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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이야기를 다룬 영화 <해안선>의 한 장면.
 해병대 이야기를 다룬 영화 <해안선>의 한 장면.
ⓒ 엘제이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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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하사, 잘 살지?

자네가 빨간 명찰 달린 해병대 복장을 벗은 지 35년, 내가 그 옷을 벗은 지는 이제 꼭 30년이 지났네. 내가 자네보다 먼저 그 옷을 입음으로 선임이었는데 사회에선 자네가 나보다 선배라는 얘기지. 자네가 해병대 옷을 벗고 나간 뒤 5년은 참 너무도 빨리 가버렸어.

언젠가 자네가 근무한다는 직장 근처를 지날 때가 있었어. 들리는 풍문으로 얻은 정보여서 그곳이 정말 자네 직장이었는지는 모르겠네. 하지만 자네가 그곳에 근무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그 앞을 지나면서 괜히 얼굴이 뜨거웠어.

자넨 단기하사였고 난 장기하사였기에 같은 하사관 계급이었지만 우리 군에선 차별이 있었잖어. 단기하사는 같은 하사관들 끼리도 제대로 하사관 대접을 못해 준 것, 그러니 병들이야 어땠겠어. 병들도 제대 말년이면 단기하사들은 그냥 친구 먹으려고 했던 것, 자네도 생생히 기억할 거야. 내가 자네에게 지금도 미안한 구타사건은 그런 연유로 일어났지.

김포 A리 '팔하나(81mm)' 소대 기억하지? 소대 정문을 나서면 앞에는 탐지기를 놓고 북한 땅굴을 탐지하는 소대가 있었고, 거길 지나면 마을이 있었어. 그곳 막걸리는 지금도 생각나. 농주였을 거야. 참 맛있었어. 하루 종일 전방에서 철조망 작업을 했거나, 교통호 보수공사를 하고 저녁 순검이 끝난 뒤 대원들 재워놓고 마을로 나와서 먹었던 그 막걸리, 어때 지금도 그 맛 생생히 기억나지?

자네도 기억하겠지. 우리 소속은 본부중대였지만 그곳에 파견으로 전방근무를 했기에 소대장이 배속 중대장 지휘를 받아야 했었어. 그래서 소대장보단 군대 짬밥 수가 많은 내가 실질적 소대 책임자로 배속 중대와 원 소속인 본부중대까지 명령체계 관리를 했던 것도 기억할 거야.

우린 그래도 별 사건 없이 잘 했어. 자네들도 내 지시를 잘 따랐고, 난 뒤늦게 공부한다고 종종 근무도 태만하게 했지만 그래도 자네와 자네 직속 선배가 관리를 잘 한 덕에 큰 사고 없이 잘 지냈어. 그런데 그놈의 막걸리가 문제였어. 물론 막걸리보다는 제대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자네들의 기강 해이도 문제가 아닐 수는 없었겠지.

그날, 공부하다가 새벽 2시경에 잠깐 소초 주변 순찰을 했을 때 근무자들이 제대로 근무만 서고 있었더라도 그 사건은 없었을 거야. 나와 보니 팔포(잡종 진돗개 이름) 혼자서 지키는 소초 주변은 적막강산이었어. 초소 근무자도 졸고, 불침번은 아예 자고 있고…. 깜짝 놀라 당직하사를 대동하고 소대원이 취침 중인 내무실을 돌아보니 빈자리가 무려 5곳이었어.

새벽 2시에 시작된 집합...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뜨거워

제대 말년의 병장 두 놈과 또 제대 말년인 자네, 그리고 상병 두 놈이 보이질 않았어. 당직하사에게 물었더니 자기에게 보고가 없었다는 거야. 당장 비상을 걸고 자리를 비운 자네들을 잡아오게 했더니 이미 그놈의 막걸리에 취한 자네들은 군인이 아닌 민간인 수준이었지. 그리곤 자네가 내게 말했어.

"반장님, 반장님도 흰머리 나도록 해병대 말뚝 박을 거 아니잖아요?"
"낼 모래 제댄데… 그래서 말년끼리 한 잔 한 거, 뭐 봐줄 수 있지 않아요?"

그날, 난 내가 생각해도 이성을 잃었었어. 자네의 그 '말뚝' 소리에, '제대' 소리에…. 그래 그랬다고 솔직하게 고백할게. 나보다 늦게 들어온 일반 수병들이 먼저 제대하면서 속을 긁어도 참기 힘든데 후배 하사관이 술에 취해 대놓고 대든 거를 용서할 수 없었어. 게다가 자네들은 이미 군기를 위반한 상황이었어. 소대장이 퇴근한 뒤 야간에 소대 책임자였던 내겐 명분도 있었지. 그렇게 시작된 구타, 자네와 최 병장은 사흘 후 전역신고하러 본부중대로 가는 날까지 제대로 걷지 못했지.

헌데 자네들만이 아니라 5파운드(도낏자루)가 부러질 정도로 죄 없는 대원들까지 돌아가면서 두들겨 팼던 그 행위는 아마 일종의 광기였을 거야. 새벽 2시에 시작된 집합 후의 매타작이 동이 터오도록 끝나지 않았던 그 광기, 난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얼굴이 뜨거워. 그리고 미안해. 이제야 하는 사과지만 받아줬으면 좋겠어.

