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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원. 오늘, 나의 점심값이다.

 

편의점에서 산 P사의 컵라면, 닭고기 국물 라면으로 히트하고 나서 이젠 김치볶음이 들어간 컵라면까지 내놓았다. 하여튼 컵라면값 1500원. 디저트로 동네 슈퍼에서 초콜릿 아이스크림(500원), 막대사탕(200원)을 샀으니 합이 700원. 총계 2200원이다. 동네 슈퍼는 여름이 되면 아이스크림을 50%나 할인한다. 아주 좋다. 딸기 맛의 사탕도 맛있다.

 

어제보다는 나아진 살림이다. 어제는 컵라면과 아이스크림 합쳐서 1800원이 내 점심값이었다. 컵라면을 오늘보다 200원 싼 것으로 먹었었다. 오늘은 큰 맘 먹고, 200원 더 써서 신상 컵라면을 시도해 봤다.

 

김치찌개에서 자장면으로... 그 후에는 순대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에서 부동산을 한 지도 1년이 조금 넘는다. 혼자 하는 사업이라 점심은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혼자 먹는다. 처음부터 컵라면으로 때웠던 건 아니다. 4~5개월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다른 이들처럼 5000원, 6000원짜리 점심을 먹었었다.

 

부동산 중개업계가 사상 최악의 불황을 겪으면서, 내 점심값도 자연스럽게 '다운'되었다. 혼자 먹는데, 6000원짜리 김치찌개는 어울리지 않게 여겨졌다. 5000원 아래로 비용 대비 포만감이 가장 높은 메뉴를 찾아보았다. 한 가지, 꼭 맞는 메뉴가 있었다. 다름 아닌 자장면.

 

한 그릇에 4500원인 자장면을 근 한 달 정도 넘게 점심으로 먹었다. 언제 먹어도 맛있고, 질리지가 않는 자장면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계속 먹고 사노라니, 이젠 내 몸이 자장면을 거부했다.

 

부동산 중개업계는 더더욱 어려워졌고, 이를 계기로 자장면을 못 먹게 된 이유를 찾았다.  점심값은 더 내려갔다. 3000원. 이 돈에 맞는 메뉴는 4500원짜리 보다 오히려 많았다. 패스트푸드점 런치 세트, 편의점 도시락, 순대가 그것이었다. 포장해 오면, 사무실에서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나 같은 '나 홀로 손님'은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꺼린다. 12시가 되기 전에 가던가, 아니면 아예 1시 30분 이후에 가야한다. 3000원 정도를 먹으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또한, 돈에 맞춰 먹으니 점심때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비록, 외롭긴 하지만 나름대로 행복했다. 런치 세트에는 감자튀김이 있어서 좋았고, 편의점 도시락은 행사하면 음료수가 덤이라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메뉴는 순대였다.

 

냉천동 이웃 동네 충정로에 있는 A 분식집. 그곳이 내 '순대'를 맛있는 순대로 채울 수 있는 고마운 집이다. 사장님이 남자인데, 내 형뻘쯤 된다. 중국인 직원이 두 명 있는데, 그 중 한 명은 사장님과 부부 사이다.

 

체인 분식집이라 다 비슷비슷할 것 같지만, 이곳은 특별히 더 맛있다. 조리할 때, 정성이 들어간다고 한다. 또 양이 많다. 더 좋은 건 사장님이 정이 많으시다는 것. 자주 온다며 500원짜리 삶은 달걀을 공짜로 주기도 한다.

 

"매일 혼자 드시면 입맛 없어서 어떡해요?"

 

사장님이 순대를 건네며, 나를 안쓰럽게 본다. "아니에요"라고 말하며 웃었지만, 속으로는 "정말 맞아요"라고 말하고 싶다. 포장해서 사무실로 가져와 <오마이뉴스>를 읽으며, 먹다 보면 순대는 금세 사라진다. 그것 참!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과 같이 앉아서 점심을 먹어 본 게 언제인가 싶다. 조금 떠들썩하게 같이 점심을 먹는다는 것이 참 소중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젊을 때, 싼 점심을 먹는 건 '특권'

 

며칠 간은 점심값이 더 내려갔다. 햄버거도 계속 먹으니, 속이 불편하다. 또 편의점은 행사하지 않게 되었다. 분식집에 순대를 먹으러 갈 때마다, 인상 좋으신 사장님이 측은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더 못 가게 되었다. 

 

나야! 젊으니까 괜찮지만, 노인분이 점심으로 나처럼 컵라면이나 빵을 드시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 나보다 어린 사람이 아르바이트하며, 싸구려 점심을 먹는 걸 봐도 짠한 느낌이 든다. 요즘은 점심 때가 한 참 지났는데도 걸어다니며, 빵으로 점심을 때우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특히, 나이 많은 분이 그럴 때가 많다. 가족을 위해서 그렇기도 할 것이다. 나이 어린 사람이 그럴 때도 많다. 역시 가족을 위해서다.  

 

나 역시 미혼이 아니라 한집안의 가장이었다면 더 아꼈으면 아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내와 자식은 잘 먹여도, 나는 이렇게 먹지 뭐! 젊은데…."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직장인의 마음도 마찬가지 아닐까. 비록 6000원 짜리 점심을 먹지만, 마음으로는 한 푼이라도 더 싸게 먹고자 할 것이다. 요즘처럼 어려운 때에는 절약하게 되니까.

 

젊을 때, 싼 점심을 먹는 건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젊음으로 모든 걸 이겨낼 수 있다. 물론, 너무 배고프거나 영양 불균형적으로 먹어서 건강을 해칠 정도가 되면 안 된다. 하지만 가끔 저렴하게 먹는 건 나쁘지 않다.

 

최근 들어,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게 여겨진다. 외롭고 배고파 보면 깨닫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난 행복하다. 살아있고,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작은 소원이 하나 있다면, 한 마리에 만 원하는 동네 치킨을 사 먹어 보는 것이다.

 

열심히 살다 보면, 부동산 중개업계도 형편이 나아지고, 언젠가 치킨도 사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소소한 희망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언젠가 이 기사도 웃으면서 다시 볼 수 있겠지. 그날이 올 거라고 믿으며, 오늘도 나는 삶을 살아간다.

덧붙이는 글 | '직장인의 점심투쟁기' 응모글 


태그:#점심, #자영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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