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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서울시에 등장한 홍보포스터.
▲ G20과 음식쓰레기의 상관관계는? 지난 11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서울시에 등장한 홍보포스터.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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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서울 G20 정상회의 기간 중 음식물쓰레기 배출을 자제해 주십시오."

지난 11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앞두고 서울 서대문구가 만든 홍보 포스터 글귀다. 서대문구는 아울러 G20 회의 동안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서울 난지물재생센터' 내의 음식물쓰레기 처리시설 가동을 멈추기도 했다.

G20 정상회의와 음식물쓰레기가 도대체 무슨 상관일까? 또 G20 회의는 강남구 삼성동에서 열렸는데 왜 서대문구에서 음식물쓰레기 배출을 자제해 달라고 할까? 이유인즉 이렇다.

서울시민이 싸는데 냄새는 고양시민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길목에 자리 잡은 난지물재생센터는 서울시 일부 지역에서 발생하는 생활하수와 오니(汚泥), 정화조를 병합 처리하는 환경시설이다. 쉽게 말해 서울시민이 싸고 버린 똥오줌과 생활하수를 종말처리하는 곳이다. 악취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곳의 음식물 처리시설은 물재생센터의 하수처리 시스템과 별도로 서대문구에서 관리한다. 그래서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각국 정상들에게 악취가 풍기는 것을 막기 위해 G20 회의기간에 이곳의 음식물쓰레기 처리시설 가동을 중단한 것이다.

그러니 "밥도 짓지 말고 똥도 싸지 말라는 말이냐"는 시민들의 볼멘소리가 나온 것은 당연하다. 대표적인 '과공비례'의 전시행정 사례로 꼽힐 만하다. 특히 날마다 악취를 맡으며 자유로를 통해 서울로 출퇴근하는 고양시민들의 반발이 컸다. 난지물재생센터는 고양시에서도 그동안 민원을 이유로 서울시에 끊임없이 대책수립을 요구해온 대표적 주민기피시설이다.

서울시 하수처리장 구역도
 서울시 하수처리장 구역도
ⓒ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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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하수처리장(물재생센터)은 350개 정도다. 대부분이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공하수처리장이지만 기업이 위탁운영하는 민간 하수처리장도 있다. 전국 공공하수처리장 280개 중에서 서울시 하수처리장은 중랑·탄천·서남(가양)·난지 등 4곳뿐이다. 이에 비해 경기도 하수처리장은 66개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그만큼 서울시민들이 배출한 생활하수와 똥오줌의 종말처리를 상당 부분 경기도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다.

서울시 하수처리장 4곳 중 하나가 바로 고양시에 있는 난지물재생센터다. 이곳에서는 서울시의 용산·은평·서대문·마포구 전 지역과 종로·중구·성동구, 고양시 일부 지역의 생활하수, 그리고 서울시 9개구(종로·중·용산·은평·서대문·마포·강남·서초구 전 지역과 영등포구 일부)에서 발생하는 정화조와 분뇨를 병합해 처리한다. 결국 서울시민이 싼 똥오줌을 처리하느라 고양시민이 악취를 감수하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시 하수처리 현황
 서울시 하수처리 현황
ⓒ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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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에 벽제화장터 등 서울시 운영 기피시설은 8곳

이처럼 고양시에는 난지물재생센터를 포함해 벽제화장터로 더 유명한 서울시립승화원, 서울시립묘지 등 서울시 운영 주민기피시설이 8곳이나 있다.

벽제에 시립묘지가 개설된 때가 1963년이고 서울시 홍제동의 서울시립화장장이 현 위치로 이전한 때가 1970년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기피·혐오시설의 명칭은 그럴듯하게 바뀌었다. 하수처리장은 물재생센터, 쓰레기소각장은 자원회수시설, 그리고 화장터는 승화원이라는 예쁜 이름으로 바뀌었다. 다만, 고양 주민들이 40년 넘게 감수한 지역 이미지 훼손과 부동산 가치 하락, 개발 낙후로 인한 소외감 등 고통은 그대로이다.

