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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8일)로 광주 5·18이 32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오늘도 저물어간다. 시대의 부조리에 가장 앞서서 저항했던 광주 시민들. 그들은 자신들의 저항과 죽음을 통해 독재정권의 부당성을 폭로하고 민주주의의 정 방향을 제시했다. 그들은 무자비하고 정의라고는 없는 공수부대에 맞서 자발적으로 봉기했다. 그리고 시민군은(비록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역사 속에서는 길이 기억될 '해방 광주'를 만들어냈다. 

당시 광주시민들은 정당성과 정의라고는 없는 계엄군의 총검에 쓰러졌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민주화'의 상징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32년이 흘렀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았다.

쌍용자동차 사태를 보며 5·18을 떠올린 것은 나 혼자 뿐일까. 신자유주의는 마치 점령군처럼 한국 사회 전체를 지배했다. 그리고 그들은 계엄령이라도 선포하듯, '정리해고' '노동의 유연성'이라는 명목으로 쌍용노동차 2646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 이에 맞서 오늘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옥쇄 파업을 하였고, 자본가들로부터 '해방된 공장'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80년 광주처럼 외딴 섬이 되어 사회로부터 격리되었던 그들의 77일은 어땠을까. 21세기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기 힘든 경찰과 용역깡패들의 진압 과정들. 옥상에서 커다란 몽둥이와 방패로 노동자들을 마구 구타하던 장면을 보고, 광주 당시 계엄군이 시민들을 곤봉과 대검으로 구타하는 사진이 스쳐지나갔다.

그들은 결국 공권력과 사측의 자금력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고, 좌절감과 절망에 빠져 지내면서 지금까지 22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은 광주 시민들처럼 다시금 국민들에게 외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투쟁과 죽음을 통해 정리해고의 심각성을 말하며, 현재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인 '경제 민주화'의 기로에서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를 묻고 있다.

5·18을 앞두고 보게된 영화 <당신과 나의 전쟁>

 영상제 <당신과 나의 전쟁> 자보
ⓒ 손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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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갓 대학교에 들어온 새내기들에게 광주 5·18의 실체와 진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면, 지금 대학에 들어온 나와 12학번들에게 쌍용차 파업의 실체와 진실이 그만큼 충격적이지 않을까. 대학에 입학한 후 이곳저곳에 붙어 있던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들과 '쌍용차 OO번째 죽음'이라는 분향소들... TV와 신문에서 교과서에서 문제집에서 전혀 말해주지 않던 사실들에는 관심도 없었고 믿기도 싫었다. 그리고는 스스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회사가 아무 이유 없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해고했겠어... 그분들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 돌아가신 거겠지...' 하지만 이는 세상을 너무 순진하게 본 나만의 착각이었다. 세상은 내가 커오면서 봐왔던 만큼 아름답고 평화롭고 정의롭지만은 않았다.

내가 사는 이 대한민국에서 누군가가 아무런 잘못도 없이, 단지 회사의 경영만의 문제라는 이유로 해고되어 목숨을 끊어야 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사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2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한순간에 평생을 일했던 자신의 일자리에서 그렇게 쫓겨나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그들은 왜 최루액과 무자비한 폭력과 식수까지 끊긴 상황에서까지 공장을 지키려고 했던 이유에 대해, 그리고 아직도 그들이 23번째 죽음이 없기를 바라며 투쟁하는 이유에 대해. 그리고는 <당신과 나의 전쟁>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태준식 감독의 작품 <당신과 나의 전쟁>은 쌍용차 파업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약 당신이 정리해고를 당했다면?'이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이 영화는 나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아니 그 수준을 넘어 나에게 마치 <화려한 휴가>를 봤을 때만큼의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다큐멘터리답게 현실적으로 적나라하게 파업 당시를 그려냈다. 특히 해고 노동자 가족들의 처절한 호소를 듣다가는 너무 괴로운 나머지 나도 모르게 '정지' 버튼을 누르고 한동안 분을 삭이지 못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그 안에서 완전히 자치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그들의 의지를 다지는 모습은 나에게 신기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 영화의 결론을 어쩔 수 없이 알고 있기에 나는 영화가 흐를수록, 결말로 갈수록 슬펐다. 그리고 마치 공상 SF 영화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일들이 공장 진압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습은 정의로운 공권력이 한다는 것이 믿기 힘들 정도였다. 특히 진압 과정에서 경찰이 던진 불에 공장이 화재가 나자, 노동자들이 달려와서 소화기로 '우리 공장 지켜야 한다'며 공장에 난 불을 끄는 장면이 있었다. 무장한 경찰이 달려오는 와중에도 공장을 지키기 위해 불 속으로 몸을 던지는 그들을 보며, 나는 도대체 누가 정의의 편인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영화는 내가 알고 있는 사실대로 끝났다.

