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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초 터진 캄보디아 제1야당(CNRP) 부총재의 불륜스캔들(관련기사: 야당 부총재 불륜 스캔들, 가장 신난 사람은 독재자)로 한 달이 넘도록 정국이 시끄러운 가운데 다시 캄보디아 국민들의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한 오래된 사건이 하나 있다.

'국민 여배우'로 추앙받던 인기스타 '삐셋 삘리카 총격 살해 사건'이다. 그녀의 이름이 또 다시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 이유는 살해 사건의 배후로 캄보디아 최고위급 정치인이 연루되었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약 17년 전인 지난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7월 6일 프놈펜 시내 오르세이 시장에서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렸다. 7살 조카와 함께 자전거를 사러 상점에 들른 여성이 갑자기 나타난 괴한이 쏜 총에 맞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만 것이다.

사건 발생 직후 그녀는 프놈펜에서 가장 큰 깔멧종합병원에 곧바로 실려 갔지만, 입원 일주일만인 7월 13일에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이 여성은 국민 여배우이자 무용수로서도 사랑받던 삐셋 삘리카였다. 사망 소식 직후 1만 명의 조문객이 줄을 설 정도로 캄보디아 국민들은 이 유명 여배우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했다. 방송들은 하루 종일 애도방송을 내보냈고, 그녀의 장례식은 수천여 명이 몰려들어 국상을 방불케 했다.

국민 여배우의 사망, 외신이 지목한 배후는...

캄보디아 국민배우로 추앙받던 여배우 피셋 삘리카 생전 모습.
 캄보디아 국민배우로 추앙받던 여배우 피셋 삘리카 생전 모습.
ⓒ 위키페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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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이 끝나자 이제는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 누구냐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목격자가 많은 백주대낮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범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믿음도 잠시, 현장 목격자들 중 아무도 증언을 하려 나서지 않았다. 최고 권력을 가진 누군가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이미 장안에 파다하게 퍼졌기 때문이다.

현지 신문 중 한 곳이 무언가를 암시하듯 당시 성스캔들에 휩싸인 클린턴 미국 대통령 부부와 훈센 총리 부부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오직 소문과 추측만 무성할 뿐,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시간이 갈수록 다수의 침묵 속에 사그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지 3개월 만인 그해 10월 7일,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프랑스 잡지 <렉스프레>(L'express)가 이 사건과 관련해 핵폭탄급(?) 폭로기사를 내보낸 것이다. 추측과 소문이 결국 사실로 드러나자 캄보디아 사회는 일대 큰 놀라움과 충격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 매체는 여배우 삐셋 삘리카와 캄보디아 최고 권력자인 훈센총리가 은밀한 연인관계였음을 폭로하는 한편, 암살의 배후로 놀랍게도 총리의 아내인 분라니 여사를 지목했다. 또한 이 여배우가 임종 전 자신을 살해하려고 기도한 자가 훈센총리의 부인인 분라니 여사임을 강조했다고 당시 가족들의 증언내용을 그대로 실었다. 또한 그녀가 남긴 일기장을 확보해 일부 내용까지 공개했다.

이 뉴스잡지가 공개한 일기장에는 그와 훈센 총리가 1998년 8월 18일 처음 만난 것으로 나와 있다. 훈센총리가 미화 18만 달러짜리 고급주택을 사주고, 은행계좌에 20만 달러도 넣어주었으며 어린 아들까지 둔 유부녀였던 그녀가 남편과 서둘러 이혼할 수 있도록 사법부에도 압력을 행사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훈센 총리는 그녀에게 자신이 손수 쓴 시도 적어 보냈다. 이 시 중 일부는 죽은 여배우의 가족들이 지금도 보관 중이다. 또한 이 기사에는 새로 사준 주택은 훈센 총리의 자택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어 훈센 총리가 자주 들렀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두 남녀 간 불륜은 8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총리의 부인인 분라니 여사가 두 사람 사이를 눈치 챈 것이다.

