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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사망한 고 서정우 병장.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사망한 고 서정우 하사.
ⓒ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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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야 꼭 떠라, 휴가 좀 나가자."

23일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으로 전사한 서정우 하사(병장에서 1계급 특진)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문패'에 걸린 글귀다. 서 하사는 휴가 하루 전인 22일 오후 8시 54분에 "내일 날씨 안 좋다던데, 배 꼭 뜨길 기도한다"는 글을 남겼으나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제대를 한달 앞둔 서 하사는 G20정상회의 비상근무 때문에 말년휴가가 계속 연기되었다가 23일 휴가를 명받았으나 기상악화로 배가 뜨지 못해 부대에 남아 있다가 전사했다.

서 하사는 송영길 인천시장의 고등학교(광주 대동고) 26년 후배이자 친구의 조카이다. 송 시장은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트위터에 "호국훈련을 군이 연평도 일원에서 수행하는 도중 북측의 훈련 중지 경고통지 등이 있었으나 우리 군에서 북측이 아닌 방향으로 포사격 훈련을 하자 이에 자극 받은 북이 우리 군 포진지 등을 집중적으로 공격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글을 올렸다가 보수정당과 보수언론 그리고 누리꾼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데모하다가 온 놈 1보(步) 앞으로, 전라도 광주에서 온 놈 1보 앞으로"

꼭 30년 전의 일이다. 대학 2학년인 80년 4월 17일에 입소해 논산훈련소에서 전반기 교육(육군 기본훈련) 한달을 마치고 후반기 교육(중화기)으로 바뀌는 시점에 5·18이 터졌다. 나는 '광주의 사태'(그때는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라고 불렀다)를 파악하기 위해 기간병 내무반 불침번을 자원했다. 기간병 내무반에 가야 신문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광주에는 재수하는 남동생과 여고에 다니는 여동생이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다행히 시골 본가로 피해 화를 면했다.

한달 간의 후반기 교육이 끝나기를 학수고대했다. 그런데 자대에 배치되자 증오에 불타는 고참의 구타와 린치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이면 날마다 '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는 구호가 붙은 차고에서 날마다 닦달을 당하고 조인트를 까이거나 명치를 맞아 숨이 턱턱 막혔다. 딱히 이유가 없었다. 

아니 있었다. 고졸이었던 고참은 광주에서 발생한 학생데모 때문에 비상계엄이 선포돼 휴가 못간 분풀이를 신병들에게 해댔다. 그는 집합을 시켜놓고 어둠 속에서 증오에 가득 찬 눈으로 "데모하다가 온 놈 1보(步) 앞으로!", "전라도 광주에서 온 놈 1보 앞으로!"를 구령했다. 나는 대학생에다가 광주 출신이었으니 그 고졸 고참의 분풀이를 위한 필요충분 조건을 갖춘 셈이다. 그에게는 분풀이를 위한 희생양이 필요했다. 일종의 마녀사냥이었다.

나를 구타한 것은 고참이지만 그도 군사독재의 피해자였다. 민주화를 짓밟고 전군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것은 전두환이니 결국 나를 구타한 것은 전두환 독재였다. 용기가 부족한 나는 대학에 복학해 다른 친구들처럼 '밧줄'을 타지는 못했으나, 5월이면 '광주사태'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에는 빠짐없이 가담했다. 하루는 예비군복을 입고 시위를 마치고 가는데 방석복을 입은 낮 익은 '짭새'와 마주쳤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경찰이 된 그 고참이었다. 반갑게 아는 체를 했지만 매우 어색한 만남이었다.

서 하사의 애먼 죽음, 송 시장을 희생양으로 삼은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의 뭇매질을 보고서 30년 전에 내가 겪은 구타와 린치가 떠올랐다. 인천시청 홈페이지와 트위터에 나타난 민심의 반응은 대체로 언행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것과 시장이 트위터에 글이나 올릴 정도로 한가하냐는 것이었다. 과연 그럴까? 또 보수언론의 말폭탄과 보수정당의 색깔론 공세를 감수해야 할 만큼 북한의 공격을 비호하거나 대변한 것일까?

송영길은 시장으로서 할 일을 다했다

 지난 23일 오후 북한군이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에 포격을 한 가운데 24일 송영길 인천시장이 현지를 방문해서 군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지난 23일 오후 북한군이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에 포격을 한 가운데 24일 송영길 인천시장이 현지를 방문해서 군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 인천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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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시장은 23일 오후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지자 박종민 안보정책특보와 조윤길 옹진군수로부터 보고를 받고 즉시 인천시 공무원의 비상대기를 지시했다. 이어 오후 5시에 인천시 통합방위위원회를 긴급 소집해 옹진군 연평면에 '통합방위 을종사태'를 선포하고, 인천시에 비상상황실을 설치해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그는 이어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옹진군수, 박종민 특보, 홍준호 경제수도본부장 등과 함께 오후 9시15분 인천 연안부두에서 옹진군 병원선을 타고 24일 오전 연평도에 도착해 주민과 부대 장병들을 위로하고 돌아왔다. 북한의 범죄 증거물인 포탄을 보자기에 싸들고 나온 박상은 의원(인천 중구동구옹진군, 한나라당)도 송 시장이 탄 그 병원선을 타고 다녀왔다.

