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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한일 시민 친구만들기' 행사가 열린 강화도 오마이스쿨.
 '제 2회 한일 시민 친구만들기' 행사가 열린 강화도 오마이스쿨.
ⓒ 손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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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행사에 참석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시민기자들.
 환영행사에 참석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시민기자들.
ⓒ 오마이뉴스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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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식탁보가 덮인 테이블 앞에 수줍은 청년 한 명이 앉아 있다. 그저 나를 보며 웃는 그는 <오마이뉴스 재팬> 대학생 시민기자 니시와키 야스히로.

아직 이 곳이 낯설었던지 선뜻 내게 말을 걸지 못하고 있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강당을 밝히며 조용히 타들어가는 촛불, 그 앞에 덩그러니 놓인 와인 잔을 바라보며 우리들의 시선은 '목적지'를 찾지 못했다. 첫 만남의 어색함 때문이었다.

지난 11월 30일부터 2박3일간, 강화도 '오마이스쿨'에서 열린 '제2회 한일 친구 만들기' 행사 첫날. 환영회를 위해 강당에 모인 한일 시민기자들은 아직은 서먹한지 '무언의 대화'만 나누고 있었다.

"우리 친구 할까? 나 소주 좋아해"

앞자리에 앉은 야스히로씨는 내가 만난 첫 번째 일본인이었다. 야스히로씨의 갑작스런 미소는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이제는 들켜버렸구나. 내가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것을…', 가슴이 철렁했다. 야스히로씨의 미소를 외면할 수 없어, 나는 무식하고 용감하게 그에게 다가갔다.

"야스히로 혹시 한국 말 할 줄 알아? 너하고 친해지고 싶은데, 내가 일본 말을 잘 몰라서…(웃음)."

지성이면 감천일까. 야스히로씨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어색하게 미소 짓지 않았다.

"나 한국말 할 줄 알아. 우리 친구할까? 나 소주 좋아해."(웃음)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재팬>의 대학생 시민기자 니시와키 야스히로와 함께.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재팬>의 대학생 시민기자 니시와키 야스히로와 함께.
ⓒ 손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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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속에 감춰진 야스히로씨의 능수능란한 한국어 솜씨는 나를 놀라게 했다. 지금까지 한국에 3~4번 정도 왔고,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져왔던 친구였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영행사를 진행하기 위한 이병선 <오마이뉴스> 부국장의 마이크 소리였다.

그리고 야스히로씨가 강당 앞 단상으로 나갔다. 한국에 온 일본 시민기자를 대표해서 인사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야스히로는 조금은 긴장해서인지 단상에 나가기 전 앞에 있던 와인을 몇 잔 마셨다. 또 내게 자신이 앞에 나가면 박수를 크게 쳐달라고 부탁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은근히 소심한 면이 있던 친구였다.

"이렇게 예쁜 학교에서 한국 시민기자를 만나 기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야스히로씨의 인사말이 끝나자 나는 크게 박수를 쳤다. 방금 전에 한 약속도 있었지만, 그의 능수능란한 한국어 솜씨에 다시 놀랐기 때문이다. 강당에 모인 한·일 시민기자들도 야스히로씨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배에서 '꼬르륵~ 꼬르륵'. 저녁식사 시간을 알리는 신호가 들려왔다. 환영 행사장에는 푸짐한 뷔페가 차려졌고 사람들의 표정에는 생기가 돌았다. 모두들 배가 고팠나 보다. 식사시간에 잠시 막간 공연이 이어졌다. <오마이뉴스 재팬> 시민기자 하라다 고이치씨의 서정적인 리코더 연주였다.

그는 어렸을 때 몸이 좋지 않아 "5살까지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불굴의 노력으로 이를 극복했다고 한다. 또 학창시절 학급동료로부터 따돌림을 받기도 했지만, 장애인·독거노인 등 소외받은 이웃들에게 리코더 연주를 들려주며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한다.

