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가 있는 아름다운 꽃지해수욕장. 태안군 안면도에 있다.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가 있는 아름다운 꽃지해수욕장. 태안군 안면도에 있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여름엔 산으로 갈까, 바다로 갈까? 나는 산이 더 좋다. 가파른 산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구슬땀이 비 오듯 한다. 정상을 정복한 뒤, 가슴을 파고드는 시원한 바람은 상쾌하기 그지없다. 힘든 발걸음에서 오는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은 여름 산행의 묘미이다. 발 아래 펼쳐지는 우거진 녹음과 새소리 물소리를 함께 들으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진다.

그런데 덕산온천에서 하룻밤을 묵은 우리 일행들이 당초 산행계획을 취소하려고 한다. 헐떡거리며 비지땀을 흘리기 싫은 모양이다. 시원한 바다가 얼마나 좋으냐며 바다로 가자고 한다. 여러 사람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덕숭산 산행과 수덕사 구경은 다음 기회로 넘겼다.

아직은 한산한 꽃지해수욕장

우리는 안면도로 방향을 틀었다. 태안군 일대를 잘 아는 일행이 어디를 안내할까 고민이다.

"지금쯤 물때가 맞을지 모르겠네요?"
"물때는 왜요?"
"할미바위, 할아비바위 가는 바닷길이 열리면 좋잖아요?"
"꽃지해수욕장 말하는 거예요? 거기 참 좋겠네! 난 슬쩍 지나치기만 했는데…."

꽃지해수욕장을 간다는 소리에 모두들 좋아라한다. 서해의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가 그려지는 모양이다. 산행을 못한 아쉬움은 멀리 달아났다.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에 있는 꽃지해수욕장. '꽃지'란 뭘 의미할까? 아마 꽃이 많이 피어있는 곳이라는 뜻이 아닐까? 꽃지해수욕장은 꽃 화(花), 못 지(池)를 써서 화지해수욕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해안을 따라 붉은 해당화가 많이 피었다고 해서 '꽃지'란 이름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름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주말(12일)이었는데도 한산한 꽃지해수욕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서해바다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주말(12일)이었는데도 한산한 꽃지해수욕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서해바다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아직 개장을 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그런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곳을 안내한 일행이 아쉬움을 표한다.

"안면도는 기름 유출 피해가 크지 않았는데 사람이 많지 않네요!"
"그래도 꽤 많은 사람들이 찾았는걸요."
"주말에 이 정도면 말이 안 되죠.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던 곳이었는데…."
"그런가? 이곳도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요?"

태안 기름 유출 사고에 대한 악몽이 남아있는 것인가? 동해안과 남해안 해수욕장은 수많은 인파로 넘실댄다는데 여기는 좀 한산한 느낌이다.

"와! 할미바위, 할아비바위 바닷길이 열리네!"

꽃지해수욕장의 푸른 바다가 출렁인다. 완만한 수심과 맑은 물이 즐거움을 더해준다. 파도에 실려 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젊음이 있는 여름 바다. 할아비바위가 고즈넉하다.
 젊음이 있는 여름 바다. 할아비바위가 고즈넉하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여름 바다에는 젊음과 낭만이 있다. 물장구를 치며 좋아라하는 연인들의 모습이 부럽다. 자연과 어울려서 사진을 찍는 포즈도 멋스럽다. 추억을 담아내려는 마음이 느껴진다. 부서지는 파도에 몸을 담그며 파도와 맞서는 젊음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즐겁다. 밝은 웃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듯싶다.

바닷가 세운 솟대가 이채롭다. 새 떼가 할미바위, 할아비바위를 향해 날개를 접고 있는 것 같았다.
 바닷가 세운 솟대가 이채롭다. 새 떼가 할미바위, 할아비바위를 향해 날개를 접고 있는 것 같았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누가 할미바위, 할아비바위가 보이는 곳에 철재 솟대를 세웠을까? 새 모양의 솟대가 바다를 향해 날개를 접고 있다. 할미바위의 슬픔을 달래주려는 듯 말이 없다.

꽃지해수욕장 할미바위에는 슬픈 전설이 남아있다. 신라 흥덕왕, 장보고가 활약하던 시절 때 이야기다. 장보고의 수하 '승언'은 출정명령을 받고 뱃길을 떠났다. 그의 부인 '미도'는 날마다 바다를 바라보며 낭군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해가 가고 달이 가도 기다리는 님은 오지 않았다. 결국 기다리다 지친 부인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부인이 앉아서 기다리던 산은 바위로 변했다.

