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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 사진은 지난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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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 정당론'이 정치권의 이슈다. 자유한국당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비례한국당'을 만들 수도 있다는 발언이 낳은 후폭풍이다. 의석수 감소를 막겠다는 한국당의 의도다.

지난 15일 한국당 기자간담회에서 지성우 성균관대 교수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비례대표 의석을 얻기 위한 비례정당, 위성정당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나흘 뒤 19일 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심재철 원내대표는 "좌파 세력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밀어붙이면 우리도 비례한국당을 만들 수밖에 없다"라고 발언했다. 구체적으로 현역 의원들을 비례한국당으로 옮겨 출마시키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질타의 소리가 뒤따르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지난 20일 "공당이 그런 탈법적이고, 주권자의 뜻을 노골적으로 왜곡하겠다는 망언을 할 수가 있나"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들의 사표를 막고 국민들의 뜻대로 의석 수가 구성되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있는데, 편법을 쓰며 국민들을 유도하겠다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라면서 "주권자의 주권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반면,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비례한국당' 방안을 '묘수'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민주당이 이제 데드록에 처했습니다"라고 운을 뗀 뒤 "야당의 묘수를 봤으니, 이제 문 정권의 수를 볼 차례입니다"라고 써놨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잠이 안 오겠네요"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위성정당'을 둘러싼 기대와 한계

공직선거법이 개정될 경우, 민주당과 한국당처럼 지역구 의석이 많은 정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적게 갖게 된다. 반면, 비례한국당처럼 지역구 의석이 하나도 없는 정당은 정당투표율이 높게 나온다면 비례대표 의석을 많이 가질 수도 있게 된다. 이런 수를 찾아내 공직선거법 개정 움직임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것 자체를 한국당은 높이 평가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한계점은 분명히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88조에 따르면 "다른 정당이나 선거구가 같거나 일부 겹치는 다른 후보자를 위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라고 못박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정당을 위한 선거운동을 불법으로 규정한 것. 비례한국당이 창당된다 해도, 한국당과 총선에서 공조하기 힘든 이유다.

또 패스트트랙에 올라가 있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제47조 제2항을 보면, 비례대표 후보자의 선출과 관련해 "정당은 민주적 심사 절차를 거쳐 전국 단위 또는 권역별로 대의원·당원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의 민주적 투표 절차에 따라 추천할 후보자를 결정한다"라고 규정해놨다. 대의원이나 당원 등의 투표로 비례대표 후보자를 선출하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한국당은 비례한국당의 비례대표 후보자들을 선출하기 위해 비례한국당 당원을 은밀히 별도로 모집해주거나 아니면 한국당 당원들을 그쪽으로 '위장 파견'해야 한다. 선거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판국에 '비례한국당'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면 에너지를 소진할 수밖에 없다. 

비례한국당의 조상? 유신정우회

물론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사실상 두 개의 정당을 운영했던 사례가 있다. 1972년 유신헌법 하에서 박정희 정권이 기존의 민주공화당에 더해 유신정우회(유정회)라는 새로운 정치단체를 함께 운영한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정치학계에서는 유정회를 '준정당'으로 분류한다. 

유신헌법은 국민의 선거로 구성되는 2000~5000명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대통령을 뽑도록 했다. 그에 더해, 유신 헌법 제40조 제1항은 통일주체국민회의가 국회의원 3분의 1인 73명도 선출하도록 규정했다.

같은 조 제2항에서는, 대통령이 추천한 국회의원 후보자 명단을 놓고 통일주체국민회의가 투표를 하도록 했다. 국회의원 3분의 1이 비례대표제와 동일한 원리로 선출되도록 한 것이다. 박정희는 이렇게 뽑힌 의원들을 여당인 공화당이 아닌 유정회라는 별도의 국회교섭단체로 묶었다.

이 시스템에 따라 치러진 1973년 제9대 총선에서 공화당과 유정회는 각각 73석씩을 차지했다. 총 219개 의석 중에서 정확히 3분의 1씩을 공화당과 유정회가 나눠 가졌던 것이다. 그런데 총선 직후에 공화당 당선자 2명이 당에서 제명되면서 공화당이 71석을 갖게 돼 유정회가 사실상의 원내 제1당이 됐다. 한편, 제1야당인 신민당은 52석을 차지했다.

유정회는 당원이 전혀 없었다. 국회의원들로만 구성된 교섭단체였다. 오로지 비례대표제로 인해 생겨났다는 점에서, 자유한국당이 말하는 비례한국당과 유사했다. 그런 의미에서 '비례공화당'이라 할 만했다.

그런데 '비례공화당'의 등장으로 인해 신민당뿐 아니라 공화당도 적지 않은 피해를 봤다. 의석 수가 더 많은 '위성 여당'이 출현했으니 공화당과의 관계 설정이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공화당이 큰집이고 유정회는 새 살림을 차린 분가"

심지연 경남대 교수의 <한국 정당 정치사>는 "(유정회가) 국회를 주도하려고 시도함으로써 야당인 신민당은 물론이고 여당인 공화당과도 마찰을 빚는 일이 발생했다"라고 말한다. 당시의 공화당 원내총무(원내대표)였던 김용태도 1990년에 펴낸 <김용태 자서록> 제1권에서 '야당 총무보다 유정회 총무를 상대하기가 더 힘들었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김용태는 제9대 국회 개원 전부터 유정회를 의식해야 했다. 1973년 3월 13일 치 <중앙일보> 기사 '국회 운영은 이렇게... 세 원내총무의 지상 좌담'에 따르면, 김용태는 2석 더 많은 유정회가 국회를 주도할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공화당이 큰집이고 유정회는 새 살림을 차린 분가"라는 말로 유정회를 견제했다.

