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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째 장기집권한 아버지 훈센 총리로부터 권력을 이어받은 훈 마넷 신임 총리가 전통의상을 입은 채 군인들의 사열을 받으며 왕궁 앞으로 향하고 있다.
 38년째 장기집권한 아버지 훈센 총리로부터 권력을 이어받은 훈 마넷 신임 총리가 전통의상을 입은 채 군인들의 사열을 받으며 왕궁 앞으로 향하고 있다.
ⓒ 훈 마넷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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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새 국회는 지난 22일 신임투표를 거쳐 만장일치로 훈센 총리의 장남인 훈 마넷의 총리 선출을 공식 승인했다. 이로써 올해로 38년째 장기 집권해 온 훈 센(71) 캄보디아 총리가 주도한 권력 승계 작업은 비교적 순탄하게 마무리되었다.

1977년생 올해 45살의 훈 마넷은 지난 2021년 12월 2일 부친인 훈센 총리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된 바 있다. 같은 달 24일 집권당인 인민당(CPP)도 그를 '미래의 총리 후보'로 지명하면서 후계 구도를 공식화했다. 노로돔 시하모니 캄보디아 국왕은 지난 7일 훈 센 총리의 요청에 따라 훈 마넷을 차기 총리로 공식 지명했다.

사실상 총리 취임 첫날인 어제(22일) 아세안 국가들과 평소 친분이 있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훈 마넷의 총리 취임을 축하하는 메시지들이 여럿 답지했다.

친정부 매체인 <프레시뉴스>가 같은 날 올린 인터넷판 기사에 따르면 싱가포르, 태국, 부루나이, 베트남 등 아세안 국가들과 캄보디아와 끈끈한 관계를 과시해 온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때 우방이었던 북한도 총리 취임 축하 전문을 보내 눈길을 끌었다.

이 매체는 북한 김덕훈 내각 총리 이름으로 된 축하 전문 내용까지 공개했다. 전문에는 양국 간 오랜 전통적 우정과 협력 관계가 지속·강화되기를 바란다는 내용과 함께 신임 총리가 국가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총리직을 성공리에 수행하길 바란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실제로 과거 북한과 캄보디아는 김일성 주석과 시아누크 국왕의 개인적인 친분을 매개로 수십 년간 우호 관계를 유지해 온 바 있다. 국제 사회에서 매번 북한 편을 드는 바람에 한때 캄보디아는 친북 국가로 분류되기도 했다. 그러나 두 지도자의 사후 양국 관계는 상당히 소원해진 상태다.

훈센 총리는 그동안 한국을 10여 차례 방문할 만큼 친한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유엔 안보리가 2017년 채택한 대북 경제제재 조치에 지난 2019년 캄보디아가 한때 우방인 북한에 등을 돌리고 동참함에 따라 그해 11월 말 캄보디아 내 최소 6개 이상 북한 식당들이 모두 폐쇄되었으며, 북한 식당 종업원들을 비롯한 현지 거주 북한인들도 본국으로 모두 귀국 조처된 바 있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프놈펜 소재 중국 기업 합작 청화 북한 식당도 결국 캄보디아 정부의 압력에 최근 간판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지난 7월 캄보디아 총선의 비민주성과 공정성을 문제 삼아 선거 감시단 파견조차 하지 않은 미국과 유럽연합을 비롯한 서방 세계의 축하 메시지는 다음날인 23일까지도 이 매체에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우리나라 정부도 취임 축하 전문을 보냈는지 확인된 바 없다.

권력의 대물림과 독재 정권이라는 부정적 이미지 탓에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서방세계가 축하 전문조차 일부러 늦추거나 주저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현지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편, 훈센 총리가 이끄는 집권당인 인민당(CPP)은 지난달 23일 치러진 제7대 총선에서 전체 125개 의석 가운데 120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며 일당 지배 체제를 확고히 한 바 있다.