그러나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법. 지역 내 기피시설 운영 문제를 놓고 서울시와 갈등을 빚어온 최성 고양시장이 14일 서울시 기피시설 27곳을 경찰에 무더기로 고발하는 강경 대응 카드를 꺼내 든 것은 고양 주민들이 40년 넘게 참아온 고통이 임계치를 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양시는 이날 서울시 난지물재생센터, 서대문구 음식물폐기물처리시설, 마포구 폐기물처리시설 등 관내 기피시설 3곳에 대한 불법사항 27건을 확인, 개발제한구역 특별조치법·폐기물관리법 등의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고양시는 그동안 이들 시설로 인해 고양시민이 많은 고통을 받아왔음에도 서울시가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등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아 이 같은 조치를 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양시가 고발조치한 27건의 불법행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난지물재생센터의 경우 2001년부터 하수슬러지 보관창고와 토양탈취장 등 20개 건물을 허가나 신고 없이 신·증축하고 1곳은 물건을 불법 적치했다. 이에 대해 올해 초부터 3차례에 걸쳐 시정명령을 내렸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서대문구가 운영하는 음식물폐기물 처리시설도 2005년부터 음식물 퇴비 저장창고와 재활용시설, 사무실용 컨테이너박스 등 3개 건축물을 불법 운영한 것으로 조사됐다. 마포구 폐기물처리시설은 쓰레기 야적장, 쓰레기 분리 작업장, 사무실용 컨테이너박스 등 3건의 건축물을 무단 설치해 운영해오다가 이번에 고발 조치됐다. 고양시는 지난 10월 1일 마포구에 이행강제금 5000만 원도 부과했다.

서울특별시의 '차별'이 지방의 '반란'을 불렀다

최성 고양시장이 고양시 관내에 소재한 서울시 난지물재생센터 현장을 방문해 불법시설을 확인하고 있다.
▲ 최성 시장의 '유쾌한 반란' 최성 고양시장이 고양시 관내에 소재한 서울시 난지물재생센터 현장을 방문해 불법시설을 확인하고 있다.
ⓒ 고양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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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가 서울시를 고발하는 초강수를 둔 것은 최성 시장이 지난 7월 취임 이후부터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수 차례 관내 기피시설 문제의 합리적인 해결을 촉구해 왔음에도 오 시장이 국제회의 및 해외출장 등을 이유로 면담일정을 차일피일 변경하는 등 대수롭지 않게 반응해온 것에 대한 반격의 성격이 짙다.

최 시장은 지난 9월에도 '서울시 운영 주민기피시설 관련 서울시장에 드리는 서한문'에서 "서울시립승화원과 난지물재생센터 등 서울시 운영 주민기피시설에 대한 고양시민의 분노가 극에 달해 주민과 시의회에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집단행동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면서 10월까지 근본적인 해법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했다.

또 지난 9일에도 '서울시 기피시설 및 무상급식 관련 TV토론 제안'이라는 제목의 공개편지에서 오 시장이 무상급식을 거부하면서 이를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 것과 관련, "오 시장의 한강르네상스 사업이야말로 부자만을 위한 포퓰리즘이며, 관내 기피시설에 대한 확실한 대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강력한 법적·행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듯하다. 서울시는 서울지역 3개 물재생센터의 경우 민원 해소 차원의 사업을 단계별로 추진하면서도 고양시에 소재한 난지물재생센터는 2028년 이후 장기계획에 포함시켰을 뿐이다. 또 서초구 원지동추모공원은 5천억 원을 들여 종합의료시설 등 최고 수준의 복합시설로 조성하면서, 고양시민들이 공원화를 요구하는 서울시립승화원 주변엔 주민 편익을 위한 계획을 단 한 건도 세우지 않는 식으로 '차별'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특별시의 지역 '차별'이 지방의 '반란'을 부른 셈이다.

그러나 최 시장이 오 시장에게 반기를 든 것을 당적이 다른 단체장의 정치적 '인정 투쟁'이나 '주목 투쟁'으로 설명할 수만은 없다. 함께 고발한 마포구청과 서대문구청의 구청장은 같은 민주당 당적이고, 서울시 기피시설 이전 요구는 한나라당 당적의 전임 고양시장 때부터 추진된 것이기 때문이다. 고양시는 지난 5월에도 주민 기피시설에 관한 대책연구용역 보고회를 갖고 서울시 운영 기피시설 8곳에 대해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도록 서울시에 요구한 바 있다.

