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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차이 나는 형제. 꽃차남은 항상 "형형이 만든 건 맛없어"라고 한다.
 열 살 차이 나는 형제. 꽃차남은 항상 "형형이 만든 건 맛없어"라고 한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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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 한 날. 우리 집은 텅 빈 것 같았다. 유치원 갔다 오자마자 거실에 가방을 확 팽개치는 꽃차남이 없었다. 커다란 레고 상자를 집안 곳곳에 끌고 다니며 흩뿌려놓는 꽃차남이 없었다. "다 맘에 안 들어. 울어버릴 거야"라고 생떼를 쓰는 꽃차남이 없었다. 한 밤을 자고 오는 유치원 캠프에 갔다.

"엄마, 꽃차남 없으니까 저녁밥 안 먹어도 되지요? 그냥 치킨 시켜 먹어요."

제굴은 밥 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식구들이 저녁밥 잘 먹나 확인하고 다시 나가는 남편도 "오늘은 치킨 시켜도 되겠다"라고 했다. 나는 주는 대로 먹는 사람, 무조건 좋다고 했다.  제굴은 가뿐하게 '1인 1닭'을 달성했다. 심지어 먹을 때도 싸우는 동생이 없으니까 평온해 보였다. 역시나 "엄마, 꽃차남 없으니까 쫌 좋지요?"라고 했다.

그날 밤, 제굴은 나에게 "이거 재밌어요" 하면서 <십 대 밑바닥 노동>을 권했다. 살다보니 제굴이가 먼저 읽어보고 건네주는 책이 있다니. 눈 안에 하트를 가득 담아서 제굴을 봤다. 제굴은 그 사이를 못 참고, 웹툰을 봤다. 제굴에게 잔소리를 하려는 순간, 남편이 퇴근했다. 그는 거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상하다. 꽃차남이 없으니까 집이 집 같지가 않아." 

11월 4일 오후, 꽃차남이 돌아왔다. 거실에 가방을 확 던지는 걸로 자신의 존재감을 표현했다. 반듯한 어린이로 지낸 1박 2일 간의 사회생활, 힘들었는지 투정부터 부렸다. 그리고는 "이 세상에서 형형이 제일 싫어"라면서도 제 형 방으로 갔다. "강제굴 이불, 꿀돼지 냄새 나"라고 하면서도 제 형의 침대에 누웠다. 곧 잠들었다.

1박 2일간 유치원 캠프 갔다 온 동생을 위해서 차린 밥상.
꽃차남이 좋아하는 새우전을 했는데 '망작'이었다고. 
그래서 '플랜 B' 가동. 돈가스를 했다.
▲ 꽃차남 환영만찬 1박 2일간 유치원 캠프 갔다 온 동생을 위해서 차린 밥상. 꽃차남이 좋아하는 새우전을 했는데 '망작'이었다고. 그래서 '플랜 B' 가동. 돈가스를 했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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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좋아하는 새우전을 한 제굴. 더 맛있게 하려고 피망으로 테두리를 했는데 구울수록 맛이 이상해졌다고 한다.
 동생이 좋아하는 새우전을 한 제굴. 더 맛있게 하려고 피망으로 테두리를 했는데 구울수록 맛이 이상해졌다고 한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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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갔다 오니까 꽃차남이 내 방에서 자고 있더라고요. 기분 좋지. 밥 할 의미도 생기고. 우리 집에서 가장 잘 먹어야 하는 사람이 꽃차남이잖아요. 그래서 걔가 좋아하는 새우전을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굴은 소리 안 나게 방문을 닫고 부엌으로 갔다. 꼼꼼하게 손을 씻고,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냈다. 새우를 다지고, 달걀을 깨서 넣고, 밀가루도 조금 넣었다. 그때 제굴의 눈에 피망이 보였다. 새우전 반죽을 피망으로 감싸서 지지면 더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뜻밖에도 피망은 구울수록 맛이 이상해졌다고.

"형형 음식은 다 맛없어!"

