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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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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무개 행정관의 개인적인 일탈행위였다."

아니나 다를까 정부가 다시 개인 일탈을 주장했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채동욱 전 검찰청장의 혼외 자식 논란과 관련해 개인정보를 불법유출한 청와대 행정관의 지시를 개인적인 일탈행위로 공식 발표했다.

국정원 직원의 야권 후보 비방 댓글과 사이버사령부 소속 군인의 엄연한 정치 개입도 정치적 일탈로 규정하더니, 이제는 안전행정부(이하 안행부)와 청와대 고위공무원의 불법행위도 개인적 일탈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여론이다. 국민의 반응이 예전 같지 않다. 경제민주화과 복지 공약을 포기해도 꿈쩍 않던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5일 JTBC 여론조사에서는 조사 대상의 약 60%가 정부의 '개인적 일탈' 발표를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굳건했던 믿음이 이번 사태에서는 유독 크게 금이 간 것이다.

왜 모든 것이 개인 탓일까

무엇 때문일까? '개인적 일탈행위'는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부터 시작해서 정부가 늘 해왔던 핑계였다. 왜 이번에는 새삼 많은 사람이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생각해보자. 우리 사회에서 공무원은 어떤 이들인가? 비록 많은 이들이 꿈의 직장으로 공무원을 선호하지만, 그게 꼭 공무원에 대한 신뢰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들의 '철밥통'만이 선망의 대상일 뿐이다. 오히려 공무원은 우리 사회에서 복지부동의 대명사이며, 심지어는 영혼이 없다는 이야기까지 듣는다. 그들은 위의 지시가 없으면 잘 움직이지 않으며, 자신에게 피해가 오는 행위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공무원이 개인적인 일탈을 벌였다고? 그것도 한창 들어갈 돈이 많은 오십대 고위 공무원이? 공무원들 끼리 아무리 충성 경쟁이 심해도, 불법 행위를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다. 그것은 어쨌든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청와대의 의지가 국정 전반을 장악하는 서슬 퍼런 정권 1년 차다. 과연 누가 자신만의 의지로 이런 어마어마한 일을 꾸민단 말인가.

따라서 대다수의 국민은 이번 청와대의 발표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믿고 싶은 박근혜 대통령이라지만, 이번 해명은 상식에서 너무 벗어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청와대가 조아무개 행정관의 배후라고 지목한 안행부 김아무개 공무원은 자신은 그런 부탁을 한 적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복지부동의 공무원이 위에서 책임을 지라는데 거부하고 나섰다면, 그것은 분명 뒤에 뭔가 있다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 박근혜 대통령 등장곡은 자우림의 '일탈'로 부탁해요." ('@ror**********')
"대통령 실정도 '개인 일탈'이었다고 해명할 거냐."('@so******')

청와대의 계속되는 '개인적 일탈'이란 해명에 대한 시민의 비아냥거림들. 문제는 청와대왜 계속해서 말도 안 되는 변명을 고집하느냐는 점이다. 도대체 왜 그들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계속 이어가는 걸까?

이는 현재 청와대가 꼬인 정국을 자신들 의지대로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음을 의미한다. '부정선거'라는, 민주주의 근간을 최고로 위협하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정부는 국민을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를 떠올려보자. 당시 정부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노무현 탓'을 했다. 경제가 나빠도,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도, 한미FTA를 강행해도 모두 노무현 전 대통령 때문이었다. 적지 않은 국민이 이에 수긍했다. '노무현 때리기'는 당시 많은 이들에게 시대를 바라보는 창이었고, 꼬인 시국을 이해할 수 있는 틀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노무현 탓'이 힘들어졌다. 정권 초 다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걸고 넘어진 'NLL 논란'은 이제 더는 '노무현 탓'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국민들은 오히려 'NLL 논란'을 통해 노무현이 NLL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역으로 현 정부가 어떻게 국가기밀문서를 손에 넣었는지, 부정선거는 아니었는지 등을 주목하게 되었다. 어설픈 '노무현 탓'이 새로운 정부의 정체성 자체를 뒤흔든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지금까지 여러 정부는 자신들의 정체성과 지지율 유지를 위해 바로 앞 정권을 쳤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를 제대로 겨냥하지 않고 있다. 4대강 사업부터 시작해 원전 비리 등 모든 국민들이 뻔히 아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정부의 지지율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다. 

