을 무산시키고 제주 4·3항쟁 등을 무력화시켰고, 한국전쟁 뒤에는 반공주의에 입각한 독재정치가 기반을 잡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그들은 제도권 정계에서 기반을 잡지 못했다. 항상 관변단체로 머물 뿐이었다. 촛불혁명 직후인 2017년 8월 창당된 대한애국당(우리공화당)이 2개의 국회 의석을 차지하긴 했지만, 이는 기존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에서 의원 2명이 이적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4월 21대 총선에서 조원진의 우리공화당과 전광훈의 기독자유통일당(자유통일당)을 포함해 11개의 극우정당이 획득한 표는 114만 5325표로 비례투표 총수의 4.1%에 불과했다. 태극기 집회(맞불집회)를 가득 채울 만한 규모의 극우 지지자들이 114만 표를 줬지만, 극우 정당의 국회 진출은 실패했다.

한국 현대사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은데도 극우세력이 제도권 정계에 기반을 잡지 못하는 것은 이들에 대한 일반 대중의 거부감 때문이기도 하고 군소정당들을 하나로 묶는 데 필요한 조직력·자금력과 리더십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집권 보수 세력에 의존해온 그들의 관성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할 수 있다.

서북청년단으로 대표되는 해방 직후의 극우세력은 미군정이나 이승만 정권에 재정적으로 의존하는 대신, 그들의 주문을 이행해주는 '용역업자' 역할을 했다. 1954년에 이승만과 장제스(장개석)가 만든 아시아민족반공연맹 한국지부로 출범했다가 5·16 쿠데타 뒤인 1963년에 한국반공연맹이 되고 6월항쟁 뒤인 1989년에 한국자유총연맹이 되는 한국아시아민족반공연맹은 보수 정권인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의 재정 지원을 받고 그들의 주문을 처리해줬다.

악명 높은 삼청교육대 만행을 저지른 사회정화위원회의 후신인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같은 여타의 관변단체들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보수 정권과 보수 정당에 의존하다 보니 한국 극우세력은 대중의 회비를 통해 재정 구조를 안정화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독자적인 제도권 정당으로 발전할 기회도 확보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극우 정당 실험이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보수의 재정적 지원 없이 홀로서기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이와 달리, 기독교 내부에 포진한 극우세력은 사정이 다르다. 이들 역시 보수 정권에 의존해왔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으나, 적어도 재정과 조직 측면에서는 비교적 견고한 독립적 기반을 갖고 있다.

서북청년단 부류의 극우세력이 '깡패'와 비슷한 이미지를 갖고 있어 지도자 대우를 받기 힘들었던 데 반해, 기독교 극우세력은 목사나 장로 등의 직함을 갖고 있어 대중을 이끌기가 용이하다. 또 교인들 속에서 조직원을 충원하기도 쉽고, 국세청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교회 자금을 정치 활동 자금으로 이용하기도 쉽다.

교회 자금이 정치자금으로 유용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은 한기총 내부에서 전광훈과 관련해 제기된 의혹에서도 느낄 수 있다. 기독교 신문인 'C헤럴드'의 2019년 8월 6일 자 기사 '한기총 전광훈 대표회장, 후원금 사용처 오리무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한기총 내부 특별기구인 조사위원회는 전 목사가 취임 5개월간 한기총 주최 행사 10여 건을 열며 후원금을 횡령한 의혹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각종 행사 때 후원금 계좌 대부분을 한기총 명의 계좌 대신 전 목사가 총재(대표)로 있는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대국본)나 전 목사 개인 명의 계좌로 돌려놓고서 후원금을 빼돌렸다는 게 조사위가 내린 결론이다."

해방 이후의 한국 기독교 내에 극우세력이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보수 정권과 코드를 맞추며 그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회 내에서 자체적으로 조직과 자금 그리고 지도자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전광훈이 극우의 대명사가 된 이유 
   
 황교안 대표가 청와대 앞 전광훈 목사 주도 농성장에 나타나 단상에서 전 목사와 손을 맞잡고 들자 청중이 환호하는 장면. 오른쪽은 김문수 전 경기지사 2019.11.20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지난 2019년 11월 20일 청와대 앞 전광훈 목사 주도 농성장에 나타나 단상에서 전 목사와 손을 맞잡고 들자 청중이 환호하는 장면.
ⓒ ohmy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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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은 2019년 1월에 한기총 대표회장이 되자마자 극우의 대명사 같은 존재로 단번에 뛰어올랐다. 촛불혁명 과정과 그 직후를 주도했던 극우 정당과 극우 사회단체들을 일거에 제치고 극우세력의 대표주자로 우뚝 섰다.

그가 단기간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열성 지지자들에게는 카리스마로도 비칠 수 있는 독특한 캐릭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독교 내부의 극우세력이 가진 위와 같은 이점들을 최대한 활용했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2019년에 일어난 '전광훈 현상'은 극우세력이 악용할 만한 요인들이 한국 기독교 내에 얼마나 많은가를 잘 보여줬다.