한국 시민기자 사례발표... "너무 떨리는데요"

<오마이뉴스> 한국 시민기자 사례발표를 하고 있는 나.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발표를 하니 무척이나 떨렸다.
 <오마이뉴스> 한국 시민기자 사례발표를 하고 있는 나.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발표를 하니 무척이나 떨렸다.
ⓒ 손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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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가 끝나갈 무렵, 한·일 시민기자들의 '사례발표'가 이어졌다. 일본에서는 이시가와 마사유키·야마다 다카코 시민기자. 한국에서는 강화도와 인연이 깊은 이승숙 시민기자 그리고 내가 사례발표를 맡았다.

이승숙 시민기자는 특유의 입심으로 행사장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또 1999년부터 강화도에 '마리서당'이란 교육공동체를 운영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야마다 다카코 시민기자는 3년 전 일어난 교통사고의 아픈 기억을 들려주며 말문을 열었다. 다카코씨는 이 사고로 자신의 3살 난 딸을 잃었다고 한다. 아직도 그때의 슬픔이 가시지 않았는지 발표 내내 눈물을 흘렸다.

양국 시민기자들의 사례발표를 끝으로 제 2회 한일시민 친구 만들기 환영행사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아직 무언가 부족해 보였다.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다.

이어 양국 시민기자들 간에 '친목의 시간'이 진행되었다. 첫 만남의 어색함은 사라진 지 오래, 시민기자들의 얼굴엔 웃음꽃으로 가득했다.

개성 넘치는 외모와 성격의 소유자 <오마이뉴스 재팬>의 나카지마 마사토시 시민기자와 함께.
 개성 넘치는 외모와 성격의 소유자 <오마이뉴스 재팬>의 나카지마 마사토시 시민기자와 함께.
ⓒ 손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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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내 옆에 일본인 대학생 시민기자 한 명이 다가왔다. 나카지마 마사토시 시민기자였다. 장난끼 있는 표정, 특유의 옷차림…. 그의 첫인상은 개성으로 가득했다. "Are you speak english?", 마사토시씨는 일본인이었지만 대뜸 일본어 사투리가 섞인 영어로 내게 다가왔다.

그는 스포츠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 중 축구·야구를 좋아하고, <오마이뉴스 재팬>에 관련 기사를 꾸준히 쓰고 있다고 했다. 또 나고야가 고향이라 이병규 선수가 활약하고 있는 주니치 드래곤즈의 열성팬이라 자기를 소개했다. 마사토시씨는 사교성이 많았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시민기자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며 친교를 다졌다.

함께 온 인턴동기 김한내 시민기자에게는 'Cutie(귀여운 소녀?)'라고 부르며,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장난을 치기도 했다. 또 장영우·박상익 시민기자와는 해외 축구리그, 월드컵 조별예선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관심사를 공유했다. 나에게는 한국의 연예인들, 대학생활 등 전반적인 한국문화에 대해 물어봤다. 호기심도 많은 친구였다.

또 짧은 영어단어를 구사하며 능수능란하게 이야기하던 그를, 우리는 '토막영어'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야스히로씨와 마사토시씨는 나와 나이가 비슷해서인지 마음이 잘 통했다. 무르익는 분위기 속에 오고가는 술잔 그리고 한일 시민기자 간에 진한 우정…. 이렇게 행사 첫날 밤은 지나고 있었다.

일본 시민기자들, '북한문제'에 높은 관심 보여...

행사 두번째 날(12월 1일)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강연으로 시작됐다. 정 전 장관은 강연 시작 전부터 진지했다. '강화도'라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장소를 언급하며 말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강화도는 1876년 조일수호조약(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곳이다.

정 전 장관은 "북핵문제의 발단과 원인을 설명한 뒤, 북핵문제에 있어 일본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적 지원도 요구했다. 또 민감한 사안인 '일본인 납치문제'를 꺼내면서, "일본정부가 이 문제를 북한에 강변일변도로 요구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직설화법' 때문인지 강연을 듣는 일본 시민기자들의 얼굴은 조금 굳어졌다. 하지만 강연이 끝난 뒤, 일본 시민기자들의 질문공세는 뜨거웠다. 북한문제에 대한 놀라운 관심을 보였다.