그것은 또 어쩌면 앙갚음이었다고도 생각해. 나도 그렇게 죽도록 맞았던 기억에서 나온 앙갚음… 내가 그 몇 년 전 우리 소대원의 훈련을 책임지고 준비해야 했던 중고참일 때 그렇게 맞았었거든. 장기 야외 훈련, 아마 한미합동 훈련이었을 거야. 그 전날 훈련준비가 한창인데 여자 친구가 면회 왔었지. 그래서 면회 때문에 훈련준비를 소홀히 했다고 밤새 선배에게 얻어터졌어. 그 후유증으로 훈련장에 가서도 몸을 제대로 쓰지 못했어.

그때 나를 때린 선배도 때릴 명분이 충분했어. 내가 자네들을 때릴 명분이 충분했던 것처럼. 그 기억까지가 아마 그날 광기에 포함되었을 거야. 그래 틀림없이 그랬어. 그때 나를 때린 선배도 그랬지.

"군인이, 해병대가, 훈련 준비보다 애인이 더 소중해?"
"(기합) 빠져가지고…"

나도 그랬어.

"니들 지금 전역했어? 아니지? 모레까진 군인이잖아?"
"오늘 전쟁 일어났으면? 오늘 공비가 침투했으면?"
"오늘 누군가 내무실에서 총기를 모두 훔쳐갔으면?"
"(기합) 빠져가지고…"
"제대 말년이라고 하사관이 병들하고 어울려서 술 먹어?"

5파운드를 내려 칠 때마다 읊었던 말이었어. 울분 섞인.

난 그때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줄 알았어

지난 6일, 강화도 해병대 해안소초에서 발생한 총기사고로 희생된 장병들의 합동영결식이 열린 국군수도병원 연병장에서 한 해병대원이 눈물을 닦고 있다.
 지난 6일, 강화도 해병대 해안소초에서 발생한 총기사고로 희생된 장병들의 합동영결식이 열린 국군수도병원 연병장에서 한 해병대원이 눈물을 닦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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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래서 생각해. '누구든지 매를 들면 안 된다. 매를 들고 구타가 시작되면 처음의 생각은 없어지고 나중엔 사적인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게 된다.'

특히 군대에서의 구타는 더욱 그래. 우리가 초임 하사 때부터 맞았던 기수빠따나 개별 구타 사건들도 돌아보면 때린 선배들에게서 사적 감정이 전혀 없었다곤 누구도 말할 수 없었어. 집단 구타나 개별 구타 모두 애초 시작은 사소한 군기위반에서 부터지. 하지만 나중에 보면 사소한 군기 위반은 단지 구타 시작의 조건이었을 뿐이야.

그냥 자신의 울분, 군대생활에 대한 개인의 작은 불만들까지 포함된 개인감정이 구타를 지배했어. 내가 지금 뒤돌아 본 군대 생활의 기억들, 맞고 때리고 굴리고 조진, 또 조짐을 당한 기억들 모두가 그랬어.

한 하사. 정말 잘 살고 있지?

아마 자네도 지금쯤은 60을 바라보겠군, 머리도 허옇고… 나도 그래. 어느새 60이 넘어버렸어. 며느리도 보고 손자도 봤지. 할아버지야. 그래도 이렇게 늦은 사과지만 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군. 혹여 언제 만날 수 있으면 김포 A리 가서 그 막걸리라도 한 잔 나눴으면 해. 그리고 우리가 젊음을 묻었던 그곳, 5파운드가 부러질 때까지 자네들을 때렸던 그곳을 돌아보며 서로 손잡고 파안대소라도 하고 싶어.

요새 해병대에서 일어난 불미스런 사고들로 나라가 시끄럽고, 또 어제는 구타사건을 일으키거나 우리는 알지 못했던 '기수열외'라는 왕따 사건을 일으키는 해병들에게서 빨간 명찰을 뗀다는 뉴스도 나오더군. 헉헉거리며 천자봉을 오를 때 외쳤던 '나도 빨간 명찰을 단 해병이 된다'는 그 긍지 가득한 빨간 명찰을 떼인다면 기분이 어떨까? 예비군 훈련장에 가서도 가슴에 달렸던 그 빨간 명찰의 자부심을 현역으로 복무하면서 박탈당한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아찔해.

암튼 시대가 많이 변하기는 했어. 그랬음에도 아직 해병대에 우리 때의 구습이 남았고 그보다 더한 왕따 문화까지 있다니 씁쓸해. 그래서 자네에게 더 미안해. 난 그때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줄 알았어. 제대 말년이라도 마지막 날까지 해병으로 군기를 유지해야 하는데, 하사가 병들 데리고 민가에 가서 밤이 깊도록 술파티를 한 것을 용서하면 소대의 군기를 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때 개인 감정이 섞였다는 것, 그것도 인정해.

그래서 고마워. 그때 참아줘서 고마워. 만약 자네가 지금 애들처럼 '회까닥' 돌아버려서 군기사고라도 일으켰으면 내가 지금 이렇게 건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고마워. 그리고 부탁할게. 정말 건강하게 잘 살아. 혹여 이 글 보거든 내가 누군지도 알 거야. 그러니 연락해. 그 막걸리는 내가 살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병영 구타의 추억' 기사 공모에 응모하는 글입니다.



태그:#군대, #구타, #해병대, #기수열외, #하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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