출발점에서부터 공화당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 유정회였다. 이런 유정회를 박정희가 별도로 만든 것은 그의 용인술인 분할통치(divide and rule) 방식에 기인했다. 그는 5.16 쿠데타 동지 그룹인 육군사관학교 5기 출신(정승화 등)과 8기 출신(김종필 등)을 상호 견제시켰을 뿐 아니라, 10기 이전의 단기제 육사 출신과 11기 이후의 4년제 육사 출신(전두환 등)까지도 상호 대립시켰다.

그러다가 집권여당마저도 공화당과 유정회로 갈라놓은 것이다. 유정회에 담긴 박정희의 용인술에 관해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회고록 <혁명과 우상>은 이렇게 말한다.

"훗날 유정회 국회의원이라고 불리게 되는 이 집단에는 정일권의 항의로 복권된 인물들, 부패분자로 낙인 찍혔다가 다시 박정희의 필요성에 의해 구원된 인물들, 박정희의 친위부대이거나 지역구 배경이 약한 인물들, 유신 작업의 실무 공로자들 그리고 박정희가 만만치 않게 여기는 실력자 급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었다. 김종필 같은 실력자들은 공화당과 지역구에서 손을 떼게 하고 그가 생사여탈권을 가지는 유정회에 집어넣음으로써 박정희는 집권당의 중간 보스들의 날개를 잘라버리는 수법을 사용했다."

지역구 기반이 약해 지역구에서 당선될 수 없지만 박정희한테 꼭 필요한 사람도 유정회에 집어넣고, 지역구 기반이 너무 강해서 박정희가 견제할 필요성이 있는 사람도 유정회에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위성정당'이 작동했던 이유

유정회를 별도로 운영한 정치행태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권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73년에 전두환의 임기제 준장 진급을 축하하면서 고급 승용차와 금일봉을 하사한 데서도 드러나듯이, 박정희는 상상을 초월하는 금전 공세를 통해 주변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충성을 이끌어냈다.

그가 하나의 정당과 하나의 준정당을 동시에 운영하면서도 양쪽의 충성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군대 및 중앙정보부에 대한 장악력과 더불어, 가공할 정치자금 동원력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모범적인 리더십은 아니지만, 지금 한국당에서 박정희처럼 두 개의 정당을 운영할 만한 정치인은 표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10월 26일 박정희 40주기 추도식에서 황교안 대표는 "박정희 정신을 배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황교안 대표는 박정희의 정신은 배울 수 있어도 박정희처럼 2개의 정당을 운영할 역량은 갖추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재오·이문열·안상수(전 한나라당 대표) 등을 비롯한 약 500명의 보수 인사들이 황교안 리더십을 비판하면서 23일 국민통합연대를 출범시키는 것은 황교안 리더십이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국당이 비례한국당이라는 위성 정당을 별도로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리더십이 약한 한국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면, 그 위성정당은 사실상 별개의 정당으로 독립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이 된 '비례공화당'... 한국당은 감당할 수 있을까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심재철 원내대표 등 소속 의원과 지지자들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공수처법, 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서 “좌파독재 막아내고 대한민국 수호하자”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심재철 원내대표 등 소속 의원과 지지자들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공수처법, 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서 “좌파독재 막아내고 대한민국 수호하자”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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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유정회는 박정희 본인한테도 결과적으로 득이 아니라 독이 됐다. 유정회 출신 의원들은 박정희한테만 잘 보이면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유권자들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박정희에게만 충성했다.

이는 공화당에도 영향을 끼쳤다. 공화당 의원들 역시 충성 경쟁에 집착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유정회뿐 아니라 공화당도 국민이 아닌 대통령만 쳐다보게 된 것이다. 집권여당이 정상적인 정당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됐다.

이는 박정희 정권이 국민들로부터 유리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원 시스템이 정권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위의 <한국 정당 정치사>는 이렇게 말한다.

"체제 유지를 위해 여권을 두 집단으로 분리해놓고 경쟁을 유도하는 바람에 공화당의 공천권과 유정회의 추천권을 동시에 갖고 있는 박정희 개인으로서는 절대적인 충성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충성에 몰두한 나머지 정당 본연의 기능의 하나인 유권자의 지지·동원 노력을 등한시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체제의 내구성이 훼손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는 결국 유신체제의 파탄으로 이어졌다."

비례한국당이 태어난다면, 그 조상은 '비례공화당' 즉 유정회라 할 수 있다. 유정회는 박정희 특유의 리더십 하에서나 가능했을 뿐 아니라 결국에는 박정희 체제의 종말을 재촉하는 악재로 작용했다. 박근혜 탄핵으로 치명타를 입은 한국당이 박근혜 아버지의 실패작인 비례공화당의 전철을 밟으려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홍준표 전 대표는 비례한국당으로 인해 여권이 데드록에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비례한국당의 출범 자체도 쉽지 않겠지만, 설령 출범한다 해도 그것은 한국당의 발목을 잡는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강력한 리더십이 없는 상황에서 두 정당이 상호 대립하게 되면, 제20대 총선 이후의 한국당 지도부의 골치는 더 아플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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