강화도 광성보에서 한 컷. 왼쪽 위부터 최샘, 박소영, 난조 아키라, 나현희, 하라다 고이치, 장영우 시민기자 그리고 나.
 강화도 광성보에서 한 컷. 왼쪽 위부터 최샘, 박소영, 난조 아키라, 나현희, 하라다 고이치, 장영우 시민기자 그리고 나.
ⓒ 손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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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부터는 본격적인 강화도 유적탐방이 이어졌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 우리는 탐방에 앞에서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꽁보리밥이 주 메뉴인 한식당이었다. 매콤한 고추장, 한 주걱 푼 보리밥에 푸짐한 나물들이 나왔다.

내 바로 옆에는 마사토시씨가 그리고 바로 옆 테이블에는 야스히로씨가 앉았다. 두 친구들이 한국음식을 잘 먹는지 궁금했다. 마사토시씨는 보리밥에 고추장도 비비지도 않고 나물 몇 개만 얻으며 밥을 먹었다. 그는 "맵고 짠 한국음식이 입에 잘 맞지 않는다"고 내게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야스히로씨는 달랐다. 첫 만남 때 소주를 좋아한다며, 한국문화에 호의적이었던 그는 보리밥에 나물을 푸짐하게 넣고 고추장을 비비며,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리고 메밀전이 담긴 접시도 깨끗이 비웠다. 야스히로씨는 누구보다 한국적인 일본인 친구였다.

점심 식사 후 광화도 부근 서해 비무장지대, 강화도 조약이 채결되었던 연무당 옛터, 조선시대 강화도의 요충지였던 광성보를 둘러봤다. 연무당 옛터와 광성보는 조선 말기 한국과 일본의 아픈 과거가 서려 있던 곳이라 의미가 남달랐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시민기자들은 반목과 대결 대신 서로 손잡고 화해와 평화를 함께 외쳤다.

'369게임'에 '007게임'까지 함께 즐겼던 일본인 친구들

유적탐방이 끝나갈 무렵, 어느덧 날은 어둑어둑해졌다. 발이 무척 아팠고 날씨가 추웠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줬을까. 다음 코스는 한일 시민 친구만들기 행사의 백미 '찜찔방 체험'이었다. 피곤에 지친 다른 시민기자들도 찜질방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는 모두 화기애애했다. 벌써 이번 행사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일본인 친구들이 찜질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호기심 많은 마사토시씨는 아무런 주저 없이 "찜질방으로 가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야스히로씨는 감기기운 때문인지 찜질방에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기다렸다. 야스히로씨에게 한국문화를 소개시켜줄 좋은 기회라 생각했는데 무척이나 아쉬웠다.

강화도 오마이스쿨의 야경. 행사 마지막 날 밤, 한국과 일본의 시민기자들은 모닥불에 둘러 않아 작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강화도 오마이스쿨의 야경. 행사 마지막 날 밤, 한국과 일본의 시민기자들은 모닥불에 둘러 않아 작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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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마이스쿨'로 돌아온 우리는 제 2회 한일 친구만들기 행사의 마지막을 아쉬워했다. 식당에는 푸짐하게 차려진 닭볶음탕과 강화도의 특산물 인삼 동동주가 우리의 아쉬움을 달래주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뒤 마사토시씨, 야스히로씨 그리고 몇몇 한국의 시민기자들과 함께 테이블에서 간단한 게임시간을 가졌다.

'369 게임, '007 게임' 등 한국 대학생들이 즐겨하는 게임을 마사토시씨와 야스히로씨도 곧잘 따라했다. 둘은 몇번 시범을 보여주자 자연스럽게 게임에 동참했고, 틀리면 한국사람과 똑같이 벌주를 마시기도 했다.

오마이스쿨 한편에서는 조그만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 시민기자가 가져다 놓은 고구마는 어느새 군고구마로 변해가고 있었다. 정막해진 강화도의 밤, 일본 시민기자 하라다 고이치씨의 리코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연주곡은 비틀즈의 '이매진'이었다.

모닥불에 둘러앉은 한국과 일본의 시민기자들은 고이치의 서정적인 연주를 들으며 마지막을 아쉬워했다.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그리고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하며….



태그:#한일친구만들기, #오마이스쿨, #강화도, #시민기자,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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