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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한국에서 터지기 3일 전에 아버지가 길거리에서 쓰러지셨다. 아침까지 멀쩡하게 일을 하러 나가셨는데,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호흡곤란으로 쓰러지셨다. 병명은 폐렴으로 인한 급성호흡곤란증이었다. 평소 건강하게 일상 생활도 하시고, 일도 하시는 편이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겨 당황스러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마지막 인사 하세요."

다급하고도 무심하게 이야기 하는 의사 옆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삽관하자고 애원을 했다. 아버지는 기도삽관 절대 안 하신다며 퇴원시켜달라고만 하셨다. 숨이 넘어가는 긴박한 상황에서 가족의 결정으로 기도삽관을 했고, 의사가 확률이 없다고 했지만 천운으로 살아나셨다. 아버지는 3주 동안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삽관을 빼고, 일반병실을 거쳐 요양병원으로 옮기셨다.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전에 폐렴에 걸린 게 다행인건지 불행인건지 어쨌든 조금씩 회복이 되어가긴 하셨다. 하지만 이미 폐는 하얗게 변해버려 담당 의사도 이런 폐 사진은 처음 본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폐는 한번 손상이 되면 전체 복구는 어렵다고 한다. 다만 조금이라도 폐 기능이 있다면 그것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는 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 줄 게 없다며 나가라고 했다. 살아나신 게 너무나 다행이었지만, 아버지는 팔과 다리, 몸 어느 한 곳도 못 움직이게 되셨다. 이유는 모르겠다. 중환자실에 너무 오래 누워 계셔서라고 한다.

요양병원으로 옮기셔야 했다. 병원을 옮기기에 너무나 안 좋은 시기인지라 어느 병원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집 근처와 집 옆 다른 구에 있는 요양병원이란 요양병원은 다 연락해 보았다. 우여곡절 끝에 힘들게 한 요양병원에 입원이 결정되었다. 그런데 입원을 하자마자 코로나로 인해 면회도 힘들다고 한다.

전혀 움직이지도 못하시는 상태에서 가족과의 면회도 차단되어 있으니 혼자 계시는 아버지는 얼마나 불안하시고 힘드실까 생각되어 참담했다.
 
 요양병원에서 누워계실 때도 틀어놓은 뉴스를 귀로 계속 들으셔서 세상 밖 소식을 알고 계신다고 했다.
 요양병원에서 누워계실 때도 틀어놓은 뉴스를 귀로 계속 들으셔서 세상 밖 소식을 알고 계신다고 했다.
ⓒ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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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으로 옮기는 날,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마스크 잘 쓰고 다니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면회도 어려워서 한참 동안 얼굴도 보지 못할텐데, 가족들에게 전하는 중요한 한 말씀이 마스크 이야기셨다.

요양병원에서 누워계실 때도 틀어놓은 뉴스를 귀로 계속 들으셔서 세상 밖 소식을 알고 계신다고 했다. 면회조차 힘들고 몸도 못 움직이시는 상태에서 병원에 혼자 계셔야 하는데, 아버지는 가족들 걱정뿐이시다.

집에서 공부방을 차려 아이들 수업을 하고 있는 나에게는 한 마디를 더 하셨다.

"코로나니깐 공부방 수업 하지마!"

이미 2월 말부터 수업 안 하고 있다라는 대답에 그제서야 안심을 하신다. 코로나19로 인해 2월 말부터 5주째 수업을 안 하고 있다.

아버지는 이미 폐가 하얗게 변하시고, 중환자실 후유증으로 팔과 다리를 못 움직이시는 상태로 요양병원에 누워만 계시는데도 40대 중반의 딸을 걱정한다. 당신의 폐가 그리 되신 건 생각 안 하시고, 집에서 수업하는 딸이 혹시나 바이러스에 노출될까 봐 노심초사하신다. 

코로나19로 인해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지 면회도 못하고, 공부방 수업도 못하고, 마스크 구입 걱정만 잔뜩하고 있는 이 상황이 빨리 종식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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