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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는 영국 한 마을에서 영국 전체를 짓는 이야기를 한다. 소형의 영국을 짓다 보면 그 마을을 넣어야 하고, 소형 영국 마을 안에는 지금 짓고 있는 소형 영국이 들어가야 하고…… 이런 끝없는 반복을 이야기한다……. 결국은 자기 안의 자기도 마찬가지.”(최동열), 《보르헤스 그리고 창작》(희래출판사, 2014) 121쪽.
▲ 최동열의 〈자기 안의 자기〉 “보르헤스는 영국 한 마을에서 영국 전체를 짓는 이야기를 한다. 소형의 영국을 짓다 보면 그 마을을 넣어야 하고, 소형 영국 마을 안에는 지금 짓고 있는 소형 영국이 들어가야 하고…… 이런 끝없는 반복을 이야기한다……. 결국은 자기 안의 자기도 마찬가지.”(최동열), 《보르헤스 그리고 창작》(희래출판사, 2014) 121쪽.
ⓒ 최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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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그의 단편소설 <기억의 천재 푸네스> 첫머리에서 '기억한다'를 "성스러운 동사"라 한다. 그는 푸네스의 '기억'에 견주면 보통 사람들의 기억은 엄밀히 말해 기억이 아니라 '생각'이라고까지 한다. 그래서 그는 '기억한다'고 하지 않고 '생각한다'고 쓴다.

3시 14분 옆에서 본 강아지와 3시 15분 앞에서 본 강아지

푸네스의 기억력은 타고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백분 발휘하지 못했던 것 같다. 푸네스는 열아홉 살 때 짙은 쪽빛 얼룩무늬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정신을 잃었고, 깨어났을 때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전신 마비 증세가 온다. 나을 가망은 거의 없었다.

그는 사고 이전의 자신을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이, 자기도 장님이며, 귀머거리이고 얼간이였으며 건망증이 있었다"고. 물론 그가 정말 장님이라는 말은 아니다.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보았으며, 듣지 못한 채 들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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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헨티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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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의식을 회복했을 때 그의 머리는 아주 맑았다. 말에서 떨어지기 전에도 기억력이 남달랐지만 그에 견주어 지금은 오래되고 사소한 기억도 뚜렷하게 되살려 낸다. 특정한 날짜 '1882년 4월 30일' 동틀 무렵 남쪽 하늘의 구름 모양을 기억하고, 배의 어떤 노가 일으키는 물보라를 다른 노가 일으키는 물보라와 구별할 수 있다. 하루를 완전히 재구성할 수 있는데, 이런 일은 꼬박 하루가 걸린다.

그는 이런 말까지 한다. "이 세상이 생긴 이래 모든 인간이 했을지도 모르는 기억보다 더 많이" 기억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는 어느 망아지의 헝클어진 갈기, 나무의 나뭇잎 하나하나뿐만 아니라 그걸 본 순간의 인상마저도 기억한다. 이뿐만 아니다. 그는 3시 14분 옆에서 본 강아지와 3시 15분 앞에서 본 강아지의 이름이 같다는 것을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과 손을 보고 매번 놀란다. 소리 없이 곪아 가는 잇몸과 충치와 피로를 초마다 느끼고, 그 또한 언제까지나 기억한다. 더구나 보고 들은 것뿐만 아니라 그가 '생각한 모든 것', 심지어 딱 한 번만 생각한 것이라도 그의 기억에서는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보르헤스는 푸네스가 "사고하는 데는 그리 훌륭한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한다. 보르헤스에게 사고는 "차이점을 잊는 것"이고, "일반화하고 추상화하는 것"이다. 여기서 '차이점'은 조랑말과 얼룩말처럼 다른 개체간의 차이가 아니라 같은 조랑말간의, 같은 얼룩말간의 차이를 말한다. 그런데 "푸네스의 비옥한 세계에는 상세한 것, 즉 곧바로 느낄 수 있는 세세한 것만 존재"할 뿐이다.