인천시는 송 시장의 현장방문에 풀기자단을 구성해 취재토록 했으나 군에서 취재진의 출입을 금지해 기자들은 병원선을 탈 수 없었다. 그래서 송 시장은 틈틈이 트위터를 통해 현장 상황을 짤막하게 직접 전했다.

"연평도에 새벽 2시에 도착하여 대피소에 들러 주민들을 위로하였습니다. 대피시설이 노후하여 시급한 개선이 필요합니다. 군부대를 방문하여 상황을 보고 받았습니다. 중상 당한 우리 장병들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피폭 현장과 산불 현장 등을 방문 중입니다. 인천 소방안전본부 소속 90여명의 소방대원이 산불 진화작업에 투입되었습니다. 지금도 일부지역 산불이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잡혀가는 추세입니다.

총 80여발의 포탄 중 5채 민간가옥이 피폭되었고 이로 인한 화재로 17채 가옥이 소실되어 22채 가옥이 소실된 상황이라는 면사무소 면장 보고입니다. 많은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으며 400여명이 넘는 주민들이 어젯밤 어선 등과 오늘 아침 해경경비정을 이용, KT와 한전 복구팀이 새벽 5시경 출발하여 1시경 도착예정입니다. 자가발전은 되고 있는데 파괴된 선로 때문에 전기 공급이 안되는 지역이 존재합니다. 여객선 출입은 합참에서 입출항을 불허하여 해양경찰청 경비정이 주민들을 인천으로 태워 나가고 있습니다."

트위터에 올린 5장의 사진과 설명이 화근

그는 사고 전파와 재난 복구 등 시장으로서 할 일을 다했다. 트위터 활동은 어쩌면 기자가 할 일을 대신해 준 것이자 일종의 현장보고였다. 그는 '북 포탄에 구멍이 난 연평도 해안가 방벽 모습' 등 현장에서 찍은 사진 5장을 다음과 같이 간단한 설명과 함께 행정선을 타고 연안부두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트위터에 올린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탄약고를 목표로 발사된 것으로 추정된 북 포탄이 탄약고 근처에 위치한 연평보건소에 떨어져 파괴된 보건소 모습. 다행히 인명피해 없었음. 주민들 진술에 의하면 10여년 전 구 보안대 건물이었다가 지금 연평마트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 지금도 북측은 보안대 건물로 인식, 정밀조준 포격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함."

그는 연평도를 다녀온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연평도에 가보니까 상당히 정밀조준사격을 한 느낌을 받았다, 주민들 얘기를 들어보니, 해경초소·탄약고·유류저장고·우체국·농협·연평수퍼 등이 피해를 봤는데 우체국은 옛 헌병대, 수퍼는 옛 보안대 건물이었다고 한다"고 일관되게 밝혔다. 그런데도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송 시장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말폭탄'과 '색깔론'을 퍼부었다.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이 연평도에 쏘았던 포탄이 공개되고 있다.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이 연평도에 쏘았던 포탄이 공개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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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인천시장 출마설이 나도는 박상은 의원이 선봉에 섰다. 그는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 나타나 "기자들이 현장에 가기 어려워 직접 들고 왔다"면서 보따리에 싸들고 온 122㎜ 방사포 포탄을 공개하고, '정적'인 송 시장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말폭탄'을 퍼부었다.

"송 시장은, 민간시설에 공격한 면사무소, 통신시설, 파출소, 보건소는 옛날에 주요한 군사시설이 있었던 지역이다, 그래서 북한이 그것을 모르고 공격한 것 같다는, 북한의 민간인 공격을 비호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했다. 도대체 송 시장은 도대체 어느 나라 시장인가. 송 시장은 과연 대한민국의 인천시장인지, 아니면 우리 국민과 군 장병을 살해한 자들의 대변인인지 알 수가 없다."

박상은의 '안보 상업주의 쇼'와 멍석 깔아준 안상수

그의 '안보 상업주의 쇼'에 멍석을 깔아준 이는 헬기를 타고 연평도를 다녀온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였다. 안 대표는 그 옆에서 "이 포탄은 아직까지 어느 언론에도 공개된 적이 없는 가장 큰 것"이자 "남아있는 가장 큰 포탄"이라며 기자들의 취재경쟁을 부추겼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지역구민과 지지층을 의식한 '오버 액션'쯤으로 넘길 수도 있다.

