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멤버런스 데이(Remembrance day)를 추모하는 첼시 선수들 .

▲ 리멤버런스 데이(Remembrance day)를 추모하는 첼시 선수들 . ⓒ EPL


매년 11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PL)를 보다 보면 유니폼에 달린 붉은 꽃이 보인다.

붉은 꽃의 정체는 무엇일까? 유니폼뿐만 아니라 감독, 관중 등까지 모두 붉은 꽃을 부착해 경기장을 붉은색으로 수놓는다. 이 꽃의 정체는 양귀비꽃이다. 현충일이라고 할 수 있는 리멤버런스 데이(Remembrance day)는 영국을 포함해 호주, 캐나다 등 영연방국가에서 1차 대전이 종전 선언된 1918년 11월 11일을 기념하는 날인데, 그 날을 추모하기 위해 가슴에 양귀비꽃(poppy)을 달고 다닌다.

왜 양귀비꽃일까? 그 이유는 시 한 편에 담겨있다. 1915년 캐나다의 참전 의사인 존 맥크래(Johon McCrae)의 플랜더스 전쟁터(In Flanders Fields)가 발간되어 유명해졌다. 벨기에의 플랜더스에서 젊은 병사들의 희생을 생각하며 쓴 시가 널리 퍼지면서 그 속에 나온 양귀비는 추모하는 상징물이 됐다. 이후 영연방국가뿐 아니라 프랑스, 미국 등도 이날을 기리고 있다.

경기 시작 전 2분간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묵념하며 각자의 의미를 전달한다. 2012년 최초로 당시 EPL 20개 구단이 포피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 그러나 포피는 축구계에서는 마냥 너그럽지 않다. 2016년 11월 영국 정부가 국제축구연맹(FIFA)에 국가대표 유니폼에 포피를 새기는 것을 요청했지만, 정치적 중립성 훼손이라는 이유로 금지했다.

양귀비꽃은 영국인에게 매우 뜻깊다. 그러나 그들에게 피해를 입었던 나라에게는 양귀비 모양의 상징물이 불편함이 될 수 있다.

포피와 맞서는 축구 선수, 제임스 맥클린

제임스 맥클린 .

▲ 제임스 맥클린 . ⓒ 제임스 맥클린


포피와 맞서는 한 축구 선수가 있다. 바로 제임스 맥클린이다. 아일랜드 국가대표 선수인 그는 세계대전의 모든 희생자에게 큰 고마움을 갖고 있지만, 포피가 그들만을 추모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양귀비꽃을 거부했다.
 
포피는 세계대전 희생자들뿐만 아니라 전쟁 이후 다른 영국군들도 추모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아일랜드 출신인 맥클린은 포피를 다는 것은 북아일랜드 분쟁, 1972년 피의 일요일 사건을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해 공식적으로 거부하기 시작했다.
 
피의 일요일은 1972년 1월 30일, 북아일랜드 데리에서 영국군이 비무장 시위대에 무차별 발포하여 14명이 숨지고 13명이 상처를 입은 사건이다. 맥클린은 사건의 지역이자 아일랜드 리그에 참가하는 유일한 북아일랜드 팀인 '데리 시티 FC'에서 4년간 뛰기도 했다.
 
또한, 그의 조국인 아일랜드는 약 800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고 북부 얼스터 지방에 영국이 이주시킨 개신교도들로 인해 아일랜드, 북아일랜드 분단의 아픔을 겪었다. 사람들은 포피를 강요했다. 그러나 맥클린은 2012년부터 포피를 거부했고, 야유와 심하게는 '살해 협박'까지 무릅쓰고 신념과 조국을 먼저 생각했다.
 
양귀비꽃... 누군가에게는 추모, 누군가에게는 상처

아직도 중국은 마약이라고 하면 치를 떤다. 19세기 아편 전쟁으로 인해 중국은 큰 피해를 받았고, 여전히 이를 잊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다. 양귀비는 아편의 연료가 된다. 포피 데이와 본 의미는 다르지만 중국에 상처가 되지 않을 수가 없다.
 
2010년 11월,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영국 캐머런 총리와 영국 방중단들도 양귀비꽃을 가슴에 달았다. 중국에서는 아편전쟁이 연상되기 때문에 삼가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가슴에 달고 행사를 진행했다.

여전히 영국은 사과와 배상을 하지 않고, 아편전쟁을 일으킨 빅토리아 여왕 등을 영웅으로만 기리고 있는 상황이다.
 
또, 영국은 180여 년 동안 인도를 지배했다. 무자비한 통치 방식으로 사람들을 괴롭혔다. 인도도 영국으로부터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를 받지 못했다. 심지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97년 독립 50주년 기념으로 인도를 방문했을 때 "역사를 다시 쓸 수는 없다. 비극적 역사를 거울삼아 환희의 역사를 만들어가자"고 말할 정도로 반성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관중들의 포피 카드 섹션 .

▲ 관중들의 포피 카드 섹션 . ⓒ EPL


이처럼 역사에 대해 태도를 정리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시 생각해 볼 부분이다. 또 축구에서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입장만 내비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것이다.

양귀비꽃의 본 의미는 전사한 군인을 추모한다는 것에 있지만,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그 의미를 여러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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