이 바위를 훗날 사람들이 할미바위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곳의 지명도 '승언'의 이름을 따서 승언리가 되었다고 한다. 옆에 있는 할아비바위는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넓은 바다의 수문장처럼 우뚝 서있는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 꽃지해수욕장은 할미바위, 할아비바위가 있어 더 유명한지도 모른다. 할미바위, 할아비바위 사이로 넘어가는 낙조는 장관이라고 한다. 떨어지는 석양빛과 구름이 만들어내는 조화는 말문이 막힐 정도라는 것이다. 나도 기회가 되면 아름다운 '꽃지'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보고 싶다.

푸른 파도가 넘실대고 있다. 방파제에 차량들이 점점이 주차하고 있었다.
 푸른 파도가 넘실대고 있다. 방파제에 차량들이 점점이 주차하고 있었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물이 아주 맑았다. 어디서 해조류가 떠내려왔다.
 물이 아주 맑았다. 어디서 해조류가 떠내려왔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많은 사람들이 솟대가 서 있는 잔디 언덕에서 바다를 바라고 있다. 출렁이는 파도와 파도를 즐기는 사람들이 잘 어울린다. 일행이 내 팔을 끈다.

"할미바위, 할아비바위까지 바닷길이 열리네요. 우리도 가까이 가보죠."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이곳까지 와서 그냥 갈 수 없지 않은가! 신발을 벗었다. 무릎까지 물이 잠긴다. 바닷물의 느낌이 좋다.

물 속에 어떤 사람이 뭔가를 줍고 있다. 손에 비닐봉지가 들려있다.

"아저씨, 뭘 주우세요? 조개가 보여요?"
"조개보단 병 조각 깨진 게 있네요. 죄다 맨발로 다니는데…."

아저씨는 조개를 줍는 게 아니었다. 남을 위해 애쓰는 마음에 감동이 인다. 맑은 바닷물 속에 유리 파편이 곳곳에 눈에 띈다. 부끄러운 짓을 한 사람들이 날카로운 조각을 줍는 아저씨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사람들이 몰려오면 바다도 춤을 출 텐데

징검징검 걷다보니 할미바위, 할아비바위가 코앞이다. 두 바위섬이 한 몸이 되고 있다. 물이 차면 두 섬은 헤어지고, 물이 빠지면 다시 손을 잡는다. 작은 섬들이 바닷물의 변화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모양을 달리한다.

할미바위 바위틈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가 위태위태하다. 질긴 생명력으로 버티고 서있는 모습에서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자연의 위대함은 이런 것인가?

할미바위의 멋진 모습. 벼랑 끝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가 참 아름다웠다.
 할미바위의 멋진 모습. 벼랑 끝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가 참 아름다웠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다시 신발을 신었다. 할아비바위로 다가갔다. 할아비바위는 할미바위와는 달리 소나무 숲이 무성하다.

이곳에 올라갈 수는 없을까? 주위를 살피는 데 '미끄럼 주의'라는 표지가 있다. 그리고 산길이 보인다. '사람들은 왜 이곳에 오르지 않지?' 나는 혼자서 올라갔다. 이름모를 새 한 마리가 내 숨소리에 푸드득 소리를 내며 내뺀다.

할아비바위 위에서 내려다 본 바다가 그림 같았다.
 할아비바위 위에서 내려다 본 바다가 그림 같았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가파른 길을 오르니 큰 나무 틈새로 출렁이는 바다가 보인다.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바다가 참 보기 좋다. 꼭대기에서는 무성한 나무숲 때문에 시야를 가린 게 아쉽다. 작은 섬 하나를 내가 통째로 차지한 것 같다.

오르던 길을 다시 내려오는 동안 바닷물이 쏙 빠졌다. 드러난 바닷길을 걷는 사람들의 발길이 가벼워보인다.

태안 앞바다에 기름이 유출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기름때를 닦았다. 사람들의 정성을 알았는지 바다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얼마나 다행인가! 조개를 줍고, 작은 게를 잡는 손길에서 바다는 이미 제 모습을 되찾았는지도 모른다.

조개를 줍고, 게를  잡는 사람들
 조개를 줍고, 게를 잡는 사람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아이들과 조개를 주우며 아주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엿들었다.

"애들아! 조개도 줍고, 바다에 발을 담그니 너무 좋지! 우리 '꽃지' 오길 참 잘했지? 이곳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면 바다도 춤을 출 텐데! 그치?"

덧붙이는 글 | - 지난 주말(12일)에 다녀왔습니다.
- '2008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 글입니다.



태그:#꽃지해수욕장, #할마바위, #할아비바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