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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채동욱 전 검찰총장 찍어내기는 결국 청와대 행정관의 '개인적 일탈' 행위로 결론났다. 불쌍한 국정원 직원의 댓글 작업도, 사이버사령부 군무원의 대선 개입도 개인적 일탈 행위였다. 꼬리를 자르고 줄행랑 치는 도마뱀처럼 박근혜 정권의 꼬리자르기는 냉혹하다. 밟힌 꼬리를 스스로 자르지 않으면 생을 기약할 수 없는 도마뱀. 살기 위해 연이어 의혹의 꼬리를 잘라내는 박근혜 정권의 결단은 그만큼 처절하다.

 

그러나 모두가 안다. 잘린 꼬리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파편처럼 흩어진 그 꼬리들은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이라는 어마어마한 범죄를 감추기 위한 흔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박근혜 정부는 모두가 아는 사실을 '개인적 일탈'로 몰아가면서 뻔한 거짓말을 반복하고 있다. 죄를 덮기 위해 새로운 죄를 짓는 꼴이다.

 

'책재원수'의 교훈

 

천도교는 시국선언을 통해 '책재원수(責在元帥)'라고 했다. 책임은 가장 윗사람에게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에서 책임은 매번 '잘린 꼬리'의 몫이다. 죄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권, 많은 국민이 박근혜 정권에게 희망을 걸 수 없는 이유다.

 

박근혜 정권 집권 10개월.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사건은 끝도 없이 새로운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국정원에 이어 국군 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까지 대선에 개입한 정황이 확인되고 있다. 정권은 새로운 의혹이 대두될 때마다 '개인적인 일탈'로 규정했고, 진실규명과 수사를 방해하기 위한 온갖 술수를 동원했다.  

 

채동욱 검찰총장 퇴진을 둘러싼 논란도 별반 다를 바 없다. 검찰총장의 신상털기, 사생활을 캐는 행위가 청와대 일개 행정관의 개인적 소행이라는 주장은 예상한 일이지만, 너무 조잡하고 속이 빤히 드러나 보이는 변명이다. 

 

'종북'이면 모두 해결된다?

 

"그게 김일성주의인거야! 김일성주의!"

 

지난 11월 21일 오랜 단식 중인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의 대정부질문 연설 중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은 고함을 질렀다.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고 부당한 특권에 맞서 싸우겠다는 동료 의원의 이야기를 김일성주의로 몰아세운 것이다.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의혹을 질의하던 민주당 진성준 의원에게 "종북하지 말고 월북하라"는 새누리당 박대출 의원의 막말 논란 하루 뒤에 벌이진 일이다.

 

박근혜 정권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용어가 있다. '종북'이 바로 그것이다. 이 용어는 박근혜 정권의 또 다른 버팀목이 되고 있다. 청와대, 여당, 보수언론과 보수 세력은 지난 10개월 동안 거의 매일같이 누군가를 종복 세력으로 지목했다. 자신들 존재 이유가 종복 세력 척결에 있음을 반복했다.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에 쏠린 눈을 돌리고,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악의적인 여론몰이였다.

 

대선 전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하고, 사자가 된 전직 대통령에게 종북의 굴레를 씌워 부관참시했던 NLL 논란. 대선 후에는 불법적인 남북정상회담대화록 '유출'보다 '사초 실종'에 프레임을 맞춰 또다시 문재인 의원과 민주당에 종북의 딱지를 붙이려했다. 이런 시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 신청, 이른바 'RO 녹취록' 변경 등 숱한 불법 수사 의혹이 속속 들어나고 있는데도, 정권과 여당의 종북몰이는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1년과 집권 10개월. 대선 전 내놓은 희망찬 공약은 간 데 없고, 변명과 책임 회피, 종복몰이만 사회 전반을 휩쓸고 있다. 대선 개입과 부정선거를 비판하는 세력에게는 종북, 내부의 불법 행위가 드러나면 '개인적 일탈'로 일관하는 박근혜 정부. 국민이 잘사는 게 최고의 목표라는 민생 정부라지만, '개인적 일탈'과 '종북' 디딤돌에 의지해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는 무능력한 정권일 뿐이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 많은 종교인들이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동안 대선불복에 애매한 태도로 일관한 민주당 등 야권의 태도에 견줘보면 다소 파격적인 주장이다. 그러나 종교인들이 대통령 퇴진을 외치며 거리로 나선 건, 여러가지 문제를 '개인적 일탈'과 '종북'으로 일축한 박근혜 정부가 자초한 일이다.

 

민주당은 역풍을 우려해 대선불복을 극구 부인해 왔다. 진보진영 일부도 대통령이 재발방지와 책임자 처벌, 국정원 개혁 등의 의지를 보인다면 국가기관 대선 개입 사건은 마무리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사과는 고사하고 "국정원에 도움 받은 일 없다" "국론 분열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국민을 상대로 선전포고 하듯 말하고 있다.

 

민주당 장하나 의원이 현역 의원으로는 처음으로 지난 8일 총체적 부정선거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어 민주당 양승조 의원이 9일 최고위원회의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이라는 무기로 신공안통치와 신유신통치로 박정희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국민의 경고를 새겨들어야 할 것"고 언급하자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격앙된 반응이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국론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과격한 발언"이라고 언급했다. 여전히 책임 회피성 발언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4년이 지난 1년과 같다면 정권의 정체성이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이 흔들릴 것이다.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올리거나 퍼나른 트위터 글이 기소된 121만 건 외에 무려 2091만 건이나 더 있다고 밝혀졌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여전히 "대선에 영향을 미쳤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 "선거 관련 글은 얼마되지 않는다"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 한마디를 선거법 위반이라며 탄핵까지 몰아 간 지난 일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후안무치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이대로는 못 살겠다"


지난 7일 비상시국대회에 2만여 명이 모여서 "이대로는 못 살겠다"고 외쳤다. "나라가 이 모양인데"라는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사건은 새로운 변곡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물대포를 동원하고, 정권의 치부를 개인의 일탈로 축소하고, 종북몰이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지만, 이는 정권의 위기만 심화시키는 어리석은 일이다.

 

이대로는 안된다. 국정원, 국군 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가 나서 여론을 조작해 국가 선거에 개입하는 행위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정권의 정당성은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종교인들이 내건 대통령 사퇴 요구, 박근혜 정부는 뼈를 깎는 아픔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공은 박근혜 정부에게 넘어갔다. 책임회피, 종복몰이, 1%를 위한 경제…. 지금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와 맞먹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변화의 주역이 될지, 변화의 대상이 될지는 전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선택에 달려 있다. 모순의 양적 한계는 질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1987년 6월 항쟁의 교훈이다. '어게인(again) 1987', 국민들은 박근혜 정권에 묻고 있다. 

 

'스스로 고칠 것인가, 고침을 당할 것인가?'


태그:#국가기관 대선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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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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