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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나라 때 편집된 설화집 <태평광기(太平廣記)>에 '천의무봉(天衣無縫)'이란 사자성어가 만들어진 유래가 나온다.

"얼굴도 잘 생기고, 말도 잘하고, 또 글도 잘 쓰는 곽한(郭翰)이라는 사내가 있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밤, 그는 나무 밑에서 바람을 쐬다가 하늘에서 내려온 아름다운 선녀를 만난다. 꿈을 꾸는 듯한 황홀감에 빠진 그는 선녀에게 하늘나라에서 온 것을 증명하라고 한다. 그러자 선녀는 그에게 옷을 보여준다. 그런데 선녀의 옷은 가볍고 부드러운 데다 옷에 꿰맨 흔적이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곽한은 이 같은 사실이 믿기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선녀에게 옷에 바느질 자국이 없는 까닭을 묻는다. 그러자 선녀는 하늘나라에서는 옷을 지을 때 바늘과 실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천의무봉! 선녀의 옷에는 꿰맨 흔적이 없다!"

글쓰기 얘기를 한다면서 느닷없이 사자성어 고사를 꺼내 것을 의아해 할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오늘 하려는 얘기의 의미와 딱 들어맞는 적절한 예가 이것 말고 또 있을까 싶어서 느닷없지만 계산 하에 이 얘기를 한 것이다.

오늘은 접속사 사용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글쓰기 책을 보면 으레 접속사 사용 문제에 대해 다룬다. 대부분의 경우 접속사를 사용하지 말라고까지 주장한다. 어떻게 보면 앞에서 인용한 사자성어 '천의무봉'과 같은 문장을 구사하라는 얘기다.

아, 앞에서 천의무봉의 의미 하나를 놓친 게 있다. 천의무봉은 "시나 문장이 꾸밈없이 자연스럽고 깔끔해 흠잡을 데가 없음을 이르는 말"(네이버 학생백과)이다.

이 의미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어령 교수의 '문장론'이 있다. 좀 길게 인용한다.

"기량이 있는 상목수는 못질을 하지 않는다. 못 하나 박지 않고 집 한 채를 짓는다. 억지로 못질을 하여 나무를 잇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아귀를 맞추어 균형과 조화로 구조물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문장과 문장을 이어가는 기술도 마찬가지이다. 서툰 글일수록 '그리고, 그래서, 그러나'와 같은 접속사의 못으로 글을 이어간다. 그런 글을 읽다 보면 못을 박는 망치 소리처럼 귀에 거슬리게 된다. 잘 다듬어진 글의 이미지와 리듬은 인위적으로 접속사를 붙이지 않아도 자석처럼 서로 끌어당기고 어울려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글의 앞머리만이 아니다. 글을 맺는 종지형도 마찬가지이다. 서툰 글일수록 '것이다'로 끝맺는 것이 많다. 한 글에 '것이다'를 몇 번 썼는가, '그리고' '그러나'와 같은 접속사를 얼마나 썼는가 하는 기계적인 통계만으로도 악문과 명문을 구별해낼 수 있다."(<한국의 명문> 중에서)
 
다시 돌아와 하던 얘기를 계속하면, 여기서 바느질을 접속사로 비유해보면(이어령 교수는 접속사를 '못'으로 비유했다), '바느질 없는 옷'은 '접속사 없는 문장'이라고 읽어도 무방하다.

글은 문장과 문장이 계속 이어져서 이루어진다. 물론 한 문장으로 된 글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적어도 두 문장 이상이다. 당연히 두 문장(문장과 문장)의 자연스런 연결 문제가 글쓰기의 중요한 과제로 대두된다.

접속사의 사용은 바로 이 문장과 문장을 연결할 때 필요하다. 때로는 문장 중간에서도 자연스런 연결을 위해 필요하다면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접속사는 필요한 곳에 사용하면 된다.

그런데 앞의 이어령 교수의 글에서 보듯 "못 하나 박지 않고 집 한 채를 짓"듯 접속사 한 개 쓰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을까. 이어령 교수는 정말 접속사 한 개 사용하지 않고 글을 자연스럽게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가능할 수는 있어도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다. 특히 글쓰기 초보자인 우리들에게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접속사를 사용하지 않고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곳에는 써야 한다는 당위가 생긴다. 이어령 교수의 말도 정말로 못 하나 박지 않고 집을 짓는다기보다는 가능하면 못을 안 쓴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접속사는 필요한 곳에 사용하여 문장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한글 문법에 접속사는 어엿한 품사로 존재한다. 애당초 필요 없는 존재라면 따로 품사의 이름을 지어 얘기할 필요가 없다. '접속사'는 문장에서 나름대로의 분명한 역할을 하고 있기에 엄연한 존재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접속사를 쓰되, 남용하지 않아야 한다. 과도한 접속사 사용은 되레 글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내가 썼던 '천의무봉' 고사 이야기를 여기로 그대로 가져와서 읽어보자.

