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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쉬어가는 모양이다. 이제 슬그머니 꼬리를 자르면 얼마나 좋을까? 나흘간 장대비를 쏟아 붓더니 맑은 햇살이 보인다. 반가운 햇살이다. 모든 작물이 제 위치로 돌아간 듯싶어 마음이 놓인다. "졸졸졸!" 개울가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거칠게 흐르던 흙탕물이 목소리를 많이 낮췄다. 물도 맑아졌다.

 

아내와 함께 텃밭으로 나왔다. 관심은 고추밭에 있다. 1000여 주를 심은 우리 고추밭이 비바람에도 용케 버티었다. 고춧대가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서로 의지하며 제자리를 지켜준 게 너무 고맙다.

 

"여보, 풋고추 따려면 빨리 따! 고추 소독해야겠어."

"이 더위에요? 날이 선선할 때 하면 안 될까?"

"선선해지기 기다리다가 언제? 생각 난 김에 얼른 해야지!"

"그래도 그렇죠! 당신, 더위 먹으면 안 되는데…."

 

비지땀을 흘려 일하면 더위도 잊는다!

 

아내는 무더위에 고추 소독을 한다니까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약치는 것도 때가 있다. 장마철에는 비가 그치면 고추 소독은 필수이다. 고추농사는 지금이 최대 고비이다. 고춧대 아랫도리에 매달린 고추가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지금 게으름을 피우면 고추 품질이 현저히 떨어진다.

 

아내가 풋고추를 한 움큼 안고 집안으로 들어가며 한마디 한다.

 

"당신, 그럼 빨리 소독하고 들어와요! 내 맛난 거 해놓을 테니까!"

 

무슨 음식을 준비하려는 걸까? 아무튼 빨리 일을 마치고, 맛난 음식을 기대해봐야겠다.

 

농약 치는 일은 만만찮다. 농사일 중 가장 힘든 일이다. 우선 복장을 단단히 갖춰야한다. 긴팔 옷을 입는다. 장화를 신고, 밀짚모자에 마스크까지! 전문으로 농사짓는 사람들은 고속분무기로 쉽게 하는 일인데, 아마추어는 농약통을 짊어지고 한다. 남들 일하는 것에 비해 곱절은 힘이 든다.

 

농약통을 짊어졌다. 장맛비에도 얼마나 컸는지 고춧대가 가슴까지 올라왔다. 지난 번 소독할 때보다 일하기가 더디다. 처음 짊어질 때만 해도 덥지 않았는데, 어느새 푹푹 찐다. 그래도 어쩌랴! 일을 시작했으니 끝을 내는 수밖에.

 

한 시간 남짓 지났다. 옷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머리에서부터 흐르는 땀이  바짓가랑이 사이로 줄줄 흐른다. 그래도 일을 마치고 나니까 시원하다. 이런 경우가 이열치열인가!

 

아내가 걱정이 되는지 현관문을 열고 나와 소리를 지른다.

 

"여보, 이제 그만해요! 들어올 때 토마토 두 개와 오이 하나만!"

 

뭣을 만드는데 토마토와 오이가 필요할까? 이런 날은 이열치열로 삼계탕이 제격일텐데 말이다.

 

"냉콩국수 어때요?"

 

시원한 물로 몸을 씻어내자 몸도 마음도 날아갈 것 같다. 선풍기 바람이 한결 시원하다.

 

앞뒤 창을 열고 아내가 콧노래를 부르며 음식을 장만한다. 표정에서 즐거움이 잔뜩 묻어나온다.

 

"당신, 뭐하는 거야? 그리고 토마토와 오이는 왜?"

"쓸데가 있죠. 냉콩국수 어때요?"

"냉콩국수? 그거 괜찮겠네! 그런데 번거롭지 않아?"

"번거롭기는요. 당신, 내 콩국수 만드는 실력 알죠?"

"콩국수 실력이 따로 있나?"

"그래도요."