총선 승리 직후인 지난달 26일 훈센 총리가 갑자기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공식 발표해 세간을 놀라게 했다. 일러야 올해 가을 또는 내년 초 지방선거 이후에 승계 작업이 완료될 것이란 현지 정치 분석가들의 예상을 깬 '깜짝 결정'이었다.

장관 자리도 세습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신임투표를 거쳐 캄보디아 새 총리에 오른 훈센 총리의 장남 훈 마넷 신임총리(가운데)가 새로 임명된 내각 관료들과 노로돔 시하모 국왕을 접견하기 위해 프놈펜 왕궁을 방문, 대관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신임투표를 거쳐 캄보디아 새 총리에 오른 훈센 총리의 장남 훈 마넷 신임총리(가운데)가 새로 임명된 내각 관료들과 노로돔 시하모 국왕을 접견하기 위해 프놈펜 왕궁을 방문, 대관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훈 마넷 총리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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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 마넷의 신임 총리 취임 선서식이 있던 같은 날 새로운 내각 명단이 공식 발표되었다. 지난 2월 외부에 유출된 바 있는 장관급 인사 후보 명단과 거의 100% 일치했다. 30여 개 정부 부처 중 23개 부처 장관이 전격 교체되었다. 그중 신임 장관 절반 이상이 젊은 40대라서 주목을 끈다. 예상대로 장관급 인사 30여 명 가운데 10명 이상이 현 권력층의 자제들로 채워졌다.

1992년부터 내무부 장관을 지낸 72세의 사 켕 부총리 겸 내무장관은 교육청년부 현 차관인 42세의 아들 사 소카(Sar Sokha)에게 내무부 장관 자리를 물려줬다. 77세의 띠어 반 국방부 장관 역시도 2018년부터 씨엠립 주지사를 맡고 있는 42세의 아들 띠어 세이하(Tea Seiha)에게 장관 자리를 물려줬다.

훈센 총리의 막내아들이자 평소 권력욕이 강한 훈 마니(40) 현 청년연합 회장은 공무부 장관으로 지명되었으며, 유일한 여성 부총리인 멘 삼 안(Men Sam An) 국회관계감사부 장관의 아들 펭 풋네아(Peng Puthnea)는 공공사업교통부 장관으로 내부 승진했다.

퇴임한 차이 탄(Chhay Than) 기획부 장관의 아들 차이 리티센(Chhay Rithisen)은 농촌개발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기획부 장관은 빈 친(Bin Chhin) 관방부 장관의 아들 빈 트롯쩨이(Bin Troachhey)가 임명되었다.

고(故) 속안 부총리의 아들 속 소켄(Sok Soken)은 관광부 장관에, 고(故) 찌어 심(Che Sim) 전 상원의장의 아들인 쩌어 소메티(Chea Somethy)은 재향군인청소년재활사회부 장관직을 맡게 되었다.

10명의 새 부총리 그룹에는 훈센 총리의 조카사위인 넷 사보은(Neth Savoeun) 경찰청장과 퇴임하는 순 찬톨(Sun Chanthol) 교통부 장관, 현 아운 폰모니롯(Aun Pornmoniroth) 재무부 장관과 헹 추온 나론 (Hang Chuon Naron) 교육청소년체육부 장관이 포함되었다.

이번 훈 마넷 새 내각에 포함된 여성 정치인은 단 3명뿐이다. 그 중 포웅 사코나 (Phoeurng Sackona) 문화예술부 장관과 잉 칸타 파위(Ing Kantha Phavi) 여성부 장관은 유임되었으며, 퇴임한 산업과학기술혁신부 장관 참 프라시드(Cham Prasidh)의 43살 딸 참 니몰(Cham Nimol)은 상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또, 사이 춤(Say Chhum) 상원의장의 아들인 43세 세이 삼 알(Say Sam Al)은 지난 2013년 이미 환경부 장관이 된 바 있으며, 국토관리도시계획부 장관 겸 부총리 자리에 올랐다.

