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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마지막 발악'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얼마 전 '교과부 장관 마음대로 교과서를 고치면 위법'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받아들이더니 애꿎은 교육청과 교사들에게 몽니라도 부리려는 걸까. 임기를 불과 며칠 남겨둔 교과부가 경기, 전북도교육감을 비롯해 수십 명의 전·현직 교장들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로 무더기 고발하기로 했다.

상급기관이 교과부 지침을 무시하고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에 기재하지 않았다는 죄목이다. 이를 두고 교과부와 이른바 '진보 교육감'이 수장으로 있는 시도교육청과의 힘겨루기는 지난해 초 학교폭력 근절 여론을 등에 업고 지침으로 만들어질 때부터 예견된 사태이기는 하다.

학교 폭력 학생부 기재를 거부로 교과부의 특별감사를 받은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흥덕고등학교.
 학교 폭력 학생부 기재를 거부로 교과부의 특별감사를 받은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흥덕고등학교.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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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관련 소송이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데다, 정권 말기라 다음 정권에서 자연스럽게 '교통정리'가 되지 않겠느냐는 추측을 하던 차에 벌어진 일이라 생뚱맞다. 더욱이 정권 인수위에서도 '4대 악(惡)'을 반드시 근절하겠다고 밝히며, 그중에서도 성폭력과 함께 학교폭력을 맨 앞자리에 올려두었기 때문이다.

어떻든 고발을 강행하기로 했다지만, '뒤처리'는 박근혜 정부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불복종으로 맞선 이들의 징계 여부와 함께, 지난해 동안 교과부와 시도교육청을 견원지간으로 만든 학교폭력 가해 사실의 생기부 기재 지침도 존폐의 기로에 설 것이 틀림없다. 더욱 분명한 건, 그대로 가든, 철회되든 둘 중 하나지, 어정쩡한 타협은 애초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작년 생기부 기재를 통한 '겁주기'가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동시에 시작되었지만, 과연 학교폭력이 얼마나 감소했는지에 대한 유의미한 통계는 아직 없다.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거나, 되레 교사들의 잡무만 늘려 정작 생활지도에 소홀해졌다는 박한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리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는 사람조차도 '10년 동안의 주홍글씨'가 비교육적인 방식이라는 데에는 공감한다.

학교마다 '생기부 기재'에 동의하는 교사들 제법 많아

교과부가 지난 3월 전국 중고교에 보낸 학생부 지침.
 교과부가 지난 3월 전국 중고교에 보낸 학생부 지침.
ⓒ 교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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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공문으로 지침이 내려진 당시만 해도, 학교마다 생기부 기재라는 일벌백계의 '살벌한' 방식에 동의하는 교사들이 제법 많았다. 2011년 겨울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으로 비롯된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렇기도 했지만, 체벌이 금지된 학교에서 그것이야말로 교사가 쓸 수 있는 '마지막 무기'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회나 수업시간에 교사는 아이들에게 공공연히 '엄포'를 놨고, 이른바 '일진'들을 수시로 불러 모아놓고 생기부는 50년 동안 보존해야 하는 법정 장부이고, 일단 학교폭력 가해자로 기록이 되면 '인생 종 친다'며 협박하듯 을러대기도 했다. 1년에 두어 차례뿐인 학부모 교육의 주제도 오로지 이것이었고, 기억이 맞다면, 학부모들이 '대학입시'만큼이나 '학교폭력'에 관심을 가졌던 때는 작년 2012년이 유일하다.

그러나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교과부는 들끓는 여론에 편승할 줄만 알았지 학교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마구 서두르다보니 법 조항 자체가 허술한 점도 크지만, 다짜고짜 법 규정을 학교에 강제하면 바로 소기의 목적이 달성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순진했거나 무모한 것이었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교사와 아이들이 그런 방식으로 '교육'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교과부의 지침은 교사들의 생활지도를 도와주기는커녕 아이들끼리와 사제 간의 신뢰를 허물어뜨리고, 교육 공간인 학교가 되레 사법기관 행세를 하는 엽기적인 현실을 만들어냈다. 또한, 빈대 한 마리 잡자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우를 범하기 일쑤였다. 예컨대, 지침은 말이 전혀 먹히지 않는 진짜 일진과 얼마든지 바루어질 수 있는 '잔챙이'들을 전혀 구분하지 않은 채 획일적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회부되면 어떤 처분이 내려지건 생기부에 기재해야 한다는 엄격한 규정은, 비유컨대, 치어마저 모두 잡아 올리는 '쌍끌이 그물'이다. 전국의 모든 학교를 도덕군자들만 모여 사는 '청정도량'으로 만들 욕심이었는지는 몰라도,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 모두 갈등하고 반목하게 만들어 되레 학교의 '물'을 완전히 흐려버렸다.

폭력적인 가정환경 탓에 비뚤어진 아이에게 필요한 건 가해자라는 낙인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따뜻한 상담과 치유다. 아이들끼리 이내 화해한 다툼에 부모들이 끼어들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개최되는 경우, 과연 생기부 기재가 능사일까. 단언컨대, 학교폭력은 아이들보다 그들의 부모, 나아가 기성세대에 더 큰 책임이 있다. 그럴진대 생기부 기재는 부모 대신 아이가 처벌을 받고 상처를 떠안게 되는 명백한 모순이다.