그런데 전광훈으로 인해 극을 향해 치닫던 기독교 극우세력의 정치 운동이 지금은 중대 위기를 맞고 있다. 작년부터 한기총 내에서 전광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그의 과도한 언행에 대한 대중의 혐오감이 고조된 데다가, 결정적으로 그가 8·15 광복절에 광화문 집회에 참여해 코로나 19 확산을 조장한 일로 인해 기독교 내부 극우세력이 위협을 받게 됐다. 전광훈이 한기총 대표회장 직을 더 이상 고수하지 못한 것은 코로나 확진 판정으로 인한 건강 문제와도 관련되겠지만, 기독교 내에서 현저히 좁아진 극우 세력의 입지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2008년에 등장한 이명박 정권 때만 해도 기독교 극우세력의 활동은 왕성했다. 2013년 박근혜 정권 출범 당시에도 어느 정도는 활발했다. 그랬던 극우세력의 입지가 현저히 줄어든 것이 전광훈의 과도한 언행과 코로나 확산 책임 때문만은 아니다. 기독교 저변을 흐르고 있는 도도한 흐름이 거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개신교는 교인 숫자가 정체되는 상황에 직면해 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한 <2018년 한국의 종교 현황>에 따르면, 1985년 '인구 및 주택 센서스' 당시 649만 명이었던 개신교 신도는 1995년 센서스 때는 876만 명이었다. 이 숫자가 2005년에는 862만 명, 2015년에는 968만 명이었다. 1990년대 전반과 비교할 때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1990년대 이후로 교인 숫자가 크게 늘지 않았는데도, 서울 강남권 대형교회들은 상당히 큰 폭의 성장세를 보였다. 이는 여타 지역 소형교회들이 위축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1990년대 이후의 한국 교회가 불신자를 끌어들이기보다는 타 교회 신자를 유치하는 쪽으로 내부 경쟁을 했기 때문이다. 교회 대형버스들이 새벽이나 주일(일요일)에 먼 지방 교인들을 실어 나르는 풍경은 그것과 무관치 않다. 자기 지역 불신자에 대한 전도 활동에 신경을 덜 쓰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생겨난 기독교 내부의 새로운 분위기가 오늘날 기독교 극우세력을 위축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황해문화> 2017년 여름호에 실린 김진호의 논문 '태극기 집회와 개신교 우파'는 1990년대 이후의 개신교 목사들은 신도들의 믿음이 약해지는 것 못지않게 신도들을 다른 교회에 빼앗길 가능성을 염려하게 됐다고 말한다. "아차 하는 순간에 이동 성향이 강한 신자들이 대거 이탈하여 다른 교회들로 옮겨갈 수도 있는 것"에 대해 목사들이 예민해졌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가장 안정성이 높은 대형교회들에서도 목사들은 교인들의 동태에 한 시도 눈을 떼지 않는다. 목사들의 교인 관리의 치밀함과 섬세함은 전 세계 어느 개신교 교회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한국 개신교의 특징일 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어느 종교와 비교해도 압권이다."

교인들의 동향에 민감해진 한국 목사들에게 '중요한 신호'가 된 것이 2016년 제20대 총선이었다고 논문은 말한다. 목사들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 신도들이 냉소적이 되는 경향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6년 4·13 총선을 거치면서 교인들이 더 목사들에게 억지로 동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당시 기독 정당들에 참여한 목사들의 수는 최고조에 달했고, 그들은 교인들을 자신들의 정치적 기획에 적극적으로 동원하려 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목사들의 열정적 동원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이후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부패·무능이 폭로되면서 교인들의 태도가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수많은 목사들은 눈치채고 있었다."

20대 총선 때는 기독자유당과 기독민주당(기독당)이 국회 입성에 도전했다. 전광훈 목사가 참여한 기독자유당은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 윤석전 연세중앙교회 목사, 장경동 대전 중문교회 목사 같은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최소 5석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득표율 2.6%에 그치면서 원내 입성에 실패했다. 기독민주당은 0.5%에 그쳤다.

이를 계기로 상당수 목사는 신도들이 더는 목사의 정치 구호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고 됐고, 이것이 촛불혁명 당시의 태극기집회 때 대형교회의 참여가 저조했던 원인이라고 위 논문은 말한다.

 
전광훈 목사, 보건소 차량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17일 오후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사택을 나와 성북보건소 차량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0.8.17
▲ 전광훈 목사, 보건소 차량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17일 오후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사택을 나와 성북보건소 차량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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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 목사와 함께 2019년에 광화문광장을 달궜던 개신교 목사들은 이런 흐름을 신속히 파악하지 못한 쪽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시대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데다가 전광훈의 독특한 언행과 코로나19 확산을 막지 못하고 부화뇌동한 결과로, 극우세력이 교계 내에서 위축되고 전광훈이 한기총과 분리되는 단계로까지 상황이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한국 극우세력은 적어도 당분간은 기독교의 자금과 조직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기가 힘들게 됐다. 극우세력이 중대한 손실을 입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위기 상황에 대해 극우세력이 어떻게 대처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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