이 책 11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인간이 만든 다양한 도구 중에서 가장 놀랍고 굉장한 것은 당연히 책입니다. 그 나머지는 인간의 육체를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미경과 망원경은 시력을 확장한 것이며 전화는 목소리를 확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쟁기와 칼은 팔을 확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책은 다릅니다. 책은 기억과 상상을 확장한 것입니다.”
▲ 《말하는 보르헤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송병선 옮김, 민음사, 2018) 표지 이 책 11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인간이 만든 다양한 도구 중에서 가장 놀랍고 굉장한 것은 당연히 책입니다. 그 나머지는 인간의 육체를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미경과 망원경은 시력을 확장한 것이며 전화는 목소리를 확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쟁기와 칼은 팔을 확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책은 다릅니다. 책은 기억과 상상을 확장한 것입니다.”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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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불완전성과 소설의 본령

보르헤스는 소설 첫머리에서 푸네스를 이렇게 기억한다.

"그는 한평생 내내 황혼에서 여명까지 그 꽃을 바라보았지만, 마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그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푸네스 바로 앞에 코스모스 한 송이가 있다면, 푸네스에게 그 코스모스는 매초마다 다른 꽃송이다. 그래서 푸네스에게는 "일반적인 사고, 즉 플라톤적인 사고를 할 능력이 실질적으로 거의" 없다. 어쩌면 보르헤스는 이 짧은 소설을 통해 인간의 한계, 어떤 일을 하거나 보거나 그 일에 대해 들은 것을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기억의 불완전성이야말로 플라톤적인 사고의 출발이라고 말이다. 또한 기억의 불완전성이 이야기의 시작, 소설의 시작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푸네스의 기억에는 인간의 감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름이 김달수인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에게 김달수는 초마다 다른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에게는, 한 시간 전 김달수와 지금의 김달수는 다른 사람이다. 그의 사고 속에는 사람이나 짐승 또는 사물의 개체성(individuality)이 있을 수 없다. 보르헤스는 푸네스의 사고에 일반화할 수 있는 여지가 없기 때문에 플라톤적인 추론을 할 수 없다고 걱정하지만 정작 더 심각한 것은 그에게 이 세상 만물은 개체성이 없다는 점이다.

김달수가 그의 둘레 보통 사람과 어떻게 다른지는 그에게 그닥 중요하지 않다. 그는 김달수를 매초마다 다른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는 사람들이 김달수를, 김달수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김달수'로 아는 것이 불만이다. 그는 김달수의 개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소설은 인간의 개체성을 다룬 것이고, 그 개체의 특성 속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푸네스에게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수 없고, 당연히 '소설'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보르헤스는 이 짧은 소설에서 '소설의 본령'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보르헤스가 1976년과 1980년에 한 인터뷰 열한 개를 모아 엮었다.
▲ 《보르헤스의 말-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윌리스 반스톤 이 책은 보르헤스가 1976년과 1980년에 한 인터뷰 열한 개를 모아 엮었다.
ⓒ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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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은 기억과 망각 속에서 태어난다

1980년 3월 보르헤스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공개 인터뷰를 한다. 인터뷰어 반스톤이 묻는다. "당신이 창조한 인물 가운데 푸네스가 가장 먼저 손꼽을 수 있는 인물인가요?" 보르헤스는 "네. 그건 내가 쓰긴 했지만 꽤 좋은 이야기라고" 답한다. 이날 한 청중이 "<기억의 천재 푸네스>의 등장인물에 대해 말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 질문을 받고 보르헤스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불면증에 대한 은유 또는 알레고리로 썼어요. 나는 오랫동안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무한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미쳐 버릴 거라는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이야기를 쓰고 난 뒤에는 잘 잘 수 있었어요.
-《보르헤스의 말-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마음산책) 139




보르헤스는 단편소설집 <기교 Artificios>(1944) 서문에서도 이 작품을 일러 "불면에 대한 긴 메타포"라고 한다. 하지만 이뿐 더는 말하지 않는다. 독자는 이 작품을 꼼꼼히 읽어도 이 말이 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다. 일단 그가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불면에 대한 은유'라고 했듯 이 작품은 '불면 그 자체'를 말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다른 '어떤 무엇'은 무엇일까.