폭력은 기성세대에 더 큰 책임이 있다

더 큰 문제는 학교폭력 근절이라는 '본질'은 온데간데없고 교과부의 명령 이행 여부만 가지고 지루한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적 관점은 아예 사라지고 없고, 학교폭력 가해사실의 생기부 기재가 과연 합법이냐 불법이냐는 법리 논쟁만 남았다. 어설픈 법의 '마루타'가 된 아이들과 법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교사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

모름지기 교육은 교사와 아이들의 직접적인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교감 행위이자 지식을 매개로 배움을 주고받는 정교한 '예술'이다. 특히 아이들의 생활지도는 법 조항을 위시로 한 획일적이고 일사불란한 상명하복 시스템이 도저히 적용될 수 없는 영역이다.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아이들의 성향과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주상 같은 법보다 교사의 양심적이고 합리적 판단이 더 실효적이라는 의미다. 더욱이 교육적으로 옳다는 건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학교폭력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겠지만, 가해자라고 해서 '폭력 학생'으로 내치기보다 그럼에도 '사랑받아야 할 아이'로 우선 품을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무릇 교사라면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학생부장으로 근무했던 지난 1년을 돌이켜보건대, 작년처럼 힘들었던 한 해도 없었던 듯하다. 흔히들 해가 갈수록 아이들 다루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리스의 대철학자 소크라테스조차 당시 아이들이 버릇없다며 한탄했다고 하니 요즘만의 문제랄 수는 없다. 아이가 아니라,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최일선에서 아이들을 마주해야 하는 처지에서, 동료교사들과 의기투합하고 학교장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또, 교육청과 교과부 등 상급기관으로부터 받는 시의적절한 지원과 보호는 일선 교사에게는 더 없는 '보약'이다. '기댈 언덕'이 있다는 든든함이 있어야 교사 자신의 역량을 아이들에게 모두 쏟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지난해 '선 무당' 교과부는 말할 것도 없고, '진보'를 자처한 교육청조차 학생부장의 업무를 도와주기는커녕 스트레스만 잔뜩 안겨주었다. 예컨대, 교과부의 생기부 기재 방침에 비장한 각오로 맞섰던 광주광역시교육청의 경우, 꼬리를 내린 채 주야장천 '조만간'만을 외치며 시계만 쳐다보고 있다.

시교육청이 반기를 들자, 지난해 말 교과부는 시교육청을 경유하지 않고 직접 학교로 공문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중징계 운운하는 교과부와 긴장한 빛이 역력한 학교장의 틈바구니 속에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시교육청은 '기재 보류'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만 할 뿐, 공을 일선 학교에 넘겨버렸다.

명분을 교과부에 맞설 힘으로 바꿔낼 역량이 부족했던 시교육청은 우유부단하기까지 했다. 공이 학교로 넘어오다 보니 애꿎게 학생부장을 비롯한 일선 교사들의 교육자적 양심이 시험에 드는 상황까지 초래됐다. 당시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교육감과 교과부장관 중 누가 '직속상관'인지 따져보는 어처구니없는 논쟁까지 벌어졌다.

시교육청, '기재 보류'라는 답변만 되풀이

생기부 '기재'냐 '기재 거부'냐의 양자택일의 상황이었는데도 시교육청은 전가의 보도처럼 '기재 보류'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조만간' 결정을 내리겠다는 말로, 교과부 공문을 직접 받아든 교사들의 애간장을 다 녹였다. 시교육청은 시나브로 교사들의 신뢰를 잃어갔고, 불신은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쏟아야 할 열정을 교사에게서 앗아갔다.

힘들 것을 각오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게 좋아 큰 고민 없이 선뜻 선택한 학생부장 일도 어느덧 끝나간다. 아이들과 축제와 산행, 각종 행사 등을 함께 하며 추억을 쌓고 그들이 지닌 끼를 살려주고 싶었고, 그것을 보람삼아 교사로서 행복한 한 해를 지내고 싶었다. 물론, 연초 계획한 대로 아이들과 더불어 나름 알차게 보냈다고 자부하지만, 그래도 진한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연간 계획표를 꺼내 달성 여부를 ○, ×표 쳐가며 반성하고 있는데, 동료교사 한 분이 다가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학교폭력만 아니었어도 계획한 모든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됐을 텐데요."

그랬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학교폭력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다 1년이라는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학교폭력 근절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현안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굳이 '수렁'에 비유한 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 별반 실효도 없는 지침으로 인해 학교 구성원들 간 불신만 조장된 현실이 안타깝고, 그렇게 허송한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정권 말기에 교과부가 느닷없이 '징계 카드'를 꺼내든 걸 보면서, 이건 본때를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오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고통은 끝나지 않은 채 해를 넘기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그동안 [학생부장 일기]를 애독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태그:#학생부장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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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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