최근 퇴임한 딧 문티 (Dith Munthy) 대법원장의 아들인 44세의 딧 티나 역시 작년부터 재직하던 농림수산부 장관에 유임되었다.

캄보디아를 이끌게 된 훈 마넷 신임 총리는 지난 7월 총선에서 프놈펜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1999년 미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뉴욕대와 영국 브리스톨 대학에서 각각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 때문에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 국가들은 훈 마넷이 미국과 영국에서 오랜 시간 유학한 경험이 있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집권 시 아버지 때와 달리 캄보디아의 정치·사회 제도에도 민주주의적인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현지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런 분석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닦아 놓은 기존 체제를 더욱 더 공고히 할 것이란 의견과 분석이 훨씬 더 지배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현지 정치 전문가는 이와 관련해 "자유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국민들과 권력을 나눈다는 점에서 대중적 지지를 받을 수 있지만, 권력을 쥐게 된 자들의 입장에선 생각이 다르다. 자유민주주의는 그저 귀찮고 짜증 나는 정치적 사슬이자 스스로를 얽매는 족쇄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집권당 대표·국회의원직 그대로 유지할 듯
 
장남 훈 마넷이 새 총리로 취임한 당일 훈센 총리는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제 새로운 후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날 적절한 때가 왔다"고 말했다.
▲ 정부 주요 관료들과 자국 농산물 전시 행사장 찾은 훈센 총리 장남 훈 마넷이 새 총리로 취임한 당일 훈센 총리는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제 새로운 후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날 적절한 때가 왔다"고 말했다.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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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센은 지난 1985년 총리에 취임한 뒤 무려 38년간이나 캄보디아를 이끌어왔다. 그는 베트남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79년 1월 폴 포트 공산정권을 무너뜨리고 캄보디아 인민공화국을 수립하는 데 기여했다. 1981년 부총리 겸 외교 장관직에 오른 데 이어 베트남 괴뢰 정부라는 국제사회의 조롱과 비난에도 불구, 1985년 1월 14일 불과 32세의 나이로 세계 최연소 총리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채 권좌에 올라 지금까지 캄보디아를 지배 통치해 왔다.

2017년 11월 훈센 정권은 전체 의석 125석 가운데 55석을 가진 제1야당이자 훈센 총리의 강력한 라이벌인 삼 랭시 총재가 이끄는 캄보디아구국당(CNRP)을 반역 혐의로 강제 해산한 바 있다. 이듬해 제1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치러진 총선에선 전체 의석 125석을 싹쓸이하면서 일당 독재 체제를 확고히 구축했다.

이번 총선에서도 해외 망명중인 삼 랭시 전 총재를 추종하는 전 구국당 출신 인사들이 만든 촛불당(CP)의 선거 참여를 원천 봉쇄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로부터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총리는 아들 훈 마넷의 총리 취임식 당일 국회의사당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다시 한번 강조컨대, 나는 38년 7개월 8일간 총리로 재직했다. 개월 수로 따지만 463개월, 주로 계산하면, 2014주, 날짜로 계산하면 1만 4099일이다. 이제 후임자를 위해 총리 자리에서 물러날 적절한 시간이 왔다"며 은퇴 소감을 전했다.

하지만, 권력을 장남에게 넘겨준 후에도 그는 막후에서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분석에 이견이 거의 없다. 아들이 권력 지배 체제를 굳힐 때까지 여전히 당 조직을 장악한 채 섭정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지 주요 언론들도 훈센 총리의 그간 발언을 인용해 "총리가 퇴임 후에도 여전히 집권당 대표·국회의원직을 그대로 유지하고 국왕 최고자문위 위원장직도 맡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태그:#캄보디아, #훈 마넷 총리 , #훈센 총리 정계 은퇴, #캄보디아 선거, #북한 김덕훈 내각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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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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