"얼굴도 잘 생기고,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곽한(郭翰)이라는 사내가 있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밤, 그는 나무 밑에서 바람을 쐬고 있다가 하늘에서 내려온 아름다운 선녀를 만난다. 꿈을 꾸는 듯한 황홀감에 빠진 그는 선녀에게 하늘나라에서 온 것을 증명하라고 한다. 그러자 선녀는 그에게 옷을 보여준다. 그런데 선녀의 옷은 가볍고 부드러운 데다 옷에 꿰맨 흔적이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곽한은 이 같은 사실이 믿기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선녀에게 옷에 바느질 자국이 없는 까닭을 묻는다. 그러자 선녀는 하늘나라에서는 옷을 지을 때 바늘과 실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천의무봉! 선녀의 옷에는 꿰맨 흔적이 없다!"

밑줄 친 것에서 보듯 모두 다섯 곳에 접속사가 쓰이고 있다. 나는 이 접속사들을 모두 꼭 써야 했을까? 앞에서 글을 쓸 때 나중에 예시글로 사용하려고 일부러 접속사를 넣었었다. 애초에 썼던 글은 이랬다.

"얼굴도 잘 생기고,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곽한(郭翰)이라는 사내가 있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밤, 그는 나무 밑에서 바람을 쐬다가 하늘에서 내려온 아름다운 선녀를 만난다. 꿈을 꾸는 듯한 황홀감에 빠진 그는 선녀에게 하늘나라에서 온 것을 증명하라고 한다. 선녀는 그에게 옷을 보여준다. 선녀의 옷은 가볍고 부드러운 데다 옷에 꿰맨 흔적이 전혀 없었다. 곽한은 이 같은 사실이 믿기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선녀에게 옷에 바느질 자국이 없는 까닭을 묻는다. 선녀는 하늘나라에서는 옷을 지을 때 바늘과 실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천의무봉! 선녀의 옷에는 꿰맨 흔적이 없다!"


이어령 교수가 말한 것처럼 못 하나 박지 않고 지은 집과 같이 접속사를 한 개도 사용하지 않았다. 어색한가. 읽을 만할 것이다. 그렇지만 접속사가 들어가면 뜻을 보다 명확하게 해줄 수도 있다. 접속사의 종류를 보면 그 역할을 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접속사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접속사에는 우선 순접관계와 역접관계가 있다. 말 그대로 순접관계는 순차적으로 연결해주는 접속사를 말하는데, '그리고, 그래서, 그리하여, 이와 같이' 등이 있다. 역접관계는 순접관계의 반대개념으로 앞의 문장과 반대되는 문장을 쓸 때 사용하면 좋다. '그러나, 그렇지만, 하지만'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밖에도 '그러므로, 따라서, 왜냐하면'과 같이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연결하는 인관관계사, '예를 들면, 가령, 예컨대'와 같은 예시관계, '또, 뿐만 아니라, 더구나'와 같은 첨가관계, '그런데, 아무튼, 그러면'과 같은 전환관계, '그리고, 한편'과 같은 대등관계, '따라서, 다시 말하면, 곧'과 같은 환원관계 접속사가 있다(고수유의 <글쓰기가 두려운 그대에게> 참조).

하지만 복잡하게 '~관계 접속사'라는 말을 너무 의식하지 말길 바란다. 이미 우리 몸이 접속사의 바른 사용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접속사가 떠오르곤 한다. 그걸 쓰면 된다.

다만 접속사를 꼭 써야 하는가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접속사 사용에 너무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점검해보고 사용하지 않고도 된다는 생각이 들면 생략하면 된다.

뭐든 지나치면 해롭다. 접속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장마다 접속사를 사용하면 그 글을 읽기가 참 불편하다. 또 접속사가 있으면 좋을 듯한 데도 접속사가 없으면 그 문장도 읽기가 불편하다. 그래서 접속사는 사용하되, 남용하지 말고 꼭 필요한 곳에는 써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조성일의 글쓰기 충전소'에도 포스팅했습니다.



태그:#접속사 , #글쓰기, #남용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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