그녀의 일기장에는 이듬해 1999년 4월 11일 일요일 훈센 총리와 마지막 통화를 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훈센 총리가 자신과의 관계를 끊자고 했다는 것이다. 며칠 밤을 침대에 누워 울었다는 대목도 나온다.

국민 여배우 삐셋 삘리카의 살해사건에 훈센총리의 영부인 분 라니 여사가 개입되었다는 루머가 여전히 돌고 있다. 지난 달 이 사건을 재조명해 야권인사가 올린 삐셋 삘리카 관련 페이스북 (Daily News)글은 조회 횟수 무려 37만명을 기록했으나 최근 계정이 영문도 모르게 갑자기 사라졌다.
▲ 지난 1월 전승기념일 행사장에 참석한 훈센 총리와 영부인 분 라니 여사. 국민 여배우 삐셋 삘리카의 살해사건에 훈센총리의 영부인 분 라니 여사가 개입되었다는 루머가 여전히 돌고 있다. 지난 달 이 사건을 재조명해 야권인사가 올린 삐셋 삘리카 관련 페이스북 (Daily News)글은 조회 횟수 무려 37만명을 기록했으나 최근 계정이 영문도 모르게 갑자기 사라졌다.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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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십자 총재이기도 한 분라니 여사는 삐셋 삘리카가 남편과의 불륜관계를 끝내자 본격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현지 유명 사업가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남편인 훈센 총리가 사준 것으로 추정되는 고급 도요타 자동차와 주택 등기부등본을 몰수시키고, 은행 통장도 지급 정지 시켰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분라니 여사는 충격적인 범죄까지 저질렀다. 그녀를 암살하기 위해 당시 권력층 수뇌부인 경찰청장 혹 렁디를 불러들인 것이다. 영부인이 여배우를 죽이려한다는 의도를 알아챈 혹 렁디는 그녀를 암살하는 대신 지방 모처로 불러내 제3국으로 도피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그녀는 망설였다. 그러자 곧바로 총격 살해 사건이 발생하고만 것이다. 여배우는 자신의 임종을 앞두고 가족들에게 사건의 배후가 분라니 여사라고 여러 차례 되뇌었다고 한다. 그러나 남은 가족들이 진실규명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상이 프랑스 <렉스프레>가 공개한 사건의 전말이다.

폭로한 이는 90년형 받고 복역 중

폭로기사를 접한 분 라니 여사는 즉각 이 언론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대응했다. 그러자 <렉스프레>측은 필적과 지문 감식 등을 통해 그들이 공개한 일기장이 삐셋 삘리카의 것이라는 걸 이미 확인했으며, 다수의 목격자와 증인들 확보한 만큼 추가 증거를 제시하겠다고 응수했다.

분 라니 여사는 이 언론을 상대로 어떤 고소도 하지 않았다.
이후 제1야당인 구국당(CNRP) 총재이자 훈센 총리의 오랜 정치적 라이벌인 삼 랭시가 수년 후인 2011년 10월 무렵 훈센총리 부부를 살인죄로 프랑스 법원에 고발했다. (삼 랭시 총재가 프랑스 이중국적을 보유해 고발이 가능했으며, 프랑스는 판사가 수사권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분 라니 여사는 야당 지도자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사실 이 언론매체의 폭로에 앞서 미국 정부도 첩보를 입수해 이 사건의 배후를 의심하고 있었다. 미국 대너 로러배처 하원의원은 사건 발생 2달 후인 1999년 9월 16일 매를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부 차관에게 서한을 보내 훈센 총리 부인 분 라니가 살인사건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그런 가운데 당시 경찰부국장으로 여배우 살해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헹 뽀우 전 프놈펜광역시경찰청장은 훗날 이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또 다른 충격적인 진술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수 년 후 승진해 프놈펜경찰청장이 된 헹 뽀우는 2006년 캄보디아 경찰청장인 혹 렁디와 다툼 끝에 말레이시아로 도피, 망명 신청을 했다. 그해 7월 동 매체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당시 여배우 살인사건 배후에 고위급 경찰간부가 있음을 시사했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여배우를 훈센 총리에게 소개해준 인물 역시 놀랍게도 자신의 상사인 혹 렁디였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분 라니 여사가 자신의 상사를 가리켜 '뚜쟁이'라고 비난했으며, 결국 훈센 총리와 여배우의 사이가 끊어지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내용까지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후에 살인범으로 잡힌 범인을 조사한 결과 실제로 그가 혹 렁디의 개인 경호원이라는 게 드러났다. 하지만, 헹 포우는 자신의 상관이 연루된 살인사건이라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하기 어려웠다고 당시의 심경을 고백한 바 있다. 그는 덧붙여 더 충격적인 내막까지 모조리 털어났다. 혹 렁디가 여배우를 훈센 총리에게 소개하기 전 둘 사이가 연인관계였다는 것이다.