한 달 뒤 4월 보르헤스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에서도 공개 인터뷰를 한다. 한 청중이 묻는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는 자전적인 작품인가요?" 보르헤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픽션들》은 1941년에 나온 소설집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의 정원》(8편)과 1944년에 나온 소설집 《기교》(9편)에 실린 단편소설 열일곱 편을 한 권에 묶어 낸 단편소설집이다. 참고로 그는 장편소설을 한 편도 쓰지 않았다. 이 책의 번역자 송병선은 ‘Ficciones’를 ‘픽션들’로 옮겼는데, 이는 단수형 ‘픽션’으로 하는 것이 나을 듯싶다. 이것은 “Soon-i, eat some tangerines!”를 “순이야, 귤들 먹어라!”로 옮기는 것과 같다. 이 소설집에는 스페인어 복수형 낱말을 겹토씨 ‘들’을 알뜰히 붙여 번역한 것이 셀 수 없이 많은데, 모두 다 단수로 옮기는 것이 읽기에도 편하고, 우리 말법에도 맞다.
▲ 《픽션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글·송병선 옮김, 민음사, 2017) 표지 《픽션들》은 1941년에 나온 소설집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의 정원》(8편)과 1944년에 나온 소설집 《기교》(9편)에 실린 단편소설 열일곱 편을 한 권에 묶어 낸 단편소설집이다. 참고로 그는 장편소설을 한 편도 쓰지 않았다. 이 책의 번역자 송병선은 ‘Ficciones’를 ‘픽션들’로 옮겼는데, 이는 단수형 ‘픽션’으로 하는 것이 나을 듯싶다. 이것은 “Soon-i, eat some tangerines!”를 “순이야, 귤들 먹어라!”로 옮기는 것과 같다. 이 소설집에는 스페인어 복수형 낱말을 겹토씨 ‘들’을 알뜰히 붙여 번역한 것이 셀 수 없이 많은데, 모두 다 단수로 옮기는 것이 읽기에도 편하고, 우리 말법에도 맞다.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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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아요. 그 작품은 불면증에 대한 은유로 쓴 거랍니다. 밤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게 생각나는군요. 나 자신에 대해 잊으려고, 내 방을 잊으려고, 방 바깥의 정원을 잊으려고, 가구를 잊으려고, 내 몸에 관한 여러 가지 사실을 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잊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나는 완벽한 기억에 짓눌린 한 남자를 생각했지요.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 〈기억의 천재 푸네스〉라는 악몽을 썼어요.
-《보르헤스의 말-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마음산책) 161쪽


이 구절을 보면 보르헤스가 '불면증에 대한 은유'를 어떤 뜻으로 말했는지 조금 알 수 있다. 그는 이 짧은 소설에서 '잠을 못 이루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잠을 이루지 못했을 때의 의식'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뿐, 더는 알 수가 없다. 대체 그는 이 소설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것은 다시 한 달 전 인터뷰로 돌아가 봐야 한다. 거기에 그 실마리가 있다.

1980년 3월 보르헤스는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인터뷰를 한다. 인터뷰어는 호르헤 오클랜더와 윌리스 반스톤이었다. 반스톤이 보르헤스의 말을 끌어내기 위해 말을 붙인다. "저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 매력적이고, 그 일은 내가 늘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이때 보르헤스가 맞장구를 치며 이렇게 말한다.

네, 맞아요. 나는 눈이 멀었기 때문에 거의 언제나 그런 일을 해야 합니다. 눈이 멀기 전에는 언제나 이런저런 것을 구경하고 읽는 일에서 피난처를 찾았지요. (……) 그땐 30분 정도 집 밖에 나갈 때도 책을 가져가지 않으면 아주 기분이 안 좋았어요. (……) 눈이 멀지 않았을 땐 늘 여러 가지 것으로 내 시간을 채워야 했지요. 지금은 그러지 않아요. 나 자신을 놓아둔답니다. (……) 난 기억 속에 살아요. 그리고 시인은 모름지기 기억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상상력이란 무엇인가요? 난 상상력이 기억과 망각 속에서 생겨난다고 봐요. 이 두 가지를 섞어 놓은 것이라 할 수 있죠.
사람들은 기억도 해야 하고 잊기도 해야 해요. 모든 걸 기억해서는 안 돼요. 왜냐하면 내 작품에 나오는 푸네스처럼 모든 것을 끝없이 기억하면 미쳐 버릴 것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우리가 모든 걸 잊는다면, 우린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거예요. 우린 우리 과거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누구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거예요. 우린 이 두 가지 요소가 뒤섞인 상태를 지향해야 해요. 안 그래요? 이 기억과 망각을 우린 상상력이라 하지요. 아주 거창한 이름이에요.
-《보르헤스의 말-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마음산책) 50-52쪽
보르헤스 아버지는 변호사이자 심리학 교수였기 때문에 집 형편이 아주 넉넉했다. 그런데 대대로 이 집안 남자들에게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고통이 하나 있었다. 바로 눈이 안 좋았다. 아버지는 보르헤스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 눈처럼 눈동자가 파란 것을 보고 뛸 듯이 기뻐했다. 하지만 보르헤스가 자라면서 눈동자가 밤빛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자식도 어쩔 수 없이 눈이 안 좋아질 팔자라는 것을 직감한다.