쌍용차 사태 3년... 이제 알았다는 게 부끄러웠다

영화가 끝났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끝내기 싫었다. 왜냐하면 이 영화같은 일이 아직도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음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끝내지 않기 위해 학교 사람들과 교내 영상제를 기획하게 되었다. 영상제를 통해 이 영화를 여러 사람들과 같이 공유하고 싶었다. 마냥 정의롭지만은 않은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는 이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 같이 보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후회하지 않고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하리라는 확신도 있었다. 영상제를 할지 말지에 대해 결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하기로 확정되자 그 뒤부터 빠르게 진행되었다. 바쁜 와중에도 영상제를 준비할 때만큼은 어떤 일보다 재밌고 의욕이 넘쳤다. 자보도 만들어서 이곳저곳에 청테이프로 붙이고, 주변사람들에게도 홍보했다.

영상제 당일, 학교는 축제 기간이었다. 영화를 틀기 위해 빌린 강의실까지 축제 행사 마이크 소리가 간간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도 많이 오진 않았다. 하지만 많지 않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모여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보면서 이 영상제를 준비한 보람을 느꼈다. 특히 축제 기간임에도 영상제에 참여해 준 새내기에게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새내기가 영화를 보고 울먹거리며 말하던 모습이나,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아무도 해결하려고 하지 않나며' 분노하던 모습을 보며 이 영상제를 잘 준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이것이 바로 축제였다.

그리고 이틀 뒤인 5월 18일, 영상제에 참여했던 우리는 영화의 주인공들을 응원하러 갔다. 마침 대한문 앞 분향소에서는 쌍용자동차 22번째 희생자 49제 5대 종단 합동 추모제가 열리고 있었다. 넓은 시청광장은 경찰차에 의해 가로막혀 있었기에 우리는 대한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는 종교인들의 추모사를 들었다. 이따금 부담스럽거나 처음 접하는 노래들과 구호들이 나오긴 했지만, 영화에서 봤던 지부장님이 무대 위에 올라와서 연설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죄송스러웠다. 또 사건이 일어난 지 3년이 지난 뒤에야 이렇게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에 부끄러웠다.

추모제가 끝난 뒤 우리는 촛불을 하나씩 들고 22번째 돌아가신 분의 영정 앞에 놓고 왔다. 22번째 돌아가신 사진을 보며 왠지 영화에서도 뵌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래서 다들 마음이 착잡했다. 더구나 이 죽음이 22번째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쌍용자동차 22번째 희생자 49재에 참여하는 우리를 더욱 슬프게 했다.

19일 오후 4시 서울역 광장에서는 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을 위한 범국민대회가 열린다. 쌍용자동차는 약속한 복직 약속을 아직도 경영상의 이유로 지키지 않고 있다. 광주 5·18 추모 행사에도 참여하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의 MB정권은 이 문제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듯하다.

쌍용차 22번째 죽음의 49재가 5·18인 것이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온갖 현실의 이해관계와 언론의 은폐, 여론몰이에 가려 쌍용차 사건의 본질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광주 5·18이 어둠의 시간을 지나 온 국민의 마음속에 '민주화'의 횃불을 던졌듯이, 쌍용차도 여기서 끝나지 않고 결국엔 국민들 마음속에 '경제 민주화'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손태영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쌍용자동차, #광주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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