제굴은 환청이 들렸다. 꽃차남의 목소리가 음성지원 되는 듯 했다. 그러나 당황하지 않았다. '플랜 B'가 있으니까. 그건 바로 돈가스. 제굴은 아파트 단지 상가에 있는 정육점으로 달려갔다. 평소보다 두 배는 더 많이 돼지고기 등심을 주문하면서 가게 사장님에게 "최대한 얇게 해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제굴은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년 매출 1억' 돈가스 가게를 보았다. 돈가스 만드는 고기를 대패삼겹살처럼 얇은 걸로 쓰고 있었다. 돈가스 할 때는 무조건 두툼한 고기를 선호하던 제굴은 색다른 조리법을 눈여겨봤다. 그래서 고기를 얇게 펴서 치즈를 넣고 돌돌돌 말았다. (제굴이가 음식한 뒤에 인터뷰를 해서 조리 과정을 알게 되는) 나는 물었다.

"고기를 말면 풀어지잖아. 꼬치 같은 걸로 고정시켜야 하지 않아?"
"아니~ 고기에 밀가루랑 달걀, 빵가루 입히면 알아서 잘 뭉쳐져요."
"모를 수도 있지. 왜 짜증을 내?"
"너무 모르잖아요. 어떻게 고기만 해서 튀기겠어? 옷을 입히는 거라니까요."

기분이 나빴다. 제굴의 거만한 태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굴이 말하는 조리 과정이 완전하게 이해되지 않았다. 제굴은 내 표정만 보고도 감이 왔는지, "엄마,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죠?"라고 했다. 나는 "어"라고 힘없이 실토했다. 제굴은 안방 이불장에서 가장 얇은 여름 이불을 꺼내 와서 펼쳤다.

"엄마, 이게 고기라고 생각해 봐요. 엄청나게 얇잖아. 여기에 치즈(베개로 대신했음)를 넣고, 돌돌돌 말아. 그러면 두꺼워지잖아요. 고기도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두꺼워진다니까요."

동생이 좋아하는 새우전. 뜻대로 되지 않자 제굴은 '플랜B' 카드를 꺼냈다. 그건 바로 돈가스. 색다르게 얇은 고기를 써서 둘둘 말았다고 한다.
 동생이 좋아하는 새우전. 뜻대로 되지 않자 제굴은 '플랜B' 카드를 꺼냈다. 그건 바로 돈가스. 색다르게 얇은 고기를 써서 둘둘 말았다고 한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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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굴이 돈가스를 거의 다 했을 때, 꽃차남은 잠에서 깼다. 바로 식탁에 와서 앉았다. 음식 할 때, 누가 옆에서 얼씬거리는 걸 싫어하는 제굴은 마음이 바빠졌다. 샐러드 그릇을 옮기면서 나보고 "밥 좀 퍼 줘요"라고 했다. 김치도 그릇에 담고, 수저 젓가락도 놔 달라고 했다. 배고팠는지, 꽃차남은 인상을 쓴 채로 "엄마, 빨리 사진 찍어요"라고 했다.

밥상 사진을 찍자마자 제굴은 작은 접시를 꺼내왔다. 돈가스를 꽃차남이 먹기 좋게 잘라서 작은 접시에 놔 줬다. 한입 먹은 꽃차남 기분이 좋아보였다. 제굴은 그 틈을 타서 동생에게 "캠프 가서 누가 제일 보고 싶었어? 형형은 너 진짜 많이 보고 싶었어"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평소에 싸우지나 말지'라고 생각했다. 꽃차남은 대답했다.

"엄마랑 아빠 보고 싶은 마음은 무한대. 강제굴 보고 싶은 마음은 0. 안 보고 싶은 마음이 무한대였어!" 

예상했던 답이었다. 제굴은 조금도 타격받지 않았다. 돈가스가 완전 맛있게 됐다면서,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해 먹고 학교 가야지"라고 했다. 꽃차남도 엇비슷했다. 제 형이 차린 '환영만찬'을 끝내 다 먹지 않았다. 시후(위층 사는 친구) 데리러 간다고 나가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밥상을 치우는 제굴은 동생이 먹다 남긴 돈가스를 마저 먹었다. 

"엄마, 우리 집 밥상 권력 1인자가 누군지 알아요? 꽃차남이야. 걔를 먹여야 하니까 밥을 신경 써서 차리잖아요."

꽃차남이 유치원 캠프 간 사이... 우리 집 밥상 권력의 1인자가 밝혀졌다.^^
 꽃차남이 유치원 캠프 간 사이... 우리 집 밥상 권력의 1인자가 밝혀졌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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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야자 대신 저녁밥 하는 고딩 아들, #밥상 권력 1인자, #동생 환영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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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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