'반-기억'으로서의 상상력

1914년 아버지의 시력이 안 좋아져 더 이상 변호사 업무를 볼 수 없게 되자 식구들은 아버지 눈 치료를 위해 유럽으로 떠난다. 7년 동안 유럽을 돌아다니며 치료를 하고 아르헨티나로 돌아오지만 시력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때부터 보르헤스 집안은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다.

1935년 보르헤스는 불면증에 시달렸고 여름이 오자 지쳐 권총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 자살은 실패로 끝난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 모티브는 이때의 불면증에서 왔을 것이다. 이태 뒤 1937년, 보르헤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미겔 카네 시립도서관에 사서로 취직한다. 그의 나이 서른여덟,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나이였다. 그는 이 무렵 시력이 더 안 좋아진다. 1927년부터 여덟 번이나 눈 수술을 받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더구나 이때 남의 눈을 피해 도서관 지하 책 창고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한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안 좋았는데 어두운 지하 창고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책을 읽어 안 좋은 시력이 더 나빠졌다. 1946년 페론이 정권을 잡자 보르헤스는 반정부 선언문에 서명하는데, 이것이 빌미가 되어 해고된다. 그로부터 6년 뒤 1955년 페론 정권이 무너지고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눈은 아무것도 볼 수 없을 만큼 시력을 잃은 상태였다. 국립도서관에는 책이 80만 권이나 되었지만 단 한 권도, 단 한 자도 읽을 수 없었던 것이다.

1955년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에 오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눈은 아무것도 볼 수 없을 만큼 시력을 잃은 상태였다.
▲ 아르헨티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1955년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에 오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눈은 아무것도 볼 수 없을 만큼 시력을 잃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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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인용문에서 그는 잠깐 집 밖을 나갈 때에도 책이 없으면 불안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그만큼 책을 좋아했다. 책이 없으면, 활자로 되어 있는 무언가가 손에 없으면 불안한 증세, 일종의 활자병이다. 그는 시력을 잃기 전에는 책을 읽고, 자신의 두 눈으로 본 것에 사로잡혀 살았다. 하지만 시력을 잃은 뒤로는 '기억 속'에서 산다고 말한다. 그는 묻는다. (도대체) "상상력이란 무엇인가요?" 그리고 이렇게 대답한다. "난 상상력이 기억과 망각 속에서 생겨난다고 봐요." 그는 기억과 망각 속에서 상상력이 태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은 좋은 것보다는, 자신의 인생에서 충만한 일보다는 대체로 '상처로서의 기억'이 많다. 우리는 그 상처를 '망각'해야만 하루하루를 버텨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억은 왜곡되고, 뒤틀리고, 가공이 된다. 보통 사람과 달리 예술가는 상처로서의 기억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치유해 나간다. 그것은 어쩌면 망각하는 과정 속에서 동반하는 '반-기억'으로서의 상상력일 것이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서 푸네스는 어떤 것도 망각하지 못한다. 그의 기억은 스캐너와 같고, 호불호가 없다. 망각하는 과정도, 일체의 가공도 없다. 그래서 그의 기억 속에서는 상상력이 생겨날 수 없고, 소설도 예술도 태어날 수 없는 것이다. 보르헤스는 말한다. "우린 이 두 가지 요소가 뒤섞인 상태를 지향해야" 하다고. 그리고 예술가의 상상력은 그 기억과 망각 속에서 태어난다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광주드림에도 보냅니다.



태그:#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김찬곤, #기억의 천재 푸네스, #기억과 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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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말에는 저마다 결이 있다. 그 결을 붙잡아 쓰려 한다. 이와 더불어 말의 계급성, 말과 기억, 기억과 반기억, 우리말과 서양말, 말(또는 글)과 세상, 한국미술사, 기원과 전도 같은 것도 다룰 생각이다. 호서대학교에서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childk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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