대신 박근혜 정부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국민들 개개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자신들의 정권 내부에서 벌어진 문제들은 개인 탓으로 돌렸으며, 외부의 모든 현상은 '종북' 탓으로 돌렸다. 노무현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위기를 모면했던 이명박 정부와 달리, 현재 박근혜 정부는 최소 국민의 48%를 잠재적인 '종북세력'으로 낙인찍으며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고 있다.

'종북몰이' 앞세우는 박근혜 정부

'대통령 사퇴'와 '연평도 포격' 발언으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박창신 신부를 '종북'으로 규정한 보수단체의 규탄시위가 서울 명동성당앞에서 연일 개최되는 가운데 11월 26일 오후 성당 입구에서 애국연대(애국주의연대), 새마음포럼 회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명동성당앞 보수단체 '정의구현사제단 해체' 촉구 '대통령 사퇴'와 '연평도 포격' 발언으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박창신 신부를 '종북'으로 규정한 보수단체의 규탄시위가 서울 명동성당앞에서 연일 개최되는 가운데 11월 26일 오후 성당 입구에서 애국연대(애국주의연대), 새마음포럼 회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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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현재 박근혜 정부의 전략은 성공한 듯하다. 언론 장악을 토대로 정부가 통합진보당, 전교조 등을 종북으로 몰아 '부정선거' 이슈를 계속 피해나갔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직도 많은 사람은 여러 공약 파기에도 박근혜 대통령을 믿고 있지 않은가.

물론 최근에는 공산주의와 궁극적으로 공존할 수 없는(맑스는 분명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했다) 신부에게도 종북 낙인을 찍어 천주교와 갈등을 빚고 있지만, 이 역시도 정국 변화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존재한다. 정부는 외부의 종북몰이와 함께 내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개인 탓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위기가 내부로부터 야기될 가능성을 높인다. 책임지지 않는 조직에 충성할 개인은 없기 때문이다. 이번 안행부 공무원 김씨 역시 청와대의 희생양 되기를 거부했다. 어쨌든 '부정선거' 이슈가 계속되는 배경에는 내부의 고발이 자리하고 있다.

4대강 사업 등을 통해 이권을 챙겨주며 돈으로 조직을 관리했던 이명박 정부와 달리, 오로지 공안몰이에만 몰두하며 내부 고발자를 양산하는 현 정부.

비극은 이런 내부 고발을 막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개인의 배신을 막기 위해서는 개인의 행위를 정부가 떠안아야 하는데, 이는 정부가 독재를 표방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그 문제들이 민주주의 근간과 직접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개인의 일탈 운운할 수밖에 없는 반면, 개인은 진실을 발설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민주주의 후퇴의 원흉이라는 '독박'을 쓰지 않기 위해서, 또한 자신의 행위가 결코 '개인적 일탈'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서 개인은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다. 이는 현 정부가 쉽게 위기를 탈출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선이 끝난 지도 1년이 다 되어 간다. 새누리당은 '부정선거' 문제가 민생을 방해한다며, 이젠 지겹지도 않냐고 강변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민주당의 지리멸렬함에도 아직까지 그 문제가 살아있다면 그 원동력은 진실의 힘이며, 이는 결국 '부정선거'의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문제라는 방증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부디 박근혜 정부는 모든 것을 털고 가기 바란다. 내부로부터 무너지는 조직은 결코 버틸 수 없다.


태그:#개인적 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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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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