최성 시장 "고양시가 무조건 이기게 돼 있는 싸움"

지난 9월 17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서울시립승화원(벽제화장장) 앞에서 화장장 인근 주민 100여명이 집회를 갖고 서울시에 화장장 이전과 이전 때까지 시설 현대화, 그동안 피해보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9월 17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서울시립승화원(벽제화장장) 앞에서 화장장 인근 주민 100여명이 집회를 갖고 서울시에 화장장 이전과 이전 때까지 시설 현대화, 그동안 피해보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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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관내의 주민기피시설에 대한 시정 요구는 전임 시장도, 한나라당 지역구 의원들도 해온 것이다. 그러나 특별시장은 이들의 정당한 '권리 투쟁'을 늘 하던 대로 서울 '변두리 지방민의 불평불만' 쯤으로 간주했다. 그런 안일한 대처가 이번에 고양시장의 고발로 된통 당한 셈이다. 왜냐면 "이 싸움은 고양시가 무조건 이기게 돼 있기 때문"이다. 최성 시장의 장담이다. 왜 그럴까?

"서울은 만원이다". 1966년 이호철씨가 <동아일보>에 연재한 소설 제목이다. 그로부터 44년이 지난 지금, 서울은 여전히 만원이다. 서울시의 '한눈에 보는 서울' 통계(2009년)에 따르면, 하루 245명이 서울에서 태어나고 106명이 죽는다. 하루 189쌍이 결혼하고 66쌍이 이혼한다. 서울의 주민등록인구는 1046만4051명이다. 이들이 하루에 1만1447톤의 생활폐기물을 쏟아낸다. 이 가운데 36%는 재활용쓰레기, 30%는 음식물쓰레기이고, 18%는 소각쓰레기, 17%는 매립쓰레기다.

서울 종로구의 상권은 다른 구에 비해 요식업소 비중이 높다. 광화문 일대와 종로의 피맛골 그리고 인사동이 대표적인 식당가이다. 생활쓰레기 중에서도 음식물쓰레기 배출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로구의 생활쓰레기 일부는 마포자원회수시설에서 처리되고, 대부분은 김포 수도권쓰레기매립지에서 처리된다. 때때로 분리수거가 안 되어 거부당한 쓰레기는 급한 대로 민간쓰레기처리장으로 가는데 처리비용이 두 배이다.

종로구 예산 2000억 원 가운데 1/10이 넘는 220억 원이 청소예산이다. 종로구 청소차 70~80대는 주민들의 기피로 주차해 놓을 데가 마땅치 않다. 그러니 경기도나 서울시 인근 자치단체에서 서울시 생활하수나 쓰레기 처리를 거부하면, 서울은 당장 쓰레기와 똥오줌으로 뒤덮일 판이다. 서울시의 '환경대란'은 서울시를 둘러싼 인근 자치단체들 하기에 달린 셈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의 불법행위에 대한 고양시의 무더기 고발은 '서울 이기주의'에 억눌린 지방의 '반란' 성격이 짙다. 서울은 그동안 지방에 '군림'했지만, 이번 싸움으로 수세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고양시가 서울시의 불법행위에 이행부과금을 매기거나 불법시설에 철거명령을 내리고 강제집행이라도 하면 서울시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서울 이기주의'에 억눌린 지방의 '반란'

더구나 고양시 환경단체와 지역주민들은 최 시장의 고발조처를 지지하면서 기피시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연계 투쟁을 할 태세다. 서울시를 빙 둘러싼 다른 자치단체들이 '지방연합군'을 만들어 "서울시 똥은 서울시가 치워라"고 가세라도 하면 서울시는 당장 백기투항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은 '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치우자'는 명분(?)으로 무장한, 서울에 대한 지방의 '유쾌한 반란'이다. 그래서 서울을 향해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아무도 들지 않은 그 깃발을 든 최 시장에게 박수를 보낸다.

하기는 요즘은 '민란'이 대세다. 시민의 힘으로 민주 진보진영을 하나의 정당으로 묶어내려는 '유쾌한 100만 민란' 운동도 따지고 보면 기득권 정치에 대한 민초의 반란이자 중앙에 대한 지방의 반란이다. 그 민란을 앞장서 이끄는 문성근씨도 고양시민이다.

덧붙이는 글 | 강준만 교수의 책 <지방은 식민지다>(개마고원, 2008)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90년대 초반에 이미 호소카와 모리히로-이와쿠니 데쓴도가 쓴 <지방의 논리 : 정치는 지방에 맡겨라>(삶과꿈, 1993)에서 "지방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No'라고 말할 수 있는 지방이 돼라" "'지방의 논리'로 무장하라" 같은 멋진 구호를 외쳤다.



태그:#서울시, #고양시, #오세훈, #최성, #주민기피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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