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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한 음식을 파는 식당
▲ 독일 하노버 저렴한 음식을 파는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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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가면 20유로짜리 음식을 먹더라도 배불리 못 먹을 거예요."

독일에 오기 전에 들은 이야기 중 하나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상당히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독일의 물가가 얼마나 비싼지는 모르겠지만 한화로 3만 원 가량을 지불해도 배불리 먹지 못한다? 설마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위의 이야기를 내가 직접 들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한 당사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좀 걱정이 되네'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독일에도 싼 음식을 파는 곳은 분명히 있을 거다. 그런 곳을 찾으면 될 거다'라고 계획하기도 했었다.

막상 와서 보니 먹는 것은 예상만큼 많은 비용이 들지 않았다. 돌아다니다보니 10~15유로(약 1만5000~2만2000원) 정도면 괜찮은 음식으로 배를 채울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의 경우 아침에는 숙소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고 저녁에는 독일 맥주와 함께 고기류의 음식을 먹었다. 문제는 점심인데 점심으로 뭘 먹어야 할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식대는 4500원. 김치볶음밥과 냉면이 나왔다. 닭고기도 있었는데 그건 담아오지 않았다.
▲ 한국 구내식당에서 먹은 식사 식대는 4500원. 김치볶음밥과 냉면이 나왔다. 닭고기도 있었는데 그건 담아오지 않았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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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점심 때가 되면 주로 구내식당에 내려가서 그날의 메뉴를 식판에 담아서 먹었다. 식대는 4500원. 이 가격으로 먹고 싶은 음식을 식판에 원하는 만큼 담아서 먹는다면 꽤나 괜찮고 즐거운 점심시간이 된다. 구내식당이 아니라 밖에 나가서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 날에는 밖으로 나가기 전에 무얼 먹으러 갈지 미리 정해놓기 때문에 점심시간을 보내기가 한결 수월하다. 물론 외식(?)을 할 때에도 '뭘 먹을까'를 고민하기는 한다. 그 고민은 택할 수 있는 메뉴가 많기 때문에 생기는 고민이다. 반면에 독일에서는 알고 있는 음식이 없기 때문에 뭘 먹을지 망설여진다.

가격의 한국의 두 배, 양은 절반밖에...

닭고기와 양고기가 섞였다. 가격은 13유로 (한화 약 2만원)
▲ 독일 하노버 터키 식당의 음식 닭고기와 양고기가 섞였다. 가격은 13유로 (한화 약 2만원)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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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고기 메뉴. 9유로 (한화 약 14000원)
▲ 독일 하노버 터키 식당의 음식 양고기 메뉴. 9유로 (한화 약 14000원)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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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오면서 '맥주와 소시지'를 상상했지만 그렇다고 점심식사로 맥주에 소시지를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에서는 너무 많은 음식정보 때문에 선택하기가 힘들었다면, 독일에서는 너무 정보가 없어서 어렵다. 이래저래 어딜 가든지 간에 먹는 것이 문제인 모양이다.

아무튼 먹긴 먹어야 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가격이 저렴하면서 빠른 시간 안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골라본다. 술을 곁들인 저녁식사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점심식사에 많은 돈과 시간을 소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먹을까. 초밥이 포함된 도시락도 있지만 그건 너무 비싸다. 감자튀김에 소시지도 좋지만 그건 맥주 생각이 날 테니까 안 되고. 카레 메뉴도 있는데 그건 먹기에 시간이 좀 걸릴 것도 같다.

그러고 나니까 남는 것은 샌드위치 또는 햄버거라고 할 수 있는 일종의 패스트푸드였다. 빵 사이에 두툼한 고기와 토마토, 오이, 상추가 들어 있다. 여기에 뜨거운 커피 한 잔을 곁들이면 나름대로 간단한 점심식사가 된다. 가격은 약 6유로(한화 약 9000원)로 싸지 않은 편이다.

그래도 한국에서 들었던 이야기처럼 20유로를 내고도 배불리 먹지 못하는 것보다는 좋은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꾸역꾸역 빵과 고기를 먹고 커피를 홀짝인다. 한국 구내식당에서 먹었던 점심식사가 떠오른다. 그에 비하면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은 가격은 두 배면서 양은 절반 이하다.

저녁에 마실 맥주를 기대하며 참는 수밖에

점심으로 먹은 햄버거와 커피. 합쳐서 6유로
▲ 독일 하노버 점심으로 먹은 햄버거와 커피. 합쳐서 6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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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을 그렇게 많이 해본 것은 아니지만 외국에서 식당에 갈 때마다 느끼는 생각 중 하나는 '한국만큼 음식인심 좋은 나라도 없을거다'라는 것이다. 식당에 가면 기본적으로 물을 공짜로 제공받고, 기본으로 나오는 밑반찬도 얼마든지 추가로 시켜서 먹을 수 있다. 공기밥도 돈 안 받고 더 주는 식당들도 많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지금껏 내가 가보았던 외국의 식당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물도 사먹어야 하고 밑반찬이란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음식을 더 달라는 얘기는 배짱이 없어서 차마 해보지 못했다.

그러니 혼자 독일 식당 한 구석에 앉아서 (또는 서서) 고기가 끼워진 빵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한국 음식을 생각한다. 한국 음식 자체가 먹고 싶다기 보다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그렇게 푸짐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리운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괜찮다. 독일에 오랫동안 있을 것도 아니니까 여기 있는 동안에는 점심을 이렇게 즐기자. 대신 저녁에는 맛있는 안주에 독일 맥주를 양껏 마실 수 있으니까 좋지 않나. 식당에 서서 나랑 비슷한 음식을 먹고 있는 독일인들과 눈을 마주치고 그때마다 눈인사를 하면서 점심을 때우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이 순간이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그때는 구내식당의 푸짐한 음식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겠지. 나는 점심을 먹으면서 한국의 음식보다는 저녁에 마실 맥주를 기대한다. 그러다보면 손에 들고 있는 빵도 아주 맛있게 느껴진다.

과일을 파는 작은 가게
▲ 독일 하노버 과일을 파는 작은 가게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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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직장인의 점심 투쟁기' 응모글



태그:#독일, #하노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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