박 의원은 포탄을 앞에 두고 느닷없이 "국민 여러분"을 찾더니 "햇볕정책은 실패했다"면서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간 퍼준 40억불의 북한 지원금이 로켓포로 날아왔다"고 목청을 높였다. 한나라당은 28일에도 김무성 원내대표가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햇볕정책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야권을 친북·종북주의자로 몰아붙이는 공세를 펴나갔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조차 햇볕정부 탓으로 돌린 것이다.

40억 달러란 수치가 어떤 근거에서 나왔는지 모르지만, 이런 식으로 모든 사건의 책임을 과거 정권에 돌린다면 사실 현 정부가 책임질 일은 아무것도 없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촌철살인처럼 설령 '경복궁이 무너지더라도 흥선대원군 탓'이라면 될 일이다.

한나라당의 문제 제기를 계기로 보수언론의 '말폭탄'과 '색깔론' 공세도 이어졌다. <중앙일보>(26일)는 일부 누리꾼의 반응을 기사 제목("군이 폭격맞을 짓 했다는거냐... 인천시장이냐 평양시장이냐")으로 뽑아 성난 민심을 자극했다. 그러나 송 시장은 기자들이 할 일을 대신한 것뿐이다. 그는 현장에서 들은 주민들의 진술을 토대로 '팩트'(fact)를 전달한 것뿐이다.

1920년대 영국 <The Manchester Guardian>지의 편집인 스콧이 남긴 유명한 아티클 중에 "Comment is free, but facts are sacred!"라는 표현이 있다. 이 경구처럼 팩트는 하나이지만, 그 팩트에는 10개의 다른 해석과 의견이 있을 수 있다.

"Comment is free, but facts are sacred!"

포탄 맞은 연평마트 주민들에 따르면 10여년 전에는 보안대 건물이었다고 한다.
▲ 포탄 맞은 연평마트 주민들에 따르면 10여년 전에는 보안대 건물이었다고 한다.
ⓒ 송영길(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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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초소·탄약고·유류저장고·우체국·농협·연평수퍼 등이 피해를 봤는데 '우체국은 옛 헌병대, 수퍼는 옛 보안대 건물이었다'는 주민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사실은 다양한 해석과 의견을 제공한다.

이를테면 우체국은 옛 헌병대, 수퍼는 옛 보안대 건물이었다면 송 시장의 의견처럼 북한이 상당히 정밀조준포격을 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 주민의 말이 사실이면, 북한군이 연평도의 지리정보를 꿰뚫고 있지만 적어도 최근의 지리정보에는 어둡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또 그것이 사실이면 북한군은 한 10년 전쯤에 정찰이나 간첩활동을 통해 연평도 지리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거기서 더 나가면 10년 전쯤에 간첩활동을 한 '거수자'를 압축할 수도 있다.

송 시장의 견해는 이처럼 하나의 팩트에 근거해서 도출할 수 있는 여러 해석과 의견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그것을 "군이 폭격 맞을 짓 했다는 거냐"고 말꼬리를 잡아 '북한의 민간인 공격을 비호하는 발언'이라고 공격하고, "인천시장이냐 평양시장이냐"는 흑백논리를 내세워 '우리 국민과 군 장병을 살해한 자들의 대변인'으로 재단하고, '북한 지원금이 로켓포로 날아왔다'고 선동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한 정치공세이거나 마타도어일 뿐이다.

그런 식의 허접한 논리라면, 차라리 '서정우 하사는 이명박이 죽였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 정부에서조차 '모든 길은 G20으로 통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과도한 이명박 대통령의 G20정상회담 욕심 때문에 대입수능시험도 연기되었고 군인들의 휴가도 연기되었다. 서 하사 또한 G20으로 인한 비상대기 때문에 말년휴가가 연기되어 그날 사고를 당한 것이니, 한나라당식으로 책임을 전가하면 '서 하사는 이명박 때문에 죽었다'는 논리도 성립한다.

누가 뭐래도 명백한 '팩트'는, 적어도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북한이 우리 영토를 로켓포로 공격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송영길은 그 10년 동안 묵묵히 '벽을 문으로' 만들기 위한, 남북화해와 협력의 한 길을 걸어왔다. 그밖의 코멘트는 다 프리(free)다.

송영길의 별명은 황소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영락없이 황소를 빼닮은 그의 생김새처럼 무뚝뚝하고 붙임성은 없지만 성품도 묵묵히 일하는 황소라고 평한다. 그의 트위터 주소(http://twitter.com/Bulloger)에서 보듯, 트윗 아이디도 '@Bulloger'이다. 그가 16대 국회에 입성해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의정일기를 써서 국민과의 소통을 꾀했던 책의 제목도 <그래, 황소처럼 이 길을 가는 거야>였다. 그래서 그와 동시대인인 공지영의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원용해 이렇게 말하고 싶다.

황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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