당시 말레이시아에서 핀란드로 망명을 신청했던 헹 뽀우는 같은해 12월 19일 핀란드로 떠나려 한다. 하지만 출국을 불과 수 시간을 남기고 말레이시아 수사 당국이 캄보디아 측에 그의 신병을 넘기는 바람에 결국 강제 송환 됐고, 3년 재판 끝에 2009년 90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의혹 당사자 빼고, 증인은 모두 사라졌다

현재 캄보디아 적십자 총재로 활동중인 훈센총리 영부인 분 라니 여사가 행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
 현재 캄보디아 적십자 총재로 활동중인 훈센총리 영부인 분 라니 여사가 행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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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훈센 총리의 사돈이자, 마약밀매에 까지 연루되어 미국 FBI 수사선상에 이름이 올랐던 혹 렁디 경찰총장은 지난 2008년 의문의 헬기 폭발 추락 사고로 58살 나이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로서 사건경위를 밝혀줄 증인은 살인교사 의혹의 당사자인 분 라니 여사를 빼고 모두 사라진 셈이다.

이 사건이 발생한 지 17년이나 지난 지금 캄보디아 국민들의 관심은 영부인 분 라니 대신 캄보디아 야당 지도자를 둘러싼 성 스캔들 사건에 온통 쏠려 있다. 미용사 출신인 상대 여성이 부총재와의 관계를 전면 부인하고 있음에도, 성매매 혐의까지 덧씌워져 기소된 상태다.

동시에 야당 부총재에 대해서는 재산축적과정을 둘러싼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만약 부패관련 혐의까지 드러난다면,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도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할 전망이다. 현지 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야당 부총재에 대한 재판은 사실상 이미 결론이 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진실 여부를 떠나서 이번 스캔들로 야당과 야당 지도자의 귄위와 정치적 이미지가 땅바닥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현 집권당이 이미 목표를 충분히 달성했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정치적 재기를 두고서도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이미지 쇄신과 재기에 성공할지는 좀 더 두고 볼일이지만 현지 정치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예전만큼 국민적 지지를 얻기란 불가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게다가 야당총재 삼 랭시마저 수개월째 훈센 총리의 구속 협박에 못 이겨 망명 생활을 이어가는 바람에 야당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과 신뢰도 날이 갈수록 떨어진 상태다. 2년 후 닥쳐올 2018년 총선도 기대하기 힘들다는 전망이다. 수권정당으로서 야당을 이끌어갈 정치지도자도 현재로선 거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캄보디아에서는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남성 권력자들의 성스캔들과 이를 둘러싼 지저분한 암투 사건 사고가 2~3년 마다 일어난다. 이 때마다 희생양이 되는 건 대부분 여성이었다.도덕적으로 모범을 보여야 할 현 국가부패방지위원회(ACU) 위원장마저 자신의 세 번째 첩에게 고급가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불법 벌목된 나무를 구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따라 캄보디아의 봄이 유난히 멀게만 느껴진다.


태그:#캄보디아, #켐 소카 야당 부총재, #삐셋 삘리카, #캄보디아 국민여배우, #분 라니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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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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