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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9월 첫째 주에 옥상집으로 이사했다. 비록 얼마 지나진 않았지만 40년 넘는 아파트 생활에서 얻지 못한 경험을 맛보고 있다. 그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졌다.[기자말]
지난겨울도 다 지날 즈음 기다렸던 봄소식보다 '코로나19'가 먼저 도착했다. 처음에는 잘 넘어가길 바랐고 그런 기미도 보였지만 감염병은 계절의 변화만큼이나 소리소문없이 온 나라에 퍼졌다. 원치 않게 달라진 일상을 사람들은 받아들여야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생소한 개념이었다. 다른 말로는 평소 우리가 서로에게 위험할 만큼(?) 가깝게 지냈다는 말이기도 했다. 별생각 없이 내뱉은 기침과 재채기의 파급력은 엄청났고 손은 물론 사람 몸 그 자체가 감염원을 옮기는 도구였다. 사람들은 인간관계에 평소보다 엄격한 잣대를 대야만 했다.

지난 거의 석 달 사회적 거리두기는 한국인의 일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재택근무가 확대됐고 사무실에 출근하더라도 불필요한 접촉을 피하게 됐다.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이 줄었고 주말에도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한동안은 그랬다.

봄이 깊어지자 많은 사람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지쳐서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나와 아내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잘라낸 가지에서 피어난 매화

그래도 우리 부부는 최대한 외출을 자제하며 여태껏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 실천하고 있는 편이다. 봄나들이에 대한 욕망을 이길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옥상 덕분이었다. 옥상집에서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찾았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계속 살고 있었다면 우리 부부도 답답해서 밖으로 돌아다니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집에는 산 바로 아래 탁 트인 조망을 가진 옥상이 있었다. 이곳으로 이사온 지난가을부터 봄이 되면 옥상에 뭔가를 할 계획을 미리 세워 둔 바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밖에 나가지 않게 된 우리는 좀 더 일찍, 조금 더 적극적으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묘목들 이번 봄에 들여놓은 묘목들. 청매실, 설중매, 산수국 등.
▲ 묘목들 이번 봄에 들여놓은 묘목들. 청매실, 설중매, 산수국 등.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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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작은 나무 몇 그루를 들여왔다. 산수국, 라일락, 설중매 그리고 천도복숭아와 블루베리도. 아내가 나무를 택배로 주문했다고 해서 어떻게 올까 궁금했는데, 묘목들이 정성스레 포장되어 안전하게 우리에게 왔다. 그것도 하루 만에. 우리나라가 '온라인 쇼핑 강국'임을 새삼 깨달았다.

우리는 나무들을 화분에다 옮겨 심었다. 뿌리를 감싼 흙에다 분갈이용 흙을 섞었다. 지난겨울을 난 야생화들도 좀 더 큰 화분에다 옮겨 심었다. 손으로 흙을 만지는 기분이 묘했다. 어렸을 때 흙장난하며 만져보거나 군시절 삽질하며 만져본 흙과는 느낌이 또 달랐다.

아내는 매화도 보고 싶다고 했다. 주변 화원을 수소문해서 작은 청매실 나무를 실어왔다. 덩치가 좀 있어서 직접 싣고 와야 했다. 화원 주인은 잔가지를 쳐내 주어야 잘 자란다며 직접 잘라주었다. 그리고는 곧 매실 꽃이 필 거라 했다.

나는 잘라낸 가지들이 아쉬워서 버리질 못했다. 아직 살아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작은 봉오리도 보였다. 그래서 작은 병에 물과 함께 담아서 책상에 올려놓았다.
 
잘라낸 가지에서 핀 매화 가지치기 한 가지에서 핀 매화
▲ 잘라낸 가지에서 핀 매화 가지치기 한 가지에서 핀 매화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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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낸 가지에서 핀 매화 가지치기 한 매화에서 꽃이 피었다.
▲ 잘라낸 가지에서 핀 매화 가지치기 한 매화에서 꽃이 피었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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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음 날 아침 잘라낸 가지에서 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저녁에는 활짝 피었다. 놀라웠다. 잘라낸 가지의 봉오리에서 꽃이 피다니. 봄은 그 어떤 순간에도 온다는 게 느껴졌다. 3월 말로 접어든 어느 날이었다.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이었지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란 희망도 보이던 시절이었다.

덕분에 이번 봄도 외롭지 않았다

옥상에 둔 청매실 나무에도 꽃이 피었다. 3월을 지나 4월에 들며 집 주변도 빛깔이 달라졌다. 이사 전 우리 집을 처음 보러 왔을 때 주변으로 나무들이 많아서 첫인상이 좋았다. 옥상 난간 바로 옆에는 모과나무도 있어서 다 익은 열매를 따기도 했다. 모과나무 옆으로는 무슨 나무일까 궁금한 나무 여러 그루가 있었다. 이번 봄이 되어서야 무슨 나무인지 알게 되었다.
 
옥상 벚꽃 옥상 옆 벚나무에서 꽃이 피었다
▲ 옥상 벚꽃 옥상 옆 벚나무에서 꽃이 피었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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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 모를 나무들은 모두 벚나무였다. 게다가 키도 컸다. 옥상 옆으로 솟은 가지들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얼마나 활짝 피는지 벚나무 옆 모과나무에 튼 까치둥지를 가릴 지경이었다. 서재 창문으로도 만개한 벚꽃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멀리 나갈 필요도 없이 매일 집에서, 동네에서 벚꽃을 실컷 구경했다. 유명한 관광지와 비교할 건 아니지만 내가 사는 마을의 벚나무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산 바로 아래 산다는 건 마음만 먹으면 산에 갈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우리 집 앞에서 오르는 등산로는 이정표와 안내도가 있을 만큼 그럴듯한 산길을 갖고 있다. 그런데 너무 호젓해서 주 능선으로 올라갈 동안 사람 구경하기 쉽지 않다. 한마디로 사회적 거리두기와 어울리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난 지난 석 달 휴일이면 느긋하게 일어나 책을 읽다가 때론 옥상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지루해지면 사람 없는 뒷산을 오르곤 했다. 뒷산에도 벚나무가 흐드러졌고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가 흐드러졌다. 눈만 뜨고 집만 나서면 보이는 멋진 자연 덕분에 우리 가족은 결코 외롭지 않았다.

봄에 피는 꽃들에 둘러싸여 이 계절을 보내고 있다. 고개만 들면 볼 수 있는 우리 동네의 꽃과 나무들이 무척 고맙다. 모두 산 밑에 자리한 옥상집 덕분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강대호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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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40년 넘게 살던 아파트를 떠나 산 아래 옥상집에 사는 경험과 동화 공부를 하는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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