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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마이뉴스>와 참여연대, 생활정치실천의원모임이 함께 '나는 세입자다' 기사 공모를 실시합니다. 가슴 아픈 혹은 깨알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사를 기다립니다. 세입자와 관련된 사례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반지하나 옥탑방 이야기도 좋고 해외에서 경험한 사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지난해 7월 10일 오전 8시, 뙤약볕이 내리쬐는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저희 네 가족은 이삿짐을 싸느라 몸을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6살과 4살의 두 아들도 자기 짐을 챙기기 위해 작은 고사리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아빠 이것도 가져가, 저건 꼭 가져가야 해'라며 저를 다그쳤습니다.

12평의 작은 공간에서 이삿짐 직원과 네 가족이 한 데 엉키다보니 명절의 시장판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드디어 반지하 전셋집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어깨가 부딪혀도, 또 상대의 발을 밟아도 얼굴에선 연신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마침내 모든 짐을 차에 실은 우리는 새 집으로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오후 2시, 서울 금천구 가산동 소재 3층 빌라 앞에서 차는 멈췄습니다. 아내와 두 아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밝은 날에도 햇빛이 들지 않아 낮에도 불을 켜야만 했던 반지하집에서 살았던 터라 실내 구석구석까지 빛이 스며든 새보금자리를 보고 가족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아내의 눈에선 눈물이 조금 비쳤지만 이내 두 손으로 닦아냈으며, 아이들은 이방저방을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오후 10시, 도배를 새로 한 탓에 풀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지만 아이들은 일찍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옆에 누운 아내가 '이 집에는 곰팡이가 없겠지'라며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가 저의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10년만의 서울 재상경과 함께 거처를 구해야 했지만 빠듯한 생활고로 인해 조금만 고생하자며 아내를 설득해 반지하 전셋집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옷장과 책장을 몇 번이나 들어내 벽에 붙은 곰팡이를 제거했지만 아이들의 건강은 호전되지 않았으며, 평소에도 기관지와 피부가 좋지 않았던 두 아들은 일 년 내내 천식 및 아토피 약을 달고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얻었던 반지하집과 곰팡이로 고생해야만 했던 아이들의 가쁜 숨과 거친 피부는 지금도 제 가슴 속에서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반지하서 2층으로 옮겼지만...

따사로운 햇빛이 하루 종일 스며드는 빌라 2층의 새보금자리와 함께 이제는 그 상처를 지울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2월 동장군이 기승을 부릴 때까지만 이었습니다.

2012년 1월 5일 오후 7시, 책 마감을 위해 야근을 하던 저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 거실로 물이 들어와, 빨리 집에 와!" 큰 아들놈은 신이 난 듯 외치기에 전 "거짓말 하면 귀신이 잡아간다"라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옆에서 전화를 급하게 빼앗은 아내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며 빨리 집으로 오라고만 하기에 전화를 끊었습니다. 사무실에서 불과 10분 거리라 황급히 집으로 달려간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큰 아들이 얘기한 것처럼 베란다는 이미 물바다가 되어 있었고, 거실로도 물이 넘쳐 흘러들고 있었습니다. 전 부랴부랴 물을 휴지통에 퍼 담기 시작했습니다. 싱크대에 물을 갖다 버리길 수 십 차례, 오후 7시부터 밤 12시까지 꼬박 5시간을 그렇게 하다 보니 온 몸이 땀으로 뒤범벅 될 정도로 축 늘어졌습니다. 바닥에 물 비침이 조금씩 사라진 후 저는 잠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1월 6일 새벽 3시,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한겨울의 황당한 물난리를 당한 저로선 쉽게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베란다로 나갔더니, 역시나 또 다시 물바다가 되어 있었습니다. 오전 8시까지 물을 퍼낸 후 출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저는 "한겨울에 베란다에 물이 새 저녁 7시부터 아침 8시까지 꼬박 물을 퍼냈습니다"라고 집주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집주인 왈 "그럴 이유가 없는데, 저녁에 가보겠습니다."

이후로도 일주일간 물난리는 지속되었고 집주인과의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원인을 과학적으로 찾겠다는 집주인의 이상한 논리는 봄이 되어서야 집수리하는 사람이 직접 방문할 것이라는 한 통의 전화로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베란다로 물이 넘쳤던 이유는 옥상에서 내려오는 우수관이 얼었었고, 또 제가 살던 2층 우수관이 터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에다 4층 세입자가 겨울에도 우수관을 사용한 탓에 그 물이 고스란히 베란다로 들어왔던 것이었습니다. 생활에 불편을 느꼈던 저는 기술자를 불러 임시방편으로 언 우수관을 녹여 베란다에 남아 있던 물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4층 세입자에게도 상황을 설명하고 겨울철 사용을 자제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약 20만원의 비용이 들었지만 추후에 집주인으로부터 돌려받았습니다.   

집주인과의 전쟁 과정에서 "(세입자에게) 맞을까봐 무서워서 못가겠다", "3, 4층 세입자와 소통을 못하고 사느냐" 등의 감정이 담긴 험담을 전화로 들어야만 했습니다. 참 우스운 주장이었습니다. 싸움은 한 사람만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발생되지 않으며, 쌍방의 주장이 상충되고 심화될 때 싸움으로 확대됩니다. 그런데 맞을까봐 무서워서 못가겠다는 집주인의 주장은 하자가 발생했을 경우 당연해 해야 될 의무를 회피키 위한 수단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특히 3, 4층 세입자와 소통을 못한다는 집주인의 주장은 무슨 근거에서 나온 것인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보일러를 틀어도 온기가 없었던 큰방의 곰팡이가 왜 생겼는지 이번 물난리를 겪고서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베란다 누수 당시 발을 누르면 큰방 쪽 벽 하단에서 물이 솟구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아마도 큰방 바닥으로도 물이 스며들었기에 곰팡이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던 것이었습니다. 물난리 이후 지금까지 아내와 아이들은 작은방에서 잠을 청하고 있으며, 큰방은 아이들 공부방으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사를 가고 싶습니다

집주인에게 이사를 하겠다고 통보를 하고 집을 내놓았지만 문의하는 사람이 전무한 상황입니다. 보증금 6000만원에 월 40만원의 반전세 조건이 서민들에겐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급해서 집을 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했지만 더 좋은 조건에 더 깨끗한 전셋집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복덕방에서도 왜 그 조건에 집을 얻었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여기서 벗어날 방법을 쉽게 찾을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월세가 없는 완전 전세로 하거나 보증금을 더 올리고 월세를 낮추길 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집주인의 입장은 요지부동입니다. 저 역시 전세 1억으로 돌리자는 요구를 하였지만 아직까지 답변이 없는 상황입니다. 계약 기간이 끝나는 내년 7월 전에 이사를 갈 수 있을 지 의문이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 오기에 희망을 가져봅니다.

덧붙이는 글 | '나는 세입자다' 응모글



태그:#나는세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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