 

콩국수라니? 벌써 군침이 돈다. 음식도 먹는 때에 따라 맛이 다르다. 여름철에 비지땀을 흘린 뒤 먹는 냉콩국수가 별식으로 그만일 것 같다. 한 그릇을 뚝딱 비우면 더위는 멀리 달아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한여름에 콩국수를 가끔 해먹는다. 몸이 더위에 지쳐있을 때 콩물을 내려 국수를 말아먹으면 잃었던 입맛을 되찾는다. 더구나 고소한 맛의 콩은 단백질의 보고가 아닌가!

 

우리는 작년 농사를 지어 서리태가 많이 남아있다. 아내는 콩을 불려 냉동실에 보관하여  먹는다. 밥할 때 한줌씩 넣어 밥을 짓는다. 콩국수를 할 때는 얼린 콩을 찬물에 담가 믹서로 간다.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콩국수

 

주방에 믹서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간단하게 콩이 갈린다. 걸쭉한 국물이 진덤진덤하다. 그러고 보면 세상이 참 편해졌다. 예전 같으면 맷돌을 이용하여 힘들여 갈 것을 순식간에 일을 마친다.

 

아내가 콩물에 약간의 물을 부어 체에 받친다. 걸쭉한 콩물이 쏟아진다. 콩물이 약간 푸른빛이 띤다. 서리태의 특징이다. 보드라운 콩물이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콩비지는 나중에 찌게를 끓여먹으면 또 다른 별미다.

 

이제 국수를 삶을 차례다. 요즘은 시중에서 콩국수용 생국수를 쉽게 살 수 있다. 팔팔 끓는 물에 국수를 집어넣자 금세 숨이 죽는다. 나무 주걱으로 몇 번 저은 후 다시 끓어오르면 찬물을 한 컵 붓는다. 그리고 다시 끓어오르면 찬물에 박박 문지른다.

 

아내가 씻어낸 몇 가닥을 집어 입에 넣는다. 면발이 쫄깃쫄깃하다는 표정이다.

 

예전 생각이 나서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당신 클 때는 어떻게 국수 말아 먹었어?"

"우리는 멸치 국물에 김치 넣어 먹었죠."

"그것은 고급이고! 우리는 밥 대신 국수를 했거든. 그 땐 찬물에 사탕물로 말아 먹었지!"

"그냥 사탕물에 국수를 넣어서요?"

 

아내가 의아해한다. 내 어렸을 적엔 정말 그랬다. 일 바쁜 여름철, 끼니를 급히 해결할 방법은 국수를 삶아 찬물에다 당원을 타서 말아 먹었다. 그 때는 그 맛이 꽁보리밥보다 훨씬 나았다. 멸치 국물이나 콩물에 말아 먹는 경우는 별식으로 일년에 몇 번 없던 일이었다.

 

한여름 점심으로 이만큼 시원한 맛이 또 있을까?

 

아내가 고명으로 쓸 재료를 찾는다. 우리 밭에서 따온 오이와 토마토가 제격일 것 같다. 연한 오이를 채 썰고, 토마토는 나박나박 썬다.

 

콩국수 만들 모든 준비가 끝이다. 아내가 유리 그릇을 찾는다. 콩국수는 유리 그릇에 담아먹어야 제 맛이라나?

 

삶은 국수사리를 그릇에 담는다. 콩물을 국수사리가 잠기도록 붓는다. 얼음 몇 조각을 동동 띄운다. 마지막으로 채 썬 오이와 빨간 토마토를 고명으로 얹으니 먹음직스러운 콩국수가 완성이다.

 

"여보, 설탕을 좀 넣을까? 예전 국수 말아 먹던 식으로!"

 

아내가 손사래를 친다. 소금으로 간해야 콩물은 고소한 맛이 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반찬은 약간 시큼한 열무김치다.

 

얼음이 들어가 정말 시원하다. 밭에서 힘들게 일하고 먹는 음식이라 그럴까? 음식이 달다. 콩국수가 후루룩 넘어간다. 더위나 먹지 않을까 걱정하던 아내도 맛있게 음식을 먹는 나를 보고 안심이라는 표정이다.

 

복더위에 냉콩국수만큼 더위를 이기는 시원한 음식이 또 있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2008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 글입